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해서 너무 좋아

2011.12.22 21:45

퍼플 조회 수:3869

하지만 나는 두려웠다.

평생 여자랑 키스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나는 지금까지 여자 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었다. 딱히 여자 친구만이 아니다. 친구란 것을 사귀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왔다. 내가 세상을 거부한 것인지, 처음부터 세상이 나를 거부했던 것인지 이제 와서는 아무래도 좋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마음이 급했다. 살아오면서 잃어버렸던 것들을 조금이라도 되찾아야 한다.

인터넷에서 키스방 사이트를 찾고, 전화로 예약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작은 용기와 빠른 검색 엔진이 필요할 뿐이었다. 내일은 수요일, 평일 낮에는 그다지 사람이 없다고 했다. 가격도 5000원 정도 할인해준다. 35분에 40000원, 60분에 70000만원. 창녀를 사는 일에 비해서는 싸지만, 데이트 비용 치고는 비싸다. 물론 이건 데이트가 아니다. 키스방 쪽이 시간당 효율이 훨씬 더 좋다.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여자와 적절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난 적당한 여자를 찾는 법을 모른다. 적절한 관계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공포가 밀려왔다. 한 사람을 알고 지속적으로 연락을 한다. 귀찮은 일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고요한 평화가 더 좋지 않은가. 고요한 평화가 좋다면 키스방을 찾는 이유는 뭔가. 성욕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이쪽이 더 빠르고 편하며, 돈도 싸게 먹힌다. 야동을 보면서 딸을 치는 거나 마찬가지다.

키스방 사이트에서는 키스를 해주는 여자들을 매니저라고 불렀다. 매니저들은 가슴이 파인 네글리제 같은 것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입술에 번들거리는 기름을 바르고 한껏 내민 사진도 있었다. 가슴이 큰 여자와 작은 여자, 둘 다 얼굴만은 보이지 않는다.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운 반면, 몸을 보여주는 것은 부끄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들의 가슴과 입술만 보고 누구와 첫키스를 할 건지 골라야했다.

초희, 미나, 제이, 세하, 소령, 유리.

나는 초희가 좋았다. 왠지 마음에 드는 이름과 가슴이었다.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이 좋다. 물론 미추는 크기에 있지 않다. 그러나 격투 게임을 할 때 타격감을 따지는 거나, 골프채를 고를 때 그립감을 중요시하는 것, 낚시에 미친 사람이 손맛을 예찬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클수록 쾌감도 크다.     

예약은 내일 3시로 정했다. 인터넷으로 글을 남긴 후에 문자로 확인을 해주면 된다. 간단하다. 약도를 유심히 보면서 어떻게 찾아갈지 고민했다. 생각보다 외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간판도 없다. 주변의 상가나 건물을 기억해놓지 않으면 같은 곳을 맴돌게 된다. 그렇다고 약도를 뽑아가, 보면서 찾는 것도 우스웠다. 기억력에만 의존할 생각이다. 나는 의외로 기억력이 좋다. 사소한 것을 잊지 않는 능력이 있다. 중학교 때 처음 괴롭힘을 당했던 것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나를 괴롭힌 아이의 얼굴과 그때의 참담한 기분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그 아이는 내 등에 낙서를 하며 수학 시간 내내 괴롭혔다. 그 아이 때문에 내가 수학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결코 변명이 아니다.

어렸을 때 나는 무척 소심한 아이였다. 누가 괴롭혀도 말 한마디 변변히 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도 그래.

머리를 털듯이 휘젓는다. 싫은 기억이 날 때마다 하는 버릇. 그렇게 하면 개가 몸을 털어 말리는 것처럼, 기억도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아 좆같네. 씨발.


키스방을 찾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발소 표시가 2개 있는 건물을 찾으면 된다. 빨간색과 파란색이 나선으로 섞여 돌아가는 등이 하나만 있으면 그건 보통 이발소다. 2개 있으면 퇴폐 이발소다. 간판이나 마찬가지다. 키스방은 3층에 있었다. 그 윗층은 교회였고, 아래는 피시방, 1층은 식당이었다. 성(聖)스러운 욕구와 성(性)스러운 욕구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뼈다귀 해장국 집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아직 밥 때가 아닌 것이다. 멍하니 앉아 있던 식당 아줌마가 유리창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무의식적으로 피했다. 아줌마는 윗층에 뭐가 있는지 알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지도 모른다. 알아봤자지 빌어먹을.

