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뒤척임 때문에 침대보가 삐져나와버렸다. 삐져 나온 침대보의 구겨짐에 불편해하며 또다시 몸을 뒤척이다 일어났다. 일요일 오후2시. 헝크러진 머리칼 사이로 찡그린 눈과 부어버린 눈두덩. 그녀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늦게 일어났을까 하는 주말의 마지막을 낭비해버린 기분과, 굳이 일어나봤자 할일이 없다는 생각에의 남들에겐 알리고 싶지 않은 창피함. 커튼을 걷으니 작은 창문으론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게 방사능 비라는 건가. 살짝 살짝 고양이 발걸음 마냥 내리는 비 사이로 언제나처럼 안테나는 그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래된 친구와는 인사조차 구차하듯, 그녀는 왠지 그 자리에 있는 것만 확인되도 이젠 가슴이 편안해지는 것이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요즘은 모든 것들이 변하는 걸 떠나서, 그 자리에 오래 있기가 힘든 거니깐.약속이 없는 느즈막한 오후에 그녀는 괜시리 밖에 나가서 무언갈 하고 있을 이름모르면서 부러울 그들에게 꼬숩다는 생각을 했다. 것봐. 나가봤자 고생이라니깐. 방사능 비에 맞고 머리나 홀랑..하다가 그녀는 또다시 살짝 생각을 멈췄다. 정말 그렇게 되버리면 어떡해?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보다, 의외로 방사능이란 단어가 주는 공포감과 거기에 대한 무지에 의해 말을 함부로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취가 주는 자유란 발톱 밑에는, 언제나 외로움이란 조그만 자르다만 발톱이 가끔씩 찌르기 마련이다. 그녀는 냉장고 문을 열고 사이다를 꺼내 마시고는 속을 움켜쥐었다. "아아...."하며 찡그린 얼굴과 사이다의 맑은 색을 보며, 어제 맥주 마시다 잤다는 것이 생각났다. 어제, 토요일 밤의 약속은 취소되버려서 그녀는 에라. 하는 기분과 괜히 서러움에 보지도 못하는 호러 영화를 다운받았다. 낭자한 선혈 속에서 그녀는 영화는 다 봐야겠고, 정신은 늘어진 티셔츠에 꼼지락 거리며 들어오는 무릎처럼 잃지 않으려고 맥주를 4캔이나 마시고 잤다. 덕분에 영화고 뭐고간에 맥주를 마시고 맥주(그녀의 고양이)를 안고 잠이 들어버렸다.

핸드폰엔 아침 10시 즈음에 엄마가 부재중 통화가 와있었다. 보나마나, 밥은 잘 먹느냐, 약속은 없느냐 하는 둥의 내용일 것이다. 그녀는 다시 냉장고를 열고 아침겸 점심 거리를 뒤지면서 생각했다. 엄마들이란 참 신기하다. 어릴 땐, 나가지 말아라 남자는 나중에 만나라 하면서 이젠 빨리 만나라.. 좀 나가서 연애도 하고 해라..등. 그게 되면 내가 이러겠냐구요. 요즘들어선 라디오도 잘 안듣게 된다. 라디오에 나오는 사연들도 다 그저 그렇게만 느껴진다. 오징어진미채를 꺼내며 그녀는 하날 집었다. 씹으면서 고개를 둘러보니, 맥주는 컴퓨터 본체에 앉아 졸고 있다. '네가 더 심심하겠다.하긴..' 하는 생각에 휘파람을 불었는데, 소리도 잘 나질 않는다. 입술에 침을 묻힐려고 혀로 입술을 닦는데, 입술 옆이 까칠하다. 술을 하도 먹어서 침이라도 흘렸나 봐.하는 생각에 혼자 크게 웃었다.

맥주를 부르고선 맥주에게 밥을 줬다. 아직도 지 주인을 주인으로 달갑게 여기진 않는 얘가 밉지만은 않다. 하긴 연애도 그런거지. 금방금방 되면 무슨 재미겠어. 하지만, 어려운 상황이라도 있었으면 하기도 한다. 갑자기 된장찌개가 먹고 싶었다. 호박과 두부, 양파를 꺼냈다. 어제 숙취로 좀 매콤하게 먹고 싶은데 냉장고의 청양고추는 돌아가신 외할머니 피부보다 더 늘어져 있다. 담백하게 끓여 먹자.. 하면서 그녀는 냉동실의 멸치를 꺼냈다. 멸치 머리를 까고, 감자 껍질을 벗겼다. 호박을 썰고 두부도 썰며, 토이의 '그럴때마다'가 생각이 났다. 도마의 두부를 놔두고 허겁지겁 방으로 뛰어가 노래를 틀었다. 왠지, 주말이 cf처럼 활기찰 것 같을 거란 기대에. 그녀는 노랠 틀고, 흥얼거리면서 찌개를 끓였다. 맥주는 그 노래가 싫은지 도망가 버렸다. 어디든 갔겠지. 하여튼 수컷들이란.

진미채에 김치, 남은 두부를 지져서 간장. 그리고 된장찌개에 그녀는 밥한수저를 먹으며 오늘 하루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흘러나오는 토이 노래와 창문 밖으로 내리는 봄비.방사능이 어찌됐든, 멀리 보이는 63빌딩도 좋았다. 밥 다 먹고 오늘은 헌책방에서 사온 책 읽으며 편히 지내야지..하는 생각에 밥맛도 더 도는 것 같았다.

-그대 곁엔 세상 누구보다 그으댈 이해하는 내 자신보다 그댈 먼저 생각하는 남자가 있죠..

흐르는 노래에 그녀는 웃으며 밥한수저를 뜨다가,
울었다.
왠지 모를 서러움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는 듯 했다. 그녀는 수저를 내려놓고 하얀 식탁에 엎드려 엉엉 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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