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화원 (2008) [17회-18회]

2010.03.21 20:12

DJUNA 조회 수:4250

각본: 이은영 연출: 장태유, 진혁 출연: 문근영, 박신양, 문채원, 류승룡, 배수빈, 이준, 안석환, 임지은, 박진우, 이미영, 김응수, 박혁권

17회

17회를 통해 지금까지 끊어진 단서만 흘러 다녔던 이야기들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 정리됩니다. 얼굴 없는 초상화의 비밀은 무엇인지, 서징의 유언에는 무슨 단서가 숨겨져 있는지, 어쩌다가 윤복이가 정신이 그렇게 오락가락한 애가 되었는지, 어떻게 신한평이 윤복을 양자로 입양했는지... 이들 중 상당수는 원작 소설에도 있었던 것이지만 일부는 드라마를 위해 만든 것이기도 합니다. 아마 절반 정도는 중간중간에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받아가며 만들었을 거예요. 어느 정도까지가 피드백의 결과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전 4회의 돌팔이 의사 선생이 처음부터 윤복이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설명을 그냥 믿고 싶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건 윤복이가 궁에 있을 때 진찰을 했던 의원이 그 사실을 놓쳤다는 건 설명하지 못합니다. 17화의 설명은 대충 맞아 떨어지긴 하지만 군데군데 빈틈이 보이고 종종 임시방편의 변명처럼 느껴집니다.

그래도 윤복이 자신의 기억을 되찾고 환상 속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과 대면하는 장면은 뭉클한 구석이 있습니다. 여전히 설명은 불만족스럽고 지나치게 늦은 감이 있긴 합니다만, 적어도 문근영은 잘 하고 있고 아이디어도 좋습니다. 단지 전 이 사람들이 문근영의 우는 연기를 지나치게 남용하는 것 같아 걱정됩니다. 극적인 장면이 필요하면 그냥 수도꼭지 틀 듯 문근영을 울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17회를 통해 지금까지 끊어진 단서만 흘러 다녔던 이야기들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 정리됩니다. 얼굴 없는 초상화의 비밀은 무엇인지, 서징의 유언에는 무슨 단서가 숨겨져 있는지, 어쩌다가 윤복이가 정신이 그렇게 오락가락한 애가 되었는지, 어떻게 신한평이 윤복을 양자로 입양했는지... 이들 중 상당수는 원작 소설에도 있었던 것이지만 일부는 드라마를 위해 만든 것이기도 합니다. 아마 절반 정도는 중간중간에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받아가며 만들었을 거예요. 어느 정도까지가 피드백의 결과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전 4회의 돌팔이 의사 선생이 처음부터 윤복이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설명을 그냥 믿고 싶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건 윤복이가 궁에 있을 때 진찰을 했던 의원이 그 사실을 놓쳤다는 건 설명하지 못합니다. 17화의 설명은 대충 맞아 떨어지긴 하지만 군데군데 빈틈이 보이고 종종 임시방편의 변명처럼 느껴집니다.

마침내 홍도가 윤복이의 정체를 알아차렸습니다. 이 장면의 임팩트는 원작보다 약합니다. 이미 첫 커밍아웃 장면을 저번 주에 정향 앞에서 써먹었기 때문이지요. [월하정인] 장면의 효과가 상당히 좋았으니 원작대로 갈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돌팔이 의사 선생의 말 한마디에 윤복의 정체가 밝혀지는 건 싱겁습니다. 더 싱거운 것은 이미 밝혀질 대로 밝혀진 뒤에 윤복이 “언제부터 아셨습니까?”라고 묻는 거죠. 제가 싫어하는 추리소설 클리셰입니다. 다른 사람이 이미 진상을 밝혔는데, 뒤늦게 알아차린 사람에게서 ‘짐작’의 이유를 들어 무엇 하겠습니까? 그건 시상식이 끝난 뒤에 수상결과를 설명하는 것보다 싱겁죠. 홍도가 머리를 써서 스스로 진상에 도달하면 안 됩니까?

