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미시시피 강변의 FRENDO

2012.06.11 22:07

블루재즈 조회 수:1486

 

남부의 전통이 아직 남아 있는 미국 앨라배마 주, 백인 소년 톰(Tom)과 흑인 혼혈 소년 아서(Arthur)는 그 옛날 마크 트웨인의 소설 속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을 떠올릴 정도로 친한 관계로, 둘의 놀이터는 소설 속 그들처럼 미시시피 주(州)와 앨라배마 주(州)를 가르는 미시시피 강변이었다. 그 또래 꼬마들이 으레 그렇듯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톰은, 아버지가 아끼는 SONY 캠코더를 오늘 몰래 들고 나왔다. 지난 목요일 낮, 벌써 어른이라도 된 듯 외계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덩치 큰 패거리들에게 ‘코흘리개 바보’라고 손가락질을 당했던 톰은, 캠코더를 들고 돌아다니며 하늘을 나는 UFO를 보란 듯이 촬영해보려고 하지만 반나절 종일 무거운 캠코더를 들고 돌아다녀도 그럴듯한 UFO의 모습은 당최 발견하지 못하였다. 소년의 작은 어깨는 축 늘어지고 덩치 큰 놈들에게 맞아 생긴 볼의 멍 자국은 더욱 더 시퍼렇게 보인다.

 

그런 톰을 잠자코 따라다니던 아서가 자신이 살고 있는 숲 속 통나무집으로 톰을 안내한다.

그 옛날 목화농장에서 도망치다가 숲에서 길을 잃고 죽은 흑인 노예의 혼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돌아 다 큰 어른들조차 접근조차 하지 않던 으슥한 곳에 아서가 혼자 사는 집이 있다. 아버지는 죽고 생모는 일본에 있다고 했던가. 공부 같은 것 하기 싫어서 혼자 산다는 아서는 통나무집 바닥을 주섬주섬 훑기 시작하더니 침대 구실을 하는 넓적한 나무판 아래에서 은박접시 같은 것을 꺼낸다. 작은 손을 움직여 은박접시를 이리 접고 저리 접은 뒤 송곳으로 여기저기 구멍까지 낸다. 원반형 비행접시를 제법 능숙한 손놀림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게 만든 비행접시를 한 손에 쥐고 공중으로 던지자 몇 초인지 몇 십 초인지 바람을 타고 제법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아서가 비행접시를 공중으로 던지고 톰이 캠코더를 들고 그것을 촬영한다. 햇빛을 받은 은박접시 비행체는 번쩍번쩍 빛을 내며 마치 진짜 UFO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 캠코더로 촬영한 영상의 뒷부분에는 아서가 공중을 나는 UFO를 보고 놀란 척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아서는, UFO를 처음 본 지구인이라면 나올만한 반응을 자연스러우면서도 우스꽝스럽게 연기하였다. 모든 것이 그럴 듯 했다. 톰이 아서의 연기를 보곤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그리고 그날 밤 톰은 유튜브 계정으로 (가짜) UFO 동영상을 올렸고, 톰이 올린 UFO 동영상은 생각보다 높은 조회수를 빠르게 기록하였다.

 

문제는, 얼마지 않아 아서(Arthur)가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톰은 아서를 찾아 나서지만 아서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인근 경찰서로 찾아가 실종신고를 해보지만 '아서'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아서? 그게 누구지?”

“아서 레몬. 미시시피 강 근처에 혼자 사는 애 있었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없는데. 그런 사람은.”

“다시 찾아보세요. 잭 레몬의 ‘Lemmon’이 아니라면 레몬의 ‘Lemon’일 거에요.”

“Lemon?”

“아서가 학교를 안다녀서 철자를 잘 모르거든요. ‘friend’를 ‘frendo’라고 할 정도였어요.”

“Arthur Lemon? 내가 알아보마. 그런데 너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니니?”

 

며칠 전 올렸던 유튜브의 동영상을 찾아보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영상은 삭제되고 계정은 말소되어 있다. 없던 영상, 없던 인물이 되어 있는 것이다.

