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뱀에게 피어싱 스포일러

2012.12.19 01:05

liece 조회 수:1939

 

가네하라 히토미作 뱀에게 피어싱 스포일러 

 

 

 

1

 그녀가 오랜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강아는 공항에서 일곱 시간을 기다렸다. 세 시간은 모종의 이유로 도착이 지연된 시간이고, 나머지 네 시간은 강아 스스로가 초조해 부러 일찍 와 기다린 것이다. 둘은 만나자마자 포옹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KTX안에서 손을 잡았다. 그녀는 텔레비전에서 본 것 보다 더 낯설고 아름다웠다. 이제 이주일 후면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걸, 그리고 그 2주일 중 그녀가 강아에게 집중해 줄 시간은 얼마 되지 않다는 걸 알기에 강아는 그녀와의 시간에 집착했다. 그녀는 강아의 메일에 첨부되었던 그 오므라이스를 먹고 싶다고 말했다. 강아는 그에 더불어 과일까지 정성스럽게 깎아 새 보를 씌운 식탁에 차렸다.

 

 "그런데 나비는 어딨어?"

 “아... 아파서 병원에.”

 “많이 아파?”

 “응. 좀.”

 

 나비는 고양이 이름이었다. 그녀는 내일은 좀 바쁘니 모레 보러가자고 했다. 강아는 애매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식사를 하고 샤워 후에 침상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무릎위에 책을 받친 채 침대벽에 기대어 앉았고 강아는 그 옆에 태아처럼 모로 누웠다. 강아는 무심코 습관처럼 그녀의 왼손을 잡았다. 그녀는 그 반지를 여전히 끼고 있었다. 강아는 기뻐서 천천히 그 손가락부터 핥기 시작했다. 그녀는 오늘이 그날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강아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그날이 같았기 때문이다. 꼭 함께하는 휴일에 겹치느라 초조하게 손만 잡고 자던 때가 아직도 선한데... 그녀는 읽던 책에 줄을 끼워두고 바닥에 놓았다. 강아가 물었다.

 

 “무슨 책이었어?”

 

그녀가 답했다.

 

 “뱀에게 피어싱.”

 “무슨 내용이야?”

 “외도, SM.”

 “무섭네.”

 “막상 보면 그렇지도 않아.”

 “정말?”

 “글세.”

 “자기는 상냥한데 읽는 책 같은 건 무서워.”

 “음악도 찢어지는 메탈이나 듣고. 그치.”

 “예쁘니까 괜찮아.”

 

 그녀는 강아의 단발머리를 쓰다듬는다.

 

 “우리 강아 어린이 아직 안 졸려요?”

 “네.”

 “그럼 옛날 얘기라도 해줘야 하나.”

 “야한 얘기 해주세요.”

 “푸 뭐야... 아까 읽던 거나 해줄까. 읽은 데까지만.”

 “응.”

 “거기서 나오는 여자애 이름이 루이야.”

 “엘소설은 아니지 않아?”

 “응. 그리고 루이는 아마라는 빨간머리 펑크족 남자애랑 같이 다녀. (그녀는 강아의 입이 뭐라 말하려는 듯 해 손가락을 물린다) 루이는 아마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아마의 뱀처럼 갈라진 혓바닥에 무작정 끌리지. 아마는 루이를 무조건 사랑하는 바보야. 뱀처럼 갈라진 혓바닥, 스플릿 텅... 그걸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알아? 우선 피어싱을 해야 해. (그녀는 검은 손톱을 세워 손가락에 감겨오는 강아의 혀를 누른다) 혓바닥에 말이야. 혓바닥은 귀랑 달라서(다른 손을 허벅지에 갖다 댄다) 여기 다음으로 가장 아픈 곳이야. 점막은 염증이 생기면 큰일나니까 전문가에게 꼼꼼하게 맡겨야 하는 거고. 초보자는 처음엔 12Ga를 끼우고, 차차 크기를 늘려가. 숫자는 줄어들어. 00Ga, 즉 9.5mm쯤 되는 것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남은 혀의 끝부분을 치실이나 낚시줄로 묶어서 끊고(강아의 입에서 손가락을 뺀다) 그렇게 하면 갈라진, 뱀혓바닥 완성.”

 

 무서운 이야기였다. 강아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그녀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그녀는 강아에게 살짝 입을 맞추고 속삭였다. “아직 안 졸리니?” 강아는 멍하니 그녀의 눈을 보았다. 그럼 좀 더 얘기해줄까? 강아는 그녀의 눈이 유독 번들거린다고 느꼈다. 여자에게 있어 기름은 애증의 대상이다. 허벅지의 기름을 빼기 위해 먹을 것을 줄이지만 반짝거리기 위해 로션이니 오일 따위를 온몸에 발라댄다. 그녀는 눈동자에도 그런 것들을 바른 걸까? 그녀가 말한다.

 

 “아마는 그래서 시바에게(강아가 소리 없이 웃음 터트린다) 루이를 데려가. 시바는 문신술사지. 그들은 욕망으로 가득 찬 샵으로 들어가... 루이는 문신이 하고 싶어졌어. 어떤 문신이냐면... 기린 문신. 시바는 새디스트였지.”

 

 그녀는 강아의 티셔츠를 벗기다 말고 둔다.

 

 “새디스트?”

 “루이는 매조였고.”

 “매조?”

 “루이는 문신을 받는 대신 섹스하기로 했지.”

 “뭐? 아마랑 사귀던 거 아니었어? 뭐야 그거.”

 “아무튼 했어. 그리고 아마는 루이를 많이 좋아해서, 술먹고 가는 길에 껄덕 대는 놈 하나를 죽였어. 수배되고, 루이는 불안해져 아마의 빨간 머리를 회색으로 염색해주었지.”

 “아...앗.”