전에 했던 불평을 다시 해야겠습니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원작 캐릭터들보다 아이큐가 한 30 정도 낮아요. 원작에서는 똑똑하기 그지없던 사람들이 모두 멍청하기 짝이 없군요. 임기응변 능력은 떨어지고 눈치가 없으며 생각이 형편없이 짧습니다.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은 절대로 똑똑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라도 있어서 그걸 억지로 지키는 것 같습니다. 전 그게 싫어요. 지성과 감성은 결코 양립 불가능한 게 아닙니다. 똑똑한 사람들도 사랑에 빠집니다. 오히려 사랑에 빠진 똑똑한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재미있지요. 지금 우리가 세계 명작이라고 알고 있는 작품들도 대부분 평균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요.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와 다시는 모두 머리가 핑핑 잘 돌아가는 사람들 아닙니까? [제인 에어]의 제인과 로체스터는 어떤가요? [바람의 화원] 소설을 그런 작품들과 비교할 수는 없는 거겠지만, 그래도 원작의 김홍도 신윤복, 김조년은 모두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었고 그건 그들의 매력이었습니다. 왜 그걸 알아서 깎아먹는 거예요? 혹시 똑똑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냥 모르는 거 아닙니까? 아무래도 소설 2부가 축소된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2부는 머리가 핑핑 잘 돌아가는 사람들의 심리전이지 않습니까?

이 에피소드 이후로 사제라인은 급격한 국면전환을 맞았습니다. 홍도가 윤복이 여자라는 걸 알아차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뒷북이니까요. 그 뒤에 발생한 핸디캡이 더 중요합니다. 드라마의 홍도는 서징과 훨씬 가까운 사이입니다. 고로 의형제나 다름없는 친구의 딸과 데이트를 한다는 건 조선시대의 윤리기준으론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죠. 이건 그냥 당연한 것이니, 사제라인 지지자들도 처음부터 눈치 챘어야 합니다. 이들이 끝에서 맺어지지 않을 거라는 건 다들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아무도 프롤로그를 보지 못했나요?

그것이 화가 나서인지, 홍도는 신한평에게 화풀이를 합니다. 이 장면은 소설에도 있지만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소설 속에서 이 장면이 나왔을 때, 홍도는 윤복이 아직 여자라는 사실을 몰랐죠. 그냥 서징의 아들이라고 믿었습니다. 드라마의 홍도는 신한평에게 훨씬 더 매몰찹니다. 신한평이 특별히 좋은 일을 한 건 아니지만, 드라마 홍도의 행동은 지나친 구석이 있습니다. 과연 신한평이 윤복에게 준 게 없었습니까? 그 아이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 정말 모르는 것입니까? 남자의 삶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는지 정말 모르는 겁니까? 그 인생이 어땠는지 홍도가 어떻게 압니까? “윤이의 인생은 윤이 것입니다”의 선언 역시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도를 넘어섰습니다. 윤복의 인생이 윤복의 것이라면 자기가 나서서 그런 소리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게다가 이 장면은 박신양의 연기가 아주 나쁘기 때문에 캐릭터의 호감도가 심각하게 떨어집니다. 왜 이 사람은 모든 버럭 연기를 애들 웅변하듯 하나요?

윤복과 홍도가 그동안 밀려있던 스토리를 허겁지겁 진행시키며 의무방어를 하는 동안, 정향은 고전적인 19세기 멜로드라마 여자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버림을 받았고 상처를 입었으며 그러면서도 필사적으로 자존심을 추슬러 자신을 버린 연인에게 질투심을 불러일으키려 하다가 다시 꺾인 꽃처럼 쓰러져 서서히 시들어갑니다. 여기서부터 우리에겐 푸치니의 음악이 필요합니다. 놀랍게도 문채원은 이 역을 아주 잘 해냅니다. 거의 트집을 못 잡겠어요. 아킬레스건이었던 발성도 이번 회부터 갑자기 좋아졌지요.

저에게 정향만큼 좋았던 사람은 정향의 로드 매니저 막년입니다. 닷냥팬들은 막년이 정향과 윤복의 관계를 폭로한 것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하지만 막년의 폭로는 필수적이었습니다. 드라마의 김조년이 이렇게 머리가 나쁘고 눈치가 없다면 누군가가 대신 알려줘야죠. 그래야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막년은 아주 고마운 짓을 한 겁니다. 너무 늦긴 했지만.

