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묘사연습

2013.09.26 16:50

cnc 조회 수:2919

내가 둔해서 그런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난 ‘시선’ 이란 걸 느껴본 적이 없다. 
물론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거나 한 일이 없다는 건 아니고, 시야 혹은 시선 밖에서 누가 날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아챈 적이 없다는 말이다. 
소설이나 만화는 물론이고 일상 생활에서도 누가 자신을 쳐다보는 걸 느꼈었다는 얘기는 어디가나 흔하지만 나에겐 그런 경험이 없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눈만 돌리지 않으면 이 방 안에는 나 외에 아무도 없다는 행복한? 상상마저 가능하다. 

책상 앞에 배치해 놓은 거울을 들여다 볼 때마다 내 뒤의 ‘그것’이 날 바라보고 있다. 
귀신? 허깨비? 호칭 따위야 무슨 상관일까. 이렇게 빤히 선명하게 보이는데. 
내 인상을 말하라면, 영화 등에서 보는 특수효과랑 너무 비슷해서 오히려 인위적이라는 느낌마저 받는다. 
커다랗고 둥그런 눈은 핏발인지 진짜 피에 젖은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시뻘건 부분이 대부분이고, 
그 아래에 ‘귀까지 찢어진’ 입은 푸른 보라색이지만 그 사이로는 더욱 새빨간 점막과 하얀 이빨이 깨알같이 엿보인다. 
귀까지 찢어졌다는 표현이 들어맞을 수 밖에 없는 건, 그것이 미소를 띄고 있기 때문이다. 
근데 그걸 정말 미소라고나 부를 수 있는 건지. 
이쯤 되면 상대를 위협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표정?을 연구라도 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지만, 
또 한편으론 너무나 일말의 감정도 섞여 있지 않기에 그런 의심조차 우스워질 지경이다. 

하지만, 거울에서 눈을 떼면 그것의 존재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내 시선과 연동된 스위치가 있어서, 거울에 시선이 향할 때마다 자동으로 그것이 나타나는(켜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고 보니, 곁눈으로도 움직임을 전혀 감지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울로 확인할 때마다 서 있는 위치가 조금씩 다르다. 
각도는 대충 비슷하지만, 어떨 때는 세 걸음쯤 물러서서 날 쳐다보고 있는가 하면 
어떨 때는 거울을 보는 순간 내 어깨 바로 위에 그것의 얼굴?이 비쳐 있기도 하다. 
그 때는 정말이지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 거다. 지금 이렇게 나름 열심히 성실하게 그것의 외양 묘사를 하고 있기에 누가 이 글을 본다면 
왜 어떻게 태연한 거냐고 물을 지 모르지만 사실은 무서워 미칠 것 같아 자리에서 꼼짝도 못한 채 키보드만 두들기고 있는 상황인거다. 
전화조차도 손이 닿지 않는 거리에 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야심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전화나 문자라도 보내 와서 전화가 울리기라도 한다면 틀림없이 심장마비로 즉사할 것만 같다. 
차라리 죽을 수라도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긴 하지만 죽기 직전, 
전화가 울리는 순간 그것과 나의 어떤 묘한 균형 상태가 깨졌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생각하면… 
제발 친한 친구들이 마침 이 날 어딘가에서 술이 떡이 돼서 심심풀이로 나한테 연락 따위 할 생각은 하지 말아 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눈이 마주친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리고 처음엔 그것만으로도 쇼크사 하는 것 아닐까 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애초에 눈이 맞았다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 아니라면 시각이 아닌, 
이를테면 청각에 반응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에 그만큼 소리가 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는 거다. 
키보드나 마우스 소리? 그건 그것이 나타나기 전부터 간헐적으로 나고 있었기 때문에 별 반응이 없는 게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하고 있다. 

심호흡을 해 본다. 
벌써 몇 번이나 큰 맘 먹고 해 봤지만, 공기가 아닌 수증기를 호흡하는 듯한 깊은 답답함은 조금도 가시지 않는다. 
내 시선은 도저히 통제가 불가능하다. 
분명히 없지? 하면서 거울을 볼 때도 있고, 전혀 볼 생각이 없는데도 거울을 들여다보고는 황급히 시선을 떼어내기도 한다. 
물론, 아직 있다. 이번에도 한 발짝쯤 뒤에서 나를 쳐다보면서 여전히 그 미손지 뭔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다. 

