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피와 뱀파이어 Buffy the Vampire Slayer (1997- 2003)

2010.03.14 21:41

DJUNA 조회 수:6680

출연: Sarah Michelle Gellar, Alyson Hannigan, Nicholas Brendon, Anthony Stewart Head, Emma Caulfield, Michelle Trachtenberg, Amber Benson, James Marsters, Seth Green, David Boreanaz, Charisma Carpenter, Robia La Morte, Juliet Landau, Eliza Dushku, Marc Blucas, Kristine Sutherland, Danny Strong, Alexis Denisof, Mercedes McNab 다른 제목: 뱀파이어 해결사, 미녀와 뱀파이어

1.

Giles: Because you are the Slayer. Into each generation a Slayer is born, one girl in all the world, a Chosen One, one born with the strength and skill to hunt the vampires...

"Welcome To The Hellmouth"


1992년, 젊은 작가 조스 위든은 당시 호러 장르의 주류로 돌아올 기미를 보이던 흡혈귀 영화의 유행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도쿄 팝]으로 인디 영화계에서 명성을 얻어가고 있던 프랜 루벨 쿠주이가 감독할 흡혈귀 영화의 각본을 쓰게 되었던 것이죠. 그가 썼던 각본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흡혈귀들을 처단하는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는 걸 알게 된 평범한 틴에이저 소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영화의 제목은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 (국내 출시제는 [뱀파이어 해결사])]였습니다.

결과는 그저 그랬습니다. 영화의 성과는 [드라큘라]나 [미녀 드라큘라] 같은 영화들을 따돌리고 흡혈귀 영화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위든은 영화가 많이 아쉬웠던 모양입니다. 사실 영화는 설정의 맛만 살짝 본 것에 불과했습니다. 평범한 틴에이저들의 세계와 세상을 정복하려는 어둠의 세력에 대한 초자연적인 세계를 뒤섞는 아이디어는 생각보다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었습니다.

위든의 불만은 곧 텔레비전 시리즈 아이디어로 구체화되었습니다. 아이디어를 파는 데 애를 꽤 많이 먹었다고 해요. 우선 방송국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촌티를 팍팍 내는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라는 제목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간신히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킨 위든은 동명의 시리즈(MBC에서는 [미녀와 뱀파이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고 NTV에서는 [버피와 뱀파이어]라는 제목으로 방영중입니다)를 WB 네트워크에서 미드 시즌에 데뷔시켰습니다.

[버피]는 서서히 컬트 현상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특히 인터넷 팬들의 막강한 지원은 대단했지요. 어처구니없는 제목을 단 틴에이저 호러 시리즈라는 이유로 가볍게 넘겼던 평론가들도 서서히 이 작품을 진지하게 다루기 시작했고요. WB에서 UPN으로 방송국을 옮겨 올해 가을부터 6시즌을 시작한 이 시리즈는 현재 가장 중요한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 중 하나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2.

Xander: I don't like vampires. I'm gonna take a stand and say they're not good.

"The Harvest"


[버피]의 설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구를 처음 지배했던 존재들은 인간들이 아니라 악마들이었어요. 악마들은 지상에 지옥을 세웠지만 인간들에게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수많은 악의 세력들이 인간들이 세운 세상을 뒤엎기 위해 이를 갈고 있지요. 악마와 인간들 사이에서 태어난 흡혈귀들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슬레이어(MBC에서는 해결사, NTV에서는 사냥꾼으로 번역합니다)는 이런 흡혈귀들을 처단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지구상에 단 한 명만 존재하는 슬레이어는 틴에이저 소녀이며, 선임자가 사망하는 즉시 인류의 미래를 위해 흡혈귀들을 처단하는 사명을 받습니다. 슬레이어의 주기는 꽤 짧은 편입니다. 워낙 일이 거칠다보니 오래 버텨내기가 힘들거든요. 대부분의 슬레이어들은 20살을 넘기지 못합니다.

슬레이어들을 지원해주기 위해 와처(후견인)들이 존재합니다. 와처는 슬레이어들에게 그들의 사명을 알려주고 훈련시키는 존재입니다. 이들은 영국 어딘가에 본부를 두고 슬레이어와 슬레이어 대기자들을 관리합니다.

