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애니 Annie on My Mind (1982)

2010.03.13 22:30

DJUNA 조회 수:5305

Nancy Garden (글) 다른 제목: 소녀, 소녀를 사랑하다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아동 문학은 독자들을 무서운 바깥 세상으로부터 보호하려고만 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아동문학의 일차 목적이 그런 보호라고 믿었지요. 그 결과 아동 문학을 쓰는 작가들은 어쩔 수 없는 자기 검열을 거쳐야 했습니다. 욕은 당연히 안되었고 (어느 시대나 가장 말이 거친 세대는 청소년층인데도 말입니다!) 폭력이나 마약 문제, 계급 갈등과 같은 위태로운 소재들은 늘 금기시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도 금기시되는 것은 섹스였습니다. 물론 동성애는 상상도 할 수 없었고요.

그러나 20세기 중엽을 거치면서 아동 문학은 서서히 소재의 폭을 넓혀갑니다. 백인 작가들이 제대로 담지 못했던 인종 차별의 날이 선 이슈를 아동 문학에 끌어들인 버지니아 해밀턴과 같은 작가들이 있었고, 캐서린 패터슨과 같이 종교 비판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작가들도 있었으며, 주디 블룸처럼 틴에이저들의 성적 고민을 솔직하게 풀어낸 작가들도 있었습니다. 요새는 마약, 혼전 임신과 같은 소재들도 더 이상 금기 대상이 아니지요.

낸시 가든도 그런 용감한 작가들 중 한 명입니다. 82년에 발표된 전미 도서관 협회상 수상작인 [내 마음의 애니]는 아동 문학의 소재폭을 동성애로 넓히고 있습니다. 동성애를 다룬 '최초의' 청소년 소설은 아닐지 모르지만 (이미 용감한 흑인 작가 로자 가이가 '할렘 삼부작'의 2번째 작품 [루비 Ruby]에서 동성애 이슈를 다룬 적 있고 맘만 먹는다면 [셀룰로이드 클로젯]식 서브 텍스트 탐색도 어렵지 않습니다) 가장 유명하며 그만큼이나 격렬한 논쟁에 말려든 작품임은 틀림 없죠.

내용만 따진다면 [내 마음의 애니]의 이야기는 전통적이고 수줍으며 섬세합니다. 브루클린의 고급 사립학교에 다니는 열 일곱의 건축가 지망생인 주인공 라이자 윈스롭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이탈리아 이민 가족의 딸이고 성악가 지망생인 동갑내기 애니 캐년을 만납니다. 둘은 만나는 즉시 친구가 되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데, 중반에 이르면 서로에 대한 이들의 감정이 더이상 단순한 우정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지지요. 후반부에서 이들의 관계는 라이자의 학교 선생들에 발각되고 라이자는 학교의 마녀 재판에 서야 합니다.

[내 마음의 애니]는 여러분이 짐작하는 것만큼 선언적인 작품도 아니고 필요 이상으로 멜로드라마틱하지도 않습니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독자들이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로맨틱한 러브 스토리입니다. 실제로 소설은 중반까지 아무런 선언적 메시지 없이 독자들을 두 주인공들의 감정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그만큼 묘사가 정확하고 캐릭터들이 훌륭하죠. 후반부의 '마녀 재판'도 결코 생각만큼 무시무시하지는 않습니다. 라이자는 학생 회장 자리에서 쫓겨나지도 않고, 애니는 가족들에게 발각되지도 않거든요. 소설이 끝날 때까지 완벽하게 해결되는 일도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늘 순수한 러브 스토리로만 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거짓말이 될테니까요. 그들 관계가 '동성애'이기 때문에 그들은 단순히 로맨틱한 감정만을 즐길 수는 없습니다. 사회적인 억압 역시 곧 현실이 되고요.

중반 이후에 접어들면, 라이자와 애니는 그들을 인도해줄 또다른 동성애자 커플을 만나게 되고 이들의 관계는 보편화되기 시작합니다. 결국 책은 '선언'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전환은 섬세하게 잘 구성되어 있어서 후반부에 이들이 'Don't let ignorance win. Let love.'와 같은 선언을 해도 크게 교훈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다소 성급한 해피엔딩이 흐름을 깨는 듯한 느낌을 주기는 해도 [내 마음의 애니]는 훌륭한 청소년 소설입니다. 물론 이 작품이 동성애를 다룬 아동 문학에 본격적인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는 사실 역시 무시할 수 없겠지요. 낸시 가든은 이후로도 [Good Moon Rising], [Lark in the Morning]과 같은, 미국 게이 틴에이저들과 동성애 공포증에 대한 작품들을 써왔고, M. E. 커 M. E. Kerr, 재클린 우드슨 Jacqueline Woodson, 폴라 북 Paula Boock과 같은 작가들이 가든의 뒤를 이었습니다. 이들의 작품은 아직도 논쟁을 끌고 다니지만 이들을 통해 영어권 아동 문학이 더 풍요로워졌으며 수많은 어린 독자들에게 정서적, 지적 해결책을 제시해주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00/11/05)

기타등등

[내 마음의 애니]는 아직도 수많은 학교 도서관에서는 금서로 지정되어 있으며 심지어 몇몇 곳에서는 불에 태워지는 수난까지 겪기도 했습니다. 가든의 후기작 [The Year They Burned the Books]은 그 때의 경험을 반영한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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