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조조의 격분

2011.12.1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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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에 의해 점령당한 하비성 -

맹장(猛將) 여포가 줄에 묶여 꿇어 앉아있다. 여포 옆에 진궁과 장료 역시 같은 꼴로 앉아있다.

조조는. 아비 조숭을 살해한 잔인무도한 무사가 눈 앞의 여포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환관 조등의 양자 조숭은 아들 조조의 색정에 관대했다.

황실의 사람들이나 먹을 수 있다는, 귀하디 귀한 사슴(鹿)의 피와 고기를 구해 조조의 양기(陽氣)를 보(補)해주곤 하였다.

그 옛날 진나라의 환관 조고가 황실에서 귀히 키우고 있는 사슴을 일컬어 말이라 하여 황제를 농단했다는 지록위마 이야기에서 보듯 

사슴은 황실에서나 키우고 황족들이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짐승, 즉 영물(靈物)이었다.

조숭은 사슴고기를 말고기라 부르며 아들 조조에게 사슴고기를 먹였다. 귀한 고기를 먹은 조조의 양물(陽物)은 또래의 그것보다 크고 실해졌다. 

 

조조의 정실 정씨와 그 뒤를 잇는 유씨 부인은 조조의 큰 양물(陽物)을 받아들이기에는 옥문(玉門)이 좁았다.

기생 출신인 변씨 부인이 그나마 조조의 색정(色情)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였다.

환관의 양아들이라 세간의 눈총을 받던 조숭의 아들놈이 그토록 크고 단단한 양물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조조의 난봉질을 볼 때마다 아비 조숭은 꽉 막혀있던 가슴이 뚫리는듯 했다.

 

조조가 어디선가 색시 도둑질을 하고 올 때면 호통을 치기보다는 흐뭇하게 바라보던 조숭이 아니었던가.

조조가, 그리고 조조의 친구들이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면 조숭의 하인이 신부와 신랑집에 다녀갔다.

먹고 살기 힘들어 나무껍질을 벗겨먹고 그것마저 없으면 아비가 자식을 잡아먹기도 하는 이 난세(亂世)에

하룻밤 장난질의 대가(代價)로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만큼,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넉넉히 후사를 하니 울던 색시도 눈물을 그치곤 했다.  

 

환관인 할아비 조등도 조조의 못말리는 색욕에 두 손을 들었다. "허허 그놈 참 큰 일을 낼 놈이로구나."

조조의 난봉을 보다 못한 조조의 숙부 조길(曺吉)이 조숭에게 조조의 잘못을 고쳐줘야 한다고 얘기한다.

사냥과 매날리기, 계집질에 미쳐있는 아만(阿瞞) 녀석이 하고 다니는 난봉 짓거리가 공맹(孔孟)의 도(道)를 숭상하는 유학자 조길(曺吉)의 눈에 찰 리가 없다.

허나 조조가 마비증상(風)이 왔다고 거짓말을 하여 숙부를 속인 일이 있은 후로는 그 엄격한 조길(曺吉)도 조조에 대해서만큼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인물평으로 유명한 허소가 조조를 가리켜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 평한 일이 있었다.

혹자는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 아니라 '치세의 간웅, 난세의 능신'이 아니냐?'며 허소의 말뜻을 따져 묻기도 하였으나

정작 당사자인 조조는, "간음할 간(奸)인가 간사할 간(姦) 간인가?" 그것을 따져 물으며 껄껄 웃었다고 한다.

 

난세의 능신이든 간웅이든 허소가 예견했던 난세(亂世)가 시작되었다. 황건적의 난이 끝나자 천하는 군벌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조용히 살기 위해 진류로 향하던 조숭이 죽었다. 조숭 일행은 늙은 조숭에서 어린 하녀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살해당했다. 

조숭 일행을 호위해주겠다던 도겸의 군사들은 사라져버렸다. 값비싼 보석부터 쌀 한톨까지 재물이란 재물은 모조리 약탈당했다.

현장에 남은 것은, 몸에 걸쳤던 옷가지까지 빼앗긴채 발가벗겨 나뒹구는 시체들 뿐이었다. 

 

죽어 나자빠진 다른 사람들과 달리

조숭의 시체는 하초의 양물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는 것이 조조의 심복 곽가가 세작을 통해 남몰래 알아온 사실이다.

 

'그곳엔 조그만 살덩이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곽가의 편지를 쥐고 있는 조조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필시 환관의 자식임을 욕보이려한 것이리라. 조조는 시체 훼손으로 악명 높은 장수들을 하나씩 손꼽아본다.

화웅(華雄),

동탁의 부장(副將) 화웅이란 자가 동탁의 전횡에 맞선 연합군 장수의 사체(死體)를 심하게 훼손한 뒤 성벽에 내걸어 끔찍한 본보기로 삼았던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 화웅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지 않은가.

 

단 한 칼에 베어졌는지 조숭을 제외한 나머지 시체들은 신체의 한 군데를 제외하곤 깨끗한 상태였다.