대체 뭘까.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이 집에 이사를 온 지도 5년이 넘었다. 원혼이든 뭐든 그런 것이 원래 이 집에 붙어 있었다면 왜 그 동안엔 아무 일이 없었던 걸까. 
밤에 늦게까지, 아니, 프리랜서라는 직업 특성과 일이건 식사건 여가건 몰아서 하는 내 성격상 밤을 꼬박 새는 일도 다반사였는데 말이다. 
누군가한테 원한을 산 일?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고 단언하기도 힘들지만, 정말이지 내 기억엔 없다. 
최근 몇 주라는 기간으로 한정짓는다면 더더욱. 
심지어 나한테 불만을 가졌을 법한 사람 중에 최근에 죽은 사람은 자신있게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 옛날이라도? 학창 시절, 왕따나 빵셔틀 수준은 아니라고는 해도 
소위 ‘먹이 사슬’에서는 꽤나 하위에 위치했었던 것은 자랑할 일은 아닐지언정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다는 점에서는 그것도 꽤 자신할 수 있는 부분일게다. 
옛날 애인? 모태 솔로다. 
애초에 유령이란 것이 그렇게 살아 있을 때의 원수한테 붙어서 해코지를 한다는 것조차 사실 좀 의심스럽다. 
그게 성공해서 상대가 죽는다면? 귀신끼리 파이널 배틀이라도 뜬단 말인가. 
근데 그렇다고 귀신이 아무한테나 붙는다는 건, 차라리 이 경우 설득력은 있지만 왠지 그건 또 인정하기가 싫다는 묘한 심리마저 있다. 
왜 내가 그렇게 재수가 없어야 한단 말인가. 내가 뭘 어쨌길래. 

다시 한 번, 시선을 모니터에 단단히 고정시킨다. 할 수만 있다면 정말이지 시선을 ‘못 박고’  싶다. 
어쨌든, 집중한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아침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십분 남짓한 시간조차 수십 시간처럼 느껴지는데, 
아침까지 기다릴 수나 있을까? 
그보다, 아침이 돼면 그것으로부터 해방된다는 보장은 있는 건가? 
아니, 아침에 없어진다고 해도 밤에 다시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있는 건가?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보일 수는 있는 건가? 
보인다 해서 나한테 좋은 점이 있긴 하나? 
애초에 누가 이걸 도와줄 수나 있는 건가? 
반대로 남에게 안 보이고 나한테만 보인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 아닌가? 
잘해야 미친놈 취급이고 까딱하면 정신병원에 감금이라도 되면 어떡하나? 
한 술 더 떠서 감금까지 됐는데도 매일 밤마다 나온다면 정말 뭘 어쩔 수나 있나? 

아침은 고사하고 지금 당장, 바로 1초 후에, 전화가 울려 버리면 어떡할까? 
반응을 보여야 하나? 
아니 나보다 먼저 그것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것의 반응에 맞춰서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반응을 해야 하나, 아니면 내가 먼저 움직이는 것이 좋을까? 
반응이라고는 해도 어떤? 
전화를 들고 태연히 받아야 되는건가 아니면 이거저거 따지지 않고 울리는 순간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게 나을까? 
뛰쳐나간다고 해도 도망칠 수는 있을까? 
어떤 상황이 될 지 모르니 일단 전화기는 집어 들고 튀는 게 낫겠지? 
그렇다면 연락이 오건 말건 지금 당장 한 손으로 폰을 낚아채고 뒤도 안돌아보고 갈 수 있는 데까지 전력으로 도망칠까? 

다른 모든 것들보다, 난 왜 이런 걸 쓰고 있는걸까? 
그것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고 있지만 내 글을 읽을 수 있는지 없는지조차 난 모르지 않나? 
이걸 봤다면 내 속마음도 뭣도 다 아는 거 아닐까? 
하지만 아무런 색다른 반응을 하지 않는 걸 보면 전혀 안 보는 것도 같고, 
아니 그보다 저것의 시선은 똑바로 앞을 향하고 있을 뿐 나를 보는 건지 모니터를 보는 건지조차도 불확실한데? 
글은 알까? 왜 저렇게 웃을까? 
글을 볼 필요도 없이 내 마음을 읽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내가 눈만 떼면 위치를 이동하는 거 아닐까? 
내가 자릴 박차고 일어서는 순간 내 얼굴 앞으로 확 다가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유령이라면 실체가 없을 테니 그냥 눈을 질끈 감고 뛰어 나가는 편이 나을까? 

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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