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지가 왔어요.


 사람은 담배나 술, 마약같은 것만 끊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자신이 이용하는 인터
넷 게시판도 쉽게 끊지 못한다. 요즘들어 그것을 절실히 느낀다. ‘내 이놈의 게시판을 다시
는 들어가나 봐라!’하고 이를 갈아도, 즐겨찾기에는 여전히 등록되있고, 정신을 차리면 어느
새 댓글을 달고 있다. 김유신은 말의 목이라도 쳤지, 나는 이 노릇을 어쩐단 말인가. 손가락
을 자를 수도 없고…….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서울 고모부 댁으로 왔을 때, 함께 방을 쓸 사촌언니가 
나에게 보여준 것은 동대문 밀리오레나, 코엑스 몰도 아니고, 예술의 전당 혹은 홍대앞도 
아닌 바로 피망 게시판이었다. 언니는 내가 이용하던 사이좋은 월드나 넥스트 카페보다 이 
곳에서 더 많은 것을 얻게 될거라고 얘기했다. 언니의 적극적인 소개에 오히려 나는 반감을 
품게 되었다.
“언니, 언니가 얘기하려는게 뭔지 잘 모르겠어. 사이좋은 월드에는 내 친구들의 홈페이지가 
전부 있어. 느닷없이 거길 관두라니? 언니 맘에 안드는 데라고 그렇게 맘대로 말해도 돼? 
그리고 넥스트 카페에 우리영화 모임은 내가 운영진이야. 고3, 1년만 쉬고, 대학들어가면 
다시 활동한다고 약속했단 말야.”
사실 언니가 권유하는걸 거부한다거나 언니의 말에 대든다거나 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
었다. 언니는 나를 위해 자기 방을 포기했다. 엄마가 고모가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거리에 
자취방을 얻어준다고 했을 때 반대한 것도 언니였다. 오빠만 둘이었던 언니는 여동생과 같
이 지냈으면 좋겠다고 했고, 엄마 아빠는 물론 고모네도 그편이 마음이 놓인다며 언니의 결
정을 대견해했다. 대신 엄마는 그 돈으로 언니와 내가 쓸 책상 및 가구를 방크기에 맞춰 구
입해주었다. 그래도 자리가 부족해서 침대 대신 이부자리를 깔고 자야했지만, 중학교때부터 
써온 낡은 가구를 바꾼 언니는 크게 기뻐했다. 그런 언니의 마음 씀씀이를 보면서 나도 고
마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렇지만 이건 경우가 다르다. 지금의 언니는 마치 신흥종교를 
소개하려는 신자같지 않은가. 그런건가? 나는 피망 게시판을 불신한 이유로 지옥에 빠지게 
되는걸까?
“내가 너한테 이 게시판이 무슨 바이블이나 되는 것처럼 이야기한 걸로 들리나본데 그건 아
니야.”
아니긴, 충분히 그렇게 들렸다.
“단지, 나는 네가 고등학교도 졸업했으니 좀 더 성숙한 사고를 하길 바랬기 때문에 그래. 
게다가 넌 영화를 좋아하잖니. 너라면 피망 게시판에 대해서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렇지 않아서 좀 의아했던 것 뿐이고.”
“피망이라면 알아. NO365에서 컬럼 연재한건 읽었으니까. 하지만 난 그사람이 말을 재밌게 
한다고 생각하는 정도지 팬은 아니야. 그 사람이 쓴다는 공포소설도 읽은 적이 없어.”
언니는 눈을 지그시 감고, 검지 손가락을 들어 까딱까딱 흔들었다. 언니도 참 영화를 많이 
봤다. 
“팬도 많겠지만, 거긴 정확히 이야기하면 피망의 팬만 오는 곳은 아니야. 심지어 피망의 글
을 싫어하는 사람도 와서 글을 쓸 수 있지. 드러나게 싫어한다는 티만 내지않으면.”
그러다 잠깐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 말을 덧붙였다.
“드러내게 싫어한다고 해도 글쓰는걸 막을 사람은 없을걸. 이용자들은 싫어하겠지.”
그 말에 적이 놀랐다.

‘피망은 문화잡지에 지속적으로 컬럼을 쓰고 있고, 몇권의 공포소설을 냈으며, 매년 공포영
화 원작의 단골로 쓰여왔다. 지면이나 방송에 한번도 얼굴을 보이지 않는 사이버 상에서만 
존재하는 사이버 고스트 작가이다.’ 

이 문구는 언니한테 들은 건 아니고 어디 인터넷 서점 광고에서 본 문장이다. 얼굴을 안보
이는 이유는 뭘까? 신문에도 연재하는 걸 보면 영향력은 꽤 있는 사람인가 보던데……. 이 
피망이라는 인물에 대해 약간의 호기심이 생겨 나는 가입신청을 했고, 일주일 후에 ‘파라키
스’라는 닉으로 대학생활 첫날의 느낌을 글로 올렸다. 

