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9禁] 페이지터너 - 8

2012.08.15 07:51

DaishiRomance 조회 수:4783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54-1악장, 장엄하게 시작하지만 곧장 차분하게 슬픔을 연주하는 곡. 그러다가 슬픔과 웅장함이 넘나들며 격랑의 파도가 몰아치는 듯한 감수성. 승현은 상당히 풍성한 이 곡을 들으며 생각에 잠긴다. 사실 승현이 해야 할 일은 매우 간단하다. 이번 공연에서 승현은 무대에 오르지도 않는다. 연습이 진행되는 동안에만 영훈이 악보를 외울 수 있도록 페이지터너 역할을 한다. 

사실 승현은 학교 카페에서 이 곡을 들으며 잠시 낮잠을 잘 계획이었다. 작곡과에 재학 중이지만 클래식에는 그리 취미가 없는 승현이었다. 하지만 승현은 꼼꼼한 사람이었다. 과에서도 승현은 말수가 적은 우등생으로 통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매력적이면 오히려 이성의 찝쩍거림이 적은 편이다. 어쩌다 보니 승현은 과에서 그런 존재가 되어있었다. 


"승현아"


친구 종운이가 카페로 찾아와 잠들려는 승현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깨운다. 


"어! 왔냐?"


종운은 승현의 맞은 편 자리에 의자를 꺼내어 앉는다. 승현은 이날 종운의 얼굴에서 금새 어딘가 낯선 부분을 읽어낼 수 있었다. 종운의 표정은 마치 한정판 레어급 피규어를 갓 구매한 오덕후의 표정과 비슷했다. 승현은 생전 처음보는 종운의 표정에 같잖다는 듯 미소를 짓다가 겨우 진정하고 말을 꺼냈다. 


"너 뭔 일 있냐?"

"어?"

"너 표정이 어딘가 되게 설레어 보이는데? 나한테 뭐 자랑하고 싶은 거 있어?"

"아...그...그게 아니고..."

"아니기는! 씨..."


종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승현에게 말을 꺼냈다. 


"나...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

"뭐?"


승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되물었다. 여자 앞에만 가면 얼어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종운이 누굴 좋아해봤자 결과가 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종운은 티아라 지연 팬클럽 회원으로 얼마전 지연의 생일에는 두 달간 알바해서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최고급 슬레이트 PC를 조공하기도 했다. 근데 그런 녀석이 지연이 아닌 다른 여자를 좋아한다는게 승현은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웃음을 겨우 진정하고 일단 물어보기로 했다. 이렇게 자랑하고 싶어하니 물어봐주는 것이 도리다. 


"뭐하는 앤데?"

"어... 성악과 1학년 앤데... 걔도 나한테 호감이 있나봐...어제는 같이 커피도 마셨어"


다시 생각해보니 종운이 카페까지 찾아온 것도 의외였다. 종운은 왠만해서는 승현을 찾으러 어디로 직접 오기보다는 자신이 있는 장소에서 기다리는 편이거나 승현이 부르기 전까지는 절대 직접 오지 않았다. 이 정도면 이 사실을 정말 자랑하고 싶었다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종운이 카페에서 하는 행동들이 지나치게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분명 처음 온 사람의 행동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정작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종운은 예슬이 어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전혀 기억 못하고 있다. 아마 종운은 그날 마셨던 에스프레소의 쓴 맛도 기억 못하고 있을 것이다. 혹은 그 맛 마저 달콤했을수도 있다. 

남자들이 여자의 사소한 행동에 "나를 좋아하나?"라는 식의 착각을 즐겨 한다는 건 이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 착각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바로 여자와 자주 만나보지 못한 남자들이다. 종운은 그런 착각을 하기에 가장 최적화된 남자였다. 그리고 그 착각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종운에게 각인되고 있었다. 승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종운에게 그 사실을 환기시켜주는 대신 그냥 재미있는 이 상황을 조금 더 즐기기로 했다. 


"성악과 누군데? 이름이 뭐야?"

"어...이예슬이라고..."

"아아...걔."


