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브리튼 Little Britain (2003 - )

2010.03.21 07:16

DJUNA 조회 수:3700

연출: Steve Bendelack, Declan Lowney 출연: Matt Lucas, David Walliams, Tom Baker, Anthony Head, Ruth Jones

1.

[리틀 브리튼]은 맷 루카스와 데이빗 월리엄스 콤비가 만든 BBC 스케치쇼입니다. 원래는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가 텔레비전으로 옮겨갔고 거기서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어요.

이 시리즈의 기본 설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닥터 후]의 톰 베이커가 거창하고 느끼한 목소리로 영국과 영국인들에 대한 말도 안 되는 나레이션을 읊어댑니다. ("Britain, Britain, Britain, a bloody lovely place to live. Discovered in 1972, lost in 1974. Then found a few years later hiding under Belgium. But what makes Britain so fan dabby dozey? Why it's the great British public. Ahhh, push it, push it good, ahhh, push it, push it real good!") 그럼 그 사이에 루카스와 월리엄스가 대부분을 연기한 현대 영국을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이 던져지지요. [리그 오브 젠틀멘]과 비슷한데, 작은 시골 마을 대신 전 영국을 무대로 잡고 있고 그들을 연결해주는 스토리라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그 중 유명한 것들을 뽑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비키 폴라드는 건방지고 멍청한 노동자계급 불량소녀입니다. 늘 주절주절 떠들지만 ("Yeah but, no but, Yeah but, no but, Yeah but...") 하는 말은 알아듣기 힘들 뿐 아니라 그냥 두서가 없죠.

(2) 세바스찬 러브는 은근슬쩍 토니 블레어와 비슷한 수상의 비서인데, 상사에게 푹 빠져 있습니다. 그의 구애가 너무나도 노골적인데도 수상은 그걸 거의 눈치채지 못합니다.

(3) 루 토드는 휠체어에 탄 무례하고 괴상한 친구 앤디 핍킨을 자상하게 보살핍니다. 하지만 앤디는 사실 사지가 멀쩡하면서 장애인 흉내를 내며 친구를 이용해 먹고 있어요.

(4) 다피드 토머스는 웨일즈의 작은 마을에 사는 게이 청년입니다. 그는 자신이 'the only gay in the village'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가 사는 마을 사람들이 동성애에 대해 지극히 관대하고 마을에 게이들이 부글거린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그는 결국 마을에서 가장 노골적인 호모포빅처럼 행동하게 되지요.

(5) 에드워드 '에밀리' 하워드는 정말로 형편없는 이성복장착용자입니다. 그는 시대에 뒤떨어진 에드워드조 숙녀 복장을 하고 여자인 척 하지만 아무도 속지 않죠. 나중에 그는 콧수염을 단 친구 플로렌스와 함께 다닙니다.

(6) 마조리 도우스는 체중 감량 그룹인 'Fat Fighters'의 리더입니다. 자기 자신도 결코 날씬하지 않으면서 모임의 다른 뚱뚱한 사람들을 툭하면 비난하고 모욕하죠.

그밖에도 오줌싸개 할머니 에머리 부인, 늘 출연하는 작품에서 주제가를 부르겠다고 고집하는 난쟁이 배우인 데니스 워터맨, 돈 한 푼도 내지 않는 스파에서 거의 나체로 돌아다니며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섹시하다고 믿는 뚱보 아줌마 버블 드 비어, 늘 "Computer says no..."라고 말하며 고객들의 기를 죽이는 은행 직원(나중에 여행사로 자리를 옮깁니다) 캐롤 비어, 친구 주디와 함께 다양한 자선 행사에 참여하지만 동성애자나 외국인이 만든 음식을 먹었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 구토를 하는 매기와 같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일회성 캐릭터들이 출연하고요.

2.

[리틀 브리튼]이 성공 이유는 [개그 콘서트]와 같은 우리나라 코미디쇼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적당히 귀에 쏙쏙 들어오는 유행어를 가진 캐릭터들이 쇼마다 비슷한 짓을 반복하며 그 특징을 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키는 거죠. 'The only gay in the village'나 'Yeah but, no but, Yeah but, no but, Yeah but...'과 같은 유행어들은 대히트를 쳤고 아이들도 학교에서 이런 것들을 흉내내며 학교 선생들의 골치를 썩혔지요. 결코 온 가족이 보는 프로그램이 아닌데도 말이죠.

맷 루카스와 데이빗 월리엄스의 재능이 없었다면 이런 유행도 잠깐이었겠죠. 안소니 헤드나 루스 존스와 같은 배우들이 가끔가다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긴 하지만, [리틀 브리튼]의 대부분은 이 두 사람이 수많은 역할들을 번갈아 맡아가며 끌어가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굉장한 장기 자랑이라고 해야할 거예요.