계단 초입부터 젖은 콘크리트의 퀴퀴한 냄새가 풍겼다. 피시방에서 내려오는 담배 냄새와 해장국 집에서 올라오는 음식 냄새가 섞였다. 숨을 참고 계단을 올라갔다. 키스방 입구 앞에 짜장면 그릇이 신문지에 싸여 있었다. 숫자를 세어봤다. 다섯 그릇. 문 왼쪽에 달린 벨을 눌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눌렀다.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지만 벨 위쪽에 있는 인터폰에서 남자 목소리가 나왔다.

“누구세요.”

20대 정도, 30대는 아닐 것 같은 목소리였다. 걸걸하지도 않고 청아하지도 않은, 평범한 목소리.

“예약했는데요.”

남자는 내 휴대폰 뒷자리를 확인하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교회에서 누군가가 내려올 것만 같아 불안해졌다. 계단은 공연이 끝난 무대처럼 적막했다. 공연은 이제 시작될 참이었다. 불안과 함께 긴장감이 심장에서부터 나와 머리로 올라왔다. 조금 떨고 있었다. 키스는 범죄가 아니다. 경찰이 갑자기 쳐들어온다고 해도 처벌 받지 않는다. 이건 나쁜 일이 아니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살짝 열렸다. 문 사이로 노려보는 듯한 눈초리가 드러났다. 남자는 사람이 들어갈 만큼만 문을 열고 나를 들어오게 했다. 스포츠 형 머리를 한 남자는 조폭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피시방에서 알바를 하다 나온 것 같았다. 키는 나보다 약간 큰 정도, 적당히 마른 체격에, 반바지를 입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12월에 반바지를 입는 것은 분명히 이상한 일이다. 게다가 초록색 알로하 셔츠를 세트로 입고 있었다. 셔츠에 프린트된 물고기가 귀여웠다.

안에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겨울이라고 해도 난방이 과했다. 목도리를 벗어 손에 쥐었다. 코트 지퍼를 열어 조금이라도 공기가 통하게 했다. 이마에 땀이 흘렀다. 등이금세 축축했다. 땀이 흐르는 이유가 꼭 더워서만은 아닌 것 같았다.

키스방 내부는 의외로 깔끔했다. 모르고 보면 보습학원인 줄 알 것이다. 정면에는 나무로 만든 안내 탁자가 있고, 벽에는 ‘LOVE&KISS’라는 글자가 멋스럽게 장식되어 있었다. 양 옆으로 긴 복도가 이어지고, 1.5m 간격으로 문이 늘어서 있었다. 문마다 황금색 숫자가 붙어 있었다. 내가 안내된 곳은 3번 방이었다. 남자가 선불을 요구했다. 나는 3만 5천원을 건넸다. 그는 나를 잠시 보더니 말했다.

“양치하고 오세요. 언제나 하는 거라서.”

굳이 변명하듯 말하지 않아도 될 텐데. 어차피 양치질로는 간염이 예방되지 않는다. 에이즈도 마찬가지다. 키스로 에이즈가 전염되는 것은 아니지만, 양치질을 하지 않으면 입냄새가 지독하다. 화장실은 입구 바로 옆에 있었다. 먼지가 내려앉은 화장실은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물때가 곳곳에 끼어 있었다. 세면대 위에 있는 칫솔통에 젖은 칫솔이 여러개 꽃혀 있었다. 누군가가 쓴 것이 분명하다. 두 번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또 쓰기에는 꺼림칙했다. 그냥 물로만 양치질을 할까. 싶다가 바로 옆에 비닐에 싸인 칫솔 2개가 있는 걸 발견한다. 이번에는 치약을 짜는 일이 불쾌하게 느껴진다. 이 치약을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 남자들이 만진 걸까. 이를 닦는 내내 기분이 더러워진다.

이를 닦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남자는 방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곧 매니저가 올 테니 편히 쉬고 계세요.”

란 말만 남기고 떠났다.

방에는 긴 소파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붉은 색 소파 위에 베개 2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혼자 눕기에는 작은 소파는 두 사람이 앉기에는 충분했다. 약간 특이한 고시원 방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런 감옥이라면 한동안 지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방에서는 화장실 방향제 냄새가 났다. 사실 이곳은 화장실이다. 욕구를 시원하게 배출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화장실이다. TV나 인터넷도 변기나 마찬가지다. 사람도 변기가 될 수 있다. 충분한 돈만 쥐어준다면.

