Nope    


미국-캐나다, 2022.      ☆☆☆


A Monkeypaw Production Film, distributed by Universal Pictures. 화면비 2.35:1, 2시간 10분. 


Director, Producer and Screenwriter: Jordan Peele. 

Cinematography: Hoyte van Hoytema. 

Music: Michael Abels. 

Visual Effects: Guillaume Rocheron. 

Costume Design: Alex Bovaird. 


CAST: Daniel Kaluuya (오제이 헤이우드), Keke Palmer (에머럴드 헤이우드), Steven Yeun (릭키 “주피터” 박), Brandon Perea (안헬), Michael Wincott (앤틀러스 홀스트), Keith David (오티스 헤이우드), Osgood Perkins (바크만), Devon Graye (오토바이남), Donna Mills (보니 클레이튼), Wrenn Schmidt (앰버 박), Jacob Kim (어린시절의 릭키 박), Barbie Ferreira (네시).


NOPE-_POSTER_1 


내 너희에게 가증스러운 오물들을 던지고, 너희를 비열하게 만들어, 바야흐로 구경거리로 삼겠노라. I will cast abominable filth at you, make you vile, and make you a spectacle. --나훔서 3장 6절 


예고했던대로 [놉] 의 리뷰 올립니다. 이미 한국 공개된지 한달 가까이 지난 시점이라서 뒷북리뷰가 되었네요. 난 이미 극장에서 보는 영화의 비율이 전체 영화 보는 숫자의 25퍼센트가 채 안되는 상태를 유지한지 10년도 더 된 몸인지라 (이 비율은 코로나사태와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팬더믹 기간중에 극장만 안갔다 뿐이지, 감상한 영화의 절대수는 오히려 증가했을 듯), 나처럼 구태여 극장에 가서 찾아볼 일이 없다면 (시사회라든지 또는 동네 극장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던지, 요번 [놉] 처럼 믿고 보는 영화인들의 신작, 또는 내가 딱히 선호하지 않더라도 여려가지 이유로 흥미를 가질만한 사유가 있는 작품들 등), 대부분의 경우 블루 레이나 VOD 등으로 영화를 찾아보게 될 소비자들을 상정하고 리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상기시켜 드리고자 합니다. 저널리스트라면 사실 즉각적인 반응이 중요하겠죠. 그러나 나 뿐만이 아니라 Koreanfilm.org 의 집필진들도 마찬가지로 나왔을 때 딱 한번 보고 고 다음의 화제작으로 서둘러 넘어가는 형태의 관람습관을 지양하고자 하는 지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라는 것은 불과 몇개월동안 소비자의 “관심회로” 를 돌다가 사그라져 없어지고 다시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한편 한편이 누군가가 공을 들이고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지는 “물품” 이라는 인식이 좀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것은 보고서 좋았다는 생각이 든 영화들뿐만 아니라 “별로,” “심히 별로,” 심지어는 “그지같다” 고 느꼈던 활동사진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쓰레기같은” 영화란 이 세상에 단 한편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 쓸데없는 말이 길어졌습니다만, 먼저 단도직입적인 한줄평가부터 가죠. 현금 미국에서 가장 흥미있는 작품을 만드는 “영화작가” 중의 한사람인 조던 필의 신작이고, 여전히 예상을 뒤엎는 재미를 안겨주었는데, 나 개인의 반응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겟 아웃] 만큼 심금을 울리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여러모로 더 그의 영상스토리텔러로서의 재능이 [겟 아웃] 보다도 뚜렷이 반영된 한편임과 동시에, [어스] 보다 훨씬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지금 언급한 두 전작에 못지 않게 끔직한 사태들이 발생하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겟 아웃] 과 [어스] 에는 없었던 일종의 장쾌함이라고 할까, 가슴이 탁 트이는 쾌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한편이었습니다. 