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타고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던 ‘글렌’은, 남성으로도 여성으로도 그 어느 기준으로의 잣대로 함부로 잴 수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전신 거울 앞에 채 열 살도 되지 않은 남자 아이가 서있다. 알몸 상태로 쪼그려 앉은 뒤 다리 사이의 성기를 허벅지 밑으로 집어넣고 서서히 일어서면 조그만 성기는 허벅지에 가려졌다. 허벅지에 가려진 성기 위 뱃살을 손가락으로 살짝 눌려 접으면 세로로 된 조그만 선(線)이 피어난다. 하얀 허벅지, 늘씬한 팔다리, 도톰한 입술, 남자애답지 않은 긴 머리칼은 그 또래의 ‘소녀’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아니 그 또래의 소녀들을 훨씬 뛰어넘는, 초월적인 아름다움이었다. 글렌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이런 아름다움은 세상 그 누구도 절대 보지도, 갖지도 못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미녀 탤런트 마츠다에게도, 그라비아 아이돌 세이코에게도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존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인 동시에 존재해선 안 될 아름다움이었다. 허벅지 사이로 사타구니의 그것을 숨기고 있는 순간은 길어야 불과 몇 십 초였다. 남녀 경계의 벽을 허무는 금단의 아름다움은 극히 짧은 순간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주는 미적인 쾌감은 컸다. 순간(瞬間)이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웠다.

 

문제는, 그 짧은 순간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져갔다는 것이다. 어릴 때는 허벅지 사이에 ‘그것’을 파묻은 채 똑바로 일어서서 전신 거울 앞에 설 수 있었으나 커갈수록 그것은 어려워졌다. 엉거주춤한 상태로 허리를 굽혀야만 했으나 그것도 곧 불완전한 모습이 되었다. 네덜란드 혼혈의 피가 섞인 ‘글렌’은 여느 일본인 아이들보다 성장이 빨랐다. ‘글렌’의 사추리, 그리고 배와 가슴에는 검고 구불구불한 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허벅지에서 다리로 이어진 털들을 면도기로 밀어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더 보기 흉한 면도자국만 남길 뿐이었다. 손등과 발등에도 긴 털이 올라왔다. 이제 더 이상 순간적으로 여자와 남자를 오가는 미소년의 미적(美的) 일탈은 이뤄질 수 없었다. 어쩌면 사라지는 것이기에, 붙잡을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아름답게 느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소학교를 지나 중학교로 들어가면서 짧게 자른 머리를 가진 또래들의 철없는 텃세는 더욱 더 소년은 낙심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아름답지도 우아하지도 않았다. 막 분비되기 시작한 테스토스테론으로 대표되는 남성 호르몬은 아름다움과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거칠고 투박하고 폭력적이고 공격적이었다. 주먹다짐과 발길질, 먼지 섞인 공기가 가득한 중학교, 혼혈에 대한 이지메가 심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미국의 스탠포드 의대로 이어지는 힘든 과정은 가뜩이나 연약한 ‘소년’의 위장을 망쳤다. 주변 수컷들이 연신 피어대는 담배, 그리고 강요된 술자리는 선천적으로 호흡기가 약하고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는 소년에겐 큰 스트레스였다. 관리를 못한 피부에는 트러블이 이어졌다. 비단처럼 곱던 머릿결은 억새처럼 뻣뻣해졌으며 잦은 야근과 쌓여가는 업무 피로는 흰머리까지 생겨나게 만들었다. 스트레스는 폭식과 야식으로 이어졌다. 소년은 그렇게 어른 남성이 되어갔다.

