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크 Monk (2003- 2009)

2010.03.20 18:54

DJUNA 조회 수:4379

출연: Tony Shalhoub, Bitty Schram, Ted Levine, Jason Gray-Stanford, Stanley Kamel, Max Morrow 다른 제목: 탐정 몽크

1.

'Defective Detective'라는 영어 말장난이 있지요. 추리소설팬들이라면 설명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짐작하실 수 있을 거예요. 워낙 황금시대 추리소설 명탐정들 중에 괴상한 괴짜들이 많기 때문에 생긴 표현이지요. 에르퀼 프와로나 셜록 홈즈 정도라면 그럭저럭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지만 몇몇은 정말 정도가 심하죠. 캐러더즈나 드루리 레인처럼 장애인들인 경우도 있고 네로 울프처럼 심각하게 과체중인 사람들도 있고요.

퍼즐 추리소설의 황금시대가 지나면서 이런 'defective detective'들도 하나씩 사라져갔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온 추리소설들은 황금시대 소설들보다 덜 인공적이고 덜 괴팍합니다. 탐정들도 비교적 정상적인 사람들로 바뀌었고요.

그러나 한물 간 유행이 언제나 한물 간 채 남아 있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일단 복고풍 유행이라는 것 자체가 대상의 유행이 지났다는 것을 일부러 부각시키는 거잖아요. 유행이 막 지났을 때는 짜증이 날 정도로 낡아보이는 것들도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고유의 독특한 멋을 풍기는 법입니다.

텔레비전 시리즈 [몽크]가 노리는 것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천재 탐정들이 거의 사라지고 폭력적이고 사실적인 형사물이 지배하는 최근의 텔레비전 세계에 거의 모범적인 'defective detective' 주인공이 나오는 전통적인 추리물을 내놓은 것이지요. 그나마 전통적인 추리물의 명맥을 이어왔던 제시카 플레처나 콜롬보 형사의 활동이 뜸해진 지금, 이 기획은 충분한 시장성이 있었습니다. 좋은 캐릭터와 그를 연기할 수 있는 좋은 배우만 확보한다면요.

2.

에이드리언 몽크는 obsessive하고 compulsive한 detective입니다. 원래부터 그렇게 쉬운 성격은 아니었지만 아내가 정체불명의 폭발사건의 희생자가 된 뒤로 한동안 정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박증이 심해졌죠. 그는 천직인 경찰일을 포기하고 샌프란시스코 경찰의 비공식 자문으로 일하며 복귀를 노리고 있습니다.

[몽크]의 설정은 척 봐도 황금시대 추리물의 기본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몽크는 까다롭고 괴팍한 성격의 천재 명탐정입니다. 그를 돕는 간호사 샤로나 플레밍은 모범적인 왓슨, 아니, 아치 굿윈입니다. 이들을 사건에 초대하는 스토틀마이어 서장과 디셔 경위는 전형적인 레스트레이드 역입니다. 가끔 명탐정이 자기네들의 공로를 빼앗아간다고 느끼면서도 그의 천재성에 감탄하는 직업 경찰들 말이에요. 이들이 맞서 싸우는 사건들은 복잡하고 인공적인 증거 조작으로 자신의 범죄를 감추려고 하는 지능범들입니다.

[몽크]의 코미디는 정신적인 장애로 고생하는 괴짜 아저씨의 전형적인 모험담입니다. 그는 고소공포증 때문에 범인을 따라가지도 못하고 결벽증 때문에 악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강박증 때문에 그의 목숨을 노리는 자동차에 쫓기는 동안에도 도로 옆에 놓인 기둥들을 하나씩 만져야 합니다. 이 '정치적으로 공정한' 시대엔 꽤 위험한 농담이지요. 몽크처럼 강박증 때문에 고통받는 시청자들이 항의를 한다면 이 시리즈는 사실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몽크]는 진부한 추리물도 아니고 눈치없는 코미디도 아닙니다. 시리즈는 이 모든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지요. 캐릭터들을 공식에 가두는 대신 살아 숨쉬는 인간들로 만드는 것입니다.

거의 고전적일 정도로 캐리커처화된 설정을 고려하면 몽크는 결코 단순한 어릿광대가 아닙니다. 그러기엔 그의 고통이 너무 크죠. 아내의 죽음 이후 그가 겪는 심적 압박과 정신적 고통은 진짜입니다. 단지 시리즈는 그의 고통을 일련의 희극적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덕택에 캐릭터가 주는 울림은 두 배로 증폭됩니다. 노골적인 슬랩스틱이 서글픈 비극적 정서를 숨기고 있는 것이지요.