단지, [놉] 을 보고 실망할 관객분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이 됩니다. [놉]은 분명 어떤 불가사의하고 괴기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이러한 사태들에 대해 등장인물들의 구구한 해석이 주어지는 가운데, 점차적으로 “진상” 이 밝혀지는 미스테리 서사의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만 (단, 이 한편을 단순히 이러한 SF-호러적 미스테리영화로만 감상하셨다면 이 한편이 지닌 복합적인 장르적 정체성의 화학반응에서 발현되는 “재미” 를 많이 놓치시게 되는 것이겠지요), 이 미스테리의 “진상” 또는 그것을 밝혀가는 과정이 무슨 이수만 엔터식 “광야” 의 세계관 또는 마블의 아벤져나 [스타 워즈] 확장 세계관에서 누가 어떻게 어떤 멀티버스 서사에 어떻게 끼워들어가고 진짜 빌런은 사실은 누구였고 이런 식의 전개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고전적인 SF, 거의 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영화들 뿐만 아니라, 조던 필 자신이 리부트를 시도한 바 있는 [환상특급 Twilight Zone]이나 [아우터 리미츠 Outer Limits] 까지도 아우르는 호러-SF의 계보를 거의 직통적으로 잇고 있거든요. 따라서 이러한 북미 고전 SF의 장르적인 계보를 전혀 모르거시나 또는 알더라도 작금의 영상매체 문화와는 동떨어진 무엇으로 받아들이시는 분들께서는 궁극적인 “진상” 을 두고 “시시하다,” “저게 뭐냐” 라는 식의 반응을 하실 가능성이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주인공들이 이 진상을 밝혀내는 과정도, 영리하고 풍자적인 날이 제대로 서 있게시리 21세기적인 측면도 있지만, 마이클 윈커트가 연기하는, 새뮤얼 풀러나 니콜라스 레이 등의 실제 감독들을 연상시키는 촬영감독이 핸들을 둘둘둘 돌려서 35밀리필름을 감아서 찍는 수공업적 카메라를 사용하는 설정에서 볼 수 있듯이, 상당히 의도적으로 고전적이고 “구식” 인 접근방식을 원용하고 있습니다. [놉] 을 보고 “촌티난다” 라고 여긴다면 피상적인 인상에 지나지 않겠지만 (기술적으로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어느 작품과 비교해도 하나도 떨어지는 구석이 없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옛스럽다” 라고 느꼈다면, 딱히 잘못된 감상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한테 한정해서 말하자면, 이러한 “고전적” 이고 “구식” 인 내실과 그것을 현대적이고 시의적절한 방식으로 멋들어지게 요리한 필의 각본가와 연출가로서의 수완과 능력에 줄곧 탄복하면서 감상할 수밖에 없었죠. 지금까지 극장에서 한 번, 홈 씨어터에서 두 번 도합 세 번을 감상했습니다만, 기본적인 스토리라인과 “진상” 의 반전적 놀라움 등에 얽매이지 않고 감상할 수 있었던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경험이 첫번째의 감상보다 훨씬 즐길 요소가 더 많았습니다. 전형적 (아키타이프적) 이면서도 뭉근하게 매력있고 개성있는 캐릭터, 위트 넘치면서도 상황적 리얼리티에 충실한 정교한 대사, 편집과 시각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의 치고 빠지는 적확한 리듬, 무엇보다도 남캘리포니아 계곡지역에서 어마무시하게 찍어낸 풍광을 포함한 이미지들이, 딸랑 한 번 보아서는 도무지 전부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2시간 좀 넘는 영화적 텍스트안에 빼곡히 들어차 있기 때문입니다. 