첫 게시물. 
‘그들’은 내 글을 잡아 튿었다. 난 단지 웃기는 숏다리 남학생과 롱다리 여학생 커플이 정오
에 길게 드리운 그림자를 보고 웃었던 나의 기분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을 뿐이다. 난 그들
에 대한 악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웬 악감정? 긴 다리 여학생의 그림
자가 짧은 다리 남학생 그림자를 자연스럽게 덮어, 마치 엄마가 아이를 끌어안은 것 같은 
우스운 장면을 전달하려 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폭탄을 맞았다. 
줄줄이 달리는 댓글은 내가 어떤 벗어나지 못할 편견에 사로잡힌 것마냥 사납게 들이쳤다. 
모두 나를 나쁜 인간으로 몰고 있다. 제대로 의사를 전달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파도처럼 
댓글들이 날 잡아먹으려 덤벼들었다. 난 한번도 이런식의 공격적인 댓글은 받아본 적이 없
었다. 어디가 성숙한 사고(思考)냐? 저 잘난 것만 눈에 보이는, 에고덩어리들. 
글을 지우고 방바닥에 주저앉아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만 되뇌이고 있었다. 이런 것 때문에 
울수는 없어. 그럼 내가 너무 형편없어 보이잖아. 울 수 없어. 
결국 울고 말았고, 밤늦게까지 조교일로 녹초가 되어 돌아온 언니와 한바탕 싸우기까지 했
다. 더 황당한 것은 언니조차 나를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다. 언니는 게시판에서 삭제해 
카피본으로 갖고 있는 내 글을 읽고 고작한다는 말이,
“모든 사람이 네가 잘못한 거라고 몰아붙이진 않았네. 널 나쁜 애라는게 아니라, 네 관점이 
잘못 되었다는 거야.”였다.
“그게 그거지 뭐가 달라?”
언니는 화를 내는 나를 달래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넌 나쁜애가 아닌데, 습관이나 환경 때문에 제대로 된 중심이 잡혀있지 않다는 거지.”
“아아악!”
급기야 나는 폭발했다.
“언니 진짜 재수없어. 그거 알어? 제대로 된 중심은 언니나 잡어. 이제부터 나한테 말도 걸
지 마!”
방구석에 놓여있는 이불을 거칠게 펴고, 그 안으로 기어들어가 소리죽여 눈물을 흘렸다. 언
니가 나뻐. 다 언니 때문이야. 언니의 한숨소리가 들으라는 듯이 귀에 파고 들었다. 나는 그
냥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 오랫동안 언니한테 말을 걸지 않았다. 

난감한 표정의 고모부는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워물며 말씀하셨다. 
“사람의 일이란게 글쎄다. 무슨 일이든 계기가 필요한 것 같더라. 너나 언니나 화해할 계기
가 필요하겠지. 언니는 네가 화를 풀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스스로 잘못한 일은 없다고 분
명히 말하더라구. 너는 어떠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고모부는 담배를 끝까지 다 피우고 화분에 비벼 끈 다음, 한구석에 
놓아둔 작은 항아리에 꽁초를 던져 넣었다. 그 안에는 꽁초들이 수북했다.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저도 잘못한 거 없어요. 고모부.”
내 얼굴을 바라보던 고모부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뭔 계기가 오겠지.”
중얼거리는 희끗한 머리의 고모부를 쳐다보았다. 별로 대단치 않은 소동을 관조하는 표정에
서 따듯함이 묻어나왔다. 혹시 보일러 회사에서 일하시는 탓일까? 묘하게 마음이 푸근해지
며 안정이 되었다. 그리고 나도 그 계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언니와 대화두절이 벌써 여러날이 넘어가고 있었다. 둘 다 신경이 곤두서서는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고 있다. 그 사이 나는 OT다, MT다 해서 분주한 나날이라 집을 비우는 일이 많
았다. 그리고 골은 더욱 깊어만 가는 것 같았다. 나는 언니가 없는 방에서 레포트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피망 게시판에 들어가볼까 하는 충동이 일어났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는 절
대 접속하지 않으려 했는데, 절대 접속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먹으면 먹을 수록 자꾸 
그 게시판 생각이 났다.
‘달칵.’
마우스로 즐겨찾기의 메뉴를 누르고 다음 화면이 나오길 기다렸다. 약간 긴장되는 마음으로 
게시물을 흝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간다고 누가 그랬지? 그게 진리라고 
누가 말했더라? 진리는 영원하다는 말도 들은 것 같은데……. 
‘무슨 말이 나오길 기다린거야?’
좀 짜증이 일었다. 나는 그 일 때문에 언니와 말도 안하고 있는데, 울기까지 했는데, 이 사
람들은 그런 일은 알바 아니라는 것처럼 여기 모여 즐거워 하고 있구나. 모니터 표면에 스
크래치라도 낼 것처럼 노려보다가 갑자기 어떤 닉에 눈길이 갔다. 
카이지가탄배?
웃음이 터지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카이지가 탄 배래. 세상에 카이지가 탄 배가 닉이야? 하
하하하. 물론 나는 <도박묵시록 카이지>라는 만화를 읽었다. 카이지는 빗을 많이 지고, 결
국 몸이 팔려 재벌의 도박판의 말로 이용되거나, 화물선에 올라타 죽음의 게임을 벌이거나 
한다. 카이지가 탔던 화물선은 인간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도착한다는 장소로 거의 주인공에
게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위험한 게임을 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카이지가탄배」라는 닉을 쓰다니! 인생이 바닥이라는 걸까? 나는 호기심의 그 사
람의 글을 클릭해 보았다. 제목은 <조중동은 기자를 돌려쓰나?>라는 제목이었다. 내용은 한 
사건에 똑같은 견해, 심지어 똑같은 단어를 쓴 기사를 보고 투덜거리는 내용이었다. 급기야 
기사 내용을 패러디해서 게시판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넣고 훌륭한 기사가 아니냐, 
난 아무래도 조중동에 입사해야겠다라는 우스개 소리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이런 사람들은 전부 내 배에 태워서 게임이나 시켜야 되는데......」라는 말로 끝맷었다. 
또 깔깔대고 웃다가 댓글을 읽어보았다. 이 사람은 게시판 이용자들한테 호감을 사고 있는 
모양이다. 댓글은 모두 유쾌한 글들이고, 어느 댓글은 카이지의 한 장면을 문장대신 넣기도 
했다. 이용자 대부분은 카이지님이라고 부르는 데, 그건 아니라고 본다. 카이지가 아니라 카
이지가 탄 배니까 차라리 배님이라고 불러야 된다고 생각했다. 한심무인지경인 사람들을 가
득 태운 배님이 어디론가 슬슬 나아가고 있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고모부가 말씀하신 계기라는 것은 이 것이었다. 나는 그날 학교에서 퇴근한 언니에게 말을 
말을 걸었다. 
“언니.”
“응?”
“나 오늘 피망 게시판 갔다가 「카이지가탄배」라는 사람 글 읽었다.”
언니는 옷을 갈아입으며 물었다.
“그래? 어땠어?”
“재밌더라. 그 사람 글은 다 그래?”
츄리닝으로 갈아입은 언니는 얼굴에 클랜징 크림을 바르며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대체로 재밌어. 재미없는 것도 있고. 심지어 댓글이 하나도 안달리는 글도 있지. 그래도 글
을 올리면 찾아 읽는 편이야.”
“다른 사람도 이렇게 재밌게 쓰나?”
마치 어제도 이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놀던 자매처럼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이야기는 게시판을 넘어 언니가 현재 좋아하는 복학생 이야기에서 날 쫓아다니다
던 후배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 애가 날 따라 같은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울면서 고백하던 
날 내가 여대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멍해하는 장면에서는 그만 언니는 박장대소하며 
웃다가 의자에 머리를 찧어버렸다. 클렌징 크림은 얼굴에서 말라가고, 나는 꺼내면 안될 것 
같은 우리 엄마 아빠에 대한 고민까지 털어놓는…… 그런 계기가 마련된 밤이었다.

