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찾으러 왔단다 (2007)

2010.03.20 23:55

DJUNA 조회 수:3284

각본: 윤성희 연출: 지영수 출연: 차태현, 강혜정, 공현주, 김지훈, 이정길, 김혜옥, 강신일, 정애리, 하이엔

[꽃 찾으러 왔단다]가 인기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건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타이밍이 나빴고 홍보에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저에겐 그에 대해 의미있는 분석을 제공해줄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는 말할 수 있어요. [꽃 찾으러 왔단다]의 바닥을 친 시청률은 이 작품의 질적 성취도와 무관하다는 것. 그렇다고 이 작품이 정말로 완성도 높은 시리즈라는 말도 아니라는 것.

우선 전 이 시리즈가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었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장의사 배경의 코미디라는 설정은 [식스 핏 언더]와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여전히 좋은 도구입니다. 습관화된 엄숙주의를 걷어버리고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지요. 강혜정과 차태현은 능력있는 전문배우들이고 이 시리즈에서도 안정된 연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연속되는 이야기 대신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처럼 에피소드 별로 끊어지는 구성을 취한 것도 새롭다면 새로웠죠. 전 시한부 인생과 위장 신분과 같은 엄청나게 심난한 소재를 코미디로 이야기하려 한다는 배짱도 좋았습니다. 사랑보다 돈이 더 좋은 냉정한 물질주의자인 하나도 매력적인 캐릭터였고요.

하지만 시리즈가 흘러가면서 그 가능성은 하나씩 날아가버렸습니다. 이유는? 만드는 사람들의 배짱이 충분치 않았던 거죠.

[꽃 찾으러 왔단다]에 대한 나쁜 소리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불우이웃 성금을 모으러 다니는 아이들의 얼굴을 후려 갈기는 것처럼 나쁜 일입니다. 그만큼이나 이 시리즈는 착해요. 16회를 끌어가는 동안 [꽃 찾으러 왔단다]는 삶의 가치와 사랑의 소중함과 죽음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건전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시리즈만큼이나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착하고요. 심지어 상당히 까칠하거나 암담한 인물로 등장하는 하나나 호상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착한 작품이 꼭 좋은 작품이 되는 건 아닙니다. [꽃 찾으러 왔단다]는 좋은 이야기가 되기엔 지나치게 착해요. 너무 착해서 오히려 주제의 설득력이 떨어질 지경입니다.

도입부는 괜찮았습니다. 특히 전 죽음에 무덤덤하고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과 돈에 더 친근감을 느끼는 하나의 캐릭터가 좋았습니다. 논리는 명확했고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소름끼칠 수 있는 무표정함은 매력적이었죠. 남자 주인공 호상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할만 했고 또 재미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운이 나빠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바로 그런 설정이었죠.

하지만 하나가 호상에게 사랑을 느끼고 호상이 자신의 병에 대해 알게 된 뒤로 이들의 이야기는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의지와 논리를 순식간에 날려버렸고 그 뒤로는 죽음에 대한 종교 서적이라도 읽고 그 내용을 암송하는 모범생처럼 변했습니다.

물론 그런 마음 자세로 살아간다는 건 좋은 일일 겁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일 수가 없어요. 인간이란 그렇게 쉽게 자기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닙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와 사랑하는 사람과 처음으로 사귄 친구와 오랜 이웃 사촌의 죽음을 한꺼번에 겪는 동안에도 그 정도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 가능성은 기껏해야 둘입니다. 장의사 일을 지나치게 오래 하다보니 가까운 사람의 죽음도 습관처럼 맞게 되었거나 정신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는 거죠. 전자의 방향으로 갔다면 깊이있는 블랙 코미디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꽃 찾으러 왔단다]는 후자의 방향으로 가면서도 그걸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그 때문에 전 시리즈를 보면서 "얘들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라고 투덜거렸던 겁니다.

[꽃 찾으러 왔단다]의 주인공들은 깨우친 사람들보다는 마약중독자들처럼 보였습니다. 마지막의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 완전히 생략되어 있었으니 당연하죠. 이건 꼭 하나와 호상만의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를 찾아온 은탁이나 아직도 죽은 약혼자를 잊지 못하는 남경도 마찬가지였죠. 이들은 모두 훌륭한 드라마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캐릭터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드라마는 일단 터지면 아무리 길게 잡아도 30분 안에 해결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모두 아무런 갈등없이 행복해졌죠. 드라마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다루어야 마땅한 소재들도 겁이 나서 그냥 건너 뛰었습니다. 호상이 자기 것처럼 쓰던 대박의 재산은 어떻게 된 겁니까? 호상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길벗 장의사에서는 호상의 위장신분을 어떻게 처리했나요? 그러는 동안 단 한 번도 대박의 유산을 탐낸 적이 없었나요? 모르죠.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으니.

이런 식의 접근법은 드라마뿐만 아니라 주제도 망쳤습니다. [꽃 찾으러 왔단다]는 계속 죽음을 똑바로 보지 않고 외면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이사에 비유하며 그 슬픔을 줄이려는 시도는 이해할만 합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자기 위로를 하려는 캐릭터들도 죽음이 영원한 소멸이고 내세라는 게 존재하지 않으며 삶의 가치는 제한된 삶 속에서만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과 그에 대한 공포는 계속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그 가능성을 탐구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입발린 미사여구일뿐입니다. 이건 여러분이 내세를 인정하는 종교 신자여도 마찬가지입니다. 톨스토이는 여러분 대부분보다 더 열성적인 신자였지만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썼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꽃 찾으러 왔단다]의 가장 큰 문제는 광고했던 것처럼 코미디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첫 몇 회를 제외하면 이 시리즈는 그냥 달짝지근한 멜로드라마에 불과했어요. 그 뒤부터 이 시리즈에서 진실된 감정이나 세상을 똑바로 보고 그 우스꽝스러움과 부조리함을 인정하는 용기 따위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남은 건 분노와 증오의 능력을 잃어버린 행복한 약물중독자들뿐이었지요. (07/07/03)

기타등등

왜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성장하면' 다들 재미없는 마네킹이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성장의 대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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