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두운 밤, '뱀파이어 뫼르쏘'와의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름은 어떻게 되시죠?"

"뫼르쏘,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 나오는..."

"당신을 뱀파이어로 만든 레스타드를 언제 만났나요?"

"그를 만난 것은 내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였지. 사형집행일을 앞두고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네.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마음이 생겼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커다란 분노가 나의 괴로움을 씻어주고 희망을 가져다 준 것처럼 표적과 별들이 드리운 밤을 앞에 보며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다정스런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세계가 나와 다름없고 형제같음을 느끼며 나는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이뤄지고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을 올리며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다.'
그래, 그런 말들을 하고 있었지. 그때 레스타드가 내 눈 앞에 나타났고 사형을 앞둔 내게 뱀파이어가 될 것을 제안했었다네. 떠밀리듯 사형을 당해 죽느냐 뱀파이어가 되어 살아남느냐. 나는 그때 뱀파이어가 되어 살아남는 쪽을 선택했지."

"장정일은 언제 만났었나요?"

"사실 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그가 어린 시절 소년원에 있을 때였다네. 그때 이후 다시 만났을 때 장정일은 소설 쓰기를 시도하고 있었고 나는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지.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네. 그때가 아마 1988년이었나 장정일이 <펠리칸>이라는 이름의 단편소설을 쓰기 직전이었어."

"왜 '장정일'에게 당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나요?"

"글쓰기란 것은, 주체를 드러내려 하는 것이자 숨기고자 하는 이율배반적인 욕망의 산물이라네. 그것은 끝없이 실패하는, 좌절하는 욕망일 수 밖에 없어. 한 마디로 '끝없는 메아리'인 셈이지. 모리스 블랑쇼는 '모든 글쓰기는 결국 '나'에 대한 글쓰기이며 변형된 자서전'이라고까지 했다네. 장정일의 경우는,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가부장제 사회의 아버지, 혹은 그 아버지가 제도화된 양식으로서의 법사회를 향한 살의가 내 글쓰기의 원동력이었다고 밝히곤 했었지. 글쓰기라는 끝없는 메아리에 대한 그런 그의 집념/집착이야말로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만든 가장 큰 이유인 셈이야. 뱀파이어가 가지고 있는 가학과 피학의 에로티시즘, 카오스 뭐 그런 것들이 그의 작품세계와 어느 정도 부합하는 점이 있기도 하고..."

"<펠리칸>의 내용은 무엇이죠?"

"맥주회사 직원인 '그'의 집에 펠리칸이 찾아오지. 불청객인 펠리칸에게 발길질을 가하던 그는 어느날 갑자기 회사에서 체포되고 말아. 군인들, 공안기관원들에게 조사를 받는 그는 나름대로 자신의 논리를 내세워보지만 힘없고 갈 데 없는 펠리컨을 학대하고 착취했으며 민중의 피를 빨아먹었다는 진술서를 쓰게 된다네. 그에게 있어 '조사'는 범죄행위를 밝히는 것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범죄행위를 인정한 다음 범죄행위가 이루어진 동기와 과정을 설명하는데 있었지. 진술서가 완성되자 그는 정식재판에 회부되어졌고 최후의 법정에 나타난 증인은 그가 멸시했던 육교 위 거지와 그가 무시했던 목사 친구, 그리고 그가 구매했었던, 특별한 체위를 요구했었던 창녀였다네. 지난날 내가 그랬듯 소설 속의 '그'는 사형을 언도받게 되었지. 신부를 만난 '그'는 자신과 상관없이 여기고 있던 펠리칸의 존재를 자신과 상관있는 것으로 인정하기 시작한다네. '죽음이라는 것은 거대한 펠리컨의 입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그'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런 내용이야."

"뫼르쏘, 당신의 삶은 어떤 것이었나요?"

"나의 삶은, 프랑스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알베르 카뮈에 의해 형상화된 <이방인>에 잘 나타나 있다네. 카뮈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죽지 않았다면 자네들은 나에 대한 좀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을 테지. 안타까운 일이야."

"<이방인>의 마지막 장면과 <펠리칸>의 마지막 장면이 대조를 이루는데..."