 나는 2학년을 맞이했다. 그 동안 난 방학동안 고향집에 갔다왔고, 엄마 아빠가 서울로 올
라오시기도 했다. 유학갔던 큰 오빠가 왔다가 갔고, 작은 오빠는 여자친구와 깨진 상처가 
오래가 회사일을 방해받았다. 그리고 언니는 조교생활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계속 망설이
는 나날이었다. 피망 게시판에 드나든지는 1년여가 다 되어간다. 
그 사이, 난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 드나들다 사라진 사람, 안 드나들다 나타난 사람 등등의 
닉들을 만났다. 때로는 키득거리게 만드는 사소한 우스개부터, 생활에 필요한 팁, 장래, 수
박 속핥기같은 기초과학, 호러장르의 역사까지 잡다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게시판에 중독
이 되어갔다. 어느틈엔가 스스로 검열을 하게 되었는데, 이런 이야기는 글로 올려도 돼, 안
돼가 슬슬 익어갔다. 
“아니야, 자체검열을 하는게 아니야.”
“그럼 뭐야?”
오이를 얼굴에 올려놓고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을 읽고 있던 언니는 허공에 펼친 책에
서 고개를 돌리지 못한채 말을 잇는다.
“생각이 바뀌는 거야.”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거 듣기 거북한걸. 생각이 지배당하는 거야? 그게 뭐야, 마리오넷트처럼……. 주어진 문
장대로 생각하고 싶진 않다고.”
“NO,NO,NO."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드는 저 자세. 어느 드라마에서 본 걸까?
“좀 더 옳은 방향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거지. 정확히는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는거야. 전에 이야기로 올라가면 키차이가 많이 나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사귀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니?”
“음.” 나는 조금 생각하다 말했다.
“편견이 많은 세상에서 힘들지 않을까. 여기저기서 눈길을 끌겠다. 본인들은 그걸 힘들어할
까, 아니면 즐길까? 뭐 그런 거?”
언니는 책을 내려놓고 얼굴에 있던 오이 하나를 들어 아삭 씹어먹었다.
“그래. 별거아냐.”

