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페이지터너 - 1

2012.07.15 01:16

DaishiRomance 조회 수:3613

<<등장인물 소개>>


이영훈 : 48세. 영국왕립음악대학에서 작곡, 지휘, 피아노를 공부한 피아니스트. 남성패션매거진 'GQ'가 선정한 '가장 매력적인 중년남성 TOP 20'에 3년 연속으로 3위권 이내에 뽑힐 정도로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매력적인 중년남성.


박현정 : 45세. 영훈의 아내. 영국왕립음악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으며 이때 영훈과 만나 영국에서 결혼하게 됨. 현재 영훈과 함께 12인조 퓨전 오케스트라 '한소리' 단장으로 활동.


정승현 : 21세. 낮에는 음대생으로 공부하며 밤에는 호스트빠에서 일하는 청년. 주변 사람 누구도 그의 과거나 주변관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함.


이예슬 : 20세. 영훈과 현정의 딸. 어릴때부터 일렉트로닉 음악에 관심이 많았지만 부모의 성화로 결국 성악을 전공하게 됨.


신효선 : 28세. 영훈의 조교.

 



"문화가산책, 6월 29일. 오늘은 최근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마치고 온 퓨전 오케스트라 한소리의 리더이신 피아니스트 이영훈씨와 바이올리니스트 박현정 부부를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먼저 두분께서는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대표적인 잉꼬부부로 소문이 자자하신데요. 유럽에 가셔서도 부부금슬을 자랑하고 오셨다고요"


"하하... 뭐 저희 부부 평소대로 연주하고 지냈을 뿐인데요"


"유럽에서 두 분의 명성이 최근 심상치 않은데요. 이번 협연 후 세계 오케스트라들의 협연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한국 클래식 음악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부부는 이러한 서양 클래식 음악에 우리 특유의 국악적 구조를 더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점이 유럽인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방송에 나온 두 부부는 인터뷰 내내 다정한 모습과 온화한 미소를 유지하며 사회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영훈과 바이올리니스트 현정은 12인조 퓨전 오케스트라 '한소리'를 이끄는 두 리더이자 메인 연주자다. 둘은 1987년 영국 왕실음악대학에서 처음 만나 영국에서 결혼한 후 5년 뒤 한국으로 건너와 본격적인 음악생활을 하게 됐으며 1993년 뒤늦게 딸 예슬이를 가졌다. 예슬이는 중학교 시절부터 성악을 전공했으며 현재 서울대 음대에 입학했다. 2학년을 마치면 오스트라이로 유학 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


매스컴에 비춰진 이들 가족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여길 만큼 화목 그 자체다. 하지만 이들 가족에게는 불편한 진상이 하나가 있다. 누구도, 심지어 영훈과 현정조차 자신들의 가정생활이 왜 이토록 틀어졌는지 모르고 있지만 분명 이들 가족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상태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들 가족에게 발생한 심각한 결함은 이들이 공인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보인대로 이들은 여전히 대중 앞에 화목한 가정으로 보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덜컥'




이들의 화목한 가정은 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돌변하게 된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둘은 대중앞에서 보여진 다정한 스킨십을 일절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마치 남이 된 것처럼 한 집 안에서 보이지 않는 선으로 각자의 공간을 만들어두고 생활하게 된다.


방송을 마치고 늦은 시간 집에 왔지만 집 안의 불은 모두 꺼져 있고 사람의 기척은 없다. 예슬이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현정은 짜증내며 자리에도 없는 딸이 어디로 갔는지 불평한다. 하지만 딸에 대한 걱정은 그리 크지 않은 듯 보인다. 영훈은 현정의 불평에 대해 약간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섞인 표정을 보이지만 크게 대꾸하지는 않는다. 현정 역시도 사실 딸에 대한 걱정보다 딸이 어디가서 사고라도 쳐 두 부부의 명예에 해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더 크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옷으로 갈아입은 영훈은 자신의 서재에 앉아 낮에 도착한 서류들을 살펴보고 있다. 영훈은 현재 피아니스트이자 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조교 신효선이 그에게 새로 일할 페이지터너(악보 넘겨주는 사람) 후보 명단을 보내왔다. 페이지터너는 피아니스트 옆에서 악보를 넘겨주는 사람으로 연주를 앞두고, 혹은 연주 중 연주자와 가장 가까이 붙어서 일하게 되는 측근이다. 특별한 기술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연주를 들으며 눈으로 악보를 따라가야 하는 만큼 어느 정도의 음악적 지식과 실력을 요구하게 되는 일이다.


