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는 두터운 갑옷 안에 딸을 업고 원술 진영을 향해 말을 달렸다. 그 어미 초선(貂蟬)을 많이 닮은 딸이었다.

여인이 입고 있는 비단옷에서 귀한 분내가 났다. 분내? 어쩌면 그것은 여인에게 흐르는 특이한 체취(體臭)였는지 모른다.

남자의 등에 업혀 갑옷에 싸인 채 급히 말을 타게 되니 긴장을 하게 되고 그 긴장감이 평소보다 많은 땀을 내게 하였으니 그것이 여인의 독특한 체취를 더 짙게 풍기게 하는지도 모를 일이리라.

 

그 체취는, 여포가 그 이복누이 원(媛)을 업고 정원(丁原)의 성(城)으로 말머리를 향했을 때도 맡아볼 수 있었던 체취(體臭)였다.

장건이 서역과의 교역로를 개척한 이후로 많은 호인(胡人)들이 한나라로 건너왔다.

여포의 배다른 여동생 원(媛)은 대월지(大月氏) 출신 어미를 닮아 이국적인 외모였다.

원(媛)의 어미는, 친어미가 일찍 죽은 여포를 친아들처럼 보듬어주었다.

때론 그 아비를 닮아 광포한 기질을 보여 주위의 수군거림을 받을 때에도 원(媛)의 어미만큼은 여포를 안아주었다.

 

여포(呂布)의 아비 여패(呂沛)는 걸핏하면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둘렀다. 가문에 전래되는 타고난 힘은 그럴 땐 오히려 단점이 된다.

두주불사 고주망태가 되어 행패를 부릴 때면 주변에 아무도 가지 못했다. 어린 여포에게 창을 던져 큰 상처를 입힐 뻔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포 역시도 아비의 주사를 피해 막사 밖에 있을 때였다.

여패의 막사 안에서 찢어질듯 울부짖는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처절한 목소리였다. 원(媛)이었다. 원(媛)의 목소리였다.

원(媛)의 비명소리를 들은 여포가 여패의 막사 안에 들어갔을 때 술 취한 여패는 딸 원(媛)의 조그만 몸뚱이를 짓이기듯 뭉개고 있었다.

일찌감치 공맹(孔孟)의 학문을 배웠던 여포는 그 순간 맹자의 도(道)를 떠올렸다.

 

제선왕(齊宣王)이 맹자에게 묻는다.

"탕왕은 걸을 추방하고 무왕은 주를 쳤다고 하오. 그것이 사실이오?"

맹자가 답한다. "그것은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바입니다."

제선왕이 다시 묻는다. "신하가 그 임금을 죽임이 가히 옳다고 할 수 있겠소?"

맹자가 대답한다.

"인(仁)을 해친 자를 적(賊)이라 할지며 의(義)를 해친 자를 잔(殘)이라고 할 것입니다. 잔적(殘賊)을 행하는 자는 일부(一夫)인 것일지니 일개 범부(一夫)를 죽인 것이지 어찌 임금을 죽인 것이라 하겠소이까."

 

군사부일체의 시대, 잔적(殘賊)을 행하는 자는 더 이상 임금도 아비도 아니다. 일개 범부인 것이다.

인륜(人倫)의 도를 어긴 범부(凡夫)의 죄를 죽음으로 다스리는 것이 어찌 맹자의 도에 어긋나는 행동이겠는가.

여포는 막사 입구에 있던 검(劍)을 치켜들고 아비에게로 다가갔다. 색정(色情)에 눈이 먼 여패는 여포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여포의 검(劍)이 아비의 옆구리에 박혔다. 여패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되돌아섰다.

여포는 옆구리에 박힌 검을 뽑아 복부에 꽂았다. 여패의 두 손이 여포의 목을 움켜쥐었다.

여포와 여패, 두 부자(父子)의 눈알이 시뻘겋게 충혈 되기 시작했다. 얼굴은 붉다 못해 보랏빛이 되었다.

 

여포는 여패의 복부에서 검을 뽑았다. 핏줄기가 솟구쳤다.

여패는 머리통으로 여포를 들이받았다. 코에서 피를 흘리며 여포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여포가 떨어뜨린 검을 여패가 손에 쥐었다. 검을 쥔 여패가 쓰러진 여포를 찌르려할 때 원(媛)이 급히 몸을 날렸다.

원(媛)의 몸에 박힌 검을 뽑기 위해 여패가 안간힘을 쓴다. 원(媛)은 두 손으로 검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아니, 더 깊이 자신의 몸에 박아 넣는다.

원(媛)이 여패의 칼을 잡고 있는 동안 여포가 여패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잔적(殘賊)! 이놈의 잔적(殘賊)!”

여패의 눈에 흰자위만 보이더니 ‘쿵’ 소리와 함께 쓰러진다.

쓰러진 여패의 머리통을 여포가 주먹으로 내려치길 여러 차례. 이미 주위는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정신을 차린 여포가 원(媛)을 바라봤을 때 원(媛)의 몸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호인(胡人)의 피가 섞인 가무잡잡한 원(媛)의 얼굴에는 생기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여포는 원(媛)을 들춰 업고 막사 밖으로 나섰다.

 

“의원, 의원은 어디 있느냐?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용한 의원 말이다.”

“정원, 정원의 성(城)에 용한 의원이 있다고 들었나이다. 쌀 다섯 말이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고 하옵니다.”

“어서 말을 대령하라!”

