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 애프터눈 Gaudí Afternoon (1991)

2010.03.17 10:26

DJUNA 조회 수:10410


카산드라 라일리는 런던에 거주하며 스페인어 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미국인 번역가입니다. 한참 [La Grande y so hija]라는 베네주엘라 소설을 번역 중이던 그녀는, 친구의 친구를 자처하는 프랭키 스티븐즈라는 여자한테서 부탁을 받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실종된 남편 벤을 찾으려고 하는데, 통역일을 해달라고요. 프랭키가 약속한 3천 달러에 훌렁 넘어간 카산드라는 번역하던 책과 노트북을 챙겨들고 바르셀로나로 떠납니다. 하지만 카산드라가 말려든 사람들(프랭키, 벤, 벤의 애인 에이프릴, 에이프릴의 학교 친구라는 해밀턴)은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고, 겉보기와 실제 모습이 같은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이들의 겹겹으로 쌓인 거짓말과 가면들은 프랭키와 벤의 딸 딜라일라가 끝도 없이 실종되었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동안 하나씩 폭로되기 시작합니다...


바바라 윌슨의 [가우디 애프터눈]은 아마추어 탐정 카산드라 라일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추리소설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입니다. [Trouble in Transylvania], [The Case of the Orphaned Bassoonists], [The Death of a Much-Travelled Woman]으로 이어지는 이 시리즈는 일종의 여행기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카산드라가 번역가이자 여행가인 이유는 루마니아, 이탈리아, 스페인의 이국적인 배경 속에서 유쾌한 미스터리와 대적하기 위해서지요. 아마 카산드라의 성격에는 방랑벽이 심한 번역가인 작가 바바라 윌슨 자신의 모습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을 겁니다. 종종 윌슨은 자신이 유럽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과시하기 위해 스토리를 멈춰세우고 관광 가이드 노릇을 하기도 해요.


아까도 말했고 말하지 않았어도 제목만으로도 짐작하셨겠지만, [가우디 애프터눈]의 무대는 바르셀로나입니다. 바르셀로나가 무대인 이유는 역시 가우디 때문입니다. 카사 밀라나 구엘 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같은 가우디의 정신나간 건물들은 이 추리소설의 미친 스토리에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배경이거든요.


[가우디 애프터눈]은 한마디로 가면극입니다. 끝도 없이 튀어나오는 반전들은 모두 가면 벗기기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캐릭터들이 쓰고 있는 가면들은 모두 성적 정체성이나 취향과 연결되어 있지요. 이 소설에 나오는 비중있는 인물들 중에 일상적인 이성애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만 봐도 분명하지 않아요? 바바라 윌슨은 기존 사회가 규정한 성역할을 멋대로 부수고 재조립하면서 즐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쉽게 페미니즘이나 성정체성에 대한 지리한 강의로 떨어질 위험이 강하지만, 정작 그런 위기에 빠지기엔 소설이 너무 밝고 경쾌합니다. 카산드라의 이죽거리는 화술도 이 소설의 분위기를 떨어뜨리지 않는 중요한 이유고요. 주인공 탐정치고는 은근히 순진하고 상당히 맹한 카산드라 라일리라는 캐릭터도 무척 귀여워요. 그렇게 믿을만한 탐정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상관 없지요. 소설은 미스터리 해결보다는 소용돌이와도 같은 플롯 속에 주인공을 빠트려 놓고 당황해하는 걸 보고 즐기는 편이니까요.

[가우디 애프터눈]은 살인이 단 한 건도 등장하지 않고, 소설이 끝나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추리소설입니다. 가끔 이런 추리소설이 나와도 상관 없을 것 같아요. 언제부터 '추리'와 '범죄'를 연결시키는 게 장편 추리소설의 절대적인 규칙이 되었죠? (02/10/21)


Barbara Wilson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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