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옆집 남자.

2012.02.26 15:48

듀프 조회 수:17512

나는 일주일 내내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옆집 사람들과 거의 마두칠 일이 없었다. 복도식으로 된 아파트에서도 첫째집이였기 때문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 고작이었다. 일때문이 아니라는 이유로 경비 아저씨의 얼굴을 기억 못하는 나였기 때문에, 엘리베이터에서 잠깐씩 스치는 그 얼굴들을 기억하기가 만무리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집으로 돌아와 씼고나서, TV를 보며 맥주한 캔을 들이키려고 할 때 쯤 벨소리가 울렸다.

 

"띵 동"

 

시계를 쳐다보니 열한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누가 찾아왔을까? 문은 열지않고, 인터폰으로 누군지 확인해 보니 어떤 남자였다. 누구냐고 물어봤다. 옆집 사람이라고 했다. 이 시간에 왜? 문을 열자 큰 키의 남자가 서있었다. 자신은 오늘 이사온 옆집 사람이라고 소개하고는 밤 늦게 퇴근한다고 들어서 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선물이라며 떡 봉지를 내밀었다. 원래는 접시에 답아서 드리는게 맞기는 한데, 아무래도 늦게 퇴근하시는 것같아 접시 돌려주시기바 번거로움을 감안해서 이렇게 드린다고 웃음을 지으며 설명하였다. 인상도 그리 나쁘지 않은듯했고, 웃으며 말하는 목소리도 듣기 괜찮았기에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이사와 계시는 동안 좋은 시간 보내시라고 인사하였다. 그리고 떡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며 그날 밤을 보내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그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갔다. 일주일 내내 늦게까지 일하는 나로써는 이웃이 누구인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평화는 그 옆집 남자에 의해서 깨지고 말았다. 막 잠이 들락말락할 무렵에 문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던 것이었다. 무시하려 했지만, 그 소리는 지속적으로 내 귀를 후벼 팠고, 나는 결국 일어나서 무슨 일인지 확인 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 목소리었다. 그 옆집 남자 집 앞에서 여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옆집 사람은 집에 있는지 없는지, 기척이 없었고, 여자 혼자서 주변 사람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소리를 질러대며 온 동네 사람들의 잠을 깨우고있었다. 결국은 경비원에게 끌려나갔지만, 잊을만 하면 다시 찾아오고 잊을만 하면 다시 찾아오고, 끊임없이 찾아와 동네 사람들을 깨우곤 하였다. 특이한 점은 이따금 다른 여자가 찾아올 때가 있다는것이었다. 한둘이 아니라는 이야기었다. 여자 관계가 복잡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띵 동"

 

벨이 울렸다. 세벽 두시었다. 짜증이 났다. 대체 이 시간에 누가. 밖을 확인해보니 옆집 남자였다.

 

"아니 지금이 몇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남자는 나를 밀치고 집안으로 들어와 문을 걸어 잡궜다. 그리고 내 입을 막으며 조용이하라는 손짓을 하였다. 그의 눈은 불안에 떨고 있어보였고, 애써 가뿐 숨을 소리라도 날까 참아보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인터폰을 통해서 밖을 살펴보았다. 여자가 지나갔다 가끔 찾아와 소란을 피우던 여자. 그리고 그 여자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져 있었다. 설마 칼?

 

난 그를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저 여자가.. 나를 죽인데요..."

 

예전에 잠깐 만났던 사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어쩌닥 헤어지게 되었는데, 스토커 처럼 자기를 계속 따라다니고 헤어지면 죽는다고 협박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마지막이라고  애원하길래 만나줬더니 자기를 죽이려고 칼을 들고 쫓아오더라는 얘기였다. 믿기지는 않지만, 자신을 도와주려던 행인을 두사람이나 찌르고 왔다고 했다. 가까쓰로 집까지 도망왔는데, 아무래도 자기를 진짜 죽일 것 같다고 도와달라고 하였다.