사라지기 며칠 전 아서가 알려줬던 전화번호로, 아서를 버리고 사라졌었다는 아서의 생모에게 연락을 해보지만 일본 오사카에 살고 있는 그녀는, 서툰 영어로 ‘아서’라는 사람은 모른다고 말한다. 자신이 일본인임을 강조하며 지금 도대체 몇 신줄 알고 전화했냐고 화를 내는 그녀와의 국제 통화는 몇 분 이어지지 못하고 끊기고 말았다.

 

톰의 발걸음은, 아서의 흔적이 남아 있는 미시시피 강변으로 향했다.

아서와 함께 키를 쟀던 나무를 지나 아서와 함께 올라갔던 비밀스런 통나무집을 찾아가보는데 방재복(防災服)을 입은 5명의 남자들이 주위 나무를 베고 아서의 통나무집을 철거하고 있었다. 어느새 건물의 외벽이 제거되었다. 톰이 있는 곳에서도 그들의 행동이 똑똑히 보였다. 그들은 허리를 굽혀 아서가 거주했던 무허가 통나무집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고 있다. 그 중 상관(上官)으로 여겨지는 인물이 통나무집 바닥에서 조심스럽게 무엇인가를 집어 든다.

지구의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로스웰’ 이후 다시 보게 되는 외계의 금속이었다.

며칠 전 아서가 (가짜) UFO를 만들고 남은 은박접시  조각들을 꼼꼼히 줍기 시작한 그들은 작은 봉지 속에 그것들을, 아주 귀중한 물건이라도 다루는 듯 조심스레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 작업이 완료되자 방재복을 입은 사람들이 아서의 작은 통나무집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불길이 활활 치솟는다. 그 불길이 뜨겁지도 않은지 방재복(防災服)을 착용한 남자들은 묵묵히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그들'의 바지 아랫단 밑으로 가래처럼 진득진득한 점액질들이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방재복(防災服)의 내열 한계를 넘어섰는지 겉에 두른 옷들이 하나둘 불에 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다 타버렸을 때 톰의 눈에 보이는 것은, 1947년 ‘로스웰’ 인근 목장에 나타난 것과 같은, 인류와 같은 종으로 분류하기 힘들어 보이는 괴생명체들이었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의 하얀 빛이 그 괴생명체들을 감싸더니 몇 초 후 그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은 타고 남은 하얀 재 뿐이었다.

 

촬영이 있었던 그날, 아서(Arthur)는 톰(Tom)에게 물었었다.

외계인이 정말 보고 싶냐고? UFO를 정말 보고 싶냐고? 그리고 아서는 덧붙였다.

외계인은 지구인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할 것이라고. 만약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것 같다면 바로 사라져야만 할 것이라고.

서투르고 철없는 몇 몇의 꼬마 외계인 때문에 지구인들에게 종종 목격되긴 하지만 외계인들은 사실 숨어사는 것을 좋아한다고.

“외계인을 보고 싶어! 만나고 싶다니까!”

칭얼거리는 톰에게 아서가 고함치듯 큰 소리를 낸다. “인간에게 들키면 해부 된다고!”

아서의 단호한 외침에도 톰이 울먹거리며 아서를 바라보자 아서는 톰에게 말했다.

"Hey, F R E N D O. Do not cry!"

 

 아서는 한 번도 데려가지 않았던 통나무집으로 톰을 데려갔다. 

‘아서’는 지구상의 인간 중에서 유일한 ‘친구’였던 톰을 위해 비행접시를 만들어줬다.

(가짜) UFO를 보고 호들갑스럽게 놀라는 연기를 하는 아서의 눈에선 오랜 이별을 예감한 듯 눈물이 흘렀다.

왜 눈물을 흘리느냐고 묻는 톰에게, 아서는 눈에 뭐가 들어갔다고 답한다.

캠코더를 들고 UFO를 촬영하겠노라고 종일 돌아다녔더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진다.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톰을, 아서가 끝까지 배웅한다. 아서가 톰의 손을 꽉 붙잡아본다.

'F R E N D O'의 체온을 느끼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테니.

 

톰과 아서, 아서와 톰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불렀다.

“I came from Alabama, with my banjo on my knee.

(멀고 먼 앨라배마 나의 고향은 그곳, 벤죠를 메고 나는 너를 찾아 왔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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