나는 어제 언니가 말한 별거 아니란 말이 불현듯 떠올라서, 전공서적읽기를 그만두고 잠깐 
생각에 빠졌다. 결국 책을 덮고 게시판에 들어가봤는데 한페이지를 못가 또 <카이지가탄
배>님의 글이 올라와있었다. 
나는 이분의 글을 보고 이것저것 많이 주워 듣는다. 정치와 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마
다, 관련인사들을 모두 잡아 배에 집어넣어야 한다며 불을 뿜었다. 하하하하! 주변 이야기나 
말썽피우는 친구 이야기를 할 때는 ‘이 놈은 빚 잔뜩지고 날 팔아먹은 다음 배에서 마주칠 
놈입니다.’ ‘저 친구하고는 빌딩사이에 외나무 다리놓고 건너기 놀이나 해야겠어요.’라는 식
으로 끝맷고는 했는데, 걱정스러워서 친구분이 보시면 어쩌냐고 쪽지를 보냈다. 나는 쪽지
를 처음 보내는 것이라 내심 얼른 답장이 오길 기대했다. 이용자 목록에 아이디가 올라 있
는걸 확인했으니 답장이 늦으면 좀 서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배님은 친구들도 이미 
보고 있다며 어떤 건 친구가 부르는 문장을 치기도 한다는 답장을 보냈다. 이것도 역시 계
기였다. 그때부터 나는 남들이 카이지님이라고 부르는 배님과 간간히 쪽지를 주고받기 시작
했다. 자주는 아니고 한달에 서너번 정도랄까. 어쩐지 드러내놓고 댓글 올리기 부끄러운 글
은 쪽지로 보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고, 배님이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쪽지로 이야기 나누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오프라인의 모습을 드러내놓
기 싫어하는 게시판의 성향을 볼 때, 이건 특이한 일이라며 배님은 좋아하셨다. 그 외에도 
두서너명의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분과 고정적으로 쪽지를 나누게 되었는데, 주로 내가 먼
저 쪽지를 보내는 쪽이었다. 그러나 나는 처음 게시판에서 일어났던 일이 트라우마가 되었
는지 게시물을 올리는 일은 거의 없는 편이고, 주로 댓글만 올렸다. 혼자 ‘댓글러’라고 칭하
고, 이몸은 당당한 댓글러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 글을 본 배님이 카이지와 한 배에 
오를 영광을 누리게 됐다며 쪽지로 비웃었다.
그렇게 나의 인터넷 생활은 즐겁게 흘러 갈 것 같았다. 나는 사이좋은 월드를 폐쇄하고 트
윈헤드 블로그에 블로그를 개설했고, 넥스트 카페는 운영진 권한을 넘긴 다음, 한달에 서너
번 들어가보는 걸로 족하게 바뀌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변화에 딴지를 건것도 바로 언니
였다. 맙소사. 어느 장단에 춤추란 말이야?
“너무 열중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러지. 너 기본적으로 해야하는 공부나 과제를 빼놓으면 
거의 인터넷에 열중하고 있는 것 같아.”
나는 막 블로그에 포스팅 할만한 신간 안내와 클레이 에이킨의 사진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하…… 언니, 내가 언제 C아래로 받아온 적 있어? C도 단 하나뿐이었잖아. 그리고 그건 내 
책임이 아니야. 언니한테도 얘기했잖아. 같이 조짠 애들이 하나같이 엉망이었던 걸 어떻게
해. 내가 내 할일을 소홀히 했다고 그러면 난 할 말 많아.”
한창 집중해서 신간 리뷰를 읽고 있는데 방해하는 언니 때문에 조금 부아가 났다. 지금은 
좀 나를 가만히 내버려뒀음 좋겠다.
“너 하루에 블로그에 쏟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거니? 피망 게시판에서 사람들이랑 쪽지 주고
받는건 또 얼마나 되고? 넌 요새 책을 읽기위해 읽는게 아니라, 포스팅을 위해 읽는 사람같
잖아. 이건 발전을 하는게 아니라, 발전에 저해가 될 뿐이야.”
아니, 난 지금 혼자 있고 싶다고. 혼자 조용히 생각하고 싶다고. 인터넷 서점마다 돌아다니
며 리뷰를 찾고, 사진을 저장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난 언니를 쳐다보았
다.
“언니.”
“그래, 할 말 있으면 해.”
“솔직히 말해서 언니가 하는 말이 이해가 안가. 난 내가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해. 전보다 
더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단 말야. 발전에 저해라니? 나한테 좀 더 어른이 되라고 했던 
언니가 그런 말을 할줄은 몰랐어. 난 어른이 되고 있단 말이야.”
그리고 입을 다물었다. 다음 말을 할까말까 망설였지만 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하지만 언
니는 내가 말을 다 못마쳤다는 것을 알고 마저 끝내기를 기다리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내
친김인가? 할 수 없이 말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차마 언니 얼굴을 보지 못했다.
“나는 언니가 나를 부러워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 내가 블로그를 업데이트하고, 
대화창을 열고, 계속 새로운 것을 찾고 있는걸 부러워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 사실 언니
는 너무 바쁘니까. 여유를 찾고 싶은데 매일 일에 치여 옴싹달싹 못하고 있으니까.”
정적이 내 머리를 눌렀다. 난 차마 언니가 어떤 표정으로 나를 보는지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눈은 내 생각과 달리 저절로 움직여 언니를 바라보았다.
응?
내 얼굴이 찡그려졌다. 언니의 저 표정은…… 응?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언니는 입을 앙 다물고, 눈을 심하게 일그러뜨리고, 웃고 있었다. 입을 벌리면 그대로 큰 웃
음소리가 나올 것 같아 억지로 참고 있는 그런 표정이었다. 말은 안하고 있지만 난 언니 머
릿속에 있는 문장을 텔레파시처럼 전달해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니. 이. 어. 리. 고. 가. 소. 로. 운. 것.
“언니이!”
언니는 자신의 표정에 울상이 된 나를 견디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마구 깔깔거리며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쳤다. 고모가 개그 프로 보면서 웃을 때랑 똑같다. 
“아이고, 아이고, 여유롭고 성숙한 아가씨. 마음대로 하세요. 배가 아파 죽겠다. 도대체 너 
초딩때는 어땠니?”
“언니이!”
언니는 내 머리통을 끌어안고 말했다.
“귀여운 것. 동생이란게 이런거구나. 언니가 까까 사주께. 슈퍼가자.”
몹시 불쾌하고 기분도 안좋았으나, 서로 대충 이정도 선에서 넘어가는 것이 가족관계에 좋
을 것이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론적으로 언니 기분도 나아진 것 같고. 나를 거의 코흘리개 
수준으로 취급하는 것도 훗날 차근차근 따져볼 날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난 오늘 뜨거운 
가슴을 식히기 위해 롯테의 체리아이스 한통이 필요하다.
……그 가슴위에 올려놓을 말린 오징어 한 마리도.

