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살아라 (2002 - 2003)

2010.03.20 19:44

DJUNA 조회 수:5612

출연: 노주현, 박영규, 이응경, 홍리나, 최정윤, 서민정, 노형욱, 전혜진, 안재환, 김흥수, 박희진, 이채연, 이동욱, 천정명, 정려원

듀나 [똑바로 살아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순풍 산부인과]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를 다루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삼부작이라고 해도 될만큼 주제와 소재, 스타일을 공유하고 있으니까요.

특히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와 [똑바로 살아라]는 같이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유명하기는 [순풍 산부인과]가 더 유명하지만 김병욱 시트콤이 자기만의 개성을 보다 완전하게 발휘되기 시작한 건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와 [똑바로 살아라]부터거든요. 우리가 김병욱이라는 '오퇴르'를 발견한 것도 후속작들을 통해 전체적인 그림을 고찰할 수 있었을 때부터고요. 작품들을 각각 비교해봐도 [똑바로 살아라]는 [순풍 산부인과]보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더 가까운 작품이지요.

파프리카 그런가요? 전 [똑바로 살아라]가 앞의 두 작품을 결합한 시리즈라고 생각했는데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노주현을, [순풍 산부인과]에서 박영규와 병원 설정을 그대로 빌려온 것부터가 그렇잖아요.

듀나 네,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농담의 선택이나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은 [순풍 산부인과]보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더 가까워요. 사실 어떻게 보면 이어지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죠.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가 어머니의 죽음으로 끝난다면 [똑바로 살아라]는 죽은 어머니를 가슴에 묻어두고 시작하잖아요.

파프리카 [똑바로 살아라]의 주인공 노주현이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주연 배우로 설정되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두 시리즈에 재미있는 '겹침'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네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가 어머니의 죽음으로 끝나는 건 [똑바로 살아라]의 주인공 노주현의 개인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요. 그렇다면 우리 시청자들은 겹겹으로 쌓인 허구의 층 중 어느 부분에 놓여 있는 걸까요?

듀나 그런 걸 파는 게 [똑바로 살아라]의 원래 목적이기도 했겠지요? 이 시리즈의 가장 노골적인 유머는 극중 인물인 노주현이 그를 연기하는 실제 배우 노주현과 교묘하게 오버랩되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특히 주현이 [난중일기]의 원균으로 출연하던 초반에는 이런 농담이 아주 강했지요.

파프리카 하지만 에피소드가 거듭되면서 노주현 농담들은 점점 줄어들었지요.

듀나 네, 노주현 농담은 원래부터 한계가 있었어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소방서처럼 처음부터 양념으로 시작된 것이었죠. 이미 비슷한 방식으로 두 번이나 다룬 적 있는 가정 시트콤에 새로운 멋을 더해주기 위한 트릭이었다고 할까요. 그래도 소방서보다는 역할이 크긴 했죠.

아까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죠. 아까 전 [똑바로 살아라]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했어요. 김병욱 시트콤들을 순서대로 보면 연속적인 변화의 흐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게 진화인지, 발전인지, 퇴보인지는 여러분이 판단할 일이죠.

파프리카 [순풍 산부인과]의 가부장 체제가 점점 붕괴된다는 느낌을 받긴 했어요. 셋 다 모두 폭군 가부장하의 가족을 그리는 건 맞는데 그 강도가 점점 약해지거든요.

듀나 네, 가장 중요한 변화지요. [순풍 산부인과]의 오원장은 헐랭이라는 별명에 맞게 빈 구석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형식적으론 거의 완벽한 보스였어요. 가정에서는 경제적 실권을 가지고 있고 병원의 우두머리였지요. [순풍 산부인과]의 기둥은 어설프게나마 정상에 서서 전권을 쥐고 있는 오원장과 다른 가족 구성원들간의 대결이었습니다. 가족 내의 역학 구조는 굉장히 역동적이었지만 그 역동성은 분명한 가부장적 가족 체제가 존재했기 때문에 더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나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가부장적 두목인 노구에겐 오원장의 힘은 없습니다. 굉장히 모진 성격의 인물이긴 합니다만 경제적 실권도 오원장처럼 대단하지 않고 전문적인 능력도 없지요. 가지고 있는 건 순전히 '아버지'라는 명칭과 험악한 성격 뿐이잖아요. 물론 그것만 해도 상당히 세서, 이 시리즈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며느리 정수와 노구의 대결에 힘을 실어주긴 했습니다.