나는 지금 충분한 돈을 지불했다.

소파에 앉아 자기 혐오에 빠질 시간은 충분했다.

CSI란 드라마에 나오는 길 그리섬이란 등장인물이 “자기 합리화를 하지 않고 일주일을 버텨 본 적 있나?”란 대사를 친 게 기억났다. 그건 원래 Big Chill이란 영화에서 제프 골드블룸이 한 대사다. 거 왜 있지 않은가. 쥬라기 공원 2에 나오는 박사. 자기 합리화가 섹스만큼 중요하다면, 자기 혐오도 그만큼 중요하다. 그게 없다면 지금까지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을 혐오하는 만큼 안심하게 된다. 자기 합리화를 위해서는 자기 혐오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원래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니까. 괜찮아.

그때 문이 조용히 열렸다.

여자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가장 무도회에서나 볼 듯한 화려한 가면이었다. 고양이 얼굴을 모티프로 삼은 초록색 가면이 이마에서 코까지 가렸다. 오른쪽에 손잡이가 있어서 직접 얼굴에 밀착시켜야 하는 종류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평소에 매일 보는 사람이라도 쉽게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았다. 이들은 이런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님의 간을 본다고 들었다. 만약 아는 사람이라면 그냥 나오고, 모르는 사람이라면 가면을 벗는다.

여자가 가면을 벗었다. 볼이 붉었다. 부끄러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이가 어려서 아직 사라지지 않은 홍조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단지 화장에 불과한 걸까. 나는 여자들이 화장을 했는지 안 했는지 잘 구분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런 걸까 아니면 나만 그런 걸까. 여자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초희예요.”

초희가 숙일 때 살짝 가슴골이 보였다. 사이트에서 본 프로필 사진대로 아이보리 색 네글리제를 입고 있었다. 보통 네글리제와는 달리 가슴이 무척 파여 있고, 몸에 달라붙는 재질로 되어 있었다. 이러면 네글리제가 아닌데 싶을 정도였다. 생각해 보니, 이런 건 그냥 홀복이라고 부른다. 보통 네글리제는 집에서 잠을 잘 때 입지만, 이들의 네글리제는 일을 할 때 입는다. 작업복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누군가의 일터에 와 있다. 열심히 일해주기를 바란다.

초희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초희의 얼굴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크게 못나지도 않았고, 잘나지도 않은 미모의 소유자였다. 약간 뚱뚱했다. 아니, 좀 많이 뚱뚱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어린 나이가 얼굴을 예쁘게 보이게 하는 그런 여자였다. 그러나 어디서나 볼 수 있다고 해서 그게 정말로 ‘어디서 봤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의 얼굴이 내 기억에 남으려면 좀 더 확실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게 뭔지는 도저히 기억나질 않았다. 마치 끊어진 실처럼 스르륵 흘러갈 뿐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다.

“왜요? 뭐 묻었어요?”

초희는 웃으며 물었다. 너무 빤히 바라봤던 모양이다. 그녀가 내 옆에 앉았다.

“오늘 처음 오셨어요? 저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달콤한 목소리다. 초희의 손이 내 허벅지 위에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떨리던 몸이 풀어졌다. 마치 구덩이 속으로 끝없이 떨어지는 것처럼 아득했다. 사이트에 나온 설명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연인처럼 대화하다가 키스를 하면 된다. 터치는 가슴과 엉덩이, 옷 위만 가능하고 중요한 부분은 건드리면 안 된다. 노출은 재량껏.   

그러나 도무지 손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한 마디의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건 정말 처음 해보는 거다. 처음인데 어떻게 잘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초희가 웃으며 내 손을 이끌어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나는 로봇처럼 뻣뻣한 자세로 서서히 초희에게 밀착하기 시작했다. 입술이 말라서 연신 침을 발랐다. 침도 부족했다. 목이 말랐다. 초희의 입술이 클로즈업된 것처럼 거대하게 보였다. 그녀의 입술에는 연한 보라색 립스틱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졌다. 허벅지에 그녀의 엉덩이가 닿는 것이 느껴졌다. 얇은 천 안으로 부드러운 속살이 숨겨져 있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알 수 있었다. 팬티의 선까지 감지했다.

가슴을, 가슴을 만져야 하는데.

초희는 눈을 서서히 감고 있었다. 손은 여전히 움직여주질 않았다. 대신 발기한 성기가 속옷 속에 꽉 들어차서 아팠다.