[겟 아웃] 의 “가라앉은 곳” 묘사라던가 [어스] 의 도펠갱어 가족들의 거울 이미지의 탁월한 사용 등 이미 두 편의 전작에서 상당한 영상기술자인 솜씨를 보여준 필이지만, 이 한편에서는 촬영감독 호이테 반 호이테마를 위시한 한층 더 기술적으로 또 구상능력면에서 업그레이드된 스탭들과 일하면서 더욱 뛰어난 스킬을 과시합니다. 아직 영화가 채 시작하기도 전의 도입부에서 오티스 주니어 (오제이) 의 아버지가 갑자기 화창한 하늘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괴물체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시퀜스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이 장면은 거의 이미지만의 몽타주에 가깝게 구성되어 있고, 설명적인 대사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습니다만, 관객들로 하여금 무엇인가 인지를 초월한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함과 동시에, 이것이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동반한 불안과 서스펜스를 가져다 주도록 지극히 경제적이고 적절하게 안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시퀜스의 연출력은 가히 “히치코크적” (특히 [새] 나 [프렌지] 같은 후기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히치코크의 기법) 이라는 수사가 과장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신속하게 잘라서 이어붙이는 편집 대신에 길게 늘어지는 호흡으로 찍어서 서스펜스를 양성하는 것이 트릭의 거의 전부인데도, 툭하면 “히치코크적” 이라는 부적절한 수사가 따라붙는 엠 나이트 샤말란은 이런 측면에서 필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시도들은 이 한편의 도처에 존재하고, 첫번 감상때에는 놓치고 말기 쉬울 정도로 스리슬쩍 제시되는 부위들도 있습니다. 


좀 사상적인 얘기를 해볼까요. 맨 위에서 언급한 나훔서의 인용에서 힌트가 주어졌듯이, [놉] 의 주제는— 물론 이 얘기만 하고 떨어지는 답답한 한편은 전혀 아닙니다만, 캐릭터들의 방향성이라는 의미에서 구태여 찾아내려고 한다면— “스펙터클” 의 매혹과 또한 이 스펙터클을 이루어내기 위해 인간들이 치루어내야 하는, 때로는 정말 끔직하고 때로는 위선적이고 때로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희생 (“번제 [燔祭]” 가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여기까지 읽으셨으면 짐작하실 수 있듯이, 이 주제는 영화만들기와 헐리웃을 중심으로 한 영화와 TV 드라마를 포함한 영상물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루되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목장을 운영하면서, 또 스튜디오에 조련된 말들을 공급해주는 일로 거의 5대를 이어온 헤이우드 가족이라는 주인공 설정 자체가 고대로 겉으로 드러난 헐리웃의 역사 및 그 뒷면에 깔려서 무시당해왔던 마이너리티와 스탭들과 기타 영화만들기에 몸과 마음을 바친 사람들의 이면사 (裏面史) 를 동시에 조준하고 있다고 봐야겠죠. 


그런데 조던 필이 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아주 흥미로운 방식으로 양가적입니다. 그 역사의 더럽고 착취적이고 때로는 사람을 갈갈이 찢어발길 수 있을 정도로 잔인한 “이면” 을 필은 잘 알고 있지만, 또한 그는 이러한 “끔직함” 이야말로 이러한 “스펙타클” 을 가능케 하며, 또한 일반 대중들은 바로 그것을 보기를 원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스스로가 [놉] 이라는 호러영화를 만들어서 바로 그러한 스펙타클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요? 만들어놓고 보니까 관객들과 평론가들이 텍스트의 실타래를 조목조목 풀어내며 각종 해석을 가미해서 결국 자기반영성을 획득하게 되는 여느 영화들과 달리, 필의 [놉] 은 기획 단계부터 이러한 호러-SF-북미권 대작영화를 만드는 마이너리티 영화인으로서의 자신의 위치성에 대한 자기반영적인 시각을 뚜렷이 지니고 있는 것이지요. 