[똑바로 살아라]에서 가부장적 가족 체제와 그에 따른 갈등은 더욱 약화되었습니다. 가장 분명한 차이점은 이 가족의 가부장인 노주현이 홀아비라는 것입니다. 앞의 두 편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부부간의 성대결 요소가 반쯤 사라진 것이죠. 게다가 그는 노구만큼 성질이 드세지도 못하고 소유하고 있는 병원일에 대해서도 아는 게 전혀 없습니다. 그는 '밑에' 있는 가족들에게 그렇게까지 대단한 권위가 있는 존재는 아닙니다. 대결의 필요성 자체가 팍 줄어들었단 말이죠. 아니 반대라면 반대일 수도 있어요. 노주현이 가족내에서 자신의 가부장적 권위와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들을 보세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장면들에 노주현을 자기네들의 무기로 이용하는 가족내의 음모가 숨어 있습니다. 주현의 크레디트 카드를 뻔뻔스럽게 훔쳐 쓰는 아이들은 아버지를 맞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종종 험악해지기도 하지만 쓸만한 자연물 정도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파프리카 김병욱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 변화 과정 중 가족내의 긴장감을 잃은 것 같아 아쉬워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그게 맞는 것 같긴 해요. [순풍 산부인과]의 박영규와 [똑바로 살아라]의 박영규를 보세요. 둘은 거의 같은 입장에 서있는 같은 캐릭터지만 [똑바로 살아라]의 박영규는 [순풍 산부인과]의 박영규보다 덜 극단적인 성격이고 놓여있는 상황도 덜 위급합니다. 형욱이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영삼이처럼 낙제생이지만 영삼이처럼 무방비 상태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게 꼭 단점인 건지요. 그 결과 극적인 대립이 줄어들긴 했지만 더 편하게 다가오는 인물들이 된 것도 사실이잖아요. 그 때문에 작품이 더 성숙해보이기도 하고요.

듀나 전 그냥 갈등의 방향이 바뀌는 동안 그의 시트콤들이 서서히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상하 계급의 갈등이 약화되는 동안 가족 내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 더욱 분명해졌고 그 과정 중 이 전쟁의 다른 성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요.

파프리카 살벌하다... :-)

듀나 특별히 살벌할 것도 없죠. 김병욱 시트콤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위트의 대결입니다. 영역권 다툼, 애정 표현, 연애... 이 모든 것들이 이런 두뇌 싸움을 통해 진행되지요. 그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말이에요.

자연스럽게 이들 사이에는 먹이 사슬들로 구성된 복잡한 그물이 형성되는데, 가부장 제도의 수직 구조가 약화된 [똑바로 살아라]에서는 그 어떤 때보다도 그런 그물이 눈에 잘 들어옵니다. 예를 들어 머리 나쁜 형욱이는 늘 똑똑한 누나들에게 당하기만 하죠. 박영규와 안재환은 거의 대등한 위치에서 싸우지만 대부분 안재환 쪽에 유리하게 일이 풀립니다. 커플 사이인 흥수와 민정이 중 늘 골치거리를 뒤집어 쓰는 사람은 마음이 약하고 무식한 흥수입니다.

먹이 사슬 밑에 있는 사람들과 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몇몇 법칙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 게임에서 마음이 약하거나 서툰 사람들은 불리합니다. 리나나 정명이 늘 먹이 사슬 밑에서 굴러다니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법칙은 똑똑한 사람이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고등 교육을 받거나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유리하고요. 결국 [똑바로 살아라]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지능적인 게임이니까요.

파프리카 꼭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요? 박영규는 두 시리즈 모두에 보통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으로 나오고 머리도 비교적 좋은 사람입니다. 결코 마음 약한 사람도 아니고요. 그러나 [똑바로 살아라]에서 박영규의 지위는 [순풍 산부인과] 때보다 오히려 나은 편이었는데도 그의 위치는 더 낮았고 끝까지 향상되지 못했습니다.

