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도쿄타워 24층

2013.02.03 02:32

닥호 조회 수:1571

 마침내 그 곳에 가보기로 결심했다. 1년이나 흘렀다. 그 곳을 다시 안가기로 마음을 먹은지. 계단 1층마다의 추억은 여전히 남아있어서 올라가는 나의 발걸음을 쉼없이 잡아챘다. 마침내 24층까지 올라가서 막연한 기대를 품기도 했었지만 역시 그녀는 없었다. 이제는 먼지가 켭켭이 내려앉은 가구들 사이를 걸어보다가 침대에 앉았다.

 

 아직도 들뜬 얼굴로 그녀에게 내 이름을 말했다. 그녀는 아키라라고 했다. 여러 대화를 나눈 것 같다. 이 곳의 노을은 아름답다라거나, 비둘기들의 테러를 견디는 일 같은. 이 곳의 일을. 얘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기에 그 대화는 꿈결같아서 기억이 날듯말듯했다. 잠에서 꺄어나 보니 그녀는 이미 없었다. 일이라도 나간 것일까. 그녀의 일하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어울리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는 지 알고 싶다.
 샤워를 하고 어제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회사에 갔다. 계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어서 24층을 그냥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회사가 가까웠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처음으로 지각했을 터. 다행히 제 시간에 맞춰 들어왔다. 비서는 인사를 올리고 자기 일을 했다. 의자에 앉아 몽롱한 기억을 되세겼다. 떠오르는 것은 부분적이라서 전체를 기억할 수 없렀다. 시간 순으로도 떠오르지 않았다. 스모그현상외에는 집에 대해 불만이 없다고 했다.
 집이라. 도쿄타워를 집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녀뿐일까.

 

 퇴근시간에 항상 들리는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에는 사람들이 몇명쯤 자리를 잡고 움직일 생각을 안했다. 이제 단골이라서 나를 보자마자 점원은 알아서 커피를 탔다. 창가에 앉아 서류를 뒤적거리다가 옆자리로 시선이 슬쩍 움직였었다. 옆에 어떤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창 밖을 멍한 시선으로 보았다. 긴 머리. 그냥 좀 봐줄만한 얼굴. 특별히 나를 잡을만한 것이 없었는데 한참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시선을 따라 그녀가 보던 것을 보니 도쿄타워가 있었다. 카페는 도쿄타워의 근방에 있었고 그래서 도쿄타워는 전체가 아니라 밑부분만 보일 뿐이었다. 평소에도 보던 것이었지만 나 역시 그저 그런 시선으로 보고 있었을 뿐인데 그녀는 마치, 홀린 것 같았다. 그저 철대로 쌓여진 모조품에 무엇이 있다고 그럴까. 그래서 물어보았다. 정중하게 말하도록 노력하면서.
 "저 곳은 내 집이에요."
 그녀는 시선을 고정시킨채 대답했다.
 "도쿄타워가요? 혹시 관리인이신가요?"
 하잘 것 없는 상상력은 그런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하지만 24층은 내 집이에요."
 무슨 말인지 몰라서 대답을 잡아낼 수 없었다. 혹시 정신병자가 아닌 가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다면 상대하지 말아햐 할텐데. 이상하게도 내 어디선가는 그것을 믿고 있었다.
 "자기 집이면서 왜 구경하나요?"
 "불법이니깐요. 혹시 여기서 흔적이 보이나 살펴보고 있었어요."
 불법. 흔적. 하지만 살펴보는 시선이 아니라 멍해있는 시선이었는데. 그냥 변명일까.
 "구경하실래요?"
  마침내 나를 본 그녀의 미소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계단이 한바퀴를 돌때 1층이고, 그것이 24번을 돌면 그녀의 집이다. 도쿄타워 중간쯤. 그녀의 집은 문이 없다. 벽도 없다. 그냥 가구들이 이곳저곳에 배치되어있다. 다들 작았고, 침대는 1인용으로 쓰기에도 비좁아보였다. 이리저리 헝클어진 전선과 호스들이 티비와 냉장고를 움직이고 옹색한 비닐천으로 가려진 화장실과 샤워실, 부엌을 연결하여서 기어코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놓은 그 곳. 벽도 없고 문도 없지만 도둑이 전혀 들락거릴 걱정은 없을 <집>이었다. 그녀는 이 전선과 호스들이 사실은 몰래 관리실것을 쓰고 있는 거라고 말했다. 관람객들을 위한 것을 쓸 수도 있었겠지만은 그렇게 하려면 전선을 꼭대기까지 올려야하기에.
 모험심강한 비둘기가 이웃이고 노을이 지면 그것이 한순간의 멋진 벽지가 되는 그곳에서 미소짓는 그녀. 이런 저런 감상을 말하다가 그녀와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마침 펼쳐진 한순간의 노을벽지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키스했다. 그리고 그것이 화인이 되어 퍼진 욕망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녀를 내리눌렀다.

