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9禁] 페이지터너 - 5

2012.07.15 01:19

DaishiRomance 조회 수:45948

※ 경고 : 이 소설은 19세 미만이 읽는 것을 금합니다.

<<등장인물 추가>>


국동호 : 51세. 오스트리아 빈 음악원 졸업. 대전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영훈의 절친한 선배. 


선은혜 : 20세. 예슬의 학교 동아리친구. 승현과 같은 작곡과 재학 중.


공영탄 : 26세. 예슬의 학교 동아리 선배.






승현을 마주보고 앉은 영훈은 몇 초간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넋을 놓고 관찰을 이어가고 있었다. 




"저...선생님?"




뒤늦게 승현이 영훈에게 말을 건네며 영훈의 정신을 이성세계로 돌려보냈다. 




"우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네, 작곡과 2학년입니다"


"이 일 해본 적은 있나?"


"아뇨, 없습니다"


"아르바이트 개념이긴 하지만 딱히 큰 돈이 되지는 않을거야. 그래도 음악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테니 잘 따라주길 바래요"


"넵"




면접은 형식적이고 짧게 마쳤다. 애시당초 영훈은 승현을 페이지터너로 낙점한 상태였기에 간단한 몇마디 대화로 면접을 마칠 수 있었다. 




"점심 먹었어?"


"아뇨, 아직..."


"그럼 밥 먹으러 가야지... 효선아, 밥 먹으러 가자"




영훈과 승현, 효선은 점심을 먹기 위해 가까운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평소 외식을 즐기는 편이긴 하지만 공연팀에 새로운 식구가 합류한 만큼 좀 고급스런 식사를 하기로 했다.


세 사람은 원탁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을 고르며 각자 먹을 식사를 결정했다. 이 와중에도 영훈은 잠시 의아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평소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은 영훈은 학생들을 데리고 밥 먹을 일이 종종 있다. 비록 음대생들이 부유한 가정에서 공부한 편이 많다고 하지만 영훈이 사는 식사는 학생 입장에서는 매일 먹기 힘든 고급스러운 식사인 편이다. 그때마다 학생들은 상당수가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잘 먹겠다'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하지만 승현은 꽤 고급 음식점에 왔음에도 전혀 당황하는 기색없이 익숙하게 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영훈은 처음에는 "잘 사는 집 아들인가?"라고 생각했었다.




"아차... 이거 이탈리아 요리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내 마음대로 와버렸네.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다 잘 먹습니다"




간단한 대화가 오고 간 뒤 세 사람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 다음달에 대전에서 협연이 하나 있을거야. 일단 무대에 같이 서는 건 아니니 상관은 없는데, 연습하는 동안은 악보 좀 봐줘야 할 거니깐 미리 공부 좀 해줘요"




영훈은 승현에게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54-1악장의 악보를 건넸다. 왠만한 책 한 권에 버금가는 악보로 모든 오케스트라들의 연주파트가 적힌 지휘자용 악보였다. 


승현은 스파게티를 먹으며 악보를 받아들다가 잠시 가벼운 기침을 했다. 남들이 보면 놀라서 하는 기침으로 볼 수도 있었다. 




"내가 너무 큰일을 맡겼나? 좋은 곡이니 보면서 공부 좀 해봐요. 도움이 될거야"


"네"




승현은 대답이 끝나고 다시 스파게티를 먹기 시작했다. 영훈은 말이 끝나고 무의식적으로 스파게티를 먹는 승현을 쳐다봤다. 승현이 먹던 요리는 크림소스 펜네 파스타였다. 승현이 허겁지겁 먹는 편은 아니었지만 하얀 크림소스가 입가에 묻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필이면 하얀색 소스라서 그랬을까? 영훈은 그 모습에서 "저 입술에 자신의 성기를 넣고 싶다"는 퇴폐적이고 야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 이런 영훈의 머릿속을 보게 된다면 '맨날 섹스만 생각하는 변태'로 오해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영훈이 이토록 머리속에 섹스로 가득한 적은 얼마되지 않았다. 아마 효선에게 성욕을 느낀 이후 가장 강력하게 성욕이 감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그 상대가 남자라는 점이 영훈을 매우 당황하게 만들었다. 




영훈의 대전공연은 대전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인 선배의 권유로 이뤄진 것이다. 유학시절 취미로 락음악을 즐겨듣던 영훈은 런던의 유명한 클럽에 갔다가 이 선배를 만나게 됐다. 선배의 이름은 국동호. 오스트리아 빈 음악원에 다니던 동호는 꽤 일탈을 즐기던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다. 그래서 방학이면 유럽에서 꽤 자유분방한 도시를 찾아가 락음악과 마리화나에 취해 젊음을 낭비하곤 했다. 영훈도 이때 동호와 어울리며 잠시 일탈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 지나치게 쿨한 남자들은 타락도 금새 질리는 편인지 금새 음악공부에 매진해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누군가 보면 둘의 관계를 동성애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 유럽에 있던 시절 주변에 유럽게이친구들은 실제로 둘이 그 정도로 가까운 줄 알고 있었지만 영훈이 금새 현정과 연애를 시작하며 그런 논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영훈은 오후에 연구실에서 동호와 만나 협연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기로 했다. 