듀나 네, 그렇긴 해요. 하지만 여기에 재미있는 요소가 하나 숨어있습니다. 김병욱은 인터뷰에서 '약은 사람이 결국 승리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았다'고 했는데, 그건 아주 정확한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안재환이지요. 안재환은 이 시리즈의 먹이 사슬 꼭대기에 위치한 캐릭터들 중 한 명이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약은 사람'과는 별 상관 없습니다. 안재환은 대부분 상식적인 수순을 따릅니다. 공부를 열심히 했을 거고 특별한 줄 같은 걸 쓰지 않고 직장을 얻었고 연애를 하는 데도 특별히 사람을 속이거나 하지 않죠. 그는 충분한 능력이 있고 처음부터 배경이 좋기 때문에 특별히 약게 굴 필요 자체가 없는 사람입니다. 비교적 높은 데 있는 다른 캐릭터들인 정윤이나 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파프리카 민정이는 꽤 약지요. 뻔뻔스러운 음모가이기도 하고요.

듀나 네, 그렇긴 해요. 하지만 그 캐릭터도 전형적으로 '약은' 인물은 아니죠. 이 캐릭터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다른 것이니까요.

전에 전 [순풍 산부인과]가 우스꽝스러운 가상의 타자를 만들어 때려잡는 대신 우리 자신과 이웃의 모습에서 웃음을 찾아낸다고 말했습니다. 가차없으면서도 특별한 편들기가 없는 공평한 시선은 김병욱 코미디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그러나 전 여기에 약간의 수정된 시점을 첨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병욱 코미디는 공평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여기엔 분명한 편향성이 존재합니다.

김병욱의 작품들을 보면 대충 이 모든 소동들을 기술하는 한 사람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종종 수많은 다른 캐릭터들의 입을 빌리긴 하지만 이 나레이터는 분명 한 사람입니다. 제 생각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인삼이 가장 그에 가까운 인물인 것 같아요. 아마 그 사람은 머리가 좋고 공부도 잘했겠지만 사교성은 높지 않을 거고 그렇게까지 재미있는 인물도 아닐 것이며 말없이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는 걸 좋아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관찰자는 일반적인 한국사회에 대해 비교적 타자일 것입니다. 이 사람에겐 비공식적이지만 막강한 한국 사회의 규칙이 만들어낸 집단 사고를 생각없이 따라하는 사람들을 신기한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재미있어 하며 연구하는 습관이 있으니까요. 박영규가 대표적인 대상이죠. 그의 '타락한' 모습은 어떻게 보면 가장 평범한 한국 남성을 냉정하게 관찰한 뒤 그 부조리한 면만 드러내 과장한 것과 같습니다.

[똑바로 살아라]의 보다 분명해진 먹이 사슬 속에서 그런 '집단사고'는 불리합니다. 박영규가 세속적으로 약은 수를 쓸 때마다 늘 당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그런 약은 수는 같은 코드를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성공적인데, [똑바로 살아라]처럼 캐릭터들이 사방으로 튀는 세계에서는 당연히 먹히지 않거든요. [순풍 산부인과]의 박영규는 바깥 세상에서 그의 약은 수작을 써먹을 수 있었지만 [똑바로 살아라]의 박영규는 어쩔 수 없이 병원과 집 안에 갇혀 있어야만 했지요.

