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초대]

듀나 요새 피터 그리너웨이의 [차례로 익사시키기]가 언급되는 글을 하나 쓰는 중인데, 자연스럽게 [위험한 초대]에 생각이 닿더군요. 그리너웨이의 영화에서는 너무 규칙이 어려워서 사람들이 간신히 규칙을 익힐 무렵에 끝나버리는 게임이 나오죠. [위험한 초대]에서...

파프리카 하지만 [위험한 초대]의 규칙은 그렇게 복잡한 편이 아니지 않나요?

듀나 네, 규칙 자체는 간단하죠. 하지만 게임은 보기보다 복잡하거든요.

안보시는 분들을 위해 여기에 대해 설명하기로 하죠. [위험한 초대]는 KBS 2TV의 [슈퍼 TV 일요일은 즐거워]의 코너입니다. MC들은 '고품격 토크쇼'라지만 이건 사실 일종의 게임 쇼입니다. 게임의 규칙은 다음과 같아요. 네 명의 MC들이 수영장 가장자리에 앉아 여자 초대손님과 대화를 나눕니다. 네 MC들은 모두 각자 동작과 대사의 지령을 비밀리에 배정받는데, 초대손님이 특정 동작을 하면 해당되는 MC 머리 위에서 물이 쏟아지고('겸손포') 특정 단어를 말하면 의자가 MC를 수영장으로 날려버립니다('플라잉 체어'). 여기까지 오는 데 [위험한 초대]는 몇 차례 진화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예전에는 밑에서 물대포를 쏘거나 조용히 의자를 뒤로 젖혀 MC들을 넘어뜨리기도 했어요. 중간중간에 동작 지령이 사라졌다가 나타나곤 했고요.

기본 규칙만 따진다면 [위험한 초대]는 우연의 조합을 이용한 룰렛과 같은 게임입니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단어와 동작을 제공해주는 초대손님은 MC들과 마찬가지로 자유의지를 가진 게이머입니다.

파프리카 임성민 아나운서를 빼먹었어요. 모든 지령을 사전에 알고 있기 때문에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잖아요.

듀나 아뇨, 임성민 아나운서는 게이머가 아닙니다. 모든 지령들을 처음부터 알고 있으니 그 사람이 게이머라면 불공정한 게임이 되겠죠. 임성민 아나운서의 임무는 전체적인 흐름을 정리하고 이퀄라이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령을 고르게 퍼뜨려서 모든 MC들이 골고루 당하게 만드는 거죠.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게임의 목적은 이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거죠?

파프리카 어떻게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지령을 빨리 알아내서 다른 사람들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자주 물에 젖게 하는 동시에 자기는 될 수 있는 한 곤경에서 벗어나는 것?

듀나 네, 그게 게임의 목적처럼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 게임의 승자는 초대손님에게 '최고의 남성'으로 지명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남성'으로 지명되는 건 물에 덜 젖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거든요. 오히려 물에 자주 빠지는 사람들이 동정표를 얻어 '최고의 남성'이 되는 경우가 많죠.

파프리카 '최고의 남성'이 되는 것에 그렇게까지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자주 빠지는 사람들이 늘 동정표를 얻는 것도 아니잖아요. 전 이게 이중의 게임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을 물에 많이 빠트리고 자기는 덜 빠지는 게임을 하면서 초대손님에게 호감을 얻는 게임을 동시 진행하는 거예요. 물에 빠트리기 게임에는 따로 상이나 벌을 줄 필요없죠. 물에 젖는 징벌의 효과가 즉시 나타나니까요.

하여간 왜 [차례로 익사시키기]를 떠올렸는지 이제 알 것 같네요. 규칙은 단순하지만 게이머들이 그 규칙에 따라 게임을 진행하려면 토크쇼를 위장한 게임 과정 중 지령을 알아내야 하는데, 그건 그리너웨이가 묘사한 그 복잡한 게임과 비슷하네요.

듀나 우리가 또 잊고 있는 게 있어요. 그건 초대손님이죠. 초대손님은 누가 빠지는지 상관않고 그냥 자기 이야기를 해도 상관없지만 가장 중요한 게임의 키를 쥐고 있고 그걸 능동적으로 이용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초대손님의 게임 목적은 무엇일까요?

파프리카 어떻게든 자기 지령을 이용해서 모든 MC들을 물에 자주 젖게 하는 것?