조숭 일행이 따로 고용한 용병 무사들마저도 별다른 저항을 못하고 일격(一擊)에 제압을 당했을 정도이니 필시 대단한 실력을 갖춘 무사(武士)였음이 틀림없다.

 

동탁의 오른팔이었으며 화웅의 상관이었던 여포? 그 여포가 한 짓일까?

여포에 필적한만한 무예를 가진 이로는 유비 밑의 두 형제 관우, 장비 녀석과 지금은 망자(忘者)가 된 손견을 떠올릴 수 있었다. 

도겸의 수하 중에는? 세상은 넓고 인물은 많다. 안량, 문추, 전위, 하후돈 같은 장수가 세상에 또 있을지 모른다.

도겸의 수하 중에 뛰어난 무예 실력을 갖춘 자가 있을 수도 있다.

원술이나 원소의 부하장수가 도겸의 부하로 가장했을 수도 있다. 황건적의 잔당은 또 어떤가.

 

누가 한 짓이든간에 사체(死體)에 대한 이토록 심한 모독, 가문(家門)에 대한 이토록 심한 능욕이 어찌 천지(天地)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자존심이 강한 조조, 아비에 대한 사랑이 깊은 조조로서는 참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조조는 도겸 정벌에 나선다. "놈들의 씨를 말려라!" 조조는 격분했다. 

온 천하가 자신을 비난할지라도 훗날의 역사가가 어떠한 말로 자신을 욕할지라도

아비 조숭의 하초(下焦)가 끔찍하게 훼손당한 것을 알게 된 조조로서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군민(軍民)을 합쳐 서주의 수십만이 죽었다. 개와 닭 같은 가축도 가차없이 도살하였다. 말그대로 씨를 말렸던 것이다.

 

조조의 분노를 샀던 도겸은 병으로 죽었고 조조가 의심했던 여포는 지금 조조의 눈 앞에 묶여 있다.

 

"유공(劉公), 이 자를 어찌했으면 좋겠소?"조조는 옆에 앉은 유비를 힐끗 쳐다본다.

유비(劉備)는 한쪽 손을 들어 두 손가락으로 길고 탐스러운 귓볼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한다.

"대인(大人)께서는, 여포(呂布)가 정원과 동탁을 죽인 일을 잊고 계십니까?"

 

유난히 긴 귓볼을 위아래로 만지작거리는 것은 두려울 때 유비의 습관이었다.

귓볼이 긴 사람은 명(命)이 길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지금 이렇게 허무하게 죽지는 않을 것이리라.

유비는 마음 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내 명(命)은 길다. 여기서 이렇게 죽지 않는다.'

 

태연스럽게 대답하긴 했지만 유비는 내심 두려움에 떨었다.

아우 장비(張飛)를 도겸의 군사로 위장시켜 조숭의 일행을 살해하도록 명령한 것은 유비였다.

언제까지나 떠돌이 장군으로 천하를 떠돌순 없었다. 자립할수 있는 기반이 필요했다.

독우를 두들겨 패고 나올 때 소쌍과 장세평도 고개를 돌렸다.

지금 자신을 후원해주고 있던 미축도 언제까지 자신을 뒷받침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소쌍과 장세평이 떠나가듯 미축과 미방 형제 역시 미련없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

 

도겸의 신세를 지며 식객 역할을 했던 유비로서는 도겸의 군기(軍箕)니 복장을 준비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장비는 군사를 재촉하여 길을 가로질렀다. 다소 과격하긴 했지만 군사를 재촉하는 것은 장비의 특기였다.

장비의 군사는 도겸이 보낸 호위군사로 위장해서 조숭을 맞이했다.

도겸의 부장인 장개(張蓋)란 장수가 장비와 비슷한 외모의 텁석부리란 것이 주효했다. 

조숭은 마중나오기로 한 도겸의 장수 장개(張蓋)인줄로만 알았다.

장개로 위장한 장비, 도겸군으로 분장한 장비의 군사는 조숭 일가를 무참히 살해했다.   

 

"이 귀 큰 놈이!"

묶여 있던 여포 녀석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호통을 친다.

혹시? 하는 생각에 곁눈질로 유비의 반응을 살피던 조조가 고개를 돌려 여포를 바라본다.

줄에 묶인 여포가 짐승이 울부짓듯 크게 외친다.

"승상에겐 보병이 있고 나에게는 기병이 있소이다. 나와 함께 하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소이다!"

유비가 조조에게 속삭인다. "여포의 말을 믿지 마시옵소서."

유비가 조조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본 여포가 다시 한 번 쩌렁쩌렁하게 호통친다.

"승상, 저 귀 큰 놈이 가장 믿지 못할 놈이외다!"

 

그날 여포는 백문루(白門樓)에서 목이 졸려 죽었다.

 

조조 곁에 앉아 여포를 죽이라고 재촉했던 유비는 그 몇 년 후 조조를 살해하려는 동승의 음모에 가담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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