그러나 저는 스토리 전개보다 정향에 대한 막년의 헌신에 더 시선이 갑니다. 우린 지금까지 막년을 윤복과 정향 뒤에 서서 귀여운 배경을 만들어주는 관중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년의 감정은 그보다 훨씬 깊었어요. 이 아이에게 정향의 행복은 세상 모든 것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그러니까 몸종 주제에 그렇게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었던 거죠. 결코 현명한 일은 아니었지만 주어진 정보가 제한되어 있는데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막년의 폭로는 이번 에피소드가 그린 가장 감동적인 사랑의 행위입니다. 전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 이런 순수한 헌신에 아주 쉽게 넘어갑니다. 전 오늘부터 막년이의 팬입니다.

18회

드디어 김조년은 윤복과 정향의 관계를 알아차렸습니다. 정상적인 각색을 따랐다면 저번 주에 일어났어야 하는 일이죠. 너무 늦었습니다. 날아간 게 너무 많아서 이들을 하나씩 설명하려면 문단을 갈아야 합니다.

우선 구조적인 문제점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김조년은 아주 중요한 악역입니다. 윤복이의 아버지를 죽였고 궁중암투에도 개입했으며 윤복과 정향을 갈라놓는 장애물이며 궁극적인 복수의 대상입니다. 당연히 그의 비중은 커야 해요. 적어도 정조보다는 많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정향과 윤복에게 잠자리를 제공해주고 언제나 만나도 된다는 허락까지 내려준 눈치 없는 아저씨였습니다. 딱 [세비야의 이발사]에 나오는 바르톨로 수준이지요. 이래놨으니 아무리 정향이 “그자는 무서운 자입니다”라고 해도 와 닿지가 않습니다. 이런 정보는 우리가 시간을 들여 직접 봐야 하는 겁니다. 지금부터 이러는 건 너무 늦어요.드디어 김조년은 윤복과 정향의 관계를 알아차렸습니다. 정상적인 각색을 따랐다면 저번 주에 일어났어야 하는 일이죠. 너무 늦었습니다. 날아간 게 너무 많아서 이들을 하나씩 설명하려면 문단을 갈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캐릭터의 매력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김조년은 그냥 악당이 아닙니다. 예술작품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교양인이죠. 그 교양도 그냥 얻은 게 아닙니다. 밑바닥에서 대행수로 출세하는 동안 스스로 갈고 닦은 것이죠. 그는 화가의 재능을 읽고 그림을 이해하며 음악을 사랑합니다. 소설에서 정향에 대한 그의 사랑이 감동적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는 진심으로 정향의 영혼을 사랑하고 그녀를 한 명의 예술가로 대접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윤복만큼이나 정향을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이들이 절반 정도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의 재능과 지성을 고려해본다면 정향과 윤복의 관계나, 윤복의 정체 같은 건 스스로 알아내야 했어요. 하지만 그는 남들이 주는 정보를 주워 담을 뿐입니다. 처량하기 그지없군요.

세 번째로, 윤복/정향/조년 삼각관계의 긴장감이 떨어졌습니다. 소설 속에서 김조년은 윤복에 대한 강한 애정을 품고 있습니다. 그는 정말로 이 젊은이가 그리는 그림들과 그의 재능을 아낍니다. 그 때문에 그가 정향과 윤복 사이를 알아차린 뒤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것이죠. 자신이 진심으로 아끼는 두 사람이 등 뒤에서 자기를 배반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건 정말로 근사한 내면 갈등의 소재입니다. 하지만 어쩌나요. 드라마에서는 이것도 날아가 버렸습니다. 휙! 지금 드라마 조년이 하는 짓이 시정잡배들의 헛짓거리와 뭐가 그렇게 다른가요.

마지막으로 그가 정향과 윤복 사이를 눈치 챈 시기와 윤복이 여자임을 알아차린 시기가 너무 짧습니다. 이 사이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 감정이 제대로 흐릅니다. 하지만 드라마 조년에게는 겨우 30분 정도의 여유밖에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도대체 무얼 하란 말입니까? 불쌍한 김조년. 작가가 김조년을 좋아한다는 건 다 거짓부렁입니다.