듀나 역시 원칙만 따진다면 그렇죠. 하지만 그게 보기만큼 간단하지는 않잖아요? 만약 초대손님이 알아낸 지령을 일부러 반복하며 특정 MC를 계속 물에 빠트린다면 쇼는 재미없어집니다. 너무 쉬우니까요. 신애가 그랬던 것 같아요. 알아낸 지령을 끝도 없이 반복하며 같은 사람을 곤경에 빠트렸는데, 그 때는 그냥 무례하게만 보였을 뿐 재미는 없었습니다. 초대손님이 지령 파악을 전혀 못하고 게임에 관계없이 자기 말만 해도 덜 재미있습니다. 우연히 만들어내는 조합이 자기 역할을 하긴 하지만 초대손님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는다면 그건 룰렛 게임 이상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게임은 여전히 초대손님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해요. 하지만 정말로 적극적이길 바라진 않는단 말이죠.

게임쇼가 전체적으로 성공하는 데엔 몇가지 공식이 있어요. 우선 초대손님이 지령을 빨리 알아냈고 될 수 있는 한 예절바르게 외면하려 하지만 굳어진 습관 때문에 MC들을 계속 물에 빠트릴 때가 있어요. 다른 하나는 역시 초대손님이 지령을 빨리 알아냈지만 알아낸 지령만 반복해서 쓰는 대신 그 지령을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때입니다. 권선징악이나 역습, 자기방어도 좋지만 가장 좋은 건 지령을 적절하게 조합하는 것입니다. 가장 최근 예가 오승현이었지요. 이 사람은 단 한 문장에 네 개의 구두 지령을 모두 넣어서 네 명의 남자들을 한꺼번에 빠트렸어요. 그건 마치 추리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명탐정이 지금까지 나온 단서들을 엮어 진상을 밝힐 때처럼 통쾌했어요.

어느 경우이건 성공적인 초대손님은 MC들만큼 지령을 빨리 알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령을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이용해야 해요. 제 생각엔 초대손님에게 이 게임은 축구나 야구같은 기록 게임이 아니라 리듬 체조나 피겨 스케이팅처럼 전체적인 예술적 인상과 기교를 평가하는 게임 같아요. 어떤 경우이건 주변의 남자들을 물에 자주 빠트려야 하는 건 변함이 없지만요.

파프리카 그러고보면 MC들에겐 [위험한 초대]가 권투같은 투기 같네요.

듀나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이 게임이 복잡한 건 다른 목적의 게임들이 공존하기 때문이기도 할 거예요.

게임의 규칙 뒤엔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위험한 초대]에 투영된 남녀 관계지요. 이 게임에서 여성인 임성민 아나운서와 초대손님은 처벌에서 제외되어 있고 주변에 있는 남자들을 자기 의지대로 물에 빠트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서로를 물에 빠트리기 위해 초대손님의 힘을 빌려야 하고요. 그리고 지금까지 [위험한 초대]의 초대손님들은 대부분 여자들이었어요. 김건모만 빼고요. 그리고 김건모가 나왔을 때 그 사람은 처벌에서 제외되지 못했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 지령에 물을 맞아야했지요.

파프리카 반대였다면 불편하지 않았겠어요? 완전히 양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그 반대는 남녀 시청자들 모두에게 굉장히 폭력적으로 보일 겁니다. 하지만 여자들이 남자들을 빠트리는 건 코믹한 오락입니다.

듀나 네, 제가 지적하려고 하는 것도 그거예요. [위험한 초대]의 여성우위는 페미니즘과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중세의 기사도처럼 구식 가치에 맞추어져 있지요. [위험한 초대]의 초대손님들은 모두 엄지손가락 끝을 밑으로 내려 검투사들의 숨통을 끊는 로마의 귀부인들 같습니다.

어느 정도 문명화된 사회라면 아무리 남성우월적이라고 해도 여자들에게 숨통을 열어주고 보호해주는 장치들이 있습니다. 중세의 기사도와 여성 숭배도 그 중 하나였지요. 이슬람권의 일부다처제는 지금 와선 굉장히 남성우월적으로 보이지만 당시엔 여성들을 보호하는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여전히 남성중심적이었지요. 여성들을 그런 식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 문화의 남성중심주의를 입증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 세계에서 어떻게든 자기 힘으로 꼭대기까지 올라간 여성들은 대부분 그 남성 세계의 규칙에 자신을 맞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이 게임의 암묵적 규칙 자체가 그래요. 여자들은 물세례에서 보호됩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들은 자신의 힘을 적정 수준 아래로 제한해야 하지요. 이 게임쇼의 성공적인 여자초대손님들은 모두 그런 규칙에 자신을 맞춘 사람들입니다. 적당히 날카로운 위트를 발휘해서 자신이 얼마나 흥미로운 사람인지 시청자들과 MC들에게 알리지만 정작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이 얼마나 위협적인지는 될 수 있는 한 직접적으로 폭로하지는 않는 거죠. 이건 그들이 그런 성격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암묵적인 게임의 규칙 속에서 이미지 메이킹이 목적인 (여자) 연예인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파프리카 꼭 그렇게 성대결의 측면으로만 볼 필요가 있을까요? 초대 손님과 진행자 아나운서가 게이머들인 MC들과 맺는 파워 게임은 그들을 모두 남자로 교체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김건모도 꼭 물세례를 받을 필요는 없었잖아요.