 게시판은 언제나 크고 작은 분란이 일어나고는 했다. 그 모든 일들은 거의 나와 상관없는 
곳에서 이루어 졌으며, 나는 그런 위태위태하거나 서로의 심장을 긁어대는 글들 속에 들어
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어쩐지 뭔가 어려운 말을 주고받는 저 사람들 속에 속하
게 될 것 같지 않았고, 나는 언제나 시시한 댓글만 올리는 댓글러일 뿐이니까. 하지만 어느
날인가 시시한 댓글러 조차 피해갈 수 없는 폭풍이 인터넷 선을 통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날씨란 그렇다. 여름이 되면 덥고, 곧 하늘 가득 먹구름이 끼며, 조금씩 비가 내리다가, 이
윽고 장마가 진다. 
게시판도 그랬다.
전부터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변한다고 생각했다. 간헐적인 싸움이 글과 글사이, 어느
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행간과 행간사이에서 벌어졌다. 애써 웃음거리가 될만한 이야기를 
누가 올려놓으면 그 아래와 위로 신경전이 팽팽한 글이 대결구도를 펼쳤다. 처음에는 그 두 
사람이 해결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풀대로 부푼 불만이 하늘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것을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게시판은 자유방임 주의고, 상황은 좋은 합의점을 
찾아가려는 듯 했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누구에게나 좋은 합의점이란 없는 법이다. 
결국 누군가에게는 가장 좋지 않은 합의점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먹구름이 터져 비가 내
렸다. 
“신경끄지 그래.”
미간을 찡그리고 모니터를 바라보는 내게, 과제를 잔뜩 쌓아놓고 하나하나 보고 있는 언니
가 무료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언니는 신경이 꺼져? 언니도 매일 보면서.”
“하루이틀 있는 일도 아니고, 일년, 이년 있던 일도 아니야. 그러다 소강상태돼.”
“근데 이상하지? 계속 신경이 쓰여.”
다소 볼멘 소리에 무료한 얼굴이었던 언니의 눈동자가 다시 돌아왔다. 
“그게 신경이 쓰이면, 넌 그 게시판 이용 못해. 니체가 말했는데, 심연을 들여다 보면 심연
도 너를 들여다본대.”
어쩐지 무서워졌다.
“무섭다. 언니,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겠고…….”
“심란한 상태를 계속 들여다 보면 너도 심란해진다. 뭐, 그 정도로 이해해. 나는 그 게시판
의 장점을 잘 이해하면서도 약점을 너무 들여다봐서 눈팅밖에 안하지만, 넌 좋은 놀이터에 
그 놀이터를 같이 이용할 사람들도 찾은 셈이잖니. 사람이 만족스럽게 놀 수 있는 놀이터를 
갖고 있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나는 언니가 이 게시판을 소개했을 때, 애정을 많이 갖고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게시물 작
성을 안하는 이유도 일과 공부가 너무 바빠서 그런걸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 찌뿌
둥한 반응과 말투는 뭘까. 언니가 들여다 본 약점이 뭘까? 그것을 물어보려다 입을 다물었
다. 그 약점 나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언니도 이 게시판 상황에 영향을 받고 있는 거야.’
나는 모니터를 껐다. 언니와 나는 고모와 함께 할인마트에 가서 쇼핑을 하기로 결정했다.

비가 많이 오면 홍수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홍수란 중요한 장소와 쓸데없는 장소 구분없이 
공평하게 물에 담궈버린다. 
“쪽지가 왔어요~ 쪽지 왔다니까요~”
스피커에서 나는 명랑하고 깜찍한 여자애 목소리가 게시판에서 내게 쪽지가 왔음을 알려왔
다. 머릿속으로 서너명의 아이디와 <카이지가탄배>님을 생각하며 쪽지를 확인했다. 그런데 
제목도 아이디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문자였다. 