신효선 조교가 보내온 명단은 일종의 아르바이트생 이력서 묶음과 같은 것이다. 영훈은 페이지터너가 한 치의 실수도 해선 안되는 중요한 자리인 만큼 신중하게 고르기 시작했다. 그가 어떤 가정생활을 하건 일에 있어서는 프로다. 하지만 정작 페이지터너를 자신의 팀원으로 받아들이게 될 현정은 이력서를 고르는 그의 모습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들의 협주에서는 어떠한 마음의 교감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영훈과 현정은 오랜 시간 쌓아온 경력과 숙련된 연주실력으로 이 불통(不通)의 교감을 극복하고 있었다.




페이지터너 후보들의 이력을 살펴보던 영훈의 눈에 한 청년이 눈에 들어온다. 그의 이력은 서울대 음대생의 커리어 외에 거의 모든 면이 텅텅 비어있다. 하지만 영훈은 한참동안 그의 이력서를 들여다 봤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사진을 들여다 봤다. 정승현. 쌍커풀 없는 큰 눈과 조각처럼 오똑한 콧날, 증명사진임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잃은채 근엄하게 다문 입. 비교적 단정하게 차려입고 찍은 증명사진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빛은 퇴폐적이었으며 굳게 다문 입에서는 완강한 보수성이 느껴졌다.


영훈은 마치 매력적인 이성을 바라보듯 한참동안 승현의 사진을 쳐다봤다.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영훈에게 승현은 마치 일렉트로닉 하드코어 락음악과 같았다. 영훈은 지금 아주 강하게 승현을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53 그녀를 꼬시기 위한 노랫말 1 [1] 라인하르트백작 2012.08.14 1402
252 [소설] 신의 대화 SCV™ 2012.08.09 1650
251 [소설, 19禁] 페이지터너 - 7 [1] DaishiRomance 2012.08.02 10422
250 [소설] 페이지터너 - 6 [17] DaishiRomance 2012.07.19 3298
249 [소설, 19禁] 페이지터너 - 5 [1] DaishiRomance 2012.07.15 45949
248 [소설, 19禁] 페이지터너 - 4 [1] DaishiRomance 2012.07.15 46331
247 [소설] 페이지터너 - 3 [1] DaishiRomance 2012.07.15 3890
246 [소설] 페이지터너 - 2 DaishiRomance 2012.07.15 2496
» [소설] 페이지터너 - 1 [10] DaishiRomance 2012.07.15 3613
244 [엽문] 닥터 글렌 혹은 글렌다 (3) [1] 블루재즈 2012.07.11 1391
243 [엽문] 닥터 글렌 혹은 글렌다 (2) [1] 블루재즈 2012.07.11 1494
242 [엽문] 닥터 글렌 혹은 글렌다 (1) [1] 블루재즈 2012.07.11 1638
241 [만화] 프로메테우스 (featuring 고양이) [2] [15] 시소타기 2012.07.09 2463
240 [엽문] 그 어느 해 여름의 88 문방구 [11] 블루재즈 2012.07.08 2359
239 [엽문] 블레이드 커터 살인사건 [1] 블루재즈 2012.07.07 1727
238 [엽문] 화가 도리스의 눈물 [25] 블루재즈 2012.07.04 2427
237 [엽문] 늙지 않는 자의 슬픔 [1] 블루재즈 2012.06.27 1780
236 [엽문] 뱀파이어 뫼르쏘와의 인터뷰 [1] 블루재즈 2012.06.16 1843
235 [소설] 하비성 삼국지 5 관우와 두씨 [1] 블루재즈 2012.06.15 1977
234 [소설] 하비성 삼국지 4 손권의 옥새 [1] 블루재즈 2012.06.15 179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