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한 친구이자 유명한 사냥꾼인 버틀러로부터의 편지가 도착했다.

밀랍으로 인장 처리된 편지 봉투를 열어보니 스튜어트 가문이 대대로 사용하는 최고급 편지지 위에 ‘S’자를 독특하게 휘갈겨 쓴 버틀러의 필체가 보인다.

편지의 내용인즉슨, 몇 해 전부터 그가 얘기해왔었던 사설(私設) 박물관이 완성되었으니 편지를 보는 즉시 박물관으로 와달라는, 일종의 초대장이었다.

 

신대륙에선 한 손에 꼽힐 정도로의 명문가 자제이자 대영제국과의 독립전쟁에서 군수품 조달을 담당하며 부(富)를 늘린 갑부의 후손인 버틀러는 그 시절 부잣집 도련님들이 으레 그러하듯 자신이 사냥한 동물을 박제로 만들어 놓는 취미가 있었다. 배가 닿을 수 있는 곳, 두 발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면 그와 그가 아끼는 윈체스터 엽총이 다녀갔다.

 

갓 알려진 남극 대륙도, 다윈의 논문으로 이미 잘 알려진 갈라파고스 섬도 버틀러와 그의 엽총이 다녀간 곳으로 버틀러는 남극의 펭귄, 갈라파고스의 붉은 이구아나 등을 사냥한 뒤 박제로 만들어 자신의 저택으로 가져왔다. 그렇게 잡은 사냥감을 박제로 만드는 그 과정은 성스럽기까지 한 것이었다. 버틀러가 데리고 다니는 하인들은 버틀러가 사냥한 사냥감을 아주 조심스럽게 다뤘다.

 

하인 중 한 명은 인도식 터번을 두르고 있었는데 정밀한 박제를 만들기 위해 인도에서 데려온 전문가였다.

‘샤미르’라고 불리는 인도인 하인은 대대로 사냥과 박제를 전문으로 하는 가문의 후손으로 이 일을 위해 버틀러가 특별히 채용한 인물이었다. 박제를 제작하는 샤미르는 마치 죽은 짐승의 영혼(靈魂)을 달래기라도 하듯 구슬픈 노래를 불렀다. 천 년 전부터 전래(傳來)되는 가문의 노래, 사냥의 노래였다.

육체에서 떠나는 영(靈)을 달래는 듯했던 노래는 어느새 음조(音調)를 달리하여 이승과 저승 사이를 떠도는 영(靈)을 박제가 된 몸뚱아리로 가둬 넣는 듯한 음조로 바뀌어갔다. 그렇게 샤미르의 손을 거쳐 박제가 된 짐승들은 마치 살아있는 상태 그대로인 듯 생동감 있게 보였다.

 

버틀러는 하인들이 사냥감을 박제를 만드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사냥을 갈 때면 으레 챙겨가는 이동식 목제 의자에 앉아 늘 애용하는 윈체스터 엽총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는 한 손엔 노트, 한 손엔 펜을 들고 박제 과정을 적어나갔다. 때론 그림으로 때론 글로 그 과정은 필사(筆寫)되었다.

흐느끼듯 구슬퍼지다가 처절한 절규를 거쳐 체념한 듯 담담해지는, 박제 전문가라기보다 영매(靈媒)에 가까워 보이기까지 한 샤미르의 노래가 절정으로 향할 때면 버틀러의 눈이 유난히 반짝거렸던 것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자신이 사냥할 수 있는 모든 사냥감을 한 곳에 전시해놓고 싶다는 버틀러의 꿈은 그가 소유하고 있는 넓은 대저택 안에 하나하나 이루어져갔다.

저택 안이면 으레 있을 유서 깊은 벽난로도 고급스런 서재도 품위 있는 책들로 가득했던 책장도 하나하나 남김없이 사라져갔다.

저택의 공간을 구분하고 있는 벽과 벽은 허물어져갔다. 하나의 큰 공간으로 남은 저택 안엔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킬 정도로 많은 동물들의 박제가 배치되었다.

 

몇 달 전, 아직은 미완성이었던 그의 '박물관'에 내가 방문했을 때에 본 것은, 공중을 나는 날짐승은 공중에 매달려 있고 바닥에 위치한 들짐승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생생히 박제가 되어 전시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새들은 금방이라도 공중에서 내려와 쪼아댈 것 같고 맹수(猛獸)는 금세라도 물며 할퀴어댈 것 같은 야생(野生)의 모습이 버틀러의 대저택 안에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었다. 어느 종(種) 하나하나 희귀하지 않은 종(種)이 없고 어느 짐승 하나하나 생생하지 않은 것이 없는, 하나 같이 명품(名品) 그 자체인 박제들이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 박제된 짐승들이 빼곡히 진열된 가운데 가장 눈에 잘 띄는 한 가운데 공간이 휑하니 비어 있다는 것이었다. 저택 안에 전시된 모든 박제들은 그 빈 공간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여기 이 빈 공간엔 무엇을 전시할 건가?"

