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중년이여 산화가 되어라

2011.09.18 20:01

catgotmy 조회 수:2864

 

jc는 농구를 한지 16년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레이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점프슛은 말할 것도 없다.


-똑바로 슛을 해도 좌우로 휘더라고.


 골대 밑에서는 집중하면 넣을 수 있지만, 아차하면 림을 건드리지도 못한다. 그래도, 농구를 좋아해서 매년 NBA를 챙겨보고, 온라인 게임을 하느라 바쁜 중학생들이 비워놓은 농구대에서 혼자 슛을 연습한다.

 그가 소설을 쓴 지도 10년이 되었다. 친한 사이라서 솔직히 말하지만, 소설이라고 할 수도 없다. 나도 소설에 대해 잘 모르지만, 소설이 뭔지 모르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쓴 글 같다. 읽어보기 싫을 정도로 한심한 글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가끔 재밌을 때가 있다. 그의 점프슛이 가끔 들어가는 것처럼, 글도 그런 식인 것 같다.


  -높은 빌딩에 있었는데, 비가 오더라. 빌딩들을 삼킬 정도로 오더라고.

  -그래?

  -응. 친구랑 같이 있었는데, 먼저 도망가라고 했어. 빌딩이 물에 먹히는 게 보기 좋아서.

  -그럼 니 빌딩은?

  -그전에 도망갔지.

  -그게 말이 돼? 주변 건물이 침수되는데, 넌 도망갔다고?


 결국 꿈 얘기였다. 그걸 소설로 쓴다면 재밌는 얘기가 될 거라고 좋아하는데, 속으로 바보라고 생각했다. 아니, 실제로도 말했다.


 -너 바보지?

 -응. 그게 내 장점이지.

 -아 재수없어


 그가 이틀 동안 메신저에 들어오지 않은 적이 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가만히 침대에 누워서 눈도 뜨지 않고, 이틀 동안 누워있었다고 한다. 뭔가 신기한 짓을 하면 신기한 일이 벌어질 거라나.


-누워있었더니 말이야. 물도 안 먹고 누워있었는데 목이 안 마르더라. 눈까지 감고 있으니까 소리에 민감해져. 주변에 철물점이 있는데. 쇠 가는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 말소리도 들리고. 밤에는 자동차가 윙윙 지나가는 소리. 오토바이 소리도 들리고. 차단된 방속에서 소리만 들리는 식이야.

-아 그래

-응. 그랬더니 왠지 내가 태아가 된 기분이더라고. 엄마 뱃속에 있는 것 같았어. 편하기도 하고, 여기가 내가 쉴 곳이구나 싶기도 하고. 근데, 철물점 쇠 가는 소리가 무슨 낙태할 때 쓰는 수술도구 같은 소리처럼 들려서 무서워지더라. 누워서 가만히 있었더니 몸에 감각도 둔해져서 쇠 가는 소리가 내 팔다리를 자르는 것 같고, 목까지 자르는 것 같았어. 기분이 이상하게 좋아져서, 일어나서는 짜장볶음밥 시켜서 먹다가 들어왔네.



 며칠 만에 들어와서 뭐했냐는 질문에 저런 말을 한다. 게다가 이걸 또 소설로 쓰겠단다. 소설로 쓰는 건 좋은데, 나한테 보여주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이번엔 그나마 나을지도 모르겠다. 피식 하고 웃을만한 글이 나오진 않을까. 그가 소설 얘기를 계속한다.


  -그는 해가 밝아서 도로 양옆이 보이지 않는 거리를 걸어오고, 그 끝에는 하얀색 벽과 핑크색 지붕을 가진 집이 있다. 그 안에는 내가 있고, 나는 쇼파에서 자고 있다. 그런 나를 잠시 보다가, 쇼파에 앉아서 말없이 쉬고 있다. 노란모기 한 마리가 그의 팔에서 피를 빨고 있다.

 -아니 노란 모기가 갑자기 왜 나오는 거야? 도대체가

 -노란 모기 좋잖아. 왠지 흔치 않은 것 같고. 전에 노란 모기를 본 적이 있거든.