"애들 가르치는건 재밌냐?"


"형님도 해봐서 알잖아"


"난 요즘 애들 시시하더라. 영 놀 줄을 몰라. 음악 한다는 것들이 말야"


"뭐 클래식 음악하는 애들인데 뭐 있겠어?"


"임마, 음악에 귀천이 어딨냐? 모든 음악은 놀이의 수단인 것이야. 옛날에 귀족들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놀았고, 농민들은 민요를 들으면서 놀았던 것이지.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건 실용음악을 공부하건 음악은 놀 줄 아는 애들이 잘 하는거라고"


"애들은 클래식이 엄청난 지식인 줄 알아"


"감성이 없어, 감성이... 자기들이 연주하는 음악에 대한 감성을 이해하고 연주하는 애들이 얼마나 되겠어. 악보를 익히고 이해하고 연주하는 테크닉 정도나 배우는거지. 너도 인마 감성에 입각해서 애들을 가르쳐야 돼. 우리 유럽에서 놀듯이 말야"


"에이... 그렇다고 애들한테 대마초를 가르칠거야?"


"대마 좀 피우면 어때?"


"하하"




영훈은 사실 잘 웃지 않는 편이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할 때나 효선과 섹스를 할 때, 그가 웃을 일이 생겨도 그것은 단지 '훈남미소' 수준일 뿐이다. 이미 모든 면에서 중년의 기품이 묻어나는 영훈이었지만 동호와 만나면 그는 한낮 어린 동생이 될 뿐이었다. 이제는 '같이 늙어간다'는 표현을 써도 무방한 듯 보였지만 영훈에게 동호는 자신이 갖지 못한 어떤 점을 가진 존경의 대상 정도였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영훈은 동호만 만나면 유독 크게 웃는 편이다. 오랜 친구와 함께 있는 듯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댈 수 있는 대상과 함께 있는 듯 보였다. 


처음부터 영훈이 이랬던 것은 아니다. 예슬이 처음 태어났을때, 어린 예슬을 데리고 온 가족이 니스 해변으로 여행을 떠났을때, 셀 수도 없이 많은 순간에 영훈은 큰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영훈도 언제부터 소리내서 웃지 않게 됐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큰 웃음을 웃게 되면 영훈은 그 순간을 의식하게 된다. 뭔가 아주 소중한 순간을 마주하게 된 것 처럼...




"아참... 너 얼마전에 알바 짤랐잖아"


"새로 구했어"


"지난번 알바 귀여웠는데 말야"


"이 형이... 남자애한테 그 뭔소리야?"


"사내놈은 귀여워하면 안되냐?"


"다 큰 청년이여, 왜 그래?"


"암튼 뭐 새로 구했으니 됐네. 이쁘냐?"


"남자야..."


"남잔거 모르냐?"


"형 참... 그 버릇 못 고쳤수다"




동호는 재작년 18살 어린 재즈 피아니스트와 재혼했다. 벌써 세번째 결혼이다. 헐리우드 스타도 아닌데 신기할 정도로 결혼과 재혼을 잘 하는 편이다. 동호의 첫 결혼은 집안의 성화에 못 이겨 맞선을 본 지방 은행장의 딸이었다. 1년 반만에 이혼하고 후배 성악가와 재혼했지만 이 역시 4년만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후 10년이 넘게 싱글로 지내며 성별 가리지 않고 관계를 맺다가 최근에 다시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동호는 이번 결혼에 대해 "놀 거 다 놀고 결혼했으니 이젠 잘 지낼 수 있겠다"라며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음을 자신했다. 하지만 영훈은 동호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예슬은 오전 수업을 마치고 동아리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전날 클럽에서 새벽까지 놀고 온 덕분에 몹시 피곤했다. 그래도 우등생기질이 남아있는 덕분인지 학교 수업은 빠지지 않고 잘 듣는 편이다. 


낮잠을 잔 예슬은 잠시 옅은 꿈을 꾼다. 불이 꺼진 무대위에서 예슬은 무대의상을 입고 서 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최근 배운 곡인 오페라 헨델의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를 갑자기 불러야 겠다는 생각에 목소리를 내보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바로 그때 뒤에서 누군가 예슬의 몸을 감싼다. 예슬은 잠시 놀랐지만 이내 포근한 느낌에 빠져든다. 유럽풍 드레스를 바탕으로 한 성악무대의상은 어깨가 많이 드러난 편이다. 뒤에서 안은 사람은 예슬의 드러난 어깨에 키스를 한다. 놀라야 정상이지만 예슬은 신기할 정도로 놀라지 않는다. 그리고 뒤에서 안은 그의 입술을 지그시 느끼고 있다. 