이 설정은 원작이 된 영화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영화에서 와처와 슬레이어는 각각 한 명뿐입니다. 같은 사람들이 계속 되풀이 환생하는 것이지요. 아마 시리즈도 처음엔 원작의 설정을 따랐다가 이야기를 풀기 위해 살짝 설정을 변경한 듯 합니다. 흡혈귀들이 죽으면 먼지가 되어 부서진다는 설정도 시리즈의 편이를 위해 급조된 듯 하고요.

3.

Buffy: Do you think I chose to be like this? Do you have any idea how lonely it is? How dangerous? I would love to be upstairs watching TV or gossiping about boys or, god, even studying! But I have to save the world. Again."

"Becoming, Part Two"


시리즈는 버피 서머즈라는 16살의 슬레이어가 이름도 발랄한 서니데일이라는 캘리포니아의 소도시에 이사오면서 시작됩니다. 이혼한 엄마와, 흡혈귀들을 때려잡으려다 학교 체육관에 불을 질러 퇴학당한 딸이 함께 새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이 도시로 찾아온 것이죠.

하지만 서니데일은 이름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습니다. 하필이면 지옥문 위에 세워진 이 도시는 자석처럼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끌어들이고 있었어요. 툭하면 인간들을 멸종시키려는 다양한 악의 무리들이 도시 하부에 부글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부류들이 얼마나 많은지, 심지어 악마와 흡혈귀 전용 술집까지 있을 정도랍니다.

버피가 이 곳에 온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당연히 루퍼트 자일즈라는 이름의 와처가 학교 도서관 사서로 취직해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고요. 처음엔 자신의 사명을 받아들이지 않던 버피는 결국 흡혈귀 사냥에 나섭니다. 이전과 다른 점은 그녀의 뒤에 와처 말고도 잰더 해리스와 윌로우 로젠버그라는 친구들이 붙어 있었다는 것이죠. 게다가 집시 저주로 영혼을 되찾은 앤젤이라는 흡혈귀가 버피의 뒤를 수호 천사처럼 따라다니고 있었답니다.

4.

Oz: Guys. Take a moment to deal with all this. We survived.
Buffy: It was a hell of a battle.
Oz: Not the battle. High school.


"Graduation Day, Part Two"


[버피]는 시즌 별로 이야기가 분명히 구분 지어져 있는 작품입니다. 매 시즌마다 '빅 배드'라는 악당들이 등장해 세계 종말을 가져올 만한 거대한 음모를 꾸밉니다. 버피와 친구들(슬레이어렛 또는 스쿠비 갱)은 빅 배드와 상대하는 동안 다른 자잘한 악당들과도 싸워야 하지요. 1시즌의 빅 배드는 세상을 정복하려는 흡혈귀 마스터였습니다. 2시즌에는 흡혈귀 커플 스파이크와 드루실라, 그들의 계략으로 영혼을 다시 잃은 앤젤이었고요. 3부에서는 서니데일을 지배하는 악마 숭배자 시장이었고, 4부에서는 정부의 비밀 실험으로 태어난 인조인간 아담이었습니다. 5부에서는 사람 뇌를... 에헴 스포일러가 있으니 더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버피]는 시즌을 거듭해갈수록 점점 성장해갔습니다. 1시즌은 비교적 단순한 선악 구도의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앤젤이 영혼을 잃은 2시즌에서 이야기는 그 선을 넘었습니다. 선과 악의 경계를 떠도는 외톨이 슬레이어 페이스가 3시즌에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더욱 꼬여갔고요.

[버피]가 지금의 성격을 찾은 것도 이런 과정이 본격화된 2시즌 때부터였습니다. 이전엔 [엑스 파일]을 가볍게 모방하던 초자연적 스토리들이 서서히 '버피버스'라는 하나의 독립된 우주를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일단 버피버스가 형성되자 처음엔 낸시 드루 흉내를 내던 주인공들의 갈등과 드라마도 심화되었습니다.