 

여포는 원(媛)을 들춰 업고 그 위에 갑옷을 걸쳤다. 군벌 정원(丁原)의 성(城)으로 여포가 탄 말이 향했다.

여포의 등에 업힌 원(媛)의 몸에선 묘한 향내가 났다. 선혈의 훈기(薰氣)가 더해져 그 향은 짙어졌다.

그 향(香)은 동탁의 어린 시녀 초선(貂蟬)에게서도 맡을 수 있었던 향내였다.

 

‘원(媛)? 원(媛)이란 말인가. 원(媛)이 다시 태어났단 말인가?’

여포는 멀리서도 그 향(香)을 느낄 수 있었다.

 

‘초선에게도 대월지(大月氏)의 피가 섞인 것일까...’

여포는 운명(運命)이라 여기고 금률(禁律)을 깨고 초선의 침실에 들어갔다.

난폭하고 비대한 동탁이 침실에 머무르고 간 뒤 초야(初夜)의 고통을 잊지 못해 울고 있는 초선을 여포가 보게 된 것은 운명(運命)이었다.

운명. 그랬다. 동탁이 '아들'이라 부르던 여포에게 창을 던져 큰 상처를 입힐 뻔한 것도 운명이었다.

여포가 동탁을 찌른 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었다. 그 순간에도 여포는 맹자의 도(道)를 떠올렸다.

 

“잔적(殘賊), 잔적(殘賊)이 여기 있다! 내가 잔적(殘賊)을 죽였다.”

두 번 실수는 하지 않는다. 여포는 길이가 짧은 검(劍)이 아니라 긴 극(戟)을 사용했다.

동탁은 여포의 목을 움켜쥐려고 했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여포는 옆구리에 박힌 극(戟)을 뽑아 동탁의 복부에 꽂았다.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동탁이 주저앉았다. 여포는 찌르고 또 찔렀다. 죽어가는 동탁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놈이 여자에 미쳤구나. 여자에 미쳐서 아비를 찌르다니!”

오원(五原)의 여패(呂沛)도 비슷한 말을 하며 죽어갔었다.

여포의 얼굴이 붉다 못해 보랏빛으로 변했다. 그때처럼 주위가 피범벅이 되어갔다.

 

“말을 돌려라!”

원술 진영으로 향하던 여포(呂布)가 말머리를 하비성(城)으로 돌리려했다.

장정 한 명이 입는 갑옷을 아비와 딸, 두 사람이 껴입었으니 소녀의 연약한 육신으로는 고달프지 아니할 수 없다.

달리고 있는 중에 말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여포의 몸에 비단 끈으로 꽉 묶어 놓았으니 숨쉬기조차 힘들다.

여포의 명마(名馬) 적토마는 그 빠르기가 남다르다보니 위아래 요동으로 인한 고통 역시 소녀의 여린 몸이 견딜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우웩”

여포의 딸은 급기야 구토를 하고 말았다. 혼절을 하였는지 잠시 후에는 사지(四肢)에 힘을 잃고 축 늘어져 버렸다.

딸의 몸이 식어갔다. 죽어간다. 여포는 그렇게 느꼈다. 그때의 원(媛)도 그렇게 말 위에서, 여포의 등 뒤에서 죽어가지 않았는가.

“하비성으로 돌아간다!”

그날부터 여포의 딸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기절했다가 깨어나길 반복했다. 원술과의 혼담은 지난 일이 되었다.

 

원(媛)의 어미가 죽어가며 자신의 딸 원(媛)을 지켜달라고 부탁하듯 초선도 자신의 딸을 지켜달라고 여포에게 부탁하지 않았던가.

원(媛)의 어미도, 원(媛)도, 초선도, 초선의 딸도 자신에게 사랑을 베푼 여인, 자신이 지켜야할 여인들은 여포의 눈앞에서 죽어갔다.

여포는 자책하기 시작했다. 책사 진궁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포는 계속 술을 마셨다.

여포가 술잔을 겨우 놓은 것은 조조군(軍)이 하비성을 점령했을 때였다. 조조가 여포를 치죄할 때에도 여포의 취기(醉氣)는 가시지 않았다.

 

“이 귀 큰 놈이!”

만만하던 유비가 조조 곁에 붙어 뭐라고 속삭였을 때 줄에 묶여 꿇어 앉혀져 있던 여포가 유비를 향해 외쳤다.

하비성 백문루(白門樓)에 목이 매달릴 때에서야 비로소 여포는 술이 깨기 시작했다.

여포의 목에 굵은 줄이 감겼다. 백문루(白門樓) 기둥에 반대쪽 줄이 단단히 묶였다.

조조의 병사들이 목이 줄에 감긴 여포를 백문루(白門樓) 아래로 떨어뜨렸다. 여포의 육중한 몸이 큰 호(皓)를 그리며 밑으로 떨어졌다.

 

어린 날 아비 여패(呂沛)의 굵은 손이 여포의 목을 조여왔을 때와 같은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여포의 얼굴이 붉다 못해 보랏빛으로 변해갔다.

아비를 죽일 때도, 정원을 죽일 때도, 동탁을 죽일 때도 그런 모습이 아니었던가.

죽어가는 여포는 안간힘을 쓰며 외마디 호통을 쳤다.

 

“잔적(殘賊)...!”

여포의 마지막 호통은, 백문루(白門樓) 아래를 지나가던 조조의 군사들을 벌벌 떨게 할 정도로 위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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