조년의 매력이 빛을 발해야 할 [월야밀회] 장면도 아주 서툴기 그지없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원작의 노골적인 단점을 방치했고 가장 매력적인 부분을 날려버렸습니다. 단점은 이 장면이 일종의 예술 강의라는 것이고 화가인 윤복 자신이 그 그림을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전에도 제가 말하지 않았던가요? 드라마에서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 천지에 그렇게 꼴사나운 짓이 어디 있답니까? 날아가 버린 부분은 더 아쉽습니다. [월야밀회] 에피소드의 가장 큰 매력은 여기서 김조년의 통찰력과 신윤복의 인간적 실수가 동시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자신을 여자로 그린 것은 사랑과 증오 때문에 잠시 이성을 잃은 윤복의 실수였지요. 하지만 드라마에서 윤복은 이 그림을 노골적인 선전포고로 삼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이 장면은 문근영의 연기도 별로입니다.

슬픈 현상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드라마 초기에만 해도 문채원은 툭하면 대사를 씹는 신인이었고 문근영은 감정연기가 일품인 베테랑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문채원은 절절한 비극 여자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고 문근영은 국어책을 읽습니다. 이번 주 에피소드 어딘가에서 그랜드 크로스가 일어난 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동안 배우들의 재능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게 아니에요. 단지 문채원이 연기한 정향의 캐릭터가 문근영의 신윤복 캐릭터보다 훨씬 좋은 겁니다. 드라마 정향은 열정적이고 로맨틱하며, 쉽게 상처받고 섬세하지만 그만큼이나 자존심 강하고 용감한 인물입니다. 소설보다 나아진 거의 유일한 캐릭터예요. 제가 배우라도 정말 몸을 바쳐 연기하겠습니다. 동기부여가 됩니다. 하지만 문근영이 연기하는 윤복은 어떤가요? 닷냥라인과 사제라인 사이에 끼어 아무 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문근영에겐 열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윤복은 지금 삼류 정치가처럼 굴고 있습니다. 늘 진짜 감정을 감추고 꼬리 잡힐 말은 교묘하게 피합니다. 얘가 지금 얼마나 재수가 없는지 궁금하시다면 다음 대사들을 한 번 읽어보시죠.

정향 화공은 아직도 제게 그냥 화공일 뿐인데.
윤복 나 또한 그대가 다칠까 두렵소.
정향 차라리 우리 함께 어디로든 떠나버리고 싶습니다. 그러실 수 있습니까?
윤복 정향.
정향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윤복 어찌해야 좋단 말이오?

여기서 정향이 하는 대사의 의미는 모두 명료하고 심각합니다. 아직도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아직도 당신은 나를 사랑하냐고 묻고 있으며, 당신을 위해 뭐든지 하겠다고 말하는 겁니다. 모두 한 여자의 평생을 건 말들입니다. 그렇다면 윤복은 여기서 그만큼이나 명쾌한 대답을 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첫 번째 선언이 나오자 윤복은 논점을 흐리고, 다음 질문에 대해서는 은근슬쩍 대답을 건너뛰며, 마지막 선언이 나오자 책임회피를 합니다. 이건 모두 최악의 대답들입니다. 배때기에 기름기가 낀 부패 정치가가 청문회에서나 할 답변들이죠. 후반에 나오는 정향의 커밍아웃이 아깝습니다. 이번 에피소드 최고의 장면이었는데.

삼각관계에 끼어 어쩔 줄 모르는 애에게 무얼 기대하냐고요? 다시 한 번 묻죠. 그게 과연 신윤복 캐릭터의 매력이었습니까? 7회 중반에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기기 전까지 우리가 그 아이를 그처럼 사랑했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습니까? 우린 신윤복이 아무런 때가 끼지 않은 순수한 사랑을 하는 연인이었고 그 사랑을 열정적으로 표현하는 예술가였기 때문에 사랑했습니다. 지금의 윤복에겐 그 어느 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요 몇 개월 동안 윤복은 늙고 부패했습니다. 이건 성장이 아닙니다. 이런 걸 성장이라고 부르는 건 어른들의 자기변명에 불과해요.

여기서 전 드라마 윤복과 소설 윤복을 비교하고 싶습니다. 6회까지 문근영이 연기하는 귀엽고 활달한 드라마 윤복이 싸늘한 얼음공주였던 소설 윤복보다 더 매력적이라는 게 중론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비교해보시죠. 그 싸늘하고 재수없다는 얼음공주는 사랑하는 정인을 따라 스스로 사자굴로 들어갔고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으면서 2년 동안 그녀 곁에 있었으며 그 동안 단 한 번도 다른 데에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누구 손을 들어주겠습니까?