입술에 입술이 닿은 순간 혀를 내밀었다. 미묘하게 벌어진 그녀의 입 속에서 화답하듯이 혀가 밀려나왔다. 두 혀가 감긴 순간, 그녀의 눈 가에 있는 검은 점을 봤다. 내 왼손은 어느새 그녀의 왼쪽 가슴을 세게 쥐고 있었다. 완전히 무의식적인 동작이었다. 그녀는 브라를 하지 않고 있었다. 매끄러운 천 아래에 있는 젖가슴이 그대로 손안에 들어왔다.

순간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졌다.

그래 이거야!

내가 그녀를 어디에서 봤는지 비로소 생각이 났다. 중학교 1학년 때 수학 시간마다 내 등에 그림을 그려대며 나를 괴롭혔던 그 여자아이가 바로 초희였다. 눈가의 점하며 장난기 어린 입매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얼굴부터 키까지 그때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나는 중학교 때 무척 왜소한 아이였다. 몸이 왜소한 만큼 성격도 소심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고 아이들과도 잘 지내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폐쇄적인 인간이 된 것은 그보다 더 나중의 일이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음울한 인간은 아니었다. 학교에 가면 웃는 얼굴로 인사 하는 아이 둘 셋 정도는 있었다. 그랬던 내가 세상과 완전히 담을 쌓게 된 계기는 수학시간이면 나를 괴롭혔던 여자아이 때문이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여자아이는 키가 교실에서 제일 컸다. 아마 학교에서 가장 컸을 것이다. 여자아이는 남자보다 더 빨리 성숙한다. 때문에 어렸을 때는 심약한 남자아이가 왈가닥 여자아이한테 휘둘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 경우에는 그 차이가 너무나 심했다. 때문에 여자아이가 괴롭혀도 묵묵히 당할 뿐이었다.

그 여자아이는 평소에도 다른 남자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하면 발로 차기 일쑤였다. 약간이라도 야한 말을 한다든가, 다른 여자아이에게 아이스께끼를 한다면 바로 주먹이 날아갔다. 자기한테 한 것도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오지랖도 넓지. 그 여자아이는 태권도를 배웠기 때문에 발차기나 주먹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함부로 덤볐다가 코피를 흘린 아이도 여럿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나다.

제기랄 이건 다 개소리다. 난 그 년을 죽이고 싶었다.

그 년은 수학 시간 내내 내 등을 샤프심이나 볼펜으로 쿡쿡 찔렀다.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한번은 멱살을 잡아봤지만 발에 차여 교실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그 년 때문에 수학 시간은 지옥에서 사는 것 같았고, 적분까지 가기도 전에 수학을 포기하고 말았다. 여자 아이한테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고 비참했다. 중1때부터 이미 세상을 살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수학 시간에 엉엉 울었다. 반 아이들이 당황해서 교무실에 있는 담임 선생에게 알렸다. 수학 선생과 담임은 내가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 당황했다. 하지만 별 것 아닌 괴롭힘이었기에 여자 아이에게 주의만을 주고 끝냈다. 괴롭힘은 멈췄지만, 내 인생은 그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원래 소심했던 성격은 갈수록 심해졌고, 친구를 사귀기는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갔다. 모두가 날 비웃는 것 같았다. 여자한테 맞고 다니는 병신 같은 놈이라고 욕하고 있었다.

대학에서도, 군대에서도, 제대하고 나서도, 졸업 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들리지 않는 환청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난 끝났어. 실패했어. 내 인생은 엉망이야. 난 소심해. 사람들과 잘 지낼 수가 없어. 친구가 없어. 여자를 사귀고 싶어. 용기가 없어. 직업도 없어. 어차피 취직해도 적응하지 못할 거야. 난 낙오자야. 다른 사람들처럼 지낼 수가 없어. 정말이지 잘 해보고 싶지만 애초부터 모든 게 정해져 있다.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난 후자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 무엇이 사람을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만들고, 무엇이 사람을 끝없는 벼랑에서 떨어지도록 밀어내는가. 성장과정, 평소 습관, 성격, 재능, 교우관계, 가족, 경제 상황, 사회 분위기, 체격, 몸무게. 어떤 걸 고르든지 좋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지 골라보라.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인생의 길이 결정되는 이도 있다. 반 고흐의 경우에는 외동아들로 태어났다면 훨씬 더 빨리 자살했을 것이다. 형제가 있냐 없냐만으로도 사람의 인생은 달라진다.

