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빨간 거미

2014.06.02 11:49

catgotmy 조회 수:2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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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이 마지노선입니다.“

 

  “그러니까, 3일이 마지노선인가요.”

 

  같은 문장으로 되묻는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상대는 말을 계속했다. 나도 대화를 계속 했지만, 그저 말을 할뿐이었다. 별 의미는 없다. 팔에 쌀알만한 거미가 붙었다. 빨간색이다. 손으로 치우려고 했지만 손목에 가까운 쪽으로 이동했다. 거미가 날개가 있나?  미끄러지듯이 공중에서 이동했다. 손가락으로 눌러서 그었더니 희미한 빨간색 선이 그어졌다.

   대화가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돌아가면서 빨간 거미에 대해 생각했다. 작다고는 하지만 쌀알 정도의 크기를 손으로 눌렀는데 아무런 감촉이 없었다. 빨간색 선이 바로 사라진 것도 이상했다. 닦아내기 전에는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초등학교 교실에 앉아서 창밖을 본 게 기억났다. 나무의 그림자를 본 것 같은데 왠지 무서웠다. 왜 무서웠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선생은 뭔가 말하고 있었고, 떠드는 아이는 없었다. 선생이 뭐라고 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엔 교회에서 예배드린 일이 기억났다. 목사는 정말 중요한 것을 말하는 것처럼 진지했지만, 난 아무래도 좋았다. 지겨웠다. 그래서 상상을 해보려고 했다. 앉아서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으니까. 뭘 상상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목사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아무 것도 없는 상태를 상상한 것 같다.

   할머니의 장례식을 생각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할머니 장례식이라고 하자 친구는 당황했고, 기운을 내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기운을 낼 필요가 없었다. 슬프지 않았으니까.

   빨간 거미도 빨간 거미의 흔적도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지금은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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