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소설] 사과 향기

2011.05.09 19:07

catgotmy 조회 수:2113

  나쁜 일이란 종종 겹치는 법이다. 이 말은 물론 일반론이다. 그러나 실제로 나쁜 일이 몇 번인가 겹치게 되면, 이 말은 더 이상 일반론이 아니게 된다. 문제는 뭐가 나쁜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거지만.

  슬슬 배가 고파서 점심이라도 먹을 생각이었는데, 남자 손님이 탔다. 초라한 행색이다. 이런 손님은 종종 돈을 안낸다. 편견이지만.

  목적지에 도착했다.


  “돈이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과연.


  “빨리 내려요.”


  이런 날씨 좋은 오후에 택시를 타고 어딘가 꼭 가야할 곳이 있나. 아무래도 좋지만. 기분 전환 삼아 차를 세워놓고, 딸기 마시마로 1기 오프닝을 틀었다. 주요 등장인물 4명이 같이 부르는 노래다. 오리카사 후미코의 목소리가 귀엽다.

  어떤 여자가 유리를 똑똑 두드리고 느릿한 움직임으로 뒷좌석에 앉는다.


 “한강 다리로 가주세요.”


 “한강 다리요?”


 “자살하려고요.”


 “한강 다리라고 하셔도, 정확한 위치를 말해주시면 좋겠는데요.”


 “근처에 내려주시면 돼요.”


  잠시 머뭇거리다가 출발했다. 여자 손님에게서 사과 향기가 난다.


  “노래 괜찮나요? 이런 노래를 틀면 싫어하는 손님도 있어서요.”


 표정도 시선도 변하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는다. 다음 곡은 라운드 테이블의 퍼즐.


 “왜 자살하려고 합니까?”


 “엄마가 재혼을 했는데, 그 남자가 절 학대해서요.”


 “성인 같은데, 도움을 청해보면 어떨까요.”


  대답이 없다.


  “방금 전에 손님이 만원이 나왔는데, 돈을 안내더라구요. 손님도 혹시...”


  여전히 무표정이다. 나름대로 짓궂은 농담이었는데, 웃을 줄 알았다.

  근처에 차를 세우자 돈을 주고 내렸다. 천천히 걸어가는 여자를 계속 바라봤다. 시야에서 여자가 사라지자, 전화를 걸었다. 경찰에게 간략히 설명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에 전화가 왔다.

  

  “여자분 인상착의가 어떻게 됩니까?”


  “잘 기억이 안 나네요.”


  “하늘색 옷을 입고 있었나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유료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음악을 들었다. 경찰에게서 아직 전화가 오지 않았다. 창을 던져서 스스로를 맞춘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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