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 소녀 3명이 책과 미니어처 무대 만들기 수업을 위해 무슨 글을 갖다 쓸까 고민하다가 Frozen을 패로디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문장만 좀 다듬어주었을 뿐 아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서 쓴 글인데, 제법 재미있어서 올려봅니다. 
이맘 때 다들 그런건지 오히려 어른스러운 표현을 쓰고 싶어해서 문맥에 안맞는 말들을 빼내고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네요.
제목도, 그렌델 왕국의 현실 이라고 하고 싶다는 걸 겨우 전설이라고 바꾸었답니다. 왜 현실이란 말을 썼냐 물어보니 그게 멋있대요ㅜㅜ

무대의 배경을 분담하기 위해 글을 세 가지 장면으로 나누었는데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3부는 아직 줄거리만 나와있고 완성되진 않았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이 계시면 나중에 또 올릴게요^^

 
1. 궁전 앞 광장 - 공주들의 18세 생일 파티
2. 밤거리 – 허니스토프와의 만남
3. 플라민의 결혼식 - 허니머스터드의 전설





그렌델 왕국의 전설




질 좋은 머스터드 생산국으로 유명한 그렌델 왕국의 전설은 먼 옛날 왕국의 주인이었던 쌍둥이 공주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렌델 왕국에는 쌍둥이 공주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특별한 능력이 있었는데, 왕과 왕비는 그것을 공주들에게 감췄다. 왜냐하면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자유롭게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데, 18살이 되기 전에 알게 되면 함부로 능력을 사용할까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주들이 어릴 때 사고로 죽은 왕과 왕비는 편지에 그 능력에 대한 설명과 당부하는 말을 미리 써 놓았다. 그 편지는 신하들이 잘 감추어두었다가 18세 생일 아침이 되어야 볼 수 있도록 했다. 드디어 공주들이 18세 생일을 맞이했고 왕과 왕비의 편지를 읽었다. 이제 능력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1. 궁전 앞 광장 - 공주들의 18세 생일 파티
 

왕국의 모든 백성들이 쌍둥이 공주들의 18살 생일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궁전 앞 광장에 모였다. 광장 구석에서 공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잘못해서 파티장이 차려진 광장의 중심으로 공을 던졌다. 위험한 순간이었다. 두 공주 중 언니인 그레이민 공주는 그 공을 맞을 수 밖에 없는 자리에 서 있다. 떠들썩하던 사람들이 날아오는 공을 보며 "오오오~! 공 조심해!" 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때 그레이민은 본능적으로 얼굴을 가리며 공을 손으로 쳐냈다. 가느다란 그레이민의 팔이 부러지지는 않았나 걱정했던 사람들은 바닥에 터져서 나뒹구는 포도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헐, 공은 어디 가고 포도만 터져서 굴러다니지?'
 
놀란 사람들을 보고 그레이민 공주가 말했다.
 
'여러분 사실 저는 모든 것을 포도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만지는 모든 것 뿐 아니라 손끝에서 원하는 대로 포도를 만들 수 있어요.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가 18살 생일 아침에 열어보라고 하신 편지에 그렇게 써있었어요. 제가 원할 때라면 언제라도 포도를 무한정 만들 수 있다고... 공이 날아올 때는 너무 놀라서 저도 모르게 그만 공을 포도로 만들어버렸네요.'
 
처음에는 놀라서 술렁이던 사람들이 어느새 환호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이제 부자야! 공주님이 무엇이든 포도로 바꿀 수 있다니 값비싼 포도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가 되었군!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팔 수 있는 것은 고작 머스터드 뿐이었는데.... 그레이민 공주 만세! 만세!'
 
그 때였다. 떠들석한 광경을 구석에서 지켜보던 동생 플라민 공주가 한발짝 앞으로 걸어나오며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저도 능력이 있답니다. 오늘 아침 읽은 어머니의 편지에는 저의 비밀스러운 능력에 대해서도 써있었어요.'
 
평소에 말수가 적은 플라민 공주가 말문을 열자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놀라 플라민 공주를 바라봤다. 플라민 공주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자기 앞에 놓인 삶은 계란 바구니를 톡 건드렸다. 그러자 가득 쌓인 계란이 후두둑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계란이 담겨있던 바구니 안에는 흙처럼 보이는 것들이 수북했다.
 
'에이, 저게 뭐야? 흙인가? 토끼똥인가? 모래나 먼지 덩어리 같기도 한데? 어쨌든 그레이민 공주가 만든 탐스러운 포도에 비하면 너무 초라하잖아'
 
수근거리던 사람들은 야유를 하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던 플라민은 부끄러움과 질투가 분노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의 편지에는 분명히 내게 값지고 아름다운 걸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써있었는데! 이게 뭐야! 너무 부끄럽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어!'
 