승현도 예슬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정도 미모와 배경이면 음대 전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예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승현은 더욱 더 종운의 반응을 즐기게 됐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예슬이 종운을 만나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종운은 예슬과의 대화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예슬의 외모와 말투, 목소리, 에스프레소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종운이 지연 얘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로 이토록 침을 튀며 열변을 토한 적은 처음이었다. 승현은 종운의 이런 반응을 보자 오히려 예슬이 조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승현도 학교에서 나름 유명했지만 정작 이성에게 큰 관심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승현이 예슬에게 관심을 보인건 호감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웠다. 



영훈과 효선은 아이보리빛이 포근하게 감싼 고급 호텔에서 살을 부비며 정을 나누고 있었다. 애정이 담기지 않은 부드러운 몸짓과 쾌락에 젖은 신음소리, 두 사람의 땀이 뿜어내는 야한 온기는 방 전체를 끈적끈적한 쾌락의 구덩이로 만들었다. 

효선은 침대에 엎드려 누워 엉덩이를 들고 엎드려있었다. 영훈은 효선의 뒤에서 그녀의 엉덩이를 향해 허리를 맞추고 폭주기관차처럼 맹렬히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쩍! 쩍! 쩍!' 효선의 엉덩이에 영훈의 남근이 와서 부딪힐때마다 땀에 젖은 살갖이 맞닿는 끈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효선은 엎드려서 쾌락에 못 이긴 듯 침대시트를 부여잡으며 온 몸으로 영훈의 움직임을 음미하고 있었다. 


"아...아앗! 아흑! 더...더 세게 해줘요...더"


남성성을 과시하려는 듯 영훈은 효선의 하얀 엉덩이가 볼기짝 맞은 어린 아이의 그것처럼 빨갛게 부풀어오를 정도로 더욱 맹렬하게 효선의 엉덩이를 향해 허리를 밀어붙였다. 효선은 엉덩이에 찾아오는 통증과 클리토리스를 타고 온 몸으로 퍼지는 쾌락에 온 몸을 맡긴채 쾌락의 절정에 다달은 신음소리를 냈다.


"아...아앗!!"

"흐...흐헉!"


효선의 절정에 맞춰 영훈도 효선에게 사정을 했다. 효선은 그대로 멈추더니 영훈의 남근이 안에서 움찔거리는 것을 그대로 느끼다가 앞으로 뻗어버렸다. 영훈 역시 효선의 옆에 그대로 뻗어버렸다. 둘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시 누워있다가 효선이 먼저 다가와 영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안겼다. 


"오늘 뭔 일 있어요?"

"왜?"

"지나치게 격렬한데?"

"별로였어?"

"나야 좋지만...평소랑 다르니깐..."

"그럴수도 있지"

"나이를 생각해요. 뭐 못 먹을 보약을 잡수시나..."

"야!"

"왜! 헤헷.. 메롱"


효선은 가끔 영훈을 놀리는게 재밌다. 학교에서는 근엄하고 자상한 교수님이지만 어느 순간 아이처럼 옆에 안겨서 젖가슴을 쪼물딱 거리는 영훈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놀리고 싶어졌다. 지금도 효선이 영훈을 놀리는 것은 어서 나에게 안기라는 효선의 메시지였다. 하지만 그날따라 영훈은 효선에게 안기지 않은채 멍하니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무슨 생각해요?"

"응? 아....아냐"


영훈은 뭔가를 들킨 것처럼 당황했고 효선은 그런 영훈이 이상해 보였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나 먼저 씻을게!"


영훈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하자 효선은 그제서야 약간 당황하기 시작했다. 평소 한 번 섹스를 하면 최소 세 번 이상 사정을 할 정도로 정력이 좋은 영훈이었지만 그날은 유독 딱 한 번의 섹스로 마무리지었다. 


"바빠요? 스케줄 없잖아요"

"아까 너무 격렬하게 했나봐. 피곤하네... 집에 가서 좀 자야겠어"

"그...그래요, 그럼"


뭔가에 쫓기듯 샤워기의 물을 틀고 머리를 식히며 영훈은 생각에 잠겼다. 뭔가를 머리 속에서 지우기 위해 평소보다 격렬하게 섹스했지만 섹스가 끝나는 순간 영훈의 머릿속에는 다시 한가지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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