다시 라인 이야기를 꺼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지겹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라인이 의미의 반입니다. 공홈 게시판에서는 라인 따위에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드라마 자체를 즐기자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그렇게 만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그렇게 말한 사람들도 라인에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에요. 그들 중 상당수는 그 때까지 우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라인을 지지했을 뿐입니다.

하나의 드라마에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와 맺어지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드라마의 의미와 주제를 결정하고 캐릭터를 완성하지요. 줄리엣을 사랑하지 않는 로미오가 과연 로미오입니까? 엘리자베스 베넷이 위컴과 결혼한다면 [오만과 편견]의 주제가 어떻게 될까요? 일자 룬트가 남편에 대한 의무감 때문에 릭 블레인을 버리지 않았다면 [카사블랑카]의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걸 단순히 ‘누구랑 누구가 어울리니 맺어주세요’ 정도의 주문으로 여기는 건 드라마를 너무 간단하게 보는 겁니다. ‘누가 스타이니 이 사람의 멜로 비중을 높여야지’의 사고방식은 그냥 위험한 것이고요. 어떤 경우 라인을 지지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정당한 비판입니다.

[바람의 화원]의 가장 큰 실수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의도적으로 소설 속에서는 없었던 라인들을 만들었고 이들의 충돌로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선택한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결코 팬들에게 라인대결을 허용하는 이야기를 만들어서는 안 되었어요. 덕택에 드라마는 중요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기회 역시 날려버렸습니다. 이 영역에 말려드는 순간부터 비평은 그냥 적당히 예의 차리며 공존해야 할 라인지지선언이 되어 버렸죠.

지금 와서 이 라인 대결로 가장 손해를 본 건 김홍도의 캐릭터입니다. 만약에 사제라인을 인공적으로 강화하지 않고 김홍도의 캐릭터를 원작의 논리에 맞추어 끌어갔다면, 18회는 그의 절정이었을 겁니다. 그는 결코 자신이 품에 안을 수 없는 짝사랑의 대상을 위해 평생의 명예를 건 대결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대결은 그 사람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섹스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사랑의 환희와 궁극적인 좌절이 에로티시즘과 예술이라는 매체를 타고 올라가다 폭발할 지경입니다. 머리가 제대로 박힌 배우라면 당연히 한 번 탐을 낼만한 역할이 아닙니까?

지금도 홍도는 그 비슷한 위치에 있습니다. 안 할 수는 없죠. 원작의 결말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기반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야 하는 동안 그는 제자를 스토킹 했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멱살을 잡고 시비를 걸었으며, 자기 성질을 겨누지 못해 손을 화로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매력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압니다. 사람들 취향은 다양한 거죠. 하지만 그러는 동안 그는 정말로 아름다운 연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누굴 탓하겠습니까. 보살홍도라니요, 어림없습니다. 그는 그냥 딴짓하다가 드라마의 동력을 잃었을 뿐입니다. (08/11/28)

기타등등

이 드라마의 주제곡 남용엔 정말 미쳐버릴 지경입니다. 17회 초반의 메들리는 몇 분이나 끈 겁니까? 이게 상식적으로 허용이 되는 겁니까? 다행히도 조성모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는 것 같지 않습니다만.

18회에 막년의 후일담이 나오지 않는 건 슬픈 일입니다. 그걸 보여주는 건 예의라고 봅니다.

김조년의 집에서 진행되는 경매는 지나치게 현대적이지 않습니까? 볼 때마다 어색해 죽겠습니다.

드라마가 정향에게 가하는 희망고문은 그냥 잔인합니다. 드라마 정향은 그 이상의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전 더 이상 윤복이의 미래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합니다. 윤복이가 지금까지 한 일을 다 갚으려면 남은 평생 정향의 막종으로 살아도 모자랍니다. 아니, 정향 뿐만 아니라 막년이 막종 노릇도 한꺼번에 해야 해요.

전 김조년이 상품으로 건 '정향의 자유'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정향은 김조년의 집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경제적 기반도 없는 사람에게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시 기생으로 돌아가라고요? 이는 '내기에서 이기면 너에게 정향을 주겠다'라는 소설의 내기보다 더 고상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그냥 책임 회피일뿐이죠. 이런 것들이 드라마 곳곳에 숨어있습니다. 긁으면 한 무더기는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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