이건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가 승리한다'라는 선언과는 상관없습니다. 단순히 정도를 따르는 것만으로 [똑바로 살아라]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습니다. 원래부터 그렇게까지 교훈적인 작품이 아니거든요. 먹이 사슬 자체가 불평등함에 바탕을 두고 있잖아요. 원래부터 머리가 나쁜 게 형욱이의 잘못이겠습니까? 집안이 갑자기 몰락해서 경제적으로 빈궁해진 게 박영규의 잘못인 것도 아니고요. 이건 도덕성의 문제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현명함의 문제지요. 박영규는 정도에 어긋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처벌당하는 것이 아니라 불리한 상황에서도 충분히 똑똑하게 굴지 못했기 때문에 게임에서 지는 겁니다. 그리고 김병욱 시트콤의 유머는 이런 고정된 먹이 사슬이 필사적인 도전을 무시하고 태평스럽게 유지되는 과정 중에 발생합니다. 이 세계는 어떤 혁명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민정의 독특함이 드러납니다. 민정이 늘 먹이 사슬의 상위에 설 수 있는 이유는 이 캐릭터가 단순히 약기 때문이 아닙니다. 민정의 약음은 세속적인 약음과 거의 상관이 없습니다. 왜 민정이 특별히 머리를 굴리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성공적인 음모가가 될 수 있을까요? 그건 이 캐릭터가 일반적인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민정은 친근하게 주변 세계 속에 쉽게 녹아들지만 정작 사고방식은 일반인들이 공유하는 '코드'에서 아주 멀찌감치 떨어져 있습니다.

민정에게 그렇게 안티 팬들이 많은 것들도 그 때문입니다. 종종 화가 난 시청자들은 방송국 게시판에 메시지를 남겨놓습니다. "노민정! 너 그렇게 살지 마!" 그들이 그렇게 화를 내는 이유는 그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소집단의 규율(곧장 말해 깡패들의 법규)을 민정이 태평스럽게 위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반응은 "왜 엄마한테 일렀어!"라고 누나에게 고함을 질러대는 7살 소년의 투정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민정이가 저지르는 많은 일들은 그들에겐 신성모독과 같은 엄청난 대죄입니다. :->

파프리카 와, 무섭군요. 하지만 [똑바로 살아라]가 사랑을 받는 건 그런 지능전 때문만은 아니지 않을까요?

듀나 하지만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면이기도 하죠. 김병욱 시트콤의 가장 중요한 장점은 냉정한 분석과 따뜻한 정서의 결합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가 설명한 지능전은 그것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김병욱 시트콤은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뻣뻣한 사고를 묘사하는 데엔 가차없지만 인간적 약점이나 결점, 어쩔 수 없는 작은 죄들에 대해서는 관대하거나 중립적입니다.

파프리카 [똑바로 살아라]를 포함한 김병욱 코미디의 가장 큰 장점은 웃음 이외의 감정을 다루는 데도 능숙하다는 것입니다. 네, 한국 코미디나 시트콤들 중 멜로드라마적 성향이 없는 작품은 없습니다. 김병욱이 특별히 예외는 아니지요.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도식적인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다루는 것보다 훨씬 깊이 감정을 파고 있습니다. 이런 성향은 [순풍 산부인과]보다 캐릭터의 과장이 줄어들고 덜 다혈질이 된 후기작들에서 더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가장 눈에 잘 들어오는 건 소시민의 애환을 코미디에 담아내면서도 그 서글픔과 아픔을 그 안에 자연스럽게 융화시키는 방식입니다. [순풍 산부인과]에서 그랬던 것처럼 박영규와 그의 가족들은 그런 희비극적 드라마의 훌륭한 주인공들이었습니다. 경품으로 탄 자동차 '박혜경'을 사고친 동생을 위해 내놓을 수밖에 없고 옛 애인과 어렵게 만났다가 바람도 돈많은 놈들이나 피우는 거라고 흐느끼는 박영규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운만큼 서글프기도 했어요.

이런 위험한 트릭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김병욱 시트콤들이 처음부터 밝음과 어두움을 모두 염두에 두고 캐릭터와 갈등을 구성하기 때문입니다. 시리즈는 이들의 밝은 면을 찍은 사진과 같아요. 하지만 그 사진에 찍힌 구조물이 실제 세계에서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모든 정서적 차원을 점유하는 입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대변하는 가장 노골적인 예는 바로 시리즈들의 결말인데요...

듀나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를 정수의 죽음으로 끝내는 건 조금 심했지요. 전 아직도 그 시리즈의 재방송을 이전처럼 즐길 수 없답니다. 특히 몇 개월을 끄는 '캐릭터 장기 관찰' 에피소드들은요. :-(

파프리카 그러나 그건 매우 김병욱적인 결말이었습니다. [똑바로 살아라]도 결말이 비슷했지요. 모든 등장인물들이 다른 사람들에겐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안은 우울한 심정으로 기차를 타는 장면에서 끝나잖아요. 서글픈 분위기로 시리즈를 끝내는 건 굉장히 교활한 술수이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시리즈의 마지막을 아쉬워 하는 시청자들을 더욱 자극하거든요.