[버피]가 틴에이저 드라마라는 사실 역시 이런 발전에 불을 당겼습니다. [버피]는 사방에 피가 튀기고 목이 날아가는 초자연적인 통과제의의 이야기였습니다. [버피]가 팬들에게 그처럼 열렬한 애착의 대상이 되었던 것도, 그 이야기가 결국 그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좀비, 잉카 미이라, 하이에나 괴물, 사마귀 괴물, 흡혈귀, 인조 인간 따위가 등장하는 이야기였지만 그들은 쉽게 버피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경험을 대입시킬 수 있었습니다. [버피]는 종종 적극적으로 그런 메타포들을 사용했습니다. 친구들의 따돌림을 받는 동안 점점 투명인간이 되어 가는 소녀의 이야기나 서머즈 모녀 사이에 끼여들어 모녀 관계를 위협하는 엄마의 수상쩍은 남자 친구 이야기를 예로 들 수 있겠군요.

당연히 주인공들은 시즌마다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며 성숙해져갔습니다. 처음엔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들이 벌써 대학교 3학년이 되었고요. 1시즌의 단순하고 발랄한 틴에이저 소녀 버피는 가족과 친구의 죽음, 실연의 상처를 극복한 5, 6시즌의 20대 초반의 성인인 버피와는 상당히 다른 사람입니다. 이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동안 와처인 자일즈는 중년의 위기라는 새로운 통과제의에 말려들었고요.

이런 주인공들의 성숙은 매 시즌마다 새로운 이야기와 관계를 창출해냈습니다. 가장 큰 변화를 보인 캐릭터는 아마 버피의 단짝 친구인 윌로우 로젠버그일 것입니다. 처음에는 수줍은 공부 벌레에 불과했던 컴퓨터광이 이제는 죽은 사람까지 살려낼 정도로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마녀가 되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에 도취된 6시즌의 윌로우가 무섭다고까지 합니다.

주인공이 성숙해지는 동안 주변 인물과의 관계도 깊어졌습니다. [버피]만큼 조연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는 시리즈도 많지 않을 겁니다. 종종 그들은 선을 넘고 입장을 바꾸고 전에는 시청자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속내를 드러냅니다. 처음엔 빅 배드였던 스파이크나 3시즌에 1회용 악마로 등장했던 아냐는 이제 스쿠비갱입니다. 1시즌에는 단순 무식한 학교 공주 캐리커처로 나왔던 코델리아도 2, 3시즌을 지나면서 훨씬 공감할 만한 인물로 성장했고요. 심지어 코델리아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의미 없는 배경이었던 하모니도 이제 당당한 흡혈귀 악당이 아닙니까? 끊임없이 자기 변화를 시도하고 설정을 바꾸어가는 시리즈의 성격은 6시즌이 접어든 지금에도 여전히 생생함을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5.

Buffy: Boy, you've really thought this through. How bored were you last year?
Giles: I watched 'Passions' with Spike. Let us never speak of it. 

"Real Me"


[버피]라는 시리즈를 정의할 때 가장 자주 쓰이는 표현은 '캠피함'입니다.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라는 제목부터가 의식적인 캠피함의 선언이었습니다. 실제로 [버피]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싸구려 B급 영화, 만화책, 하이틴 로맨스, 소프 오페라와 같은 통속적인 오락물에 기원을 둔 것들이며, 애써 이런 통속성과 조야함을 지워버리려 하지도 않습니다.

대충 지금까지 버피와 스쿠비갱들이 겪은 연애담을 보세요. 버피와 앤젤의 그랜드 로맨스, 윌로우, 코델리아, 잰더, 오즈가 만든 복잡한 사각관계, 윌로우와 타라의 레즈비언 로맨스, 잰더와 아냐의 종을 초월한 사랑... 정말 끝도 없고 한도 없습니다. 자일즈나 스파이크 같은 사람들이 어울리지 않게 소프 오페라에 쉽게 빠지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분위기에서 몇 년 살다보면 소프 오페라의 스토리도 꽤 현실성있게 다가올 겁니다.

이런 뻔뻔스러운 통속성은 연애담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숫총각을 유혹해 목을 뜯어먹는 사마귀 괴물을 당연하다는 듯 등장시키는 시리즈니 할 말 다했지 않나요?

곧 캠피함은 [버피] 시리즈의 중요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표현 폭이 굉장히 넓어진 것이죠.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라는 말도 안되는 제목을 안전망 삼아 멋대로 상상력을 날려댄 결과, [버피]는 호러, 고딕 로맨스, 추리물, 하이틴 로맨스, SF, 액션, 코미디, 잉마르 베리만식 실내극, 심지어 뮤지컬까지 어우르는 방대한 장르 무대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6.

