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소설]비 맞는 남자.

2013.05.01 04:21

유상유념 조회 수:1761

비 맞는 남자.

 

저는 비 맞는 남자입니다. 우산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늘따라 비를 맞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왜냐하면 오늘 저의 여자친구가 저에게 작별을 고하였거든요. 3년이라는 시간이였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은 짧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렇다고 길다고 말하기는 힘든 시간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3년이라는 시간동안 같이 있으면서 30년 후의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 저의 여자친구의 생각이였고, 더 늦기 전에 정리하는 편이 각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저에게 이별을 고하였습니다.

 

저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30초 쯤 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가게 아르바이트가 문닫을 시간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밖으로 나와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30초쯤 고민하였습니다. 나는 어디로 가야될까.

 

정신차리고 보니 길거리에는 더 이상 사람들이 다니지 않았고, 빗줄기는 더 굵어졌죠. 아마 30초만이 지난 것이 아닌가봅니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저는 피곤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가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자면 모든게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빗줄기 속으로 걸어나갔습니다. 비는 생각보다 많이 왔고, 제 몸은 생각보다 많이 졌었습니다. 저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하철로 가는데 40분이 걸리는 거리를 걸어서 가려면 얼마나 걸릴까? 두시간쯤 걸었을 때 알았습니다. 한 세시간은 걸리겠군.

 

정확히 세시간 이십삽분이 걸렸습니다. 집 앞에서 저는 고민했습니다. 저곳에서 나는 좀 더 나은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젖은 옷을 갈아입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나서도 내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30초가 좀 넘는 시간을 고민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주저 앉았습니다. 집에도 갈 수 없고, 그녀에게도 갈 수 없다는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

 

저는 비 맞는 남자입니다. 갈 곳도, 가진 것도 없이 오로지 비만을 맞고 있는 남자입니다. 이 비가 그친다면... 모르겠습니다. 아마 30초는 더 생각을 해야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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