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화원 (2008) [13회-14회]

2010.03.21 19:37

DJUNA 조회 수:8105

각본: 이은영 연출: 장태유, 진혁 출연: 문근영, 박신양, 문채원, 류승룡, 배수빈, 이준, 안석환, 임지은, 박진우, 이미영, 김응수, 박혁권

13회

13회는 12회의 여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야기 절반은 어떻게 참수형의 위기에 빠진 신윤복이 극적으로 살아남느냐를 다루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엄청 극적이어야 할 이야기입니다. 망나니의 칼이 목에 닿으려는 바로 그 순간 왕의 사자가 도착해서 “어명이요!”를 외치니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안하지만 안 그렇습니다. 13회의 전반부는 한심할 정도로 지겹습니다.

우선 이 이야기는 지난 몇 주 동안 지겹게 끌어왔던 어진화사 이야기의 끝물입니다. 이 주제로 5.5 에피소드나 낭비되었다는 것이죠. 이 정도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시청자들은 지겹기 마련입니다. 여기에서 어떤 종류의 서스펜스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다음으로 해결책이 졸렬합니다. 윤복이 목숨을 건지는 이유는 김홍도가 정조에게 주사와 관련된 음모와 윤복의 사연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이건 그냥 말이 안 됩니다. 그는 전에도 왕에게 이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기회가 충분했습니다. 그랬다면 어진은 아무 탈 없이 완성되었을 거고 윤복은 사형장에 끌려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며 홍도 역시 차력쇼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극적 효과를 내기 위해서라고요? 이미 결말을 다 알고 보는데, 무슨 극적 효과입니까? 정말 주인공이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 보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어요? 정조가 윤복을 구하기 위해 내민 해결책 역시 이미 윤복이 당일에 논리를 제공해준 것입니다.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들이 여기에 진지한 드라마를 부여하기 위해 도입한 것은 단 하나. 문근영의 눈물입니다. 문근영은 정말 한 없이 웁니다. 감옥에 찾아온 스승을 보고도 울고, 형장에서도 울고, 나중에 사형이 취소되자 성은이 망극해서 울고. 네, 저도 문근영이 눈물 연기를 잘 하는 배우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본과 연출의 문제를 배우의 개인기로 커버하려는 것은 비겁한 술수입니다.

윤복이 간신히 살아남자, 변비에 걸린 것처럼 정체되었던 이야기는 후닥닥 전개됩니다. 윤복은 도화서에서 나오고, 스승으로부터 혜원이라는 호를 받고, 김조년의 사화서로 팔려가며, 정조로부터 잃어버린 사도세자의 예진을 찾으라는 명을 받습니다. 전 이 때를 정말로 기다렸습니다. 2부에 들어와서야 신윤복이라는 캐릭터가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이 이 기회를 그에게 줄 리가 없습니다. 냉소적으로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습니다. 이 에피소드에서도 윤복은 그냥 좀비처럼 이리저리 끌려 다니기만 합니다. 호는 스승이 지어주고, 목숨은 왕이 살려주고, 심지어 김조년의 사화서에 들어오게 되는 것도 것도 정향의 필사적인 음모 때문입니다. 소설 속에선 이 모든 걸 윤복이 스스로 합니다. 드라마가 멀쩡한 애를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참수형의 후유증 때문이라고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야기 중간에 멀쩡하게 매력적이고 생기발랄한 아이에게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만들어주는 건 드라마에 무슨 도움이 된답니까? 그런다고 그 아이가 성장하기라도 한답니까?

오히려 이 에피소드에서는 정향과 김조년이 윤복보다 더 주인공처럼 보입니다. 몽유병자처럼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윤복과는 달리 정향은 철저하게 주체적으로 움직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사랑하는 화공을 자신의 곁으로 데려오기 위해 계산된 음모를 꾸미지요. 지금까지 그림자 속의 조연으로 남아 있었던 김조년도 드디어 악당의 무게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김조년을 가장 맘에 들어하는 캐릭터로 뽑았던 작가의 인터뷰를 생각하면 시작이 너무 늦었어요. 남은 시간 동안 김조년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정향의 계획이 다소 앞뒤에 맞지 않아 보인다는 것도 신경 쓰입니다. 윤복을 사화서로 불러온다는 계획이 맞아떨어져야 한다면 일단 윤복이 참수형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출세했다고 해도 일개 행수에 불과한 김조년에게 대역죄인을 빼낼 힘이 없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정향에게 미래를 읽는 초능력이나 왕의 속내를 전달할 수 있는 스파이가 있지 않는 한 말이죠.

14회

14회는 재난입니다. [바람의 화원]은 6회 이후 꾸준히 형편없는 에피소드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탈출할 구석은 남아있었죠. 지금은 그냥 모르겠습니다. 시리즈가 서서히 주저앉고 있는 게 보입니다. 타이타닉이 따로 없군요. 여기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쩌자고 이렇게 망해가고 있는 것일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제작 환경의 문제입니다. 지금 이 사람들 쪽대본으로 생방송 드라마를 찍고 있습니다. 중간 검증이고 예술성이고 따질 시간 여유가 없어요. 그냥 방송 직전에 드라마를 완성하기만 해도 감지덕지입니다. 이미 에피소드 끝에 예고편이 붙지 않은 게 오래 되었습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뜨는 시놉시스 역시 당일에 올라오기 일쑤고요. 원래 이건 전작제를 의도했던 작품 아닙니까? 차라리 가을 수목 드라마 전쟁터를 포기하고 12월로 옮겼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요?

