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페이지터너 - 6

2012.07.19 12:19

DaishiRomance 조회 수:3298

<<등장인물 추가>>


송종운 : 21세. 기악과 호른전공. 승현의 친구.




은혜는 예슬이 한성이라는 아주 괜찮은 남자친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성은 종종 예슬이 수업 마치는 시간에 맞춰서 학교로 태우러 오곤 했었다. 제 아무리 부자학생들이 모인 음대라지만 눈부신 은색 벤틀리가 미끄러지듯 학교로 들어와 같은 과 여학생을 태우고 가는 모습을 본다면 이슈가 되기에는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현에게 관심을 보인 예슬이 은혜는 조금 얄미웠다. 은혜는 속으로 "세상 킹카들 지가 다 데려갈건가?"라는 시기와 질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은혜는 예슬에게 어쩔 수 없다는 듯 승현에 대해 아는대로 털어놓기 시작했다.




"작곡과 2학년이라는데 친한 애들이 거의 없어. 그래서 뭐하던 애인지, 어디 사는지, 심지어 어느 학교 졸업했는지도 몰라"


"우리 학교 학생이긴 한거야?"


"학생증을 들고 다니고 수업도 들어오니 맞긴 하겠지?... 아, 승현이랑 어울려 다니는 애가 하나 있긴 한데..."


"누군데?"




은혜는 기악과의 송종운을 언급했다. 종운은 가정형편이 썩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빚을 내 음대에 겨우 입학할 수 있었다. 호른이라는 독특한 악기를 전공하지만 뚱뚱한 체격과 소심한 성격 탓에 필요할 때 말고는 친구와 선후배들에게 별 인기가 없었다. 


예슬 역시 종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종운이 사실상 음대 대표적인 왕따였기 때문에 예슬이 모를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종운에게 친구가 있다는 것이 예슬에게는 좀 의외였다. 예슬은 한동안 한성과 어울린다고 학교에 안 나온 사이 별 일이 다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너 원래 이렇게 남자 좋아했니?"




은혜는 여러가지 감정을 담아 최대한 억누르고 예슬에게 물었다. 




"아니, 그런건 아닌데... 그냥... 알고 싶은 사람이야"




예슬은 의미심장한 대답과 함께 옅은 미소를 띄었다.






며칠 뒤 캠퍼스에는 봄의 절정을 알리는 비가 내렸다. 승현은 수업을 마치고 학교건물을 나서다가 미쳐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는지 잠시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독자들은 "CF의 한 장면을 의식한 유치한 설정 아니냐"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이미 승현처럼 생긴 사람에게는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두 '화보'였다. 




"스... 승현아!"




여느 멜로드라마처럼 청순한 여학생이 부를 수도 있었지만 승현을 부른 사람은 친구 종운이었다. 




"어! 끝났냐?"


"응, 어... 어디 갈거야?"


"나? 어 만날 사람이 있어"


"누...누구?"


"있어... 나 먼저 갈게, 내일 봐"




종운의 관심에 승현은 약간 귀찮다는 듯 빗속을 헤치고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승현을 종운은 떠나간 연인 바라보듯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선배"


"응?"




예슬이 종운에게 평소보다 조금 애교섞인 말투로 말을 걸어왔다. 사실 예슬 입장에서는 그냥 친절하게 말을 걸었을 뿐이지만 많은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인 예슬이 그렇게 말을 건다면 누구라도 '애교'로 받아들이기 충분했다. 예슬은 학교 전체에서 이름 난 퀸카였기 때문에 종운 역시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말을 걸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치 못했다. 종운은 상당히 감동한 듯 격양된 말투로 예슬에게 답했다.




"뭐해요, 선배?"


"아...수...수업 마치고 집에 갈려고..."


"약속 없구나? 그럼 저랑 커피 한 잔 마실래요?"


"커...커피? 나...돈 없는데?"


"괜찮아요, 제가 살게요"




종운은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지만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일단 예슬과 가까운 커피숍으로 가기로 했다. 종운은 그 와중 갑자기 귀가 밝아진 것인지 주변 학생들이 수근대는 소리를 들었다. 단지 커피 한 잔 마실 뿐인데 종운은 뭔가 상당히 뿌듯했다.






예슬과 종운은 근처 스타벅스로 향했다. 종운은 스타벅스에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다. 사실 커피라면 자판기 밀크커피 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다. 종운은 일단 예슬이 사주는 커피를 마시게 된 거 최대한 그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커피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하고 메뉴를 살펴봤다. 마침 종운의 눈에 에스프레소가 눈에 띄었다. 그게 무슨 커피인지 몰랐지만 가장 저렴한 가격 때문에 주문하게 됐다. 




