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 소설] 이 노란 리본에 약속을

2012.10.07 22:56

catgotmy 조회 수:1489

  티비를 봤다. 티비를 1년에 2시간 정도 보는데, 오늘이 그 날이다. 인터넷이 되질 않아서 티비를 보고 있다. 티비보다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애니가 더 재밌지만, 침대에 누워서 티비를 보고있다. 2년 동안 얼굴을 본 적 없는 친구가 나에게 묻는다.

 

  저 좀비는 특수한 좀비냐?

 

  특수한 좀비다. 바이오하자드에서도 그렇고 좀비게임엔 보스나 중간보스에 해당하는 좀비가 있다. 스테이지가 끝나거나 이걸 잡으면 한시름 놓는 등의. 일종의 퍼즐이다. 하지만, 이 좀비는 잡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아무것도 없다. 아무런 퍼즐적인 면이 없다. 친구에게 설명하고 감자칩을 먹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아무튼, 당황스럽네.

 

  집 밖에는 전부 좀비다. 사람이 있는 것 같지만 거의 대부분이 좀비다.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서 티비를 보며 과자나 먹고있다. 편의점이 내 집이면 러브플러스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텐데. 나가기로 결정했다. 도망치다보면 안전한 곳이 있을 거다. 집밖으로 나와 열심히 도망쳐서 안전한 장소에 도착했다.

 

  여기에 헬기로 왔다구요?

 

  난 험한꼴 보면서 왔는데, 헬기로 왔단다. 아래에선 여전히 좀비가 어슬렁거리며 사람을 물어뜯고 있다. 다시 방으로 돌아간다. 죽으러 가는 건 아니다.

 

  티비를 껐다. 아아아. 좀비에 물려 죽어가겠지. 마당에 나와 중얼댔다. 이건.. 꿈이지? 어..나쁜 꿈이야. 낄낄대며 오른쪽 눈으로 파란 하늘을 올려다봤다.

 

 

 

  대학 졸업 후 몇 년 만에 만난 친구는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만화가가 된 건 아니다. 집으로 찾아갔을 때 마침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조선시대에 좀비가 나타나 홍경래를 잡아먹는 만화였다. 친구는 집 밖을 잘 나가지 않은지 오래된 것 같았다. 보통 이런 경우엔 바깥을 나가는 일도 드물지만 누군가를 집으로 부르는 일도 드문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아, 응, 아 등의 딱히 언어가 필요하지 않은 아는체를 하고 친구는 계속 만화를 그려댔다.

  이번엔 나와 친구가 등장하는 좀비 만화였다. 이번 좀비는 수는 많지만, 전염성은 없고 굉장히 약했다. 슈퍼마리오 1-1에 등장하는 굼바처럼 7살짜리 아이도 밟아죽일 수 있었다. 그리고, 고통을 느끼는 것 같았다. 좀비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상한 좀비였다.

  나와 친구는 약한 좀비들을 치워가면서 목적지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의 한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난 목적지를 모르고 그저 같이 끌려다닐 뿐이었다. 그 와중에 좀비를 전혀 해치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좀비살육이 목적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쿠파는 우스울 것 같이 강한 인간이 있었고, 모든 인간을 썰어댔다. 흉상이라도 만들 것처럼 도끼로 목 아래를 찍어내거나, 허리 등을 끊어댔다. 구별 없이 모두 그렇게 죽었다. 그리고, 모두 좀비가 되었다. 사람 한명 당 여럿의 좀비들로 분열했다.

  이야기는 뒤로 돌아갔다. 친구와 나는 좀비를 치워가며 목적지로 향했다. 이번엔 좀비를 죽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워낙 약해서 주먹만 휘둘러도 죽어서 성가셨다. 가는 길에 쓰러져있는 고양이도 줍고, 차를 얻어 타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좀비를 덜 죽이면 덜 죽일수록 순위가 높고 페널티가 적은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건 좀비를 하나도 죽이지 않은 사람이 2위였다는 거다. 1위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나보다.

  친구는 만화를 거기서 끝냈다. 왠지 할 말이 없어서 에, 응, 아 등의 의미 없는 소리를 하고 집을 나왔다. 크리스마스 이브라 길거리엔 유난히 사람이 많았다. 어릴 때 이브가 아니라 크리스마스 당일에 약속을 했던 사람이 있었다. 놀림당한 걸까.

  마나카가 기다리고 있다. 노란 리본을 선물했는데, 착용하고 있을까. 편의점에 들러서 캔커피를 사고 근처 공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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