듀나 그래도 [똑바로 살아라]는 이전 에피소드에서 그 모든 고민들이 대부분 해결될 거라는 걸 미리 보여주긴 하지요. 그 때문에 전체적으로 밝음과 어두움의 균형이 잡혔다고 생각합니다. [똑바로 살아라]의 결말은 세 편 중에 가장 좋았어요. 물론 가장 형편없었던 건 [순풍 산부인과]의 결말이었지만요.

파프리카 그 때는 정말 어쩔 수 없었지 않았겠어요? 연출진도 빠지고 배우들도 빠지는 상황 속에서 마구 밀어붙여야 했으니... 그 시리즈는 그보다는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었어요.

듀나 아직도 전 태란의 결혼으로 끝났으면 좋았을텐데... 라고 생각한답니다.

파프리카 [똑바로 살아라]에서 가장 노골적인 단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은 기존 캐릭터들의 재등장입니다. 제작 당시에는 일종의 안전망으로 여겼던 모양이지만 같은 캐릭터를 반복한다는 비판을 들었었지요.

듀나 안이하다는 말을 들을만 했지만 완전한 반복은 아닌 것 같아요. 박영규는 [순풍 산부인과]의 캐릭터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지만 노주현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캐릭터와 전혀 다른 걸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노주현은 아버지에게 눌려지내는 물렁물렁하고 순해빠진 공무원이지만 [똑바로 살아라]의 노주현은 성질이 급하고 자기에게 굉장한 권위가 있다고 착각하는 가부장이지요. 진짜 배우와 이상할 정도로 경력이 비슷한 동명의 배우라는 설정도 다르고요.

파프리카 그래도 배우의 재활용이라는 비판은 빠져나가기 힘들 것 같군요.

듀나 그렇긴 해요. 하지만 [똑바로 살아라]에서도 고유의 개성을 가진 캐릭터들은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는... 역시 민정인 것 같아요. 노민정은 [순풍 산부인과]의 미달이에 맞먹는 독창적 괴물입니다. 둥글게 사는 것 같으면서도 철저하게 자신의 논리를 따르고 그 논리 속에서 아무런 깊은 생각이나 고민없이 얄팍하게 움직이는 민정의 행동은 굉장히 신선합니다. 전 지금도 서민정의 졸린 듯한 고민 연기(띠용!)를 굉장히 좋아한답니다! 이런 사람이 진짜로 옆에 있으면 무섭긴 할 거예요. 하지만 텔레비전으로 민정의 무심함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며 즐기는 건 사정이 다르죠. 특히 전 형욱이가 당하는 걸 보는 게 좋아요. 형욱이는 정말 타고난 피해자예요. 누구한테 어떻게 당해도 재미있다니까요.

파프리카 아, 형욱이... 김병욱 시트콤은 '꼴통들'을 묘사하는 데 뭔가 특별한 게 있어요.

듀나 그들 중 가장 밑바닥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영삼이와 친구들이었지요? 형욱이는 그래도 조금 교활한 면이 있긴 한데, 영삼이는 순진무구하고 모자라기만 했지요. 한 열 개쯤 되는 어휘와 그에 걸맞는 사고 수준으로 살아가는 이 덜떨어진 아이들을 묘사하는 방식은 거의 잔인할 정도였지요. 결국 이들을 묘사하는 유머는 모두 그들의 얄팍함을 폭로한 뒤 타자화시키는 것이었어요.

그건 역시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인 리나와 '꼴통들'을 비교하면 알 수 있어요. 형욱이나 영삼이는 자기가 얼마나 바보스러운지 인식하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어설프지만 똑똑한 리나는 자기가 얼마나 서툰지 너무나도 잘 인식하고 있고 그런 자기 인식이 다시 코미디의 재료가 됩니다. 슬랩스틱 코미디의 강도가 같을 때도 리나의 코미디는 형욱이의 것과는 달리 자기반영의 측면이 강하지요. 결국 앞에서 한 이야기와 같아요. 모자란 사람은 타자화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들은 '남'이에요. 아무리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어도 만드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자신을 투영하지는 않아요.