잠시 후 이 낯선 손길이 예슬의 드레스 등에 있는 지퍼를 내린다. 지이익. 지퍼 내리는 소리마저 이 순간에는 에로틱하다. 드레스에 어느 정도 틈이 생기자 낯선 사람의 손길이 드레스 안으로 부드럽게 파고 들어온다. 그 손길은 이내 예슬의 가슴을 부드럽게 감싼다. 




"아..."




짧지만 깊은 신음소리가 예슬의 여린 입술을 타고 새어 나온다. 




"예슬아, 뭐해? 일어나?"


"응? 어..."




소파에서 잠든 예슬을 친구 은혜가 흔들어 깨웠다. 




"넌 뭔 꿈을 꾸길래 그렇게 야한 소리를 내냐?"


"내가?"


"응...야, 뭐 몽정이라도 하냐?"


"뭐? 이 년이 뭔 소리야?"


"이 녀어언?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이 년아?"


"에라이 샹년이?"


"뭐시?!!"




둘은 귀여운 욕을 주고 받으며 장난을 치고 있다. 




"있다가 영탄이 형이 술 사준다는데 같이 갈래?"


"술 말고 저녁 사달라 그래. 든든하게 먹고 클럽가게"


"너 참... 클럽 좋아한다"


"너도 갈래?"


"됐어... 그런데 나랑 안 맞아"


"너도 인마 영탄이 형이랑 그만 좀 어울려. 그 칙칙한 예비역 아저씨한테 뭐 얻어먹을게 있다고"


"요즘 남자선배들 약아서 밥도 잘 안 사줘. 영탄이형 만한 사람이 없어요"


"니 돈주고 사먹어라, 미친년아"


"지갑들 많은데 내가 왜? 흐흐"


"이런..."




은혜와 장난스런 대화를 주고 받던 예슬은 순간 딴 곳을 쳐다보며 넋을 잃었다. 예슬이 쳐다본 곳에는 지난번 클럽 주차장 골목에서 만난 남자가 백팩을 메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날 봤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복장이었지만 예슬은 한 눈에 그 남자가 그때 그 남자였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남자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줄은 몰랐다. 복장이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지만 예슬이 이 남자를 쳐다보며 느끼는 감정은 똑같은 듯 보인다. 




"야... 야!"




예슬은 은혜가 여러번 부르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어? ...어"


"너 뭐보냐?"


"응? 아냐..."


"아... 승현이 보냐?"


"승...현?"


"어...나랑 같은 과잖아"


"음대였어?"


"본 적 없냐?"


"응"


"왜? 관심있어?"


"얘는..."




평범한 여성들의 대화처럼 승현은 괜찮은 대화꺼리가 되어 예슬과 은혜의 대화 주제가 되어있었다. 예슬은 대화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단 두 글자를 계속 되새기며 묘한 설레임에 사로잡혀 있었다. '승현'. 사랑에 설레이기 쉽고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스무살. 예슬은 '의도한 타락'에서 탈출하는 듯한 설레임을 느끼고 있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53 그녀를 꼬시기 위한 노랫말 1 [1] 라인하르트백작 2012.08.14 1402
252 [소설] 신의 대화 SCV™ 2012.08.09 1649
251 [소설, 19禁] 페이지터너 - 7 [1] DaishiRomance 2012.08.02 10421
250 [소설] 페이지터너 - 6 [17] DaishiRomance 2012.07.19 3298
» [소설, 19禁] 페이지터너 - 5 [1] DaishiRomance 2012.07.15 45948
248 [소설, 19禁] 페이지터너 - 4 [1] DaishiRomance 2012.07.15 46330
247 [소설] 페이지터너 - 3 [1] DaishiRomance 2012.07.15 3890
246 [소설] 페이지터너 - 2 DaishiRomance 2012.07.15 2496
245 [소설] 페이지터너 - 1 [10] DaishiRomance 2012.07.15 3613
244 [엽문] 닥터 글렌 혹은 글렌다 (3) [1] 블루재즈 2012.07.11 1391
243 [엽문] 닥터 글렌 혹은 글렌다 (2) [1] 블루재즈 2012.07.11 1494
242 [엽문] 닥터 글렌 혹은 글렌다 (1) [1] 블루재즈 2012.07.11 1638
241 [만화] 프로메테우스 (featuring 고양이) [2] [15] 시소타기 2012.07.09 2463
240 [엽문] 그 어느 해 여름의 88 문방구 [11] 블루재즈 2012.07.08 2353
239 [엽문] 블레이드 커터 살인사건 [1] 블루재즈 2012.07.07 1727
238 [엽문] 화가 도리스의 눈물 [25] 블루재즈 2012.07.04 2427
237 [엽문] 늙지 않는 자의 슬픔 [1] 블루재즈 2012.06.27 1780
236 [엽문] 뱀파이어 뫼르쏘와의 인터뷰 [1] 블루재즈 2012.06.16 1843
235 [소설] 하비성 삼국지 5 관우와 두씨 [1] 블루재즈 2012.06.15 1977
234 [소설] 하비성 삼국지 4 손권의 옥새 [1] 블루재즈 2012.06.15 179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