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와치 The Night Watch (2006)

2010.03.20 21:48

DJUNA 조회 수:3818

Sarah Waters (글)

사라 워터스의 소설들은 주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소설인[티핑 더 벨벳]이나 세 번째 소설인 [핑거스미스]는 기본적으로 환상적인 대리 만족을 제공해주는 로맨스입니다. 이런 소설들의 경우 두 연인들은 우여곡절 끝에 맺어지며, 우린 그 뒤에도 그들이 끝도 없이 'You Pearl' 섹스를 하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소설인 [어피너티]나 오늘 다룰 네 번째 소설 [나이트 와치]는 훨씬 어둡고 현실적이에요. 이 소설들엔 해피엔딩도 없고 주인공들에게 주어진 희망도 가냘프기 그지 없습니다. [어피너티]의 경우엔 희망 자체가 존재하지 않죠.

지금까지 나온 사라 워터스 소설들과 비교해 볼 때, [나이트 와치]는 상당히 이질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앞의 세 편은 모두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무대로 한 1인칭 소설이었죠. 하지만 [나이트 와치]의 시대배경은 1940년대이며, 워터스는 여러 주인공들을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번갈아 커버하고 있습니다. 스토리의 선도 그렇게까지 분명하다고 할 수는 없고 캐릭터들의 단점들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훨씬 가혹합니다. 아마 [나이트 와치]의 주인공들은 워터스가 만들어낸 캐릭터들 중 가장 애교없는 사람들일 거예요.

소설이 다루는 주인공들은 네 명입니다. 1947년의 도입부는 이들을 한 명씩 소개하는 역할을 하죠. 케이는 전쟁이 끝난 뒤 사랑과 삶의 목적을 모두 잃어버린 부치입니다. 중매 상담소를 운영하는 헬렌은 추리작가인 줄리아와 동거 중인데, 둘 사이의 관계는 서서히 메말라 가는 중이죠. 헬렌의 상담소에서 일하는 비브는 유부남인 레지와 불륜 관계인데, 역시 이들 사이의 관계도 그렇게 평탄하지는 않습니다. 양초공장에서 일하는 비브의 오빠인 덩컨은 알 수 없는 죄로 감옥에 들어간 적 있고 지금도 과거의 기억 때문에 고통받고 있고요.

제1부가 인물소개를 끝내면, 1944년이 배경인 제2부가 시작됩니다. 네, 해롤드 핀터의 희곡처럼 거꾸로 진행되는 거죠. 제1부에서 워터스는 케이의 입을 통해 이 설정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사가 있거든요. "Sometimes I go in half-way through, and watch the second half first. I almost prefer them that way--people's pasts, you know, being so much more interesting than their futures."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모두 앞에서 그려진 사람들의 과거를 추적하는 과정입니다.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추리소설의 흥분과 재미를 모두 갖추고 있어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였던 사람들의 관계가 하나둘씩 밝혀지고 그들의 동기가 설명되고 그들을 불행의 구렁텅이 속에 빠트린 실수들과 운명들이 묘사되는 거죠.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194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입니다. 하긴 워터스의 성실함과 실력이 어디로 갔겠어요. [나이트 와치]는 흥미진진한 역사적 디테일로 가득 찬 시간여행입니다. 독일군의 대공습, 등화관제, 공습으로 부서진 집, 배급표, 군인들, 병역기피자들, 남자들을 대신해서 사회로 뛰어든 여자들과 같은 당시의 시대 설정이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요. 여기서 가장 이득을 보는 캐릭터들은 헬렌과 줄리아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완벽하고 생생한 배경 묘사에 의해 지지되고 있어요.

외국인 독자들은 이 작품의 제2차 세계대전 묘사에 조금 당황할지 모르겠어요.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체험하는 경험과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전쟁 묘사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와 반대예요. 그들은 전쟁 초기인 1941년에 가장 행복하고, 전쟁이 절정에 달했던 1944년에 가장 충만한 삶을 살며, 전쟁이 끝난 1947년엔 그 동안 그들을 지탱해왔던 삶의 목적과 에너지를 모조리 날려버립니다. (물론 덩컨은 빼고요. 걔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울하고 힘이 없어요.)

이는 일차적으로 영국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을 기억하는 방식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힘겹고 무서운 시기였지만 그만큼이나 영웅적이고 로맨틱하고 위대한 시기이기도 했다는 거죠. 아직도 2차 세계대전을 다룬 많은 영국 소설이나 영화들이 이 시기에 대한 달콤한 향수를 담고 있죠. 그 중 가장 뻔뻔스러운 건 [희망과 영광]이겠지만요.