Tara: We can be strong.
Willow: Strong like an Amazon?
Tara: Strong like an Amazon, right...
Willow: Okay...I wish I had the blue. 

"The Body"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버피]에서 가장 먼저 주목하는 것은 이 작품의 페미니즘적인 성격입니다. 하긴 틴에이저 소녀가 일당백으로 무시무시한 괴물들과 싸운다는 게 설정이니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 자체가 무리한 일이죠.

그러나 [버피]는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다른 시리즈보다는 조금 깊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버피]에는 예쁘장한 여자 주인공이 악당을 두들겨 팬다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으니까요. 이는 그 뒤에 [버피]의 인기를 타고 나온 다른 시리즈들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비슷한 여자 수퍼 영웅을 내세운 [다크 앤젤]은 결코 [버피]만큼 페미니스트 평론가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습니다.

우선 [버피]는 여자 주인공과 시청자 사이의 벽을 없앴습니다. 예쁘지만 그렇게까지 튀지않는 외모인 버피역 배우 사라 미셸 겔러는 [다크 앤젤]의 맥스처럼 보여지기 위한 대상만은 아니었으므로, 시청자들은 별 무리없이 버피와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버피는 비슷한 나이의 젊은이들이 겪는 문제에서 벗어나 있지도 않았습니다. 버피 서머즈라는 캐릭터의 현실성은 작품 속에 숨어 있는 페미니즘 메시지를 훨씬 직접적으로 만들었지요.

사실 이 시리즈에서 진짜로 중요한 메시지는 버피가 수퍼 파워로 괴물들을 퇴치한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버피] 시리즈의 여성 캐릭터들이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통제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느냐는 것이었죠. 흡혈귀와 악마들은 그런 일상의 투쟁을 더 극적으로 만들었을 뿐입니다.

[버피]가 유달리 여성 주도의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이런 설정은 남녀 관계의 새로운 측면에 빛을 비추기도 했습니다. 사실 스쿠비갱은 은근슬쩍 남녀의 성역할이 바뀐 그룹입니다. 액션은 슬레이어인 버피나 마녀인 윌로우의 역할이고 자일즈나 잰더는 그들을 뒤에서 돕는 보조자 역할이니까요. 잰더나 잠시 버피의 남자 친구였던 라일리가 느꼈던 남성성의 위협은 시리즈에 흥미로운 주석을 달아주기도 했지요.

7.

Willow: We're in love. We're lovers. We're lesbian, gay-type lovers. 

"Checkpoint"


[버피]는 데뷔초부터 동성애자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작품입니다. 우선 흡혈귀라는 소재와 캠피한 스타일만으로도 그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지요. 게다가 우리의 주인공 버피 서머즈는 거의 남자 동성애자 시청자들을 위해 고안된 캐릭터나 다름 없었습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긴 패셔너블한 여자 수퍼 영웅인데다가 엄청나게 남자 운이 없잖아요. 물론 강한 여자 주인공이라는 설정은 여성 동성애자 시청자들에게도 어필하는 것이었고요. 스파이크나 앤젤, 페이스 같은 캐릭터들도 동성애자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 만했습니다. 소외된 틴에이저들이 신분을 숨기고 흡혈귀들과 싸운다는 설정 역시 이들에게 쉽게 다가오는 내용이었지요.

단단한 고정 팬들이 생겼다는 이유 때문인지 [버피] 시리즈는 서서히 동성애자 관객들에게 윙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2시즌에 남자 동성애자 캐릭터를 한 명 등장시킨 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3시즌에 나왔던 버피와 페이스 사이의 관계에서 동성애 서브 텍스트를 읽는 사람도 많았고요.

본격적인 커밍 아웃은 4시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3시즌 중반에 슬쩍 동성애 경향이 있다는 암시를 흘렸던 윌로우에게 타라 맥클레이라는 여자 친구를 붙여주었던 것이지요. 둘은 WB사의 검열에도 불구하고 6시즌까지 꿋꿋하게 살아남아 젊은 동성애자 커플들에게 롤모델 역할까지 제공해주는 중입니다.

8.

Giles: That was a bit, um, British, wasn't it?
Buffy: Welcome to the New World. 