 

난 우선 119에 신고하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이건 경찰한테전화해야되나? 생각을 바꿔서 전화를 하려는데 경찰전화가 생각이 안났다. 그래서 그냥 119에 걸었다. 대충 상황을 듣더니 112에 신고하는 편이 났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그 찔렸다는 행인들의 위치를 알려달라고 하였는데, 워낙에 남자가 충격을 받은 듯 해서 대충 동네 근처를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한 삼십분정도가 지났을까? 경찰은 오지 않았고, 밖은 조용하기만 하였다. 그렇다고 칼들었다는 여자가 갔는지 확인하려고 문을 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내가 왜 새벽 세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에 잠도 못자고 이래야 되는 것인가. 옆집 남자는 앉은채로 잠들어있었다. 세상편하고 자는군. 누군 잠도 못자고 이러고 있는데, 그 순간. 다시 벨이 울렸다.

 

"띵 동"

 

경찰일거라는 생각에 문을 열었다. 그 여자였다. 젠장. 순간적으로 여자의 손을 쳐다보았다. 빈손이었다. 그 여자는 술을 먹었는제 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나를 노려보듯 쳐다 보았다.

 

"아저씨. 옆집 사는 남자 못 봤어요?"
"아가씨 지금 몇시에요? "

"옆집 사는 남자 봤냐구요!"

"옆집 사는 사람을 왜 여기서 찾아요. 못봤어요"

 

그리고 문을 닫으려고 하였다. 경찰을 기다리느니 아무래도 경비아저씨한테 말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칼들었을지도 모르는 여자를 상대로 오래 끄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여자는 문을 닫으려는 나를 밀치면서 말했다.

 

"근데 왜 아직까지 안자고 있어요?"

"내가 아직까지 자든 안자든 무슨상관이에요? 동네 사람 다 깨우지 말고 빨리 가세요"

 

난 일부러 다른 집 사람도 들으라고 소리를 크게 질렀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으면 허튼짓은 못할거라고 생각되었다. 옷뒤나 주머니에 칼이라도 숨겨놨을까봐 내심 걱정이 되었던 것도 있었다.

 

"아까 인수씨 들어올 때까지만해도 불꺼진 집이었는데, 인수씨 들어오고나서 계속 켜놓고 계시데요? 혹시 인수씨 여기 왓어요?"

 

아... 아까부터 계속 불을 켜놨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건.. 일때문에 그런거에요. 아가씨. 지금 시간에 몇신줄알아요? 빨리 나가세요. 경찰 부르기 전에."

 

말을 마치고 문을 닫으려는 찰나, 그 여자는 나를 온몸을 던져서 밀어내더니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옆집 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방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난 순간 당황했지만 어차피 둘사이 문제고 둘이 해결해야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냥 빠져있기로 했다. 설마 칼이라도 들고 있을까... 하고 생각하던 찰나에 여자의 바지 뒤에 꽂혀있는 큼직한 칼이 보였다. 미친년. 진짜 식칼을 들고왔어.

 

난 순간 겁이 났다. 숨이 가빠와졌다. 어떻게 해야되지? 경찰은 코빼도 안보이고, 저 미친년은 남자를 죽일지도 모르는데, 그렇다고 칼든 년을 손을 막을수는 없잖아. 난 그대로 식탁에 있는 의자를 집어 들었다. 그 미친년이 보이면 의자라도 던질 생각이었다. 그리고 방으로 걸어갔다. 혹시나 그 미친년이 칼을 집어 던진질도 몰랐다. 그동안 새벽에 사람들을 깨우던 똘끼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방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던 그 순간.

 

방에는 죽어있는 남자와 죽어있는 여자가 있었다. 남자는 가슴에 큼지막한 식칼이 꽂혀있었고, 여자는 머리 한가운데 송곳이 박혀 있었다. 난 한동안 그 자리에서 서서 어떻게 해야되나.. 멍하니 죽어있는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여기까지가 내가 경찰에 진술한 상황이다. 물론,

그 남자와 여자가 짜증 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죽는 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죽으나마나 상관없었다. 다만 왜 그게 하필 내 집이냐는 것이다. 왜 그렇게 남의 일상을 깨뜨리면서 까지 싸워야 했던 것일까? 남의 집에서? 하루종일 일하다가 겨우 집에 들어와서 몇시간 자는 남자를 괴롭히면서? 어쩌면 그 죄는 죽음으로 갚아야 할 정도로 큰 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둘이 죽게 된데에 나의 잘못은 없는 것일까? 글쎄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하지만. 그 둘은 결코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자기들 스스로가 자신을 죽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그건 일종의 자살이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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