플라민은 급하게 파티장를 빠져나와 혼자 있을 수 있는 자기만의 비밀장소로 달려갔다. 정신 없이 달리던 플라민은 아까 만든 것들을 자기도 모르게 움켜쥐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도 남김 없이 구석진 곳의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2. 밤거리 – 허니스토프와의 만남
 

플라민은 생일 파티 이후 자기 방에서 밖에 나오지 않고 혼자 지냈다. 플라민의 우울함을 달래주려 언니 그레이민이 자주 찾아왔지만 만나지 않았다. 여러 번의 낮과 밤을 방 안에서 혼자 보낸 플라민은 외롭고 심심했다.
 
‘오늘 밤은 너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어. 이렇게 어두운 밤이니 내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 왕궁 밖으로 나가 산책이라도 해야겠구나.’
 
플라민은 모두들 잠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서둘러 왕궁 밖으로 빠져나갔다. 왕궁 밖으로 나오니 답답한 가슴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플라민은 생각에 잠겨 천천히 왕궁 주변의 길을 걸었다. 눈썹 같은 초승달이 떠 있을 뿐, 불빛이 없이 깜깜한 거리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 너무 왕궁과 멀어지기 전에 돌아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빠르게 걷기 시작했을 때였다. 플라민은 바람처럼 목덜미를 스쳐가는 재빠른 것을 느꼈다.
 
‘꺄아아아아아악!!!!!!!!’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플라민이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보석 목걸이를 누군가 순식간에 채간 것이다. 그 때, 플라민의 비명 소리를 들었는지 저 멀리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으세요 아가씨? 제가 저놈을 잡아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플라민은 영문을 모르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둠 속에서 희미한 남자와 작은 동물이 수레를 끌고 플라민에게 다가왔다.
 
‘자 여기, 찾은 걸 보세요. 잃어버린 게 이 목걸이 맞죠? 까마귀 녀석이 범인이었어요. 원래 까마귀는 반짝거리는 걸 좋아하고 모으는 버릇이 있거든요. 저와 이 친구가 같이 까마귀를 유인해서 목걸이를 돌려받았답니다. 많이 놀라셨어요?’
 
남자는 분홍색 돼지와 함께 플라민의 목걸이를 들고 있었다. 플라민은 남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수없이 했고 둘은 서로를 소개했다. 남자의 이름은 허니스토프, 애완동물인 돼지는 핑핑이라고 했다. 허니스토프는 꿀 장수였다. 수레에는 내일 팔아야 할 꿀 항아리들이 잔뜩 담겨있었다. 허니스토프는 대대로 꿀을 팔던 집안의 자손이었는데,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플라민은 왕국의 공주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친절한 허니스토프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동안 속상했던 마음을 허니스토프에게 털어놓았다. 쓰레기통에 버린 먼지와 흙 덩어리 얘기를 듣고, 허니스토프는 약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왕비님께서 공주님이 만들어내는 것은 분명히 값지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면서요. 세상의 많은 것들은 한번만 봐서는 알 수 없어요. 쓸모 없어 보이는 것도 쓰이기에 따라서는 소중한 것이 될 수 있다고요. 어디에 버렸다고 하셨어요? 그게 뭔지 궁금해요. 한번 가볼까요?’
 
허니스토프의 말에 플라민은 조금 고민을 하다가 후미진 구석에 있는 쓰레기통으로 허니스토프를 데려갔다. 거기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핑핑이는 제 자리에서 열 번쯤 튀어올랐고,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아, 아름다워라!’
 
쓰레기통에는 희미한 달빛을 반사하는 화려한 꽃들이 가득 피어있었다. 플라민이나 허니스토프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꽃들이었다. 먼 외국의 꽃들과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던 꽃들,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꿈이나 상상 속에만 등장하던 꽃들이 황홀한 향기를 내뿜었다. 쓰레기통은 더 이상 더럽지 않았다. 오히려 왕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밭 같았다. 플라민은 깨달았다. 자기가 만들어낸 값지고 아름다운 것은 바로 귀한 꽃씨들을 품은 흙이었다는 것을.
 
‘자, 더러운 흙더미가 어디있죠? 여기 이것들을 공주님이 만든 게 맞죠? 저는 왕비님 말씀대로 이것들이 매우 값지고 아름다워 보이는데요? 물론… 이 모든 꽃의 아름다움을 다 합해도 공주님보다는 덜 아름답지만요.’
 
허니스토프의 말에 핑핑이는 너무 부끄러워 꿀항아리 뒤에 숨었고 플라민은 얼굴이 빨개졌다. 플라민은 어서 아침 해가 떴으면 했다. 두 가지 소식을 어서 그레이민 언니에게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는 것과 처음으로 좋아하는 남자가 생긴 것 같다는 두 가지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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