필의 그러한 태도는 스티븐 연의 캐릭터 “쥬프 (주피터의 애칭)” 박이 중심에 선, 침팬지가 주연인 시트콤 [고디의 집] 에 관한 서사타래에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하찮기 짝이 없는 시트콤에서 발생한 너무나 엽기적이고 추악한 “사고” 의 내용은 인터넷-타블로이드 시대가 그렇듯이 “다이제이스트” 버전만 떠돌아다니고, 그 진상의 전모와 결정적으로 그 사고의 사회적 의미는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고 (“우리들” 도 사실은 이러한 진상에 무관심하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겠죠), 아시아계 아역배우였던 쥬프는 피갑칠을 하고 식탁밑에 덜덜 떨면서 숨어서 그 일부시종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쥬프가 해소하려는 방식은 [놉] 의 서사에 있어서도 양가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결국은 엄청난 비극으로 끝났던 당시의 어른들의 “잘못” 과 “무책임” 을 자신도 결국 비슷한 형태로 반복하고 만다는 점에서 쥬프는 심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지만, 그 또한 스펙타클의 매혹에 경도되어 그 이면에 깔려있는 “가증스러움” 과 “비열함” 을 애써서 없는 척 하는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희생자라는 시각도 가능합니다. 처음 영화를 보면 쥬프가 짐짓 흑인 주인공들인 오제이와 에머럴드의 대척점에 선 (특히 말들의 존재에 대한 태도를 놓고 봤을 때) 빌런에 해당되는 존재인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번 이상 감상하고 곱씹어서 생각해보면, 사실은 그도 어린 시절에 목격한 트라우마에 의하여 도저히 해소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으며, 그가 이 한편의 진정한 “괴이” 의 중심에 선 존재에 (오제이는 “진 잭” 이라고 명명합니다만) 애써서 선의적이고 초월적인 해석을 부여하고, 그것을 통해 다시금 뭇 사람들의 갈채를 받을 수 있는 스펙타클을 현현해 보이려는 행위를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비극적일지언정, 그것을 가지고 그를 “악당” 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 쥬프와 오제이 및 에머럴드의 차이는 한 끗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제목에서 말하는 “놉,” (특히 흑인들이) “아니 난 그거 안할건데? 안 한다고! Nope, I am not going there. Uh-uh, no way.” 같은 구어적 문구에서 쓰이는 의미로의 거부의 표현— 뭔가가 심각하게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마치 그런 문제가 없는 척 밀어붙이려는 “시스템” (인종 차별적인 사회적 시스템이던, 물자와 생명들을 착취해서 스펙타클을 생성하는 문화와 경제 시스템이던지 간에 말입니다) 에 대한 거부라는 의미에서— 을 오제이는 발화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한 (북미) 인간이 마치 자연계와 우주에 대해 모든 것을 다 파악한 것처럼 주제넘은 뻘짓을 할 때, 한 발 물러서서, 대~ 한민국식 “하면 된다” 가 아니라 “해도 안되는 건 안된단 말여! 이 쪼다 윗대가리넘아!” 라고 말할 수 있는 인식이 오제이를 주인공의 위치에 등극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런지요? 


장르적으로는 이미 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호러-SF 의 계보, 특히 고전적인 SF 문학의 그것까지도 탐욕스럽게 소화하고 있는 [놉] 입니다만, 동시에 이 한편은 놀랍게도 진정성이 철철 넘치는 서부극이기도 합니다. 제가 언제 미국이라는 문화에 몸을 담은 영화인들은 외국 태생이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서부극을 만들게 된다고 주장한 적 있는데요 (이안 감독도, 김지운 감독도 다 서부극 찍으셨죠.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도 영어권에서 계속 활동하시게 되면, 언젠가 현대화된 버전이거나 아니거나 여부에 상관없이, 장르적으로 그 정체성이 분명히 드러나는 “서부극” 을 만드시게 될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요번에는 조던 필의 차례였던 것 같습니다. 단 여기서 필의 접근 방식에는 “고전적” 이라는 지점에 방점이 찍힙니다. 필은 특히 오제이 캐릭터를 재구축하는 데 있어서, 자기완결적인 개인주의를 견지하되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서부극 주인공에 있어서 현대적으로 의미있는 부위만 취사선택하고, 그 가부장적인 퀄리티, 자기반성 없는 폭력성 등은 파기했습니다. 재해석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오제이는 퀜틴 타란티노식의 쌍소리 섞어가면서 술자리에서 개똥철학을 설파하는 먹물아저씨가 구상한 것 같은 “포스트모던” 재해석을 거친 “힙스터 서부극”의 등장인물들과는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겠죠 (조던 필이 게리 쿠퍼가 모 저널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nope” 란 표현가지고 시비를 당했다는 일화를 알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 ^ 직접 만나서 한번 여쭤보고 싶은 생각이 들긴 합니다). 