「아부 좀 그만 떠시지. 그런다고 뭐가 나올 것 같애?」

어라? 이게 무슨 글자지? 처음에는 거북이 등에 새겨진 상형문자나 한국어 비슷한 다른나라 
문자같이 보였다. 내용을 확인해 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확인하지 않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아이디는 처음보는 아이디였다. 나는 쪽지를 열어서 내용을 확인한 후 다시 닫
았다. 내용을 자세히 읽어볼 생각도 나지 않았다. 우선 스크롤 압박이었고, 대충의 내용은 
내가 게시판에서 인기인들에게 아부를 떨어 귀염받으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말하는게 재치도 없고, 예의도 없고, 경박하기만 하네. 어쨌건 자기 좋은 식으로 해석하려
는 애가 있으니까. 자기 좋은 식이라도 그렇지, 부끄러움도 염치도 없고, 더 황당한건 이게 
정의라고 말하는 애들이야.”
샤워하자마자 바로 쪽지를 확인하는 언니의 몸에서는 과일비누 냄새가 났다. 경직된 내 얼
굴을 보고 안쓰럽다는 눈으로 다시 말을 건다.
“너 그래도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활동도 하고 그랬잖아. 악플이나 저런 쪽지 한번도 받아본 
적 없니?”
“어. 사이좋은 월드는 다 반애들이고, 넥스트 카페에서는 운영진이지만 난 게시물 정리만 
했지. 나서서 일하는건 언니, 오빠들이었거든. 다른 사람에게 악플이 달렸다거나, 저주 메일
왔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나는 처음이야.”
“후훗, 첫경험이구나.”
계속 눈물이 그렁그렁 맷힌 내 눈을 보고 언니는 웃음을 멈췄다. 
“됐어. 신경쓰지 마. 그렇게 생각하려면 하라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너와 하등 관계 
없는 사람이야.”
“왜 나랑 하등 관계 없는 사람이 나한테 이런 일을 하지?”
언니는 잠깐 멍하니 생각했다.
“글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 자기가 못노는 놀이터에 흙뿌리고 싶은건지도 모르고, 남
들 노는데 못끼면 부아가 나는 법이고, 오히려 반대급부로 너무너무 소중하게 생각하는 놀
이터인데 나보다 못해보이는 애가 미끄럼이고 시소고 마구 가지고 놀면 그게 아까워서 속이 
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아니, 쟤는 뭔데 저렇게 중요한 그네를 흔들어 대는거지. 볼쌍사납
게! 이렇게 외치면서 말야.”
“그런걸까?”
“꼭 그런거기야 하겠니. 언니가 생각하는 한계가 거기까지 인거지. 그 속을 어찌 알겠니. 어
쩌면 외계인이 지구멸망 1호로 피망 게시판 삭제 계획을 실행하고 있는지도.”
“헤헷.”
그말을 들으니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언니는 나한테 말도 안하고 쪽지를 삭제해버렸다.
“사람들이 놀 줄 몰라. 어렸을 때 다방구 놀이를 하더라도 규칙이 있고, 그걸 지켜야 재밌
게 다방구를 할 수 있는건데.”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다방구가 뭐야?”
“다방구 못하고 큰 인간이 여기 또 있구나. 언니가 날 잡아서 고전 놀이를 전수해줄께.”  
그 이후로 언니에게 몇 번 고전놀이라는 것을 전수 받았지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언
니는 낙담한 것 같았지만 대신 고모를 붙잡고 몇 번 고전놀이를 시행해 보여주는 것으로 만
족했다. 
그런 쪽지가 또 왔다. 이번에는 다른 아이디였는데 내용은 비슷했다. 문장도 비슷했고 ‘알랑
방구’라는 단어를 힘주어 한가운데다 배치하는 솜씨도 또한 그랬다. 타이포그래피에 일가견
이 있군. 그런 생각을 하며 가볍게 무시해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불행히 그렇게 하지 못
했다. 나는 “쪽지가 왔어요~ 쪽지가 왔다니까요~”라는 아이 목소리만 들으면 깜짝 놀랬고, 
심지어 지하철에서 전화받아요~라고 외치는 벨소리에도 경기를 일으켰다. 보통은 그 게시
판을 가지 말라고 충고할 것이다.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면서. 

이제 여기서 이 이야기 첫머리에 나오는 김유신 일화가 등장할 차례다. 그렇다. 나는 그러
면서도 계속 게시판을 출입한 것이다. 쪽지 왔어요라고 외치는 아이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스피커를 꺼 놓은 상태로…….

* * * 

초반에는 유쾌한 기분으로 시작한 게시판이었지만, 지금은 혹시 누가 내 말을 하진 않는지. 
누가 나보고 아부쟁이라고 부르지 않는지 확인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게시판을 열면 이
런 글, 저런 글을 읽어보지만 정말 그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더 나쁜 것은 게시
판을 몰래 하는 짓이다. 나는 언니가 없는 시간이나, 아니면 언니를 피해 학교에서 게시판
을 읽고는 한다. 언니와 나는 피망 게시판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언니는 
언니대로 내게 불안한 낌새를 읽은 것 같지만 무슨 생각인지 그냥 그대로 놔두는 것 같았
다. 그편이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어딘가 불안했고, 이 상황을 타개해야 했다. 난 
그것이 나의 내부에서 우러나와야 한다고 믿었는데, 그것은 뜻밖에 밖에서 일어났다. 피망 
게시판에서…….