워터스는 여기서 페미니즘적인 접근법도 추가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여성들이 사회 전면에 나서 전쟁터로 떠난 남성들의 역할을 도맡아 했던 첫 번째 전쟁이었고 실제로 이 전쟁은 그 때까지 고정되었던 서구 사회의 성역할을 뒤흔들어놓았죠. 워터스는 이전의 시스템으로 돌아간 전후와 전쟁 당시를 비교하며 당시 전쟁이 수많은 여성들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와 희망을 제공해주었는지 이야기합니다. 특히 노골적인 부치인 케이에게 그 의미는 더 크죠. 다른 때엔 조롱과 경멸의 대상인 그 사람의 정체성은 런던이 폭격 당하는 위기 상황에서는 거의 무시되거나 존경과 찬탄의 대상이 됩니다.

워터스의 이번 소설은 저번과는 달리 이성애자들의 영역에까지 뻗어 있습니다. 비브는 워터스가 깊이 있게 다룬 최초의 이성애자 여성이지요. 비브를 통해 워터스는 최초로 이성애 섹스를 묘사하고 낙태와 같은 이슈를 다루기도 합니다. 단지 워터스는 관심의 영역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비브와 애인 레지의 섹스신에서 레지의 존재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아요. 중요한 건 비브가 느끼는 쾌락과 그 쾌락을 담은 비브의 육체지요. 비브의 이야기는 곧 고통스러운 임신과 낙태의 경험으로 이어지는데, 솔직히 초반의 이성애 섹스는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통과할 수밖에 없었던 관문처럼 느껴집니다. 후반에 묘사되는 동성애자 캐릭터들의 거침없고 자유로운 섹스신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분명해지지요. :->

그래요, 아무리 캔버스를 넓게 잡는다고 해도, 워터스의 소설의 축은 여전히 동성애자 캐릭터들입니다. 이 소설의 진짜 핵심은 세 동성애자 캐릭터의 삼각관계지요. 이들의 관계는 이성애자들의 세계에서는 절대로 구축될 수 없는 독특한 방식에 의해 엮여 있습니다. 후반부에 보면 당사자 중 한 명이 자신이 빠진 난처한 상황에 대해 한탄하는 장면이 있는데, 아무리 봐도 워터스는 창조물들을 가지고 노는 얄미운 유일신처럼 그 까다로운 설정을 노골적으로 즐기는 것 같습니다.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의지한 바가 컸던 [티핑 더 벨벳]의 동성애자 세계와는 달리, [나이트 와치]의 동성애자 세계는 보다 현실적입니다. 법적으로 보장되는 가정의 성립이 불가능하고 노후도 위태로운 이들의 고민이 그대로 묘사되지요. 케이를 통해 그려지는 40년대 영국 부치 여성의 정체성 이슈는 특히 흥미롭습니다. 워터스는 소설의 비극 중 하나가 공개된 삶을 살지 못하는 캐릭터의 두려움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암시하고 있기도 하지요.

이 소설에서 가장 약한 부분은 덩컨입니다. 덩컨은 가장 큰 미스터리를 품고 있는 인물이고 캐릭터 묘사도 분명하고 그를 통해 감금시설에 대한 워터스의 꾸준한 관심이 표출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는 별 쓸모가 없는 캐릭터입니다. 하는 일이 별로 없고 이야기는 따로 놀며 미스터리는 있으나 마나죠. 차라리 그의 이야기를 하는 대신 줄리아의 관점을 첨가했다면 어땠을까요? 삼각관계의 다른 축이 보다 잘 드러날 수 있었을 텐데요. 소설에서 줄리아의 고백은 지나치게 짧은 것 같습니다. 그랬다면 비브가 따로 놀았을까요? 그럴 수도 있었겠죠.

[나이트 와치]가 [티핑 더 벨벳]이나 [핑거스미스]만큼 사랑받을 수 있을까요? 아뇨, 그럴 것 같지는 않아요. 흥미로운 소설이지만 대리만족의 행복감을 안겨주는 이야기는 아니고, 독자들이 낸이나 수, 모드와 같은 캐릭터들을 사랑했던 것처럼 헬렌이나 줄리아, 케이를 사랑할 것 같지도 않거든요. 그러나 이건 소설의 질적 성취도와는 무관합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어피너티]도 좋은 소설이었어요.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서 그렇지. (06/04/03)

기타등등

워터스의 다음 소설 배경은 1950년대. 이번엔 제발 해피엔딩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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