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소설] 불안

2011.08.15 21:45

방목하다 조회 수:4072

소녀는 종종 친구들과 선후배가, 아는 선생들이, 알몸이 되어 뒹구는 장면을 상상했다.

이런 생각을 내가 왜 하고 있지? 와 설명할 수 없는 야릇함ㅡ하지만 쾌락까지는 아닌ㅡ사이에서 소녀는 열심히 노트에 필기를 하고 있었다.

'저 화학선생은 의외로 침대에선 큰 소리를 낼 것 같아. 국사선생과 붙여주면 좀 낫겠지. 덩치가 그리 크진 않아도 왠지 지구력 있어 보이고 연륜이 있을 것 같은데.'

신음을 흘리며 정신없이 움직이는 까무잡잡한 몸과 작고 단단한 몸을 상상하며 소녀는 이 상상도 언젠간 집어치울거란 생각을 했다.

그 상상들은 성욕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소녀는 그런 상상을 하면서 손을 놀리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상상만으로 오르가즘에 도달할 수 있다던가 한번 해보고 싶은 상대를 상상하는 것은 소녀에게 큰 흥미거리가 아니었다.

그 순간에 아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조차 이상한 느낌이 드는데 그걸로 어떻게? 가 소녀의 생각이었다.

그저 소녀는 시간을 때우려는 것이었다. 소녀의 생각속에서 영상화가 제일 잘 되는 것은 음식과 성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그저 머릿속을 채울 무언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오늘은 무언가 달랐다. 아는 선배가 남자친구의 집에 놀러갈 거라는 말을 한 것을 떠올리며 해선 안될 상상을 하던 소녀는 자신이 흥분ㅡ야릇한 느낌을 넘어서 쾌락으로 넘어가는 단계ㅡ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녀는 충격받은 듯 상상을 멈췄다.

소녀는 그 선배를 성적 대상으로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친한 그 선배가 갑자기 이런 상상에 나타난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런 상상에 소녀는 흥분하기까지 했다.

친 언니처럼 잘 대해주는 그 선배가 좋아서 잘 따르던 소녀였다.

'설마 내가 그쪽으로 선배를 생각하고 있는 걸까? 선배와 같이 있던 시간이 좋았고. . . (소녀는 자신이 선배와 웃고 떠들다가 선배가 팔짱을 끼던 장면을 떠올렸다) 설마 그 선배도 내가 무언가 알게 모르게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는 건 아닐까?'

소녀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선배가 이런 감정들을 알고 있어서 소녀를 자꾸 불러내는 건 아닌지, 그 선배의 스킨쉽도 그런 감정들을 알고 일부러 하는 것이 아닌지, 남자친구 얘기를 많이 하는 것도 자신의 그런 감정들을 알고 일부러 질투나게 하려고 하는 것인지 소녀는 불안해졌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할테니까 졸린 사람들은 엎어져 자."

그 말에 소녀는 엎어져있는 아이들 사이를 빠져나가 창가에 팔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야."

갑자기 소녀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하는 친구에 소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이리 놀래냐. 야 너... 샜어."

자신의 자리로 눈을 돌린 그녀는 의자에 피가 묻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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