<카이지가탄배>님이 게시판에 뜻밖의 일을 벌였다. 게시판에 소설을 올린 것이다. 분란과 
공격성 댓글이 한창 뜨거워질 무렵, 느닷없이 소설을 떡하니 올려놓은 것이다. 내용은 개그
였다. 그냥 낄낄웃다 끝날 개그물이었는데, 분위기가 날카로워진 게시판에 어처구니 없는 
농짓거리를 하염없이 풀어놓았다. 
---------절취선----------
같은 느낌이랄까. 어쩐지 몸에 긴장이 풀려 나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니, 
뭐 이렇게 황당한 사람이 다 있다지? 하하하핫. 마침 언니가 퇴근할 시간이기도 해서 나는 
그 화면인 상태로 모니터를 켜놓고 기다렸다. 도착해서 옷만 갈아입은 그녀를 붙잡고 배님
이 쓴 <그런걸 생각하는 머리는 소뇌? 대뇌? 간뇌?>라는 이상한 제목의 꽁트를 보여주었
다.
“어때, 황당하지?”
“와하하하, 맙소사. 어처구니 없다. 무슨 맘을 먹고 여기다 올렸대?”
“그러게, 뜬금없이.”
“뜬금없이가 이 꽁트의 주제인 것 같구나.”
언니와 나는 꽁트에 나오는 대사 몇줄이 마음에 들어, 잠들 때까지 그 대사를 주고 받으며 
낄낄거렸다. 저녁에 나온 고등어 조림을 배불리 먹은 탓일까? 포만감을 느끼며 난 깊은 잠
에 빠졌다.
사단은 3일 후에 일어났다. 내가 학교 도서관에서 레포트 준비로 분주하고, 이런 저런 책을 
찾아보고 있는 동안 게시판은 1.4후퇴 한강다리 마냥 난리가 난 것이다. 댓글은 피망 게시
판이 열린 이후 최고수를 기록하고,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카이지가탄배>님이 돌아오
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씻고 밥먹고 드라마 한편을 본 후에야 그 상황
을 접할 수 있었다.
“무슨 헛소리야!”
입에서 절로 그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무단 도용이라고? 그래, 남들이 그런 짓을 한다는 얘
기는 종종들었다. 누구 블로그에 있는 그림을 자기가 그렸다고 훔쳐간다던가, 누가 소설 사
이트에 연재한 남의 글을 가져가 책을 냈다더라. 하지만 나의 <카이지가탄배님>은 그렇지 
않아! 물론 댓글이 이제 200개에 육박하는 그 게시물에는 도용당했다고 말하는 당사자의 
사이트가 링크되어 있었다. 당사자의 사이트에 가봤다. 배님의 글이 전문 실려있었다. 날짜
는 배님이 올리기 3일전 날짜. 문장이나 단어가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쌍둥이처
럼 닮아있었다. 이 사이트의 주인장은 일반기업을 다니는 회사원이며 취미로 간간히 글을 
쓴다고 한다. 여기 방명록은 일반적으로 두세명이 왔다가는 것에 비해, 하루사이 몇십명이
나 되는 사람이 글을 남겼고, 그들중에는 조심스럽게 <카이지가탄배>님을 옹호하는 사람과 
이일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는 사람, 이런저런 조롱으로 바쁜 사람도 있었다. 나는 사이트
에 올라와 있는 몇몇 글을 읽어봤는데 딱히 좋다는 느낌도, 싫다는 느낌도 받을 수 없었다. 
이 사람에게서 아무 개성도 느낄 수 없었다.
문제는 배님이었다. 사람들은 카이지님 돌아오세요라고 목빠지게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는 일언반구 없었다. 혹시나 개인적으로 그를 아는 사람이 있나 서로 물어봤지만, 그와 오
프라인에서 만난 사람도, 그의 친구도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여행을 갔는지도 모른다는 의
견도 있었고, 의도적으로 잠수를 탔을 거라는 의견도 있었다. 다시 갑론을박이 시작되었으
며 사람들의 모습은 극명하게 갈리고 있었다. 나는 말하기도 싫었다.

“언니, OTL에서 드라마 48시간 하잖아.”
“응, 근데?”
“토, 일 이틀동안 48시간만 틀어준대.”
“오, 정말? 하지만 주말에도 할 일이 많은 사람에게는 약올리자는 이야기구나.”
“데이트 좀 안하고, 일을 좀 미루면 안돼?”
언니는 고개를 저었다.
“나한테는 48시간보다 그게 더 중요해.”
시들한 모습으로 다시 냉정과 열정사이에 얼굴을 파묻는 나에게 언니는 말을 건넸다.
“너, 요즘 일부러 게시판 이야기는 하지 않는거니? 내 의견은 이제 궁금하지 않은거야? 섭
섭하다, 얘.”
“무슨 소리야. 그건 아니고. 그저 그냥 이야기 하기 싫은 것 뿐이야.”
“네가 배님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하는 얘기야.”
책에 책갈피에 꽂고, 책을 덮었다.
“신뢰하지. 언니 의견도 궁금하고. 하지만 만일의 경우, 신뢰가 배반 당했을 때의 보험같은 
것도 들고 싶어. 지금 내가 이러는 것도 보험의 일종이고.”
언니의 생각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아니, 들려오지 않는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다.
자기 전에 나는 이불 속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카이지가탄배님은 그렇지 않아. 정말 
그렇지 않아. 하지만, 그가 정말 남의 글을 긁어다, 자기 글처럼 올리는 사람이라면? 그가 
쓴 게시물들이 모두 허풍으로 판명된다면? 이 차가워진 마음을 들여다보건데, 난 다시는 피
망 게시판에 가지 않게 될 것이다. 이 불신은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난 
질려버렸다.