파프리카 형욱은 속이 다 비치는 멍청이이고, 민정이 초자연적이고 신비스러운(?) 괴물이라면, 재환은 똑똑한 가해자지요. 흠... 역시 자기 인식 능력과 지능 지수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는군요.

듀나 영규나 형욱이의 코미디가 캐릭터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라면 안재환이 개입된 코미디의 상당 부분은 의식적으로 다듬어진 것이지요. 이 사람은 박영규를 몰아붙이거나 리나에게 장난을 치거나 하는 식으로 자신의 힘을 발휘할 때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재환과 박영규를 비교하는 식의 유머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균형 맞추기의 느낌이 강했어요. 어떤 사람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을 군림할 정도로 강하거나 잘나서는 안된다는 공정성의 규칙을 따랐던 게 아닌가 싶군요.

파프리카 인간적 결점을 주지 않으면 캐릭터의 할 일이 없어지지요. 혜진이가 그렇잖아요. 부모가 비교적 가난하다는 것만 빼면 똑똑하고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나무랄 게 없는 딸이니 형욱이만큼의 이야기는 얻을 수 없었지요. 코미디 안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결점들이 필요해요.

듀나 네, 코미디 안에서 혜진이는 주로 형욱이의 비교 대상으로 존재했지요. 하지만 혜진이 캐릭터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활기차고 유쾌했죠. 적어도 인삼이처럼 극적 기능없는 관찰자는 아니지 않았어요? [똑바로 살아라]에서 가장 할 일이 없었던 사람은 이간호사였지요. 그냥 예쁘고 성격 좋은 사람에 불과했으니.

혜진이가 1편의 나레이터가 되었으면 더 좋았을 거예요. 원래 이야기의 중심이 노주현의 집에 고정되어 있긴 했지만 형욱이는 나레이터로 어울리지 않았죠. 관찰 능력도, 분석력도 없는 아이였으니까요.

다시 안재환 이야기로 돌아가죠. 전 김병욱이 민정만큼 재환을 좋아하는 이유가, 충분히 자기 시점을 반영할만큼 똑똑한 캐릭터에 성공적으로 희극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당사자가 부인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

파프리카 안재환을 처음 봤을 때는 그 배우가 그처럼 성공적으로 시트콤 안에 녹아들 거라고는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그건 홍리나나 이응경, 노주현, 신구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러고보면 김병욱 시트콤의 가장 큰 장점은 용병술에 있어요. 전혀 코미디에 맞지 않을 것 같은 배우에게 딱 들어맞는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그 안에 다시 배우를 녹여내는 수법은 놀라워요.

김병욱이 사람들을 그만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거예요. 이들의 희극성이 여전히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들이 고정된 스테레오타입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기존 인물안에 내재된 희극성을 성공적으로 끄집어냈기 때문은 아닐까요?

듀나 세상과 인물에 대한 정확한 관찰과 분석, 그리고 그를 통해 얻은 이해를 입체적이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표출해내는 것. 단순하고 뻔한 말 같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죠. [순풍 산부인과]에서 [똑바로 살아라]로 이어지는 긴 여정 동안 김병욱 시트콤은 이 점에서 늘 시청자들을 앞서 갔었어요.

[똑바로 살아라]의 시간대를 물려받을 [압구정 종가집]이 어떤 작품이 될지는 모르겠군요. 전 그 작품이 김병욱 시트콤의 모작이 되길 바라지는 않아요. 단지 이들이 김병욱 삼부작이 남긴 간단한 교훈 정도는 알고 시리즈를 시작하는 것이길 바랄 뿐입니다. 간단한 것일수록 오히려 배우기가 힘든 법이긴 합니다만... (03/11/03)

기타등등

끝나서 아쉽긴 합니다만 웬만한 미국 시트콤이면 10년 분량일 내용을 1년 동안 맛보았으니 더 이상을 기대하는 건 지나친 욕심이겠지요. 케이블 재방송도 기다리면 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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