몽크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 역시 생생하게 그려졌습니다. 샤로나 플레밍은 지금까지 텔레비전 탐정물이 묘사한 인물들 중 가장 근사하게 묘사된 탐정 조수일 겁니다. 어떻게 보면 [몽크]에서 몽크만큼이나 중요한 인물이지요. 생활력 강한 억척엄마이며 유능한 간호사인 샤로나는 이 시리즈에서 이중적인 통로 역할을 합니다. 생활력이 결여된 몽크를 현실 세계와 연결시켜 주기도 하지만 전형적인 퍼즐 추리물의 장르를 현실 세계와 연결시켜주기도 하는 것이죠. 몽크의 괴팍함이 그처럼 생생하게 묘사된 건 현실적이고 야무진 샤로나가 완벽한 대비가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스토틀마이어와 디셔는 샤로나보다 캐릭터는 작지만 역시 전형적인 레스트레이드 역할을 하는 경찰들보다는 입체적이고 인간적입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NYPD 블루] 캐릭터들의 흉내를 내면서 이 시리즈의 장르적 간결함을 망치지도 않고요.

이들의 캐릭터들은 모두 이상적으로 캐스팅된 배우들에 의해 구체화됩니다. 물론 몽크 역의 토니 살룹이 없었다면 시리즈 자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르죠. 선량하고 친절한 남자이면서도 자신이 어쩔 수 없는 괴팍함 때문에 희극적이고 짜증나는 어릿광대가 되는 에이드리언 몽크라는 캐릭터 자체가 토니 살룹에 맞춘 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러나 이 시리즈의 진짜 수확은 샤로나 플레밍을 연기한 비티 슈람이 아닌가 싶어요.

3.

추리물 [몽크]는 [콜롬보]나 [제시카의 추리극장]보다 융통성 있습니다. 시리즈는 [제시카의 추리극장]식 전통적인 범인찾기 에피소드들과 [콜롬보]식 도서추리 에피소드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두 이야기를 오가는 동안 가끔 상당한 강도의 액션을 허용하기도 해요.

몽크가 풀어야 할 수수께끼의 질은 그냥 보통 수준입니다. 가끔 재미있는 미스터리가 있긴 하지만 끝에 가서 "와, 그랬구나!"하며 감탄할만한 이야기는 얼마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수수께끼 만들기엔 한계가 있는 법이고 콜롬보나 제시카 플레처가 풀었던 미스터리들이 늘 좋았던 건 아니지요.

[몽크] 미스터리의 장점은 시리즈에 독특한 질감을 부여하는 괴팍한 분위기에 있습니다. 밤마다 정신병원에 나타나는 산타 클로스, 갑자기 노상강도로 돌변한 억만장자, 사건 현장에서 겁에 질려 달아난 경찰... 체스터튼이나 존 딕슨 카처럼 [몽크]의 작가들도 이 시리즈가 기본적으로 논리 풀이에 바탕을 둔 판타지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 극도로 괴상한 수수께끼들은 추리과정 중 추상화되고 약간 고장난 사고기계인 몽크의 손길에 맞는 재료로 탈바꿈하지요.

아직 [몽크]는 막 2시즌에 돌입한 젊은 시리즈입니다. 제가 확인한 건 1시즌뿐이고요. 시리즈가 발전하는 동안 작가들이 캐릭터에 맞는 더 나은 미스터리를 찾을 가능성은 크죠. 물론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양산해내며 주저앉을 가능성도 마찬가지로 높지만요. 기다려 봐야 할 일이지요. 하지만 지금 수준으로 계속 유지한다고 해도 [몽크]는 한동안 흥미진진한 시리즈로 남을 거예요. (03/08/04)

기타등등

우리나라에서는 홈 CGV를 통해 1시즌이 방영되었습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KBS 2에서 [탐정 몽크]라는 제목으로 같은 시즌이 방영이 시작되었고요. 꽤 드문 경우라서 뉴스가 되기도 했지요. 전 KBS 더빙판은 그렇게 잘 보지 않는 편입니다. 몽크역 성우 배한성은 괴팍함에 집착한 나머지 몽크가 온화하고 친절한 남자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 것 같아요. 계속 몽크가 샤로나에게 말을 놓는 번역도 거슬리고요.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