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교복자르기

2012.12.19 00:50

liece 조회 수:1673

 

1

 

 상냥한 언니, 나는 전화를 끊고 결정했어.

 '하나쯤은 꼭 찢어야겠어.' 라고.
 

 난 교복치마를 가위로 자르기 시작했으나 생각 외로 쉽게 잘리지 않아 처음엔 겉감을 자르고 그 후 안감을 처리하기로 했다. 겉감은 모양도 없이 급박하게 잘리곤 내 손으로 찢겨졌다. 그러자 그것은 세련되지 못한 뫼비우스의 띠가 되었다. 그 후엔 안감이다. 얇고 매끈하며 매우 연약한 것. 얘만큼은 나고서부터 매일같이 내 허리에서부터 내려가며 이어지는 살 찐 허벅지부터 무릎 끝까지 닿곤 했던 일을 기억할 거란 망상 속에서 나는 추억과 흉몽을 해체하였다. 어째서 로고가 박힌 끈 태그 따위가 자르는 도중 내내 무심히도 툭툭 튀어나오는 것인지. 이윽고 교복 치마는 1자가 되어, 나는 그것을 가지런하게 핀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 짓거린 사냥이었다. 짐승을 잡은 자리에서 배를 째고 내장을 드러내어 가죽을 정돈하는 원시적 사냥. 날이 맑지 않아 오후의 빛은 어스름하고 불규칙했다. 를 지내고 싶어. 미친년이 말한다. 성냥 한개비로 순식간에 불타올라 더이상 태울 것이 없어 한줌의 재로 숨죽이는 모습을, 그 끝을 보고 싶어졌다며.

 

 

 

2

그래서 폐허를 열었다.

유령은 그곳에 있다.

16세는 황무지의 살집을 파낸다 18세는 상처 속에 섬을 만들고 

나는 향유로 씻어낸 제물을 

그 위에 올리었다

우리는 함께 성냥을 든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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