 “그렇지만 아마는 실종되었어. 그리고 처참하게 죽었다는 걸 확인했지. 루이는 밤 낮 술만 먹어대다가... 미지막 기린 문신을 완성해.”

 “재미... 하나도 없어.”

 

 그녀는 나지막이 웃고 양 손으로 강아의 뺨을 감쌌다. 강아는 정말로, 라고 말하려다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곧 그녀는 강아의 손을 마주잡고 고조되는 심장에 귀를 기울였다. 강아는 그녀의 눈을 보고 싶었지만 위치가 맞지 않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고 그 전의 말들은 그저 생리혈 때문에 나누지 못한 온기를 보충하려던 시도같은 것으로 느껴졌다. 강아는 문득 자신이 마지막으로 잔 것이 이틀 전이라는 걸 깨달았다. 거의 불가항력적인 졸음이 몰려왔다. 예전의 그녀는 강아를 예민하게 살피고 배려하곤 했다... 몽롱한 와중, 그녀는 과연 그녀인가, 하는 말도 안 돼는 의문이 들었다. 강아는 감기는 눈꺼풀과 싸우며 그녀가 입에 물린 이불자락을 꾹 깨물었다. 도중 강아는 그녀에게로 내려가 허리를 무작정 남은 힘을 다해 끌어안았다. 강아는 그녀의 심장박동을 들을 수 있었다.

 

 

 깜박 졸다 깨어나, 강아는 다시 잠에 들기 전 그녀에게 따듯하게, 이불 안에서 온몸으로 안겼다. 강아는 잠겨들어가는 목소리로 아주 작게 말했다.

 “나 비밀이 있어.”

 그녀는 쉽게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턱의 움직임이 정수리에서 느껴졌다. 강아가 말을 이었다.

 “나 고양이를 죽였어.”

 그녀는 여전히 강아를 안고 있었다. 그 이후 강아는 잠들기 전까지 침묵과 숨소리, 심장박동소리 속에서 말을 걸었다.

 “그렇게 하면 네가 올 거 같았어. 그냥 술 먹었어. 아무튼 그래서 나비한테 맛있는 걸 줬어. 참치 캔에다... 그리고 죽게 내버려뒀어.”

 잠깐 침묵 뒤에 그녀가 강아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녀도 말을 걸었다.

  “나도 비밀을 말해야 할까... 나 엔조이 있어... ‘루이’도 있고.”

 강아는 이미 잠들었다. 그녀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햇살이 시트위에 커튼의 문양을 수놓았다. 강아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녀는 그녀에게 여전히 팔베개를 해주고 있었다. 강아는 몸을 누르고 있는 그녀의 팔을 조심스럽게 옮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그 밤의 대화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은 수학공식처럼 머릿속에서 의미 없이 맴돌다 천천히 감정을 입고 맞춰져갔다. 강아는 잠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그녀가 읽다 만 그 책을 집어 들어 접혀있는 페이지를 펼쳤다.

 

 

잉크 등. 나에겐 여전히 신기할 뿐인 여러 가지 낯선 도구들이 들어 있었다. “어제는 잘 잤어?” “아마가 하도 들볶아서 여덟시에 침대에 누웠어요.” 시바 씨는 피식 웃더니 침대에 시트를 깔았다. “옷 벗고, 머리를 책꽂이 쪽으로 하고 누워.” 시바 씨는 잉크와 바늘 따위를 꺼내며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나는 원피스와 브래지어를 벗고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라인만 넣을 거야. 그럼 형태가 완전히 정해지는 거지. 지금이라도 형태를 바꿀 수 있어. 어떡할래?” 나는 몸을 일으켜 시바 씨를 보았다.

 

 

 “일어났어?”

 “아, 응. 자기 잘잤어?”

 “아... 그 책.”

 “응. 재미 하나도 없어서 이제 안 읽으려고.”

 “음 그래... 아. 배고프다. 오늘은 나가서 먹을까?”

 “아냐, 나 샐러드 해놓은 거 있어. 된장국하고.”

 “그래, 우리 강아.”

 

 그녀는 기지개를 피며 일어났다. 강아는 햇살을 조각조각 부수어 하얗게 빛나는 그녀에게서 애써 눈을 떼었다. 그리고 식탁을 차리고 함께 앉았다. 그녀가 강아지 한 마리 키우는 건 어떠냐고, “함께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하고 물었다.

 

 “...응.”

 “그럼 종은 어떤 게 좋아?”

 “자기 같은.”

 “응?”

 “아냐...”

 “넌 강아지.”

 “...”

 

 그녀는 강아에게 팔을 뻗어 목에 손을 감고 미소하며 말했다.

 

 “넌 개과라 고양이는 좀 아니었던 거지.”

 “...뭐?”

 “그래도 집은 잘 지키고 있어야지. 갔다 올게.”

 

그녀는 떠나기 전 마지막 날 조금도 늘어지지 않는 은제 목걸이를 강아에게 걸어주었다.

 

 

 

 

 

 

 

 

 

2

...나는 몸을 일으켜 시바 씨를 보았다.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용하고 기린하고, 둘 다 눈은 그리지 말고 그냥 남겨뒀으면 좋겠어요.” 시바 씨는 순간 말문이 막힌 듯한 얼굴이 되더니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눈동자를 그리지 말라는 얘기야?” “네. 눈동자는 안 그렸으면 좋겠어요.” “왜?” “화룡점정이라는 얘기가 있잖아요. 눈동자를 그렸더니 날아갔다는.” 시바 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들어 허공을 주시했다. 그리고 내 쪽을 보았다. “일 리가 있네. 알았어. 용이랑 기린에 눈동자는 넣지 않을게. 그 대신 얼굴이 흐리멍덩해질지도 모르니까 임팩트를 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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