"<이방인>의 경우, 그를 회유하러 온 신부의 모습은 마치 조지 오웰이 쓴 <1984년>의 모습을 연상케 하지. 그 책 속에서 주인공 윈스턴은 악몽과도 같은 대형(大兄)의 감시 속에서 개인적인 생활을 찾아보려 하지만 결국 체포되어 기관원인 오브라이언에게 조사를 받게 된다네. <이방인>의 경우는 확신도 신념도 없이 티성에 젖어있던 주인공 뫼르쏘가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역설적으로 자기 내부의 확신을 갖는 경로를 그리고 있으며 <펠리컨>에서는 사형 언도의 모티브가 된 펠리컨을 통해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다네. 펠리컨=죽음이며 그것으로 부조리한 현실을 상징함으로 장정일은 작품 곳곳에 반복되는 '거대한 펠리컨의 입'을 톨해 우리 사회가 카오스적인 죽음과 부조리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음을 표현하려고 한 셈이지."

"알베르 카뮈와 장정일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장정일의 경우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현실의 도덕과 제도에 대한 반항으로 드러난 셈이야. 카뮈의 경우는 부조리에 대한 인식과 거기에 대한 행동을 추구하고 있으며 그 자신이 사상가이자 행동가이고도 했다네. 장정일의 경우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기말적 문학을 한다는 축에는 끼였지만, 본질적으로 사상가는 아니었어. 사상이 받쳐주지 못하는 장정일의 세계는 결국 자기 위안을 위한 마스터베이션에 그칠 공산이 그치만, 사상이 겸비된 카뮈의 작품은 '생산(生産)'을 할 수가 있었지. 비슷한 소재를 두고 쓴 작품이지만 장정일의 <펠리컨>에서는 죽음과 혼돈을 익식하는데 그치지만 카뮈의 <이방인>에서는 역설적인 방법으로 부조리한 현실을 뛰어넘는 장면까지 묘사하고 있다네."

"뫼르쏘, 당신은 왜 뱀파이어가 되었나요?"

"부조리한 재판 과정을 거치며 나는 나의 실존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네. 그때 마침 뱀파이어 레스타드가 내게 찾아온 것이지. 시지프스처럼 끝없이 계속되는 뱀파이어로서의 삶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나름대로 저항해보려고 생각했던 것이라네. 자네, 시지프스의 신화(神話)를 아는가? 카뮈는 <시지프스의 신화>를 통해 자신의 실존주의를 설파하지. 카뮈는 <이방인> <페스트> <전락> 등의 여러 작품에서 부조리한 현실과 거기에 저항하는 행동을 통한 인간의 실존을 묘사해왔다네.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주인공 시지프스는 신에게 받은 벌로 끊임없이 바위를 옮겨야 했지. 하지만 그에게는 의식이 있고 부조리를 인식하는 통찰력이 있다네. 자신의 고통스러운 운명의 부조리함을 아는 시지프스,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지. 이것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윈스턴의, 세뇌에서 오는 행복과는 다른 것이라네."

"뫼르쏘, 당신도 다른 뱀파이어들처럼 햇빛을 두려워하나요?"

"햇빛? 뱀파이어가 햇빛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야. 다만 햇빛 아래에 있을 때 인간과 달리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문제점은 있어. 그림자의 '부재(不在)'를 인식하고 인간이 아닌 뱀파이어로서의 끝없는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네. 나 같은 경우는, 뱀파이어가 되기 전부터 햇빛을 좋아하지 않았지. 뜨거운 햇빛은 알제리 해변에서 있었던 '그날'의 사건을 연상시키니 말일세."

뱀파이어 뫼르쏘와의 인터뷰는 끝났다.

그리고 그날 밤 뫼르쏘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새로운 소설을 준비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 내 눈 앞에, 뫼르쏘를 뱀파이어로 만들었던 레스타드가 나타났다.
그는 내 목에 그의 긴 송곳니를 박아넣었고 나는 그의 송곳니가 나의 목을 무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동요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잠시 후 그는 내게 자신의 피를 빨 것을 요구하였다. 전신이 긴장되면서 레스타드의 몸을 힘껏 감싸 안았다. 송곳니는 가볍게 박혀들었다. 미끈한 그의 목덜미를 손으로 매만졌다. 쓰읍!하는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일은 저질러지고 말았다. 이어서 레스타드의 목덜미에 다시 송곳니를 박아넣었다. 이빨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깊이 박혀 들었다.

씁, 씁, 씁, 씁

그것은 마치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토막의 짤막한 노크소리와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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