 -어처구니없다 게다가 저 “내가“는 나야?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그렇지.

 -맘대로 출연시키지 말아줄래 기분 나쁘거든


 노란 모기는 jc가 전기요금을 내러 은행에 갔을 때 봤다고 한다. 시선처리가 부산스러운 강아지 같은 그가 길을 이리저리 훑으면서 걸어가던 중에, 공중전화기에 노란 모기 한 마리가 붙어 있는 걸 보고 가까이 다가갔다. 노란 모기는 날아가 버리고, 그는 수화기를 들어서 귀에 갖다 댔다.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말소리가 들려서 수화기를 내려놓고, 전기요금을 내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다. 노란 모기가 어쨌다는 건지 도대체.


-노란 모기가 말이야. 마치 계시 같다니까. 나한테 뭔가 할 말이 있는 거지.

-아 그런 소리는 이제 됐어 답답해

-아니야. 정말이라니까. 그 거무스름하면서 노란색의 모기가 할 말이 있던 거지. 그래서 수화기를 들었더니, 무슨 말소리가 들렸던 거야. 근데 무섭잖아. 돈도 안 넣었는데 무슨 말소리가 들려. 그런 일은 의외로 많다지만, 아무튼 기분 나빴음.

-그래서 뭐

-아니 그냥 그렇다고.


 정말 한심한 남자다. 한심한 이야기를 한심한 방식으로 하는, 100미터 달리기를 하면 25초에 들어올 것 같은 남자다. 사실 그의 고등학교 기록은 21초 였었다고 하지만, 나이도 들었으니 정말 25초일 거다. 진지하게 달려줬으면 좋겠는데.


-근데 노란모기 이야기는 그게 끝이 아니야. 거기서 끝날 리가 없잖아.

-듣고 싶지 않은데

-그냥 들어봐.

-싫어 다른 사람한테 해

-너 말고 들어줄 사람이 어딨냐?

-아 알았어 빨리 해


 마침 그날 저녁에 jc는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가 그에게 뭔가를 진지하게 물어봤다고 한다.


- 겉이 노란 물고기의 속이 무슨 색인지 아냐?

- 검은색

- 아. 맞아.


 jc가 정답을 말하자 친구는 당황했고, jc는 의기양양했다. 나는 jc에게 물었다.


 -왜 검은색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연하잖아. 노랑이랑 검정은 한 쌍이야. 공사장에 가봐. 노란색과 검은색을 섞어서 위험을 경고하는데 쓰고 있다고.

 -그게 언제 적 얘긴데?

 -응?

 -친구랑 그 얘기를 한 게 언제냐고.

 -한 10년 되지.

 -10년 동안 그렇게 생각한 거야?

 -응.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갑자기 jc가 안쓰러워졌다. 아마도 jc의 친구와 jc는 노란 물고기에 대해 그 후로 얘기해본 적이 없겠지.


-그건 붕어빵이라고! 이 멍청아!


 타자를 치려다 말았다. 어차피 10년이나 오해하고 있었다면 굳이 정정해줄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정정하는 게 문제가 될 것 같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라디오에서라도 노란 물고기의 정체를 알게 되겠지.


 -나 먼저 잔다

 -응. 난 농구하러 가야겠다.

 -이 밤에?

 -응. 조명을 켜주거든. 골대가 보이긴 보여.

 -그래 잘 놀아라


  그는 중학교 운동장의 농구대에 가서, 레이업을 연습하고, 점프슛을 연습한다.


-지금은 8월 25일 금요일, 오후 9시 25분 31초, 32초, 33초... 기온 28도, 맑음. 미풍....


 시합 종료 직전, 2점 뒤진 상황에서, 3점슛을 던지는 것을 상상한다. 그는 패스를 받고, 왼쪽으로 가려다, 오른쪽으로 가고, 다리 사이로 공을 드리블해서 다시 왼쪽으로 간다. 그리고, 뒤로 한 발 물러서서 상대방의 수비를 피해 높은 포물선을 그리는 3점슛을 던진다. 슛을 던진 후 뒤돌아서 승리를 예감하는듯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쥔다. 공은 림에 닿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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