 

 나는 집으로 가지 않았다. 도쿄타워를 10층쯤 올라갔을 때에야 꿈을 꾼 것이 아닐까할 정도로 부분적인 기억들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를 만나고 싶은 것일까. 그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24층에 올라왔다. 적막한 공기가 그녀의 부재를 말했다. 하지만 나는 티비 앞에 놓여진 하나밖에 없는 소파에 앉아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수 없었을 때, 계단을 오르는 발자국 소리가 철골을 따라 울렸다. 소리가 울릴 때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기대감에 젖어 즐겼다. 그리고.
 "다녀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 그런 소리를 습관처럼 했을 그녀에게.
 "어서오세요."
라고 했다. 그녀의 놀란 얼굴을 보며 나는 미소지었다.

 

 편의점 포도주를 사온 그녀는 잔에 부어 나에게 주었다. 값비싼 포도주에 길들인 입은 한모금 마시고 더이상 마시려하지 않았다. 그녀는 작은 카세트에 테잎을 꽂았다. 암스트롱의 굵은 목소리가 적막 속에 음을 더했다. 내게 내민 손을 잡고 그녀의 허리에 손을 감고. 또다시 펼쳐진 노을벽지에 맞춰, 암스트롱의 굵게 울리는 목소리가 철골을 따라 퍼지는 그 사이에 값싼 포도주에 취해 그녀와 나는 부루스를 추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집에 가지 않고 보냈지만 아네한테 전화한통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전화가 왔어도 오늘 역시 도쿄타워로 갈 테니깐. 쇼코가 회사로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권유(명령)에 따라 선을 몇 차레 보았다. 쇼진무역의 뒤를 이을 테니 그 무엇보다도 여자의 배경을 살피다가 가문이 괜찮은 여자 쇼코를 보았다. 몇차례의 데이트. 얼마 후의 약혼. 다시 얼마 후의 결혼의 절차를 거쳤지만 우리 사이에 사랑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그 상황을 흘러가게 놔둘 뿐이었다. 최고의 토지세를 자랑하는 도쿄에 본사를 두고, 거기에 비서를 두고 근무하는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겠어요. 아에코가 내일 4살이 되요. 아버님이 오실 거에요."
 어 쩔 수 없었다. 계단을 오르는 발자국 소리가 나를 긁어댔지만 쇼코와 함께 집으로 갔다. 쇼코는 가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차 창문 밖을 노려보듯 바라보았다. 곁눈질로 그 모습을 슬쩍 보면서 카페에서의 그녀의 시선을 떠올렸다.
 오셨습니까하는 가정부의 말을 등뒤로 하고 거실로 들어갔다. 쇼코는 아에코를 불러 아빠가 왔다고 알렸다. 아에코는 뛰어나와 나에게 안겼다. 아에코의 목뒤에서 나는 아기용 비누냄새를 가득히 마셨다. 아에코는 왜 오지 않았냐고 물었다. 대답할 말을 찾을 때, 쇼코는 아빠가 일이 바빠서였다고 대신 말했다.
 가정부가 마련한 저녁을 먹고 신문을 뒤적거리다가 침실로 들어갔다. 쇼코는 이미 침대 안에 들어가 있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눈을 뜨지 않고 팔을 살짝 움직였다. 아무것도 닿는 것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체온을 찾았던 것일까. 쇼코와 나는 등돌려 잤기에 내 손에 닿은 것은 체온이 아니라 부드러운 실크커버였다.
 특 별할 것 없는 아에코의 생일파티였다. 아버지가 오셨지만 나는 겉으로는 잘 해내갔기에 아버지와 나는 일본의 헤어나올 길이 없어 보이는 불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것외에 관심사가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길에 문앞까지 마중을 나가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녀가 나를 부르는 그 어감이 귀를 울리지 않았다면. 요시미츠를 미츠라고 귀 가까이에서만 내 이름을 말하는 그녀의 말이.
 나는 차를 타고 도쿄타워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울음이 내 상상 속에서 들렸다. 귀로 들리지 않고 가슴 언저리로 옮겨진 그녀의 소리는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문득 차에 탄 나를 보던 쇼코의 무심한 눈빛이 스쳤다. 그리고 도쿄타워가 보였다. 그러지 않을려고 했는데 나는 소음을 내며 뛰어올라갔다. 순식간에 도착한 그녀의 집에는 유일한 티비의 빛만이 쟁쟁거렸다. 그리고 소파에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머리를 숙인 그녀. 어깨가 흐느낀다. 가득히 시선을 채운 그 모습이 바로 내 어깨 안에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를 품에 안고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일을 가고 없을 때였다. 휴일이어서 나는 하릴없이 집을 돌아다녔다. 서랍장 이곳저곳을 죄책감없이 뒤적거리다가 여권을 발견했다.
 이름 : 이민지 나이 : 23 국적 : 한국
 이름이 아키라가 아니었던 것과 국적이 일본이 아니라는 것은 아무런 자극이 아니었다. 다만.