 

남들이야 뭐라고 하든 ‘글렌’은 그 또래의 남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물의 이면(裏面)을 꿰뚫어버릴 것 같은 독특한 사고(思考)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일반적이고 세속적인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그가 갈망하는 것은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동서양의 경계마저 초월한, 궁극의 아름다움이었다. 스탠포드 의대로 진학을 한 것도 그의 오래된 뜻 때문이었다. 동양에서 온, 조각 같은 외모의 스탠포드 출신 의사에 대한 세간의 호기심은 높아만 갔지만 자신을 닮은 인간을 복제하는 것, 그때 그 육체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구현하는 것에 대한 오래된 고집은 주위를 둘러보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것이었다. 다른 연구팀들은 여자의 난소(卵巢)를 통해 인간복제를 시도하려고 했지만 글렌의 인간복제는 난소(卵巢)를 이용하지 않았다. 글렌의 실험실에서는 남자의 몸을 이용한 연구가 이어졌다. 그것만이 오로지 그때 그 아름다움을 재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경감은 앨범을 덮고 파일을 꺼내본다. 파일의 내용인즉슨 ‘글렌’이 행한 인간복제에 관한 것이었다. 실험용 수치들이 날짜와 함께 나와 있다. 남자의 몸에서 새로운 생명체를 복제해내는 것. 이것이 히틀러, 스탈린, 후세인, 김정일, 카다피 같은 독재자들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하는 상상을 하며 쟈크 경감은 파일을 훑어봤다. 박사의 정액으로 복제를 시도한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카날 플뤼'(Canal+)에서는 민감한 인간복제 이슈를 통해 명성과 이익을 챙기려는 희대의 의료사기꾼으로 보도한 적도 있었지만 파일을 훑어보니 카날 플뤼의 보도와 달리 적어도 실험은 제대로 행해진 것이었다. 단 한 건의 실험만이 성공하긴 했지만 말이다.

 

박사는 대학 연구소를 떠나오기 전 자신의 척수에서 골수를 채취했다. 일생일대의 실험을 앞두고 있기에 골수 채취의 아픔을 참을 수 있었다. 골수 채취의 아픔은 그에겐 곧 희열이었다. 몇 번의 골수 채취 끝에 인간복제를 시도할 만큼의 충분한 양이 나왔다. 박사는 자신의 몸에서 나온 골수를 담은 앰플 병을 들고 준비해놓은 비밀 저택의 지하실로 들어갔다. 그동안 그가 남들의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오프라 윈프리 같은 인기 연예인처럼, 때론 부패한 정치권 인사처럼, 어떨 때는 카날 플뢰가 언급한 의료사기꾼처럼 긁어 들인 돈은 인체실험에 대한 모든 기기가 구비된 비밀스런 실험실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실험실 안에는 그가 누울 침대, 그리고 그의 골수로 만들어낸 ‘그녀’를 위한 침대, 두 개의 침대가 위치되어 있었다. 그는 침대 둘을 나란히 마주 붙였다. 이 실험이 끝나고 나면 그는 그녀를, 그녀는 그만을 바라볼 것이다. 영원토록.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므로 쟈크 경감은 간호사를 불러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을 더 주문했다. ‘차갑게 가득.’ 쟈크 경감 특유의 에스프레소 주문법이었다. 이번에는 ‘차갑게’를 한 번 더 반복했다. 환자의 상태를 생각한다면 휴식이 필요했지만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오히려 환자 쪽이었다. 경감은 ‘피의자’를 다룰 때 늘 그러하듯 상대방의 말을 무조건 맹신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글렌의 이야기에 동조하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지만, 그의 대뇌 한구석은 지금껏 들은 이야기를 다른 쪽으로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사기꾼의 변명, 엘리트 지식인의 과대망상(誇大妄想) 같은 것은 이쪽 세계의 일을 조사하다보면 흔하디흔한 일이었다. 차갑게 식혀달라고 주문했던 에스프레소 커피가 병실에 도착했다. 향(香)은 채 음미하지도 않고 부어넣듯 커피를 들이켰다. 형사라는 직업의 특성 상 커피 향(香)을 음미하는 것은 사치스런 일이었다. 형사에겐 원두가 가져다주는 커피 향보다 커피 속 카페인이 주는 각성 효과가 더 중요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피의자와 거리를 둘 수 있는 차가운 이성(理性)이 필요했다. 쓰디 쓴 에스프레소 커피가 그의 목으로 넘어갔다. 쟈크는, 맥주라도 마시듯 머그컵 가득한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딱 세 모금이었다.

 

“자 이제 계속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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