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소설] 도주의 기록

2012.01.05 01:49

catgotmy 조회 수:1573

  어딘가로 가던 중이었다. 아마 그렇다고 생각한다. 사실 갈 곳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저 누워있었고, 칼에 몸이 베여서 죽어가고 있었다.

  찌른 것은 아버지는 아니었다. 누가 찔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난 돈을 이광수의 <무정> 사이에 끼워놓았고, 그걸 아버지에게 들켜서 심하게 혼났다. 그 후에 난 도망갔던 것 같다. 운행시간 이후의 지하철역 안처럼, 혼자 사는 반지하 집처럼, 그렇게 누워있다. 배고프고, 몸이 떨린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빵을 먹었다. 아마도 어떤 소설가를 기리기 위해 사용된 빵의 여분을. 여분이어서 다행이었다. 추모에 사용된 음식을 아직 끝나기 전에 먹는 건 이상한 일이니까. 끝난 후에도 먹는 건 찝찝한 일이다. 누.군.가.는. 먹었을지도 모르니까. 빵은 바게트처럼 질겼다.

  형과 나는 쫓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도망가고 있었다. 누가 왜 쫓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도망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도망가던 중에 예전에 알던 여자를 만났다.(형은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웠다.) 모텔에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도망다니는 주제에 떨어지는 집값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부동산 관련으로 아는 여자가 있었지. 그 여자도 만나볼까. 엄청 이쁜데.

  그 여자를 만나서 같이 누워있는데,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청 이쁜 여자가 있다고 하니 빨리 오겠단다. 형이나 나나 이쁜 여자라면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서라도 보러 올 사람들이다. 부동산 여자를 본 형은 경악한다. 내가 도망다니는 이유가 이 여자잖아. 아 그랬어? 난 별로 안 무서운데.

  형은 도망갔다. 아마 나도 도망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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