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캐롤과 앨리스

2010.03.13 23:11

DJUNA 조회 수:3264

옛날 옛적 어느 왕국에, 그러니까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 예쁜 어린 여자아이들을 위험할 정도로 좋아했고, 실력 있는 아마추어 사진작가였고, 말더듬이 목사였고, 발명가였고, 괜찮은 수학교수였던 찰스 러트위지 도지슨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운명이 허락했다면 평생동안 편안한 독신생활을 누리다가 가끔 수학자로서 자잘한 업적이나 남겼을 이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독신 남성이 영문학상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1862년 7월 4일, 도지슨 목사는 옥스퍼드 트리니티 대학 학장의 세 딸들과 함께 템즈강에 뱃놀이를 떠났습니다. 그 중 그가 유달리 예뻐했던 둘째 딸 앨리스 리델이 그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도지슨 목사는 어떻게 이야기를 맺을 지 생각도 하지 않고 앨리스라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줄줄 읊어갔습니다. 이 작품은 나중에 앨리스의 생일을 위해 [지하세계의 모험]이라는 작은 책으로 만들어졌고 그 책은 다시 다듬어져 루이스 캐롤이라는 필명을 달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동화로 출판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그 뒤에 나온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와 함께 영문학 사상 가장 중요한 환상 문학 작품으로 남게 됩니다. 그는 그 뒤에도 [실비와 브루노]와 같은 작품들을 썼지만 그의 명성은 대부분 두 편의 [앨리스] 동화를 통해 얻어진 것입니다. 고로 자연인 도지슨 목사에 대한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예쁜 애들을 미치게 좋아한 걸 빼면 그렇게 역동적인 삶을 산 사람도 아니었거든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초기 평가는 아동문학의 관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앨리스] 시리즈는 당시 빅토리아 시대 어린이 작가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교훈적인 내용과 상관 없었습니다. 캐롤은 종종 잔인할 정도로 막나가는 상상력을 예의차리지 않고 마구 풀어놓았고 그런 스타일이 당시 어린 독자들에게 제공한 자유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앨리스]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현대 환상문학에 끼친 캐롤의 1차적인 업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자 [앨리스]는 보다 깊이 있는 내용을 담은 성인 문학작품으로 읽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종종 고전이 된 환상문학에 닥치는 운명이 [앨리스]에게도 떨어집니다. 소설의 환상적인 요소들이 모두 캐롤이 살았던 실제 세계의 은유로 읽혀지는 것이죠. 환상 문학 장르 고유의 성격인 의미의 애매모호함 덕택에 해석의 여지는 충분했고 [앨리스] 시리즈는 가장 많이 분석되는 영문학 작품으로 떠올랐습니다. 정신분석에서부터 종교적 해석까지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케빈 스미스의 영화 [도그마] 초반부에서 타락 천사 로키는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바다 코끼리와 목수]에 독특한 신학적 해석을 시도했는데, 캐롤의 의도는 절대로 아니었겠지만 아직도 이 텍스트의 해석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흥미로운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도 [앨리스] 비평가들은 한동안 마땅히 언급되고 분석되어야 할 부분들을 지나쳐갔습니다. 나라 사랑에서 번역 출판된 두 편의 주석판 [앨리스] 동화 뒷표지에는 라즈니쉬의 [내가 사랑하는 책들]이라는 책에서 뽑아온 인용구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라즈니쉬는 한심하게도 이렇게 운을 뗍니다. '수학자인 루이스 캐롤이 이토록 아름다운 책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은 가히 놀라운 일이다.' 그는 루이스 캐롤의 이 짧은 동화가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보다 몇 백배 뛰어난 작품이니, 무한한 영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느니 어쩌느니 하고 허풍을 떨었지만 정작 [앨리스]의 정수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의 글이 실린 책이 라즈니쉬의 입장과 거의 반대되는 입장의 마틴 가드너가 주석을 단 번역본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정작 출판 기획자들도 자기가 출판하는 책의 매력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말이 되는군요.

[앨리스] 시리즈는 수학자가 쓴 작품이며, 이 작품의 진짜 매력도 여기에 있습니다. 캐롤에 매달린 대부분의 인문학자들이 쓸데없는 정신분석에 매달리며 시간 낭비를 하느라 정작 중요한 핵심을 무시했던 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캐롤의 작품에 나오는 환상의 매력은 그 절묘한 부조리에서 나옵니다. [반지의 제왕]과 같은 환상물의 주인공들은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지만 그 세계는 모양만 다르고 초자연적인 존재들만 돌아다닐 뿐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사는 세계와 같은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하지만 [앨리스]의 캐릭터들은 그 부조리를 전면으로 끄집어냅니다. 캐롤의 부조리는 초현실주의자들의 그것과는 달리 의식적으로 정교하게 짜여진 것으로, 모두 논리와 수학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의 고안품입니다.

이러는 동안 캐롤은 두 종류의 독자들을 얻게 됩니다. 위에서 인문학자들이 점잔을 빼며 작품에 문학적 주해를 가하는 동안, 논리학자/수학자/자연과학자들로 구성된 또 하나의 독자군이 나타나 앨리스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고 자신들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인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캐롤의 자연과학자적 영감은 종종 20세기의 난해한 현대 과학을 설명하는 데 너무나도 유용합니다. 예를 들어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볼 때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병들에 대해 읽고 나서도 이 에피소드를 불확정성의 원리를 설명하는 데 써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 물리학 교수들은 많지 않습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캐롤의 이러한 매력은 다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자연과학자의 측면에서 두 권의 [앨리스]에 흥미로운 주석을 제공한 수학자 마틴 가드너의 업적을 먼저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D. 호프스타터를 포함한 수많은 과학저술가들이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앨리스의 친근한 이야기를 다시 끌어온 것도 캐롤 세계의 새로운 이해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150년전, 10살배기 여자 친구를 위해 말더듬이 목사가 들려준 이 정신나간 이야기는 점점 새로운 의미를 얻어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대중들이 동시대의 지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복잡한 현대에 와서 루이스 캐롤 연구의 중요성이 점점 커져가는 것도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감이 가득 찬 작가들이 종종 그렇듯 캐롤의 작품은 오래 전에 작가 자신의 이해를 벗어났습니다. (01/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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