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의 얼굴

2010.02.05 22:15

DJUNA 조회 수:2538

옆은 요새 잘나가는 수단 출신의 패션 모델 알렉 웩 Alek Wek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요새 이 사람의 얼굴만 봐도 골치가 잔뜩 아프기 때문입니다.

왜? 일단 보세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프리카 영양처럼 멋진 몸매에 흑단처럼 까맣고 아름다운 피부, 그리고 지독하게 못생긴 얼굴... 그래요, 알렉 웩이 '미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아마 전혀 없을지도 모르죠.

그렇다고 해서 알렉 웩의 커리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웩의 성공은 그 과격한 외모에 있었지요. 못생겼건 잘 생겼건, 웩은 카메라 앞이나 런웨이에 서면 아주 강렬해 보이고 사람 눈을 끕니다. 그 사람의 상품 가치는 절대로 조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냐고요? 그게 아니랍니다.

만약에 웩이 백인이나 동양인이고 지독하게 못생겼다면 웩도 저도 마음 푹 놓고 잘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흑인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그 사람을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요? 정말로 웩이 못생겼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그 부류의 아름다움에 둔감한 것일까요?

둘 다 인정하기가 불편합니다. 첫 번째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한 종족, 또는 인종 전체를 모욕하는 것이 됩니다. 일반적인 미적 기준이 지극히 서구적이 된 요새의 현실을 생각한다면 우리 자신을 모욕하는 것일 수도 있죠. 두 번째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미적 기준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사실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대부분은 후자를 따라갈 겁니다. 그 편이 더 정치적으로 교정된 Politically corrected 것 같고 또 시대와 지역에 따라 미적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교육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지역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게 미적 기준이 상대적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됩니까? 단지 우리의 경험이 제한적이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미적 기준이 철저하게 상대적이었다면, 우리가 그렇게 손쉽게 서구적 기준을 받아들인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우리가 미적 기준의 변화와 같은 미묘한 현상을 정량화해서 설명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면 이미 인문학은 인문 과학이라는 말을 들을 가치가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린 그런 도구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고 이 터에서 우리가 만들어대는 생각들 중, 달고 다니는 캐치프레이즈가 주장하는 것만큼 객관적인 것들은 없다시피 합니다.

다시 말해 두 번째 선택도 그렇게 대단히 객관적인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두 번째를 따라가는 이유는 첫 번째와 다를 게 없습니다. 마음이 편해지니까요.

마음이 편해진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알렉 웩으로 다시 돌아가 보죠. 우린 과연 수단에 사는 웩의 이웃들에게 웩이 어떻게 보이는지 감이나 잡고 있을까요? 어림없죠. 우리는 서구적 기준으로만 웩으로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 결과 서구 잡지들이 웩을 '아프리카 미인'이라고 할 때, 그들의 대부분은 지극히 위선적인 발언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나름대로 좋은 의도지만 위선적인 건 어쩔 수 없죠.

게다가 웩의 성공은 적어도 미국의 흑인들 중 일부한테는 상당히 불쾌하게 받아들여진다고 하는군요. "패션 잡지들이 웩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것은 백인들이 흑인 모두가 알렉 웩처럼 원시인 같아 보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랍니다. 매우 공정해 보였던 발언에 뜻밖에도 편견의 가능성이 숨어 있었던 겁니다!

그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을 겁니다. 웩이 팔리고 있는 서구사회에서 '웩의 아름다움'은 머리의 발명품이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발언한 당사자도 모르는데 남을 어떻게 설득하겠어요?

웩의 얼굴을 다시 보세요. 해결책이 나옵니까? 전 모르겠습니다. 제 눈에는 웩이 스핑크스처럼 정체불명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전 이 사람이 아름다운 건지, 그렇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소속되어 있는 문화권의 대부분 사람들도 그렇겠지요. (9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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