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문]J

2012.12.19 07:58

뉴우지 조회 수:1588

나는 J를 바라보고 있다.

J는 그 사실을 모른다. 그는 일기를 적는 중이다.

 그는 낮에 스쳐지나갔던 A에 대해 적고 있다. A는 키가 크고 마르고 갸름하다. J의 머릿속에 떠오른 A의 이미지는 그와는 정반대였지만 J는 그냥 그렇게 적었다. A는 단추가 검은, 카키색의 버버리코트를 입고 있다. A는 J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J의 가슴이 뛴다. A의 입술이 움직인다. J... J를 부르고 있다. J는 멈춰서서 A의 입술을 바라본다. A의 눈동자는 너무 또렷해서 보고 있으면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는다. xx로 가는 길은 어디...? J는 여기서 일기를 멈추고 고민한다. 그리고 썼던 문장을 지운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적는다. xx대교로 가는 길은 어디...? J는 발 밑을 바라본다. 여기... 여기가 xx 대교이다... 입니다. J는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그는 선행을 하나 한 셈이다. 그는 하루에 하나씩 선행을 베풀기로 마음을 먹었다. A에게는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다.

 A는 xx대교에 서서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본다. 차들은 성별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간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 남는다. 대교는 지상에서 30m 위에 있다. 강에서부터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아직은 시원하다. A는 J를 바라본다. J는 무척이나 초라해보이는 옷차림과는 다르게 빛나는 얼굴을 갖고 있다. A와는 대조적이다. A는 겨울이 오기전에...

 J는 물통을 꺼냈다. 냉장고에서 흘러나온 빛이 베란다창에 그의 형체를 드리웠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J는 빛나는 식물같은 모습을 띠었다. J는 기지개를 펴며 다시 책상으로 돌아간다. 스탠드 아래 공책이 펼쳐져 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뛰어내리려고... 강아지도 죽어버리고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 J는 강아지를 지우고 고양이로 바꾼다. 고양이도 죽어버리고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 매끄럽게 들린다. J는 책상을 마주한 벽에 붙어있는 문구를 바라본다. 하루에 하나의 선행. A는 J에게 말한다. 나를 도와줘...

 뛰어 내리기, 목을 매달기, 농약을 마시기, 수면제 다량복용, 교통사고, 지하철, 계단, 골목, 길, 벽, 칼, 총.

 몇가지 보편적인 수단이 생각났다. J에게는 마침 총이 있었다. 극작가인 친구가 빌려준 것이었다. 또한 그들은 지상으로부터 30m나 떨어진 다리 위에 있었다. 옆에서는 차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리고 있다. J는 고민했다. 어떤 방식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게 그에게 감흥을 불러 일으킬 것인가. 어떤 게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을까. 어차피 A의 결말은 정해진 것이니 J는 좀 더 재미있는 방법을 택하면 될 뿐이다. 그는 극적인 효과와 시각적인 효과 혹은 어떤 것이 더 큰 소음이 날까 등을 상상했다.

 그는 날이 화창하다는 것에 착안했다. 강에는 이를 뒷받침 해줄만한 오리배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멀리서는 유람선이 떠다니고, 물기둥이 솟아 오르고 있었다. A는 처음에는 겁에 질린듯 난간에 서지만 선 후로는 가슴을 편 당당한 자세로 우아하게 아래로...

 A는 J의 무언으로 부터 비롯한 압력에 순순히 복종하며 난간으로 올라가...

 아차, 하이힐을 벗는 것을 잊었어. A는 난간으로 오르기 전 하이힐을 벗는다. 하이힐은 오랫동안 닦지 않은 듯 광택이 전혀 없다. 집에 들어오듯 가지런히 난간 아래에 둔다. 유난히 긴 발가락들. 상처를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매끈한 것들이 난간의 먼지를 짓이기며 그 위로....

 J는 문득 자신의 못난 발가락을 바라봤다. 그것은 A의 것과는 확실히 대조되는 것이었다. A는 난간 위에 서서 다음 문장을 기다리고 있다. 가슴을 활짝 펴고 양 팔을 알바트로스처럼 넓게 벌린채. 바람이 머리칼을 움직이고 있다.

 J는 언제부터 자신의 발가락이 저런 모양이었을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 속의 발가락은 언제나 못난 모습이었다. 그래서 J는 발가락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A는 조금 재촉하는 시선으로 J를 바라보며...

 하루 한 개의 선행...

 J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의 가훈은 하루 한 개의 선행 이었다. 그렇다면 J의 가훈은 무엇인가? 하루 한 개의 선행... A는 재촉하는 시선으로 J를 바라보고 있다.... 잠시만... J는 아버지를 아버지를 떠올렸다. J는 A를 처음 마주쳤을 때 떨리는 눈, A의 형체 뒤로 자기를 바라보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A의 뒤에 아버지가 따라 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몽둥이를 들고 무서운 모습으로 J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어떻게 하나 두고 보겠어... J는 하루 한개의 선행... 떠올린다. xx대교는 여기 입니다. 여기에요. 그런데 아버지는 언제까지 거기 서 계실 작정입니까? 이제 그만 옷은 입으세요.

 J는 히죽거린다. 그는 자신의 미소를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래서 웃고나면 속이 역겨워져 구역질을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구역질을 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소리지른다. 저기 난간에 여자가 서 있어. 달리던 차들이 급정거한다. 차들은 모두 남자다. 그들은 모두 A의 잘 빠진 발가락을 바라보고 있다. 알바트로스의 날개같은 A의 형체는 발가락에 방점이 찍힌다. J는 아버지를 힐끗거리다가 사람들 틈으로 숨는다. 그는 발가락을 오므리고 있다. 

 A는 답답했다. A에게 자유의지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J에게는 마침 총이 있었다. 그것은 극작가인 그의 친구가 빌려준 것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J에게 천천히 확실한 걸음으로 다가가고 있다.

 J는 피곤을 느낀다. 그는 냉장고를 열고 캔커피를 꺼낸다. 기지개를 켠다. 창 너머로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밤 공기를 뚫고 고요함을 가른다. J는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든다. 그리고 창에 비친 빛나는 식물을 향해 겨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긴다.

 마침내...

 A는 우아한 모습으로 추락하고, 아버지는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J는 일기를 끝마쳤다. 잠에 들기 전 그는 잠깐 의문을 가졌다. 그는 선행을 베푼 것인가 혹은 선행을 받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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