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 괴물의 탄생

2010.05.25 19:07

레옴 조회 수:4142

녹차 괴물은 서울의 어느 중소기업 사무실 책상 위에서 탄생했다.

 

좀 더 정확히는 육아휴직으로 자리를 비운 중소기업 근무자의 스테인레스 커피 텀블러에서 탄생했다.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뚜껑이 단단히 닫힌 어두운 커피 텀블러 속 녹차 티백은 생각을 시작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녹차티백의 생각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지구는 왜 둥글까'

 

'우주의 끝은 무엇일까'

 

녹차 티백은 괴물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괴물이 되면 어두운 텀블러 속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녹차 티백은 가장 먼저 팔을 만들었다. 팔을 만드는 과정은 길고 지난했다. 손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한달 동안 자신의 네 귀를 연신 접었다 폈다 한 후에야 겨우 막대기 비슷한 팔을 만들 수 있었다.

 

일단 팔이 생기니 다음 작업은 조금 쉬워졌다. 이주 뒤에는 다리라고 부를 수 있는 막대기 두개를 만들 수 있었다.

 

이쯤해서 녹차 티백은 고민했다. 조금더 이곳에 남아 손과 발까지 만들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바로 떠나야 할 것인가.

 

녹차 티백은 조금 더 남아있기로 했다. 이미 이곳에 있은지 삼개월이 지났다. 조금 늦어져도 달라질 것은 없다.

 

녹차티백은 딱 일주일만 더 남아 손과 발을 만들기로 했다.

 

재료가 부족하긴 했지만 티백에 딸린 빳빳한 종이를 뼈대삼아 열심히 몸을 빚었다.

 

손과 발을 만드니 일주일이 금방 지나가버렸다. 아직 손가락이라던가 발가락이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 는 없었다.

 

녹차 티백은 어둡고 축축한 텀블러 속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제부터 스스로를 녹차 괴물이라고 부르겠다고 마음먹었다.

 

녹차 티백, 아니 녹차 괴물의 단호한 결심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이 머리 위에서 한줄기 빛과 신선한 공기가 쏟아졌다.

 

"으악 이게 뭐야.. 까먹었네.. 썩었어 썩었어.."

 

"이 텀블러 비싼건데.. 오토씰이라고!! 버튼을 눌러야 물이 나와!!"

 

"비싼거면 뭐해 썩었는데.."

 

"여기 이거 뭐냐.. 녹차 티백 웃기게 생겼다. 니가 이렇게 만들어서 넣어놨냐?"

 

"곰팡이겠지.. 냄새나 뚜껑닫아버려"

 

"어쩔수 없지.. 냄새 안나게 꼭 잠궈야겠다."

 

"아 드러워.."

 

녹차 괴물은 자신의 하얀 솜털을 바라보았다. 곰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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