듀나 그런 측면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성역할이 분명한 게임쇼이니 어쩔 수 없이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거죠. 여전히 초대손님들은 여자들이고 MC들은 남자들인 걸요. 무시할 수가 없어요. 만약 남녀 구분을 무시하고 MC들과 초대손님들을 배정한다면 뭔가 빠진 것 같아 보일 겁니다. 그건 이 게임의 형식 자체가 시청자들이 가지고 있는 남녀 관계의 선입견을 남몰래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릴레이 만장일치]

파프리카 이번엔 [슈퍼 TV 일요일은 즐거워]의 새 코너인 [릴레이 만장일치]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해요. [릴레이 만장일치]는 [위험한 초대]처럼 우연을 이용한 게임입니다. 이 코너에서는 송은이와 강병규가 거리로 나가 몇몇 지원자들을 뽑아서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은?", "남자들을 선택하는 첫번째 조건은?"과 같은 질문을 길가는 사람에게 하게 합니다. 사람들이 연달아 열 개의 같은 대답을 하면 참가한 지원자들의 이름으로 자선 단체에 돈이 갑니다.

듀나 자선 행위야 저 알바 아니지만 전 그 코너가 별 재미 없습니다.

파프리카 재미없는 건 잊는다고 해도 전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게임의 목표는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모으는 거잖아요. 한 주제에 대해 똑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게임에 유리합니다. 그것도 단순하게 지원자가 게임에서 이기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자선 단체에 돈이 들어가요. 다시 말해 주제의 내용과 상관없이 의견일치가 잘 될수록 '선'이 됩니다. MC들은 계속해서 이것이 사람들이 특정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내려는 것이지 통일된 생각을 강요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게임의 목표가 그렇다면 아무리 그런 변명을 늘어놓아도 소용 없지요.

듀나 전 그런 위험성보다는 게임 자체의 지루함을 지적하고 싶은데요. [위험한 초대]가 재미있는 건 진행자인 임성민을 포함한 여섯 명의 사람들이 모두 온갖 책략을 동원해서 다른 사람들과 전쟁을 벌이는 지능전이라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릴레이 만장일치]에는 그런 게 없어요. 그냥 길가는 사람들을 잡아 질문하는 게 전부지요. 거의 주사위 던지기를 보는 것 같답니다. 돈이 걸려 있지 않는 한, 확률만으로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게임을 만들 수 없어요. 게이머가 어떻게든 그 확률과 싸워야 하지요.

전 개선할 수 있는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해요. 고려대였던가? 하여간 저번 쇼에서 "대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뛰었던 학생 한 명이 해결책 비슷한 걸 제시했죠. 연속해서 '취업문제'라는 답을 얻는 데 실패하자 그 학생은 파트너였던 강병규를 마구 때리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그러니까 예쁜 사람들만 쫓아가니까 이런 일이 생기잖아요!" 강병규의 바람기를 지적한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건 사실 개선된 게임의 형식을 암시하고 있어요. 만약 지금처럼 하나의 팀이 나서는 대신 두 개의 팀이 동시에 경쟁을 한다면? 그리고 그 질문이 지원자가 머리를 써서 답변자를 가려낼 수 있는 여지를 허락한다면? 그렇다면 의식조사라는 허울뿐인 목표는 사라지겠지만 답변자를 찾는 행동이 지금의 주사위 던지기와 달리 진짜 지능적인 게임이 될 겁니다. 자연스럽게 승률도 높아져서 자선 단체에 들어가는 돈도 많아질 거고요.

파프리카 그러나 그렇게 해도 그 코너가 그렇게까지 발전할 것 같지는 않군요.

듀나 그건 그래요...

[공포의 쿵쿵따]

듀나 [공포의 쿵쿵따]는 [슈퍼 TV 일요일은 즐거워]의 제1부였던 [MC 대격돌]의 일부였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코너지만 지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시각의 달인]보다 언급할 가치가 있는 것 같군요. [쿵쿵따]는 아직도 다양한 오락거리가 없어 헉헉거리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흥미진진한 전국민적 오락 하나를 제공했습니다. 그것만해도 상당한 업적이었어요.

