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의 선주(先主) 유비는 사실 남색을 즐기던 인물로, 그 후사를 심히 걱정하여 일찍 '양자'를  들였다.
자신의 누이를 유비와 결혼시킨 미축은, 황실의 피가 섞이지 않은 양자 '유봉'을 탐탁치 않게 여긴 나머지 "구씨(寇氏)가 어찌 유씨(劉氏)의 천하를 노린다 말인가!"라며 공공연히 불만을 토하던 끝에 누이인 미부인의 수태를 획책한다.
 
감부인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흘려 유비의 발걸음을 미부인의 방으로 끌어오긴 했지만 이러한 미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부인이 아닌 감부인이 아들을 먼저 낳았으니 그가 바로 아명 아두((阿斗 ), 훗날 촉의 2대(二代) 황제가 되는 '유선'이다.

미천한 신분에서 유비의 아내로 신분이 상승한 감부인은, 미축으로 대표되는 가신 세력들의 견제 속에서도 꿋꿋히 아들에 대한 출생의 비밀을 숨기고 살았으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신이 죽어야 앞으로 유선이 유비의 아들로 제대로 행세할 수 있을 것 같기에 조조군의 추격 속에 우물 속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다. 

유선이 자신의 피붙이임을 의심하고 있던 유비는, 자신이 사랑하는 조운 자룡이 조조의 대군 속에서 목숨을 걸고 유선을 살려오자 오히려 호통을 치며 포대기에 싸인 핏덩이 유선을 땅바닥에 내던진다.

울먹이며 자룡을 끌어안는 유비.유비는 두 손을 들어 자룡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자식은 또 낳으면 되지만 자룡은 천하에 단 한 명 뿐인게요. 공은 어찌 이 내 마음을 모르시오."

훗날 삼국지 정사에는, 유비와 조운의 관계를 묘사하길, '조운이 유비 밑에 들어오자 유비는 조운과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잤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날의 전투 이후 조운 자룡이 위험한 전장에 선봉장으로 나가게 된 것은 선제 유비가 붕어한 이후의 일이었더라.

유비와 조운 사이의 이런 애틋한 사연을 모르는 항장(降將) 조범이 자신의 아리따운 형수를 조운에게 소개시켜주려 하였더니 조운이 길길이 날뛰며 화를 냈던 것도 이미 익히 알려진 바의 일이다.

어머니가 우물에 빠져 죽고 조운에 말에 태어져 아버지를 만났으나 그 사선을 거쳐온 핏덩이 아들을 바닥에 내팽개친 아버지의 행동은 유선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한나라 경제의 몇대손임을 어릴 때부터 자부해왔던 유황숙이었지만 친아들인 자신을 향해 한나라 황실의 몇대손이라는 얘기는 해주지 않는다.

자기 자신조차도 자신의 핏줄에 대해 의심하고 있던 유선은, 나라의 일보다는 자신의 향락, 순간의 쾌락에 취해 버린다. 이런 유선에게 접근한 환관 황호는 감부인과 미씨 가문에 대한 과거 이야기를 들려준다. 불쌍히 죽어간 자신의 어머니 감부인을 미씨 가문이 핍박했았다는 얘기를 듣게 되자 어린 유선의 마음 속엔 응어리가 폭발한다.

구씨 핏줄의 유봉은, 유선의 황태자 등극으로 인해 권력 싸움에서 완전히 밀려난 뒤 변방의 전선을 떠돌다가 관우 사망의 책임자로 지목되는 수난을 겪게 된다. 촉 전국민의 분노가 몰리게 되자 유봉은 자신의 운명은 여기가 끝임을 느끼고 자살한다. 

어머니 감부인을 학대했으며 자신의 혈통에 대해 의심의 눈을 거두지 않았던 미씨 가문에 대한 '유선'의 분노는, 오나라로 투항했던 '미방'과 그 가문으로 향한다. 당대의 대부호이자 촉나라의 명문가였던 미씨 가문에 대한 전격적인 국문이 거행되려 하자, 미방의 형 미축은  유선의 분노는 자신을 향한 것임을 알고 통곡 끝에 피를 토하여 죽어갔다. 미축이 죽은 뒤 국문은 중단되었다.

유선의 어리석음을 일찌기 알고 있었기에 그 인물됨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던 황제 유비는, 임종 직전 승상 제갈량을 불러 "이 아이 유선에게 살릴 만한 가치가 없다면 승상이 나라를 차지하라"며 황제의 자리를 제갈량에게 물려주려고도 하였으나 제갈량은 유비의 그러한 제안을 거부하였다고 한다. 

유비의 동생 관우의 핏줄이라면 형인 유비의 대(代)를 이어도 되지 않겠는가... 승상인 자신이 황위에 오르는 것보다 황태자인 유선이 황제 자리를 물려받는 것이 세상의 법도에 맞는 것이라고 공명은 생각했던 것이다. 일개 신하의 위치에 불과한 자신이, 어린 황제가 어리석다하여 그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려 한다면 저 패역무도한 허도(許都)의 조씨 무리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명민한 제갈량은 유선에 대한 출생의 비밀을 오래 전부터 눈치채고 있었기에 그 아비되는 관우를 먼 형주로 내보내었던 것이니 후세 사람들이 그 일에 대해 가타부타 어떤 하마평을 하든 그것이 촉의 안녕과 궁중의 질서를 위해 제갈량이 당시에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방법이자 유일한 방책이었다.

감부인과 관우, 과거 한순간의 실수를 저질렀던 남녀는 젊은 날의 비밀을 가슴 속에 깊숙이 간직한 채 이미 세상을 떴다. 홀로 남은 제갈량은 유비와 관우 두 형제의 의리를 한 줌의 음약(淫藥)으로 이간질하려했던 조조 맹덕의 지난날 그 맹랑함에 혀를 차며 '북벌'을 준비하려 한다. 그것이 돌아가신 선황제 유비의 '사랑'에 보답하는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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