 

"거기엔, 나만이 사냥할 수 있는 특별한 짐승을 박제로 만들어 전시해놓을 거라네. 내 사냥 인생, 최고 최후의 사냥감이지."

 

유명한 사냥꾼이자 내 절친한 친구인 버틀러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사냥감인 짐승에게 접근할 때 몸에 밴 담배 냄새로 인해 사냥꾼의 위치가 들킬까봐 남들이 권하는 담배도 사양하며 '사냥꾼'으로서의 용의주도함을 꾀하던 그가 이번에는 손수 담배에 불을 붙여 담배 연기를 길게 빨아들인다.

 

후 ~ 그날 버틀러가 한숨을 내쉴 듯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던 모습이 지금도 내 눈 앞에 남아 있는 듯하다.

그날의 만남을 끝으로 나는 런던으로 떠났다. 런던을 오갈 때면 으레 머물던 베이커 가(街)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는, 신대륙의 부자들이 좋아할만한 고미술품을 찾기 위해 런던의 화랑(畵廊)을 한동안 돌아다녔다. 운 좋게 렘브란트의 그림 몇 점을 구입한 뒤 숙소로 돌아오니 영국식 억양이 두드러지는 나이 지긋한 숙소 관리인이 편지가 한 통 왔노라며 나에게 전해준다.

 

버틀러가 전보(電報)도 아닌, 밀봉까지 한 편지를 보낸 것을 보면 어지간히 중요한 일인가 싶기도 한데다가 렘브란트 그림 몇 점이면 명화(名畵)를 구하러 런던까지 온 목적은 다했다 싶어 서둘러서 짐을 꾸렸다.

 

그의 저택에 도착하니 집사(執事) 노릇을 하던 영감이 안내를 한다.

그 옛날에는 빅토리아 풍의 크고 아름다운 대저택이었으나 지금은 박물관으로 변해버린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입구에서부터 소름끼치도록 생생한 박제들이 전시되어 있다. 남극의 펭귄, 뉴질랜드의 키위새, 갈라파고스의 붉은 거북이, 벵갈의 큰 호랑이 등등 각종 짐승들의 박제(剝製)가 저마다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영감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비어 있었던 중앙의 전시 공간으로 나를 안내한다.

 

내가 그 곳에서 본 것은, 이동식 목제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윈체스터 엽총을 올려놓고 한 손을 방아쇠에 걸쳐놓은 버틀러의 모습이었다.

그동안 늘 봐왔던 익숙한 모습이었기에 반갑게 인사말을 건넨 나는 몇 번이나 불러도 대답 없는, 버틀러의 돌처럼 굳어 있는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멍하니 서있는 내게, 영감이 울먹거리는 소리로 말한다.

 

“도련님의 소원이셨습니다. 당신이 사냥할 수 있는 최고, 최후의 위대한 짐승을 직접 사냥해서 바로 여기에 박제로 만들어 진열시켜 놓으려고 하셨지요.”

 

우리 시대 최고의 사냥꾼이었던 버틀러는 스스로를 사냥하여 박제로 만들어 전시해놓음으로써 이 거대한 박물관에 재현된 야생(野生)의 세계를 완성시켰다.

대저택 속, 그가 만든 이 박물관에서 버틀러는 오랫동안 자신이 사냥해 온 사냥감들과 함께 영면(永眠)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박제들로 이루어진 야생(野生)의 세계에서 버틀러는 영원한 ‘사냥꾼’으로 남게 되었다.

그 오랜 사냥의 행로 끝에 그 자신마저 ‘사냥’한, 진정한 ‘사냥꾼’으로 영원토록 남아있게 된 것이다.

 

어디선가 샤미르의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흐느끼듯 구슬퍼지다가 처절한 절규를 거쳐 체념한 듯 담담해지는 영매(靈媒)의 노래가 이어졌다.

바로 그때였다. 박제되어 있던 버틀러의 유리 눈동자가 유난히 생생하게 반짝인 것은.

그 눈빛은, 남들이 사냥하지 못하는 짐승을 자신 혼자 잡았을 때 자신이 사냥한 그 유일무이한 사냥감을 한없이 자랑스러워하는, 행복한 사냥꾼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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