 

 나의 집이 도쿄타워 24층이 된지도 한달이 되어갔다. 가끔 옷을 가지러 쇼코와 아에코가 있는 집으로 갔었지만 쇼코는 마중만 하고 말이 없었다. 아에코는 칭얼거렸지만 곧 체념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그 날도 옷을 가지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신주쿠의 밤이었고, 그래서 피어난 붉은 음란함이 가득 도시를 메우고 있었다. 예감이랄 것도 없이 차에서 내려 그 골목을 걸었다. 유혹이라 하는 말들이 귀를 스쳤다. 그리고 보았다. 어떤 남자의 목에 팔을 두르고 키스하는 그녀를.

 

 심장에서 고동을 따라 퍼져나간 열화가 머리로 치달았다.

 

 참고 참았던 일주일 후, 마침내 그녀가 화를 내며 말했다.
 "내 여권 어딨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곳 이자리에 두었던 여권이 발이라도 달렸어?"
 "발이라도 달렸나보지."
 미소짓던 얼굴이 가득히 찌푸려지며 내 뺨을 날렸다. 나는 뺨을 부여잡고 기어코 말해버렸다.
 "...그러는 너는 왜...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거지?"
 그 녀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침묵이 이 견딜 수 없는 사이를 더 벌려놓고 있었다. 좋은 이웃이었던 비둘기의 울음도 없고, 노을벽지도 없었다. 그녀는 밖으로 나갔다. 내려가는 발자국 소리가 울리며, 열화가 마침내 녹아 눈물이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동안 그 곳에 혼자 집을 지켰다. 그녀는 한국에서 유학을 와서 아키라라는 이름으로 신주쿠의 밤의 꽃이 되었다. 집조차 없는 가난함을 도쿄타워에 낭만을 두고 살았다. 여권을 발견했을 때, 나를 뜨겁게 만든 깨달음은 그녀에게 돌아갈 곳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에게는 이제 이 곳뿐인데.
 

 마지막이라고 혼자 자축해보았다. 편의점표 싸구려 포도주와 암스트롱의 노래가 함께 했다. 비둘기 이웃과 노을벽지가 있는 가운데, 나는 그저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쇼코와 아에코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쇼코는 미소도 짓지 않은 채 그동안 들고 나간 것을 모두 가지고 온 나를 비웃거나 하지 않았다. 아에코는 다만 반길 뿐이었다.

 

 ...한국에도 갔었다. 우연이란 역시 없었다. 내가 본 건 그저 시끄러운 사람들의 소음뿐이었다.

 

 노을벽지가 타오르길 기다렸다. 침대에서 일어나 그녀를 곱씹었다. 검은색 긴 머리, 미소. 1년 뿐이었는데, 생각나는 건 오직 이것 뿐이다. 그런데 슬프지도 않다. 죽을 것만 같았는데.
 이제 떠날 때이다.
 그 런데. 익숙한 발자국 소리가 울려온다. 덜컹하는 나를 진정시킬 수 없었다. 아니야. 아니야. 왜 이곳을 오겠어. 발자국 소리는 가까이 있었다. 나는 숨을 곳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발자국 소리가 멎었다. 나는 기어코 뒤를 돌아봤다.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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