* * *

점심시간이고, 옆에서 친구들은 떠들고, 어쩐지 나른해서 수다에 동참못하고 고양이같이 몸
을 뒤틀고 있을 때, 핸드폰으로 쪽지가 왔다. 보낸 사람은 언니였다. 
「피망 게시판에 가서 글 좀 확인해봐. 배님이 글 올렸어.」
어? 나는 지루해서 몸을 뒤틀다 쥐를 발견한 고양이로 돌변한 기분이었다.
“야, 이따 오후강의때 보자. 나 잠깐 어디 좀 갈께.”
“어디가는데?”
“도서관!”
애들을 뒤로 하고 총총히 도서관 인터넷 열람실로 발길을 돌렸다. 언니가 그런 일로 쪽지를 
보내거나 할 사람은 아닌데 무슨 일이지? 자리표를 받고 컴앞에 앉은 뒤, 굼벵이 같은 윈도
우98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인터넷이 접속되고, 주소창에 피망 게시판
을 쳤다. <카이지가탄배>님이 꽁트글을 올린지 5일이 지났고, 무단도용 의혹글이 올라온지
는 이틀이 지났다. 배님은 평소처럼 다들 무고하시냐로 시작해, 오래도 안살았는데 별일이 
다 생긴다는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군대에 가게 되어서, 휴학준비를 하고 지방에 있는 집에 
내려가 있는 동안 인터넷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게시물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악!”
내 작은 외마디 비명소리 때문에 인터넷 열람실의 눈들이 나를 향했다. 난 입을 틀어막고 
비명을 막으려고 애썼다. 이어지는 내용이 나를 향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 닉을 향해, 왜 
이런 사태를 막아주지 않았냐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는 둥, 솔로로 군대가는 것도 서러운데 심장에 도라이버로 구멍을 내버렸다
는 둥의 좀 어설픈 원망을 줄줄 늘어놓고 있었다.
<카이지가탄배>님은 내게 그 꽁트를 보낸 후에 게시판에 올린 것이다. 내게 쪽지로 꽁트를 
보낸 것은 무단도용 당했다는 사이트에 실린 날짜보다 이틀 빨랐다는 것이다.
“아악!”
내가 요새 게시판에도 잘 안들어오고, 댓글도 우울해서 기분 나아지라고 쪽지로 꽁트를 보
냈다가, 피망 게시판 사람 다 같이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해서 나중에 게시물로 작성했다
는 것이다. 무단도용 당했다는 사람이 거짓말 한 것이다. 이 글에 한명뿐인 운영자 피망이 
짤막하게 댓글을 달았다.
피망 : 날짜의 조작이 어려운 것은 아니죠.
아까보다 더 날카로운 눈길을 감내하며, 난 내가 한 일을 돌이켜 보았다. 나는 쪽지가 왔다
는 멘트를 듣지 않기 위하여 일부러 스피커 볼륨을 줄였다. 게시판에 갈  때마다 절로 스피
커에 눈길이 갔고, 항상 볼륨을 줄였다가 나오면 다시 볼륨을 늘였다. 어쩌다 실수로 그냥 
게시판을 이용했다가 뒤늦게 볼륨이 높여져 있다는 걸 알면 깜짝 놀래서 다시는 그러지 말
아야지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나에게 쪽지가 오는 것을 몰랐다.
“맙소사.”
도서관 인터넷 열람실은 정숙을 위해 스피커 시설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쪽지 왔어
요라고 귀엽게 외치는 아이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쪽지는 열어 볼 수 있으니까.
“달칵.”
피망 게시판 상단에 있는 쪽지함을 눌렀다. 생각보다 많은 수의 쪽지가 쌓여있었다. 그 속
에서 나는 배님이 나에게 보낸 쪽지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선 듣도보도 못한 아이디들
의 쪽지를 삭제한 후, 차례로 쪽지를 읽어나갔다. 
“있다.”
물론 있었다. 배님이 쓴 꽁트. “기운 좀 내삼.”이란 멘트와 함께. 이야기한 그 날짜에 보내
져 온 것이다. 누가 신뢰에 배신한걸까? 내가 했다. 내가 먼저 그랬다. 

피망 게시판에 <카이지가탄배>님이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라는 내용과 원하면 언제라도 열
람가능하다는 이야기도 같이 올렸다. 쪽지를 계속 확인 안한 것이 불찰이었고, 배님한테 사
과글도 썼다. 이제 모든게 괜찮아 진거지? 나는 배님에게 쪽지를 보내야 할 필요성을 느꼈
다. 미안하고, 날 그렇게 걱정해주는 줄 몰랐다고, 피망 게시판이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을 만
나지 않는 것은 알지만, 군대가기 전에 식사라도 같이 했으면 한다라는 내용의 쪽지를 보냈
다. 아, 오후 강의가 끝나버렸다.

“그랬구나. 어쩐지, 무단도용 같은것에 휘말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어. 많은 사람들이 
내심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언니가 나눠준 식물성 영양 크림을 아껴가며 얼굴에 펴발랐다. 난 아직 주름을 걱정할 나이
는 아닌 것 같은데, 비싼 크림을 얻어 바르기 부담스럽다. 용돈사정이 어렵더라도 좀 싼걸
로 사놔야지.
“식사 같이 하자고 쪽지 보내놨는데, 먹자고 할까? 나 원망할 사람은 아니란 걸 알지만, 게
시판 사람이 다들 워낙 비밀주의잖아.”
거울을 보며 세심하게 눈가를 살피는 언니.
“배님은 그렇지 않을걸? 이미 자기 사적인 부분도 많이 털어놨잖아. 만나자고 하면 사양할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생각난 김에 답장이 왔나 한번 확인해 봐.”
답장이 없으면?
또다시 이런 걱정을 하고 있다니, 있으나 없으나 무슨 상관이람? 나는 그를 조금 알게 되었
다고 믿는다. 그도 나를 약간은 알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나머지 부분은 모르겠다. 믿은 부
분만 믿을 수 밖에……. 사람속은 네트워크만큼 방대하다. 하지만 누구나 즐겨찾기 하는 장
소만을 찾아간다. 우리가 사랑하는 장소다. 나는 피망 게시판을 클릭했다.

“쪽지가 왔어요~ 쪽지 왔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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