내게 있어서 인생을 결정한 가장 중요한 갈림길은 바로 초희 - 중학교 1학년 때 인생 최초의 절망을 안겨준 여자아이였다.


초희가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감고 내 혀를 입에 넣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살의가 솟아났다. 이대로 목을 조르고 싶었다. 혀를 깨물어서 삼키고 싶었다. 초희의 입에서 살짝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나도 모르게 가슴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던 것이다. 분노인지 성욕인지 알 수 없는 흥분 상태에서 손은 가슴에서 배로 내려왔다. 스물스물 움직인 손이 팬티의 고무줄을 늘렸을 때 초희가 눈을 떴다.

“손님, 아래쪽은 터치하시면 안 되는데요.”

“추가 요금 내면 된다고 하던데.”

여전히 손을 떼지 않고 간을 떠봤다. 홈페이지에는 정해진 수위를 넘기면 무조건 퇴장시킨다고 써 있었다. 여기서 소리치면 곧바로 아까 봤던 남자가 들어올 게 분명했다.

“아무튼 안 되는데요. 계속 이러시면.”

“계속 이러면 뭐. 뭐. 어쩔 건데.”

순간 솟구친 열기가 엄청난 힘을 부여하는 일은 TV 속에서나 있는 줄 알았다. 내게도 그런 장면을 연출할 기회가 찾아왔다. 초희의 속옷을 거의 찢듯이 벗겼다. 실크 재질의 속옷은 부드러운 만큼 쉽게 뜯어졌다. 거무스름한 둔덕이 드러났다. 재고 따질 것도 없이 성기 속으로 손가락을 깊숙이 집어넣었다. 물컹거렸다. 손가락 끝에 와 닿은 살점을 휘젓고 뭉개고 쥐어짰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 와본 길이었다. 길을 잃은 손가락은 거칠게 방황했다. 이정표도 찾지 못한 채 무작정 걸어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활처럼 초희의 허리가 굽어졌다. 아랫배가 텅 비는 느낌이 들었다. 안에 쌓여있던 것들이 해방되고 있었다.

몸이 뒤로 쏠렸다. 등부터 떨어지고 머리는 나중에 뒤따랐다. 바닥에 널부러진 후에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초희가 내 배를 걷어찼던 것이다. 비명 소리가 낭자했다.

문이 벌컥 열렸다.

뭐야 라거나 무슨 일이야 같은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남자는 바닥에 쓰러진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속옷이 내려가 있는 초희를 봤다. 남자는 우리 둘을 한번 씩 깊숙하게 응시했다. 그는 말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내 겨드랑이를 잡고 일으켜 세웠다. 바지춤을 단단히 올린 나는 그가 이끄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힘으로 밀어붙였다기보다는 기세가 대단했다. 팬티 속에서 뜨겁고도 축축한 물기가 엉기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오줌을 싸거나 사정을 한 후에는 항상 그랬다.

남자가 문 밖으로 날 밀어냈다. 때리지도 않았고, 욕을 하지도 않았다. 뒤에서 문이 닫혔다. 잠기는 소리가 둔탁하게 들렸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축축한 사타구니가 점점 불편해졌다. 헛웃음이 계속 새어나왔다. 정말, 초희가 중학교 때 그 여자아이였을까. 잘못 봤던 것은 아니었을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침을 연신 뱉었다. 입 속에 들어온 기운 하나하나가 더럽고 불쾌했다. 얼굴을 문질렀다. 손바닥에 반짝거리는 아이섀도우 펄 가루가 묻어났다. 아무리 얼굴을 털어내도 계속해서 펄 가루가 나왔다. 옷에 향수와 화장품 냄새가 섞여서 지워지질 않았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다. 키스방 건물에서 다섯 걸음만 걸어가면 바로 번화가로 통했다. 눈 앞으로 여고생들이 팔짱을 끼고 지나갔다. 핸드폰 대리점에서 틀어놓은 노랫소리가 너무 컸다. 아이유의 마쉬멜로우였다.

“마쉬맬로. 마쉬맬로. 달콤해서 너무 좋아.”

후렴구를 중얼거리며 여고생들의 웃음소리 사이로 들어갔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나는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모든 인간이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죽음이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겪는 필연이고, 여태껏 누구도 그 운명으로부터 벗어난 적은 없다. 그러나, 죽는다고 해서, 삶이 절망인 것은 아니다. 절망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지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세상에 두려울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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