이 한편의 괴이의 “정체” 인 “진 잭” 이 마침내 전모를 드러내는 클라이맥스를 보시고 여러분들께서는 어떤 감흥을 느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나에게는 이 “정체” 가 너무나 멋있고 근사하게 다가왔고요, 일종의 아름다움마저 느꼈어요. 무언가 어릴적 [소년중앙] 이니 [새소년] 이니 하는 잡지에서 (아마도 UFO 유행하던 시절의 일본 미디어에서 통째로 베껴왔을) 한 단락 기사 같은데서 언뜻 읽고는, 사십 몇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정체를 알수없는 불가사의? 외계생물은 실재할까?” 같은 제목이 달린 “기사” 에 쓰여졌던 몇 줄도 안되는 “괴이” 의 묘사를, 65밀리미터 IMAX 카메라로 거대하고 장엄하고 정교하게 새로이 펼쳐서 와이드스크린에 꽉 차게 보여주는 그런 경험이었습니다. 스포일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다른 명작들과의 비교는 삼가겠습니다만, 내가 [놉] 을 보면서 느꼈던 가슴이 탁 터지는 장쾌감은 단지 머리 좋고 디슨트한 캐릭터들이 불가능한 허들을 노력과 협동과 용감함을 통해 극복하는 (이것도 고전 서부극적인) 기본 서사에서 나오는 것 만이 아니라, 이러한 어릴 적의 상상력속에서만 조그맣게 도사리고 있던 존재를 장대하고도 멋지게 구현된 모습을 보았을 때 느끼는 그런 벅찬 감개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마이클 에이블스의 음악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 끝내겠는데, 70년대 서스펜스 스코어 적이었던 [겟 아웃] 과 [어스] 에 엘머 번슈타인, 알프레드 뉴먼 등의 옛 헐리웃의 베테랑들이 썼을 만한 웅장한 서부극의 음악적 스타일이 더해졌습니다. 혹시라도 사운드트랙 앨범을 구하신 분들은 특히 거의 엔딩 부분에 나오는 [윙크하는 우물] 트랙을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중반부의 2분 정도의 짧은 시간안에 현악기가 계속해서 오스티나토를 긁으면서 백그라운드를 만들어주고, 점차 트럼펫, 트롬본 그리고 튜바 등의 금관악기들이 “뻠뻠뻠 뻠~” 하고 들어오고 강렬하게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고양되는 이 부분이, 저에게는  이것이야말로 바로 “영화음악” 의 정수이자 근본이라고 여겨지는 그런 꼴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스코어가 최근의 소위 말하는 헐리웃 대작이라고 하는 작품들에게서까지도 듣기 힘들다는 게 참 그렇습니다만, 에이블스의 스코어는, 역시 아이러니칼하게 사용된 팝 뮤직 (또는 옛날 엔니오 모리코네 스코어의 짜집기, 그건 그나마 낫지만) 으로 도배하는 타란티노적인 경향과는 완벽하게 차별화되면서도, 마이클 기아키노의 [배트맨] 과 더불어 2022년 최고의 신고전적 영화음악의 자리에 등극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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