쿵쿵따는 새로운 게임은 아닙니다. 원래부터 존재했던 단순한 말잇기 게임이지요. 여기서 거의 천재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그 단순하고 뻔한 게임에 입에 착 달라붙는 '쿵쿵따리 쿵쿵따'라는 반복구를 붙이고 글자 수를 제한해서 훨씬 박진감있는 게임으로 만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게임에서 정말로 중요한 건 형식이란 말이에요.

파프리카 그 단순한 말잇기 게임이 반복되면서 점점 어휘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 역시 지적하고 싶네요. 처음엔 단순히 네 명의 MC들이 서로와 경쟁을 하는 정도였지만, 게임이 인기를 얻어가면서 시청자들의 참여가 높아졌습니다. 까다로운 단어에 걸려 특정 MC가 게임에서 반복해서 지면 순식간에 그 해답을 찾는 전국적인 어휘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단순하고 사디스틱한 게임은 상당히 교육적이기도 했어요. 이 게임이 없었다면 '슭곰발'같은 단어가 지금처럼 친숙해지지는 못했겠지요.

듀나 강호동, 이휘재, 유재석, 김한석이 출연했던 1기와 주영훈, 강병규, 강성범(처음에는 임창정이었습니다), 신정환으로 구성된 2기 사이엔 분명한 차별성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형식적인 차이였지요. 1기의 클래식 쿵쿵따는 세 자 단어들만 다루었지만 2기 때는 세 자와 두 자가 번갈아 나왔지요. 처음엔 '쿵쿵따리 쿵쿵따'라는 반복구를 '쿵따쿵따'로 바꾸기도 했지만 그렇게 잘 흘러가는 편이 아니어서 곧 원래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파프리카 보다 분명한 차이점은 게이머들의 개성과 관련있지 않나요? 1기는 기본적으로 강호동과 이휘재의 일대일 정면 대결이었습니다. 하지만 2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가장 못하는 신정환이었습니다. 가장 능숙한 게이머인 강성범은 오히려 그 그늘에 가려졌지요.

듀나 2기로 접어들면서 [MC 대격돌]은 사디즘적인 요소가 점점 강해졌습니다. [쿵쿵따]도 그랬고 그 뒤에 만들어진 [위험한 초대]도 그랬지요. 신정환의 박해당하는 이미지는 곧 다양한 농담으로 전환되었고요. 특히 주영훈은 단골 박해자였습니다. 나름대로 재미를 위해서였다고 생각하지만 결과는 별로 좋지 못했어요. 주영훈이 고안해낸 물대포의 입구를 다양한 물건들로 막아 '쇼'를 연출하는 장난은 게임의 흐름과는 상관없는 위험한 놀이였습니다. [쿵쿵따]에서 신정환과 건 내기에서 지지 않기 위해 억지를 쓰는 건 거의 혐오스럽기까지 했어요. 이럴 땐 변명으로 질질 끄는 대신 빨리 정당하게 해결해야 했습니다. 게임의 공정성이 파괴된다면 재미도 떨어지니까요. 주영훈이 이 코너에선 비교적 존재감이 없었던 강성범과 함께 나가고 유재석과 이혁재가 들어오면서 코너의 분위기는 조금 나아졌습니다. 힘의 균형이 잡힌 거죠.

파프리카 [위험한 초대]에서 이혁재가 다른 사람 의자의 부속품을 뽑는 장난을 쳤던 건요? 그것도 결코 공정한 장난은 아니지 않았나요?

듀나 게임의 흐름을 끊는 의미없는 장난이었지요. 네, 재미도 없었고 공정하지도 않았어요. 다행히도 그런 장난은 곧 그쳤습니다. 효과가 없다는 걸 알아서 그랬겠죠. 플라잉 체어가 도입된 뒤로는 할 수도 없었을 거고요.

하여간 이런 오락에서 공식 패배자의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연구해봐도 될 것 같습니다. 신정환은 아주 효과적인 패배자거든요. 이 사람의 패배에는 어떤 흥겨운 맛이 있습니다. 적어도 그게 정당한 게임에 의한 것이라면 말이에요. 왜인지는 아직 설명하지 못하겠어요. [똑바로 살아라]의 형욱이 망신당하는 것을 보는 게 재미있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세상엔 처음부터 패배자로 규정된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청자들은 그들에게 어떤 악의도 느끼지 않지만 그들이 당하는 건 늘 재미있는 거예요.

이런 패배자들이 관련된 사디스틱한 오락들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전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시청자들의 정신건강에 도움을 준다면 주겠죠. 이들은 시청자들의 만족을 위해 고도로 정련된 패배자들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죄의식없이 자신의 가학적인 면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기회가 실생활에서 얼마나 되겠어요? [쿵쿵따] 코너에서 벌칙이 게임만큼이나 중요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고 생각해요. (0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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