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코리아의 키

2010.03.13 21:55

DJUNA 조회 수:3311

언젠가 어느 텔레비전 쇼에서 미스 코리아에 대해 다룬 걸 본 적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미스 코리아에 대해 여러 정보를 소개하면서 중간에 사람 모양의 구멍이 뚫인 판을 하나 가져 오더군요. 미스 코리아의 평균 몸매를 계산해서 그 구멍을 뚫었다나요. 잠시 출연진들은 모두 거기에 자기를 끼워 맞추려고 발버둥치는 코미디를 벌였답니다.

글쎄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물론 어느 시대에나 육체의 기준은 표준화되기 마련입니다. 어떤 때는 살찐 몸매를 선호하고 어떤 때는 마른 몸매를 선호하지만 양쪽 모두 표준화된 이상적 몸매를 제시하는 건 마찬가지죠. 표준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판에 구멍을 뚫어 사람들이 들어가야 한다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들의 미적 기준이 그렇게 좁을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특히 키가 그렇습니다. 세상에는 작은 키의 미인들도 많습니다. 그건 아무리 좁은 미적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도 인정하는 것이죠. 모든 사람들이 모델처럼 키큰 사람들만 좋아하지는 않을 겁니다.

모델 대회라면 이런 기준은 이해가 갑니다. 현대복이 가장 잘 어울리는 몸매는 키 크고 마른 체형이니까 그런 몸매의 사람들만 나서는 것은 당연하죠. 운동선수들처럼 모델들도 기준에 맞는 육체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직업입니다.

하지만 미스 코리아는 모델 대회가 아닙니다. 이런 기준은 불필요하죠. 미인 대회라는 것이 시청자들에게 선사해야 하는 것이라면 다양한 외모의 미인들을 등장시켜서 사람들의 눈을 보다 '입체적'으로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미스 코리아의 육체적 평준화는 심지어 다른 미인 대회를 고려해도 그렇게 정상적이 아닙니다. 심지어 미스 USA만 해도 훨씬 다양한 키의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죠. 언젠가 미스 USA였던 사람 하나가 리포터로 나선 걸 본 적 있는데, 제가 그 사실을 지적하자 아무도 믿지 않더군요. 그 사람은 꽤 작은 키였거든요.

미국 같은 나라는 다인종 사회니까 인종적 평등성만 조금 지킨다면 훨씬 다양한 외모의 사람들을 등장시켜서 '입체적' 구경거리를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린 단일 민족 국가입니다. 보다 구경거리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다양성을 도입해야 하는 곳이지요. 그런데도 판에 구멍을 파서 거기 맞는 사람들만 집어넣으려 하고 있단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미인 대회에 그렇게 호감을 느끼는 편은 아닙니다. 곧장 말해 언젠가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페미니즘 지지자를 자처하는 저 자신의 입장과 맞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이를 보완하는 두번째 이유도 있습니다. 미인 대회가 없어진다고 해서 '예쁜 사람들'을 볼 기회가 줄어들거나 하지는 않으니 제가 손해볼 이유는 없다는 것이죠. 특히 한국의 미인 대회들은 대중들에게 '예쁜 사람들'을 보여주는 기초적인 역할도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합니다.

사자 머리 헤어스타일에 가부끼 화장을 한 복제인간 같은 여자들보다 눈을 더 만족시켜주는 구경거리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미인 대회의 존속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점에 대해 숙고해보길 바랍니다. (0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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