물론 역들이 많아지면 한계가 있어요. 3시즌까지 가면 캐릭터들이 겹쳐서 나이 든 아줌마로 분장하고 나온 데이빗 월리엄스가 매기 블랙무어인지 에머리 부인인지 확신이 안 서기도 하죠. 몇몇은 반복이 지나쳐서 보기도 전에 질릴 지경이고요. 세바스찬 러브나 다피드 토머스와 같은 캐릭터들은 끝날 때까지 계속 신선한 설정들을 찾아냈지만, 매기와 주디 이야기 같은 건 반이나 반의 반 정도로 충분했을 것 같아요. 물론 저처럼 DVD로 몰아서 보지 않았던 BBC 시청자들은 여기에 훨씬 더 관대할 수도 있었겠지만요.

3.

[리틀 브리튼]의 가장 큰 특징은 그 무례함입니다. '정치적으로 공정치 않음'이라고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겠죠. [리틀 브리튼]은 소위 영국인들에 대한 부정적 스테레오타입을 골라서 폭로하고 있고 ("기사 작위는 물 건너 갔다"라고 데이빗 월리엄스가 말하더군요) 수상에서부터 동네 불량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계층에 대해 총알을 날려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풍자가 방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루카스와 월리엄스의 풍자는 기본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리버럴한 지식인 남성의 것입니다.

각 캐릭터들을 보면 그 관점이 눈에 들어오죠. 툭하면 토하는 매기는 보수적인 영국 중상계급의 편협함에 대한 순수한 야유입니다. 하지만 툭하면 동성애 혐오에 빠지는 다피드 토머스나 뚱보들을 증오하는 뚱보인 마조리에 이르면 사정이 좀 달라집니다. 이들을 연기하는 맷 루카스가 커밍 아웃한 뚱뚱한 게이 청년이니 말이죠. 과체중과 성적 정체성에 대한 그의 이런 농담들은 그 때문에 아이러니컬한 자조의 느낌을 풍기며 가끔 코미디의 선을 넘어 심각한 드라마로 전이되기도 합니다. 전 무례하고 유치한 마조리 캐릭터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3시즌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면서 이게 훌륭한 성격비극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마조리의 이야기는 자기 혐오와 편견이 지나쳐서 주변에 넘쳐나는 사랑과 우정의 기회를 모조리 날려버리고 외톨이가 되어버린 어리석은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종종 그들은 위태롭게 선을 넘기도 합니다. 매기만 해도 그 공격이 지나치게 일방적이라 오히려 설득력이 떨어지거나 밋밋해질 정도죠. 맷 루카스가 고무로 만든 추한 뚱보 나체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버블 드 비어 에피소드는 훨씬 위태롭습니다. 그 자신이 과체중이라는 것만으로는 과체중인 여성 육체에 대한 이렇게 노골적인 패러디는 쉽게 정당화되지 못해요. 3시즌이 되어 데이빗 월리엄스가 버블 드 비어의 경쟁자인 뚱뚱한 흑인 여성으로 분했을 때는 인종적 편견이 추가되었습니다. 3시즌은 맷 루카스가 못 생긴 태국의 여장남자인 팅통으로 분했던 때이기도 하죠. 두 사람이 노골적인 인종편견이나 성차별을 의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농담들이 완전히 정당화되는 건 아닙니다.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해서 우리나라 연예인들이 '동남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방식이 정당화되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죠.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들이 모두에게 무례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군요. 그들이 가장 무례하게 대했던 건 그들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들이었고 그들은 대부분 그래도 쌌습니다. 하지만 다피드의 친구인 레즈비언 술집종업원 마이판위나 마조리가 그처럼 경멸했던 'Fat Fighters'의 멤버들은 모두 참 사랑스러운 사람들이었어요. 다피드와 마조리는 그들을 거부하면서 정말 많은 걸 잃었지요.

4.

[리틀 브리튼]은 지금까지 3시즌이 방영되었고 3시즌 피날레 에피소드를 보면 일단 종결된 것으로 봐야겠지만, 성공적인 영국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그렇듯 수명이 완전히 끝났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3시즌 종영 즉시 [리틀 브리튼] 라이브 쇼가 공연되었고, 검색해보니 루카스/월리엄스 콤비가 HBO와 미국판을 만들기로 계약했다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두 콤비와는 상관없지만, 이스라엘과 러시아에서도 포멧을 수입해 독자적인 코미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모양입니다. 참, 이 시리즈는 비디오 게임으로도 나왔어요. (07/09/24)

기타등등

제목인 [리틀 브리튼]은 'Little England'와 'Great Britain'을 멋대로 결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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