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 Snow White (1991)

2010.03.13 22:06

DJUNA 조회 수:3414

Josephine Poole (글) Angela Barrett (그림)

네, 바로 그 [백설공주] 이야기입니다. 의붓딸의 미모를 시기하는 사악한 계모 덕택에 숲속으로 쫓겨난 공주가 일곱 난쟁이를 만나고, 계모는 수도 없이 공주를 죽이려고 하고요.

그러나 조세핀 풀과 안젤라 바렛의 [백설공주]는 그림 형제의 원작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림 형제 이야기에 묻어 있는 그 찬란한 그로테스크함과 어마어마한 콘트라스트를 이 그림책에서 기대하신다면 무척 실망하실 거예요. 풀과 바렛의 책에는 그런 느낌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버전처럼 귀엽지도 않고요.

풀과 바렛의 버전은 보다 성숙하고 이치에 맞으며 어른스럽습니다. 풀은 이 단순하고 험악한 범죄물에 보다 깊이 있는 캐릭터와 더 그럴싸한 사건 전개를 끼워넣습니다. 예를 들어 원작에서는 왕의 존재가 철저하게 무시되어 있지요. 하지만 그림책에서는 어린 딸의 모습에서 죽은 전처의 모습을 보고 애써 외면하려는 왕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바렛은 나이 든 댄스 교사와 춤추는 딸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왕의 모습을 살짝 삽입하면서 그 서글픔을 강조합니다.

백설공주를 도와주는 일곱 난쟁이도 우스꽝스러운 괴물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몸집만 조금 작을 뿐 친절하고 이성적인 보통 사람들입니다. 아니, 보통 남자들이라고 치기엔 너무 깔끔하고 이쁘게 해놓고 살지요. 바닥에 깔린 카페트부터 스탠실로 깔끔하게 장식한 옷장까지 어쩌면 그렇게 집이 예쁜지. 책을 읽으면서 '이 친구들이 아무래도 게이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답니다.

왕비의 살인 음모 이야기도 보다 이치에 맞습니다. 순진하게 계속 왕비를 맞아들이는 원작과는 달리, 풀은 다음 살인 미수로 넘어갈 때마다 살짝 살짝 장벽을 칩니다. 맨 처음에 왕비는 집 안으로 들어가지만, 두번째는 창문 너머로 이야기를 하고, 마지막에는 창문 너머로 손만 밀어넣지요.

결말도 비교적 온화해요. 원작의 왕비에 가해지는 끔찍한 형벌은 없습니다. 왕비는 자신이 준비해간 독이 묻은 장미에 찔려 죽지요.

풀의 우아한 텍스트를 장식하는 바렛의 그림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쯤으로 보이는 중부 유럽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백설 공주의 하얀 드레스는 엠파이어 스타일을 살짝 변형시킨 듯 하고, 일곱 난쟁이와 왕자는 그 당시의 소박한 평상복을 걸치고 있습니다. 이 소박함에 화려함을 가하는 것은 사악한 왕비입니다. 왕비가 음모를 꾸미는 침실이나 탑 위의 방은 반쯤은 계몽시대의 문명 사회 속에 음침하게 또아리를 틀고 있는 숲 속의 야수를 보고 있는 듯 합니다. 이런 야수성과 환상은 범죄 현장인 마술에 걸린 듯한 슈바르츠발트의 어두침침한 나무 아래에서 조용히 터져 나오지요.

몇몇 분들은 이 작품이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공정'해지려고 했거나, 아이들을 위해 순화시킨 버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풀과 바렛은 [백설공주]를 보다 깊이 있고 있을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었으며 새로운 시적 느낌과 우아함을 부여했습니다. 그림 형제의 원작에서 느낄 수 있는 생 느낌은 사라졌지만, 전체적으로 얻은 게 더 많습니다. (00/10/0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