두 번째는 구성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저는 여전히 어진화사를 비난하겠습니다. [바람의 화원]에서 1부와 2부의 균형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진화사에 신경을 쓰느라 이 균형이 파괴되어 버렸지요. 덕택에 본격적으로 드라마를 발전시킬 공간이 사라지고 지금 주인공들은 어떻게든 스토리를 따라가느라 전력질주를 하고 있습니다. 이건 그냥 납득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 책을 대충 읽어봐도 구성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쪽대본을 쓰느라 정신이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책은 훌륭한 가이드라인을 하고 있거든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1권과 2권은 각각 다섯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지요. 욕심 내지 않고 이걸 그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됩니다. 하지만 지금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지요. 14부의 사도세자 예진 미스터리가 책에도 나와 있는 당연한 사건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낯설고 어색해 보이는 이유 역시 원작을 따라 사전 포석을 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전 준비가 이렇게 엉망이니 이 스토리는 당연히 멜로드라마와도 충돌하지요.

그러나 시리즈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소위 사제라인을 다루는 방식에 있습니다.

[바람의 화원] 멜로드라마는 두 개의 라인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는 윤복과 정향의 이야기인 ‘닷냥라인’이고 다른 하나는 윤복과 홍도의 이야기인 ‘사제라인’입니다. 이 둘은 원작에도 모두 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와 소설이 이들을 다루는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소설에서는 자연스럽게 전체 스토리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 드라마에서는 작품을 좀먹는 벌레가 되어 있지요. 여기서 직접 책임을 져야 할 것은 사제라인입니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겠습니다. 원작에서 이 두 라인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은 서로를 방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악4중주에 비교하면 윤복은 제1바이올린이고 정향은 제2바이올린이고 홍도는 첼로입니다. 비올라는 아마 조년이겠죠. 하여간 정향과 윤복의 이야기가 표면 위에 떠올라 있다면 홍도의 이야기는 조용히 밑에서 움직이지요. 이들은 윤복이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중간에 단 한 번 본격적으로 충돌하지만 다시 조화를 이룹니다. 화사대결에서 이 둘은 동시 진행되지요. 윤복은 정향을 구하기 위해 도전에 응하고 홍도는 그런 제자를 돕기 위해 그 계획에 참가합니다. 자신의 그런 행위로 인해 사랑하는 제자를 영원히 놓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 말이죠. 이 체념의 논리는 굉장히 매혹적입니다. 이건 정말로 좋은 멜로드라마란 말입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우린 이걸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현악4중주의 예를 든다면 드라마는 홍도에게 제1바이올린을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소설 속에서 홍도가 맡고 있던 첼로를 다른 누구에게 주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이제 이 현악4중주는 바이올린 셋과 비올라 하나로 구성됩니다. 드라마 홍도는 마리아 칼라스 뺨치는 프리마돈나입니다. 절대로 자신이 뒤로 밀려서도 안 되고 감정은 있는 그대로 몽땅 표출해야 하죠. 그러니 ‘사제라인’은 ‘닷냥라인’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는 그냥 꼴보기 싫습니다.

그 부작용이 드러난 부분이 민망한 [청금상련] 장면입니다. 드라마의 논리를 따르면 이 장면은 14회의 하일라이트여야 합니다. 한 동안 안 나왔던 신윤복의 진짜 그림이 등장했고, 그 설정이 극적이지요. 운명이 갈라놓은 두 연인이 드디어 한 자리에 만났지만 둘 다 자유로운 몸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의 감시 속에서 그림과 음악으로만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애절하지 않습니까? 적어도 설정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이게 영 안 먹힙니다. 우선 윤복의 캐릭터가 많이 날아갔습니다. 7회 이후 ‘사제라인’에 억지로 봉사하기 위해 캐릭터가 오락가락했기 때문이지요. 그 동안 이 친구가 보여준 기억상실, 감정상실의 증상 때문에 ‘드디어 만난 두 연인’이라는 설정이 흐릿해져버렸습니다. 게다가 혹시 자기가 주인공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을까 걱정하며 뛰어든 홍도 때문에 그나마 그럭저럭 유지되던 분위기도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드라마의 홍도는 생각 깊은 중년의 연인이 아닙니다. 이유 없이 젊은 애를 쫓아다니는 스토커지요.

이 모든 건 계산 착오 때문입니다. 김홍도와 신윤복이 주인공이고 신윤복이 여자이니 둘의 노골적인 멜로드라마로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착각. 하지만 노골적인 멜로드라마가 늘 좋은 멜로드라마인 건 아닙니다. 어떤 것은 가라앉거나 절제되어 있을 때 더 아름답고 어떤 것들은 정상성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이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 당연한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냥 가져오기만 해도 엄청난 효과를 낼 수 있는 재료들을 짓밟아 엉망으로 만들고 있으니 말이 안 나옵니다. 아무래도 이 드라마는 만드는 사람들을 잘못 고른 것 같습니다. 원작과는 전혀 다르지만 그래도 초반까지는 자기만의 신윤복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던 문근영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요.

앞으로 6회가 남았습니다. 이 속도로 달리면 아마 소설 스토리는 커버할 겁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제대로 된 여운을 남기는 작품으로 완성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완벽한 걸작 에피소드들만 생산해도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망가진 게 너무나도 많아요. (08/11/14)

기타등등

끊임없이 클리프행어로 이어가는 이 연속극의 형식이 과연 이 작품에 도움이 되긴 하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12회의 차력쇼나 참수형 위기도 스토리 전개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죠. 이들은 그냥 상처를 입고 원작이 제공한 원래 스토리로 어설프게 돌아옵니다. 차라리 불필요한 흥분을 남발하는 대신 미국 드라마에서처럼 각각의 챕터를 완결된 에피소드로 만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바람의 화원]은 그렇게까지 바쁠 필요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나름 여백과 시간여유도 필요하고요. 모두 너무 늦은 이야기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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