"선배, 에스프레소 마셔요?"


"어...어..."


"샷 추가 해드려요?"


"어?...어..."




종운은 솔직히 샷이 뭔지도 모르는데 일단 추가하기로 했다. 


어쨌거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종운은 학교 최고 퀸카 예슬과 둘이 스타벅스에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게 됐다. 손수 커피까지 챙겨온 예슬은 밝은 미소로 커피 서빙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선배꺼는 특별히 더블샷 추가했어요. 근데 선배 에스프레소 좋아하는 줄 몰랐네요. 보기하고 다르다"


"어?...어... 좋아해"




종운은 에스프레소를 좋아한다고는 말했지만 막상 잔을 보자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정도 잔 사이즈는 중국집에서 짬뽕국물에 고량주 마실 때나 본 크기였다. 이런 커피가 그 가격이라는게 종운에게는 매우 충격적이긴 하지만 예슬이 눈 앞에 앉아있는 상황에서 도저히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억지로 잘 마시겠다는 웃음을 지으며 에스프레소를 맛 봤다. 


한 모금 입 안으로 넣자 종운은 머리카락이 쭈뼛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어릴적 잘못먹은 보약도 이보다 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종운은 바로 눈 앞에 앉아있는 미녀 때문에 도저히 그 쓴 맛을 표현할 수 없었다. 사람이 지나치게 쓴 맛을 억지로 참으려다 보면 표정이 웃겨질 때가 있다. 




"풉!... 죄... 죄송해요 선배"


"아냐...아냐"


"아, 그나저나 선배, 저 물어볼게 있는....풉!"




에스프레소의 쓴 맛 때문에 괴로워하는 종운만큼이나 웃음을 억지로 참아야 하는 예슬도 괴로운 건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예슬은 지금 이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어디 올리고 싶은 생각 뿐이다. 억지로 겨우 웃음을 참고 예슬은 겨우 본론을 꺼내기 시작한다. 




"선배, 승현선배랑 친해요?"


"승현이?"


"네..."


"어... 친하지"


"어떻게 친해졌어요?"




승현과 종운이 친해진 것은 순전히 승현이 먼저 접근해서였다. 어느날 학교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종운에게 승현이 같이 접근해 밥을 먹으면서 친해지기 시작했다. 종운은 처음에는 승현이 마냥 고마워서 같이 밥도 먹고 저녁에는 술도 마시며 어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승현의 과제를 대신 해주거나 대리출석, 각종 심부름 등을 도맡아했다. 종운의 이야기를 듣는 예슬은 속으로 "친구가 아니라 사실상 꼬봉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예슬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 꼬봉을 잘만 활용하면 승현을 꼬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현정은 승현과 보낸 그날을 빠르게 잊을려고 했다. 하지만 종종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날의 기억이 찾아오고 있었다. 문제는 그 기억이 "사고쳤다"는 불안감이 아니라 기분 좋은 설레임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현정은 가끔, 잃어버린 소녀를 찾은 듯 했다. 


현정은 가끔 호스트바에 가곤 했지만 절대 혼자서 간 적은 없었다. 체면 탓도 있겠지만 어쩐지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서 혼자 갈 수는 없었다. J&B의 최현우 실장은 제발 좀 와달라고 가끔 문자를 보낸다. 다행히 남편하고 사이가 안 좋기 때문에 문자는 절대 들킬 일이 없다. 최실장에게 현정은 사실상 '단골'이었다. 


연습실에서 연습에 한창이던 현정은 갑자기 승현이 보고 싶어졌다. 딸보다 1살 많은 젊은 남자에게 무슨 호감을 느낀건지 모르겠지만 현정은 그냥 "보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친구인 혜숙은 연하의 남자친구와 홍콩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쉬운대로 미자와 둘이라도 갈려고 미자에게 전화를 걸려는데 핸드폰이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본 적 없는 메모 어플이 깔려있었다. 스마트폰을 쓰긴 했지만 기껏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을 쓰는게 전부인 현정에게는 생전 본 적 없는 어플이었다. 


어플을 열어보니 누군가 남긴 메모가 있었다. 메모를 읽어보니 승현이 남긴 메모였다. 




'예쁜 누나, 나야 귀여운 동생! 


우리 다시 보고 싶으면 18일 저녁에 바에 한 번 놀러와요.


기다릴게!'




현정은 급하게 날짜를 확인했다. 오늘이 18일이었다. 현정은 난생 처음으로 혼자 자발적으로 바에 향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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