"The Harvest"


영국과 미국 사이의 관계는 [버피]에서 은근슬쩍 중요합니다. [버피]를 만드는 조스 위든은 영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영국 텔레비전 시리즈의 팬입니다. 심지어 그는 BBC를 위해 [버피] 스핀오프 시리즈를 낼 계획이지요.

위든의 이런 취향은 [버피]에도 반영되었습니다. 아니, 미적 핵심이나 다름없었지요. 캘리포니아의 환하고 산문적인 배경에 영국식의 문화적이고 음산한 느낌을 결합시키는 것은 [버피]가 데뷔초 때부터 해왔던 일입니다. 하긴 흡혈귀들이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할 수는 없으니까요.

조금 더 나아가면 비평가들이 칭찬하는 [버피]의 유머들도 매우 영국적입니다. [버피]의 블랙 유머는 팔할이 영국적 '삼가말하기'입니다. 이것들이 화려할 정도로 정신없이 인용되는 미국 문화의 인용과 뒤섞이자 흥미로운 부조화의 느낌이 발생하는 것이죠. [버피] 시리즈가 수다스럽게 쏟아내는 신조어인 'slayspeak'를 슬쩍 연구해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지극히 영국적인 신사인 자일즈에게 스쿠비 갱의 아버지 역할을 부여한 것도 두 나라 사이의 문화차를 이용한 흥미로운 드라마를 제공했습니다. 와처 본부와 스쿠비 갱의 대립 역시 비슷하지만 이해의 시도가 결여된 격렬한 문화적 세대차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9.

Giles: It's the end of the world.
Buffy, Xander & Willow: Again? 

"Doomed"


벌써 6년 째를 맞는 시리즈지만 [버피]는 여전히 생생합니다. 현재 스쿠비 갱 멤버 역시 최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은 버피와 앤젤의 드라마틱한 러브 스토리가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겠지만, 사실 그 이야기는 그렇게 길게 끌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윌로우와 잰더의 새 애인인 타라와 아냐도 이전 사람들보다 훨씬 더 믿음직하고요. 5시즌 때부터 버피의 '동생'으로 등장하는 던 역시 스쿠비 갱에 새로운 맛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성공한 시리즈답게 [버피]는 슬슬 자식들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버피와 헤어진 앤젤이 코델리아를 끌고 나와 [앤젤]이라는 새 시리즈를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라고 한다면 전 [버피]의 앤젤보다는 [앤젤]의 앤젤이 더 낫습니다. [버피]에서는 끝도 없이 폼만 잡는 캐릭터였지만, 앤젤에서는 그럭저럭 성격이 살아있더군요.) 얼마 전에는 미래의 슬레이어인 프레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만화책 시리즈도 나왔습니다.

다른 시리즈들도 준비 중입니다. 몇 년 전부터 [버피] 애니메니션 시리즈에 대한 계획이 떠돌고 있습니다. 자일즈를 주인공으로 한 [리퍼]라는 BBC 시리즈도 계획 중이고요. 심지어 일부에서는 윌로우와 타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스핀오프 시리즈까지 염두에 두는 모양인데, 이렇게까지 쪼개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윌로우가 빠진다면 정말 [버피]답지 않을테니까요.

[버피]는 수많은 재능있는 배우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준 시리즈이기도 합니다. 주연인 사라 미셸 겔러, 앨리슨 해니건, 니콜라스 브렌든은 모두 이 시리즈로 스타가 되었습니다. 데이빗 보레아나스, 세스 그린, 일라이자 더쉬쿠, 앰버 벤슨과 같은 배우들 역시 [버피] 없이는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르지 못했을 거고요.

[버피]는 이후에 쏟아진 수많은 여성 액션물들에 길을 열어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버피]와 [앤젤]이 쏟아내는 'slayspeak'는 현대 미국 영어의 어휘를 늘리면서 그네들 문화의 일부로 자리잡았고요. 앞으로도 한동안 [버피]는 텔레비전 세계에서 살아남아 우리에게 상당히 많은 이야기거리를 제공해 줄 겁니다. (01/11/02)

기타등등

우리나라에서는 MBC에서 1,2 시즌이 방영되었습니다. 지금 NTV에서는 1시즌을 방영하고 있고요. AFN에서는 5시즌 초반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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