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erre Boileau & Thomas Narcejac (글) 다른 제목: 악마 같은 여자

(이 글에는 소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뿐만 아니라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디아볼릭 Les Diaboliques (1955)], 제레미아 체칙의 리메이크 영화 [디아볼릭 Diabolique (1996)], 존 딕슨 카의 [모자수집광 사건 The Mad Hatter Mystery (1933)], 안토니아 프레이저의 [좋은 죽음이 되시기를! Have a Nice Death (1986)]의 결말 전체나 일부를 암시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각오하고 읽으시길.)

듀나 종종 극과 극을 달리는 사람들이 팀을 이루는 경우가 있죠. 피에르 브왈로와 토마 나르스자크가 바로 그런 예입니다. 피에르 브왈로는 재소자 갱생 사업일을 하다 현장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작가이고, 토마 나르스자크는 대학교수 출신의 문학 이론가입니다. 둘이 공저로 작품을 내기 전까지, 브왈로는 본격 추리소설작가였고, 나르스자크는 조르주 시므농의 예찬자이자 하드보일드 소설과 퍼즐 미스터리의 맹렬한 비판가였습니다.

어쩌자고 이들은 작당해서 소설을 쓸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 상대방한테서 자신의 부족한 면을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겠지요. 우린 대충 이들의 공저 과정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본격 추리 소설가인 브왈로가 스토리를 구성하고 플롯을 짜면, 나르스자크가 특유의 미문으로 심리 묘사와 분위기를 덧붙였겠지요. 칼로 그은 것처럼 분명하게 역할이 갈라지지는 않았겠지만 크게 틀린 추측은 아닐 겁니다.

참고 자료들을 읽어보면 이들의 작품 경향은 순수한 퍼즐 미스터리에 가까운 작품에서부터 초자연적인 공포물에 이르기까지 꽤 넓은 모양입니다. 아마 전혀 다른 경향의 두 작가가 뭉치다보니 주도하는 사람에 따라 취향이 변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제가 읽은 브왈로-나르스자크의 소설 세 편은 모두 비슷한 시기에 나온 초기작이라서 어느 정도 일관성이 보이는 편입니다.

파프리카 그 세 편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 [암늑대들], [죽은 자들 사이에서]죠? 모두 영화화되었습니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디아볼릭]으로, [죽은 자들 사이에서]는 [현기증]으로, [암늑대들]은 잔느 모로 나오는 동명의 영화로요.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과 [현기증]은 영화가 더 유명해서 이 소설들은 종종 영화 제목을 달고 재출판되지요. 우리가 읽은 동서추리문고의 번역제인 [악마 같은 여자]도 [Les Diaboliques]의 일본어 번역제를 한국어로 옮긴 거 같죠?

듀나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죠.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살인 음모에서 시작합니다. 소심한 세일즈맨인 페르낭 라비넬이라는 남자가 애인인 뤼셴느 모가르와 짜고 아내 미레이유를 죽이려고 하는 중이죠. 계획은 치밀합니다. 아내를 낭트의 오두막으로 유인한 뒤 수면제를 먹이고 욕조에 넣어 익사시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그곳에서 뭉개다가 시체를 다시 차로 옮겨 앙기앙에 있는 집 근처 강물에 버리는 거죠. 계획만 성공하면 아내 보험금 2백만 프랑을 들고 애인과 신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습니다. 용의자가 된다면? 지금까지 낭트에 있었다고 알리바이를 대면 되지요. 자살로 판명되면? 계약에 명시된 2년이 지났으니 보험회사에서는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파프리카 영리하지만 아주 독창적인 트릭은 아니지요? 아마 피에르 브왈로가 짜낸 음모 같은데, 전체적으로 존 딕슨 카의 [모자 수집광 사건]과 유사합니다. 두 편 모두 '시체를 옮겨 알리바이를 만든다'가 트릭의 핵심이지요.

듀나 '절대로 검출되지 않는 수면제'는 그냥 인정한다고 쳐도 과연 그게 그렇게까지 완벽한 범죄일까요?

파프리카 요새 같으면 폐 속의 물과 시체가 발견된 강의 물이 다른 종류라는 것을 밝혀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후 경직의 상태 속에 단서가 숨어 있을 수도 있겠죠. 머리를 조금 더 쓰면 몇 개 더 생각해낼 수 있을 거예요. 요샌 [C.S.I.] 때문에 그쪽으로만 생각이 흘러가거든요.

듀나 하지만 불쌍한 라비넬의 음모는 그런 것과 전혀 상관 없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암만 기다려도 강에 버린 시체가 발견되지 않는 거예요! 시체가 빨리 발견되지 않으면 계획이 틀어집니다. 정확히 사망 시간을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시체가 부패된 채 발견되면 애써 만든 알리바이가 소용이 없고, 시체가 발견되지 않으면 보험금을 탈 수가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 그와 뤼셴느가 시체를 버리는 걸 보고 나중에 강에서 시체를 훔쳐 협박을 하려 하는 거라면? 그것 또한 미칠 일이죠.

파프리카 하지만 라비넬의 고민은 그 정도 선에서도 끝나지 못하죠? 정신이 다 나간 그에게 죽은 아내 미레이유가 한 장 씩 편지를 보내오는 걸요. 마치 남편이 자기를 죽였다는 걸 전혀 기억을 못하기라도 한 것처럼 따뜻한 맘을 담뿍 담아서요. 게다가 미레이유의 오빠인 제르망은 분명히 죽은 동생을 얼마 전에 봤다고 하네요. 라비넬의 눈에도 미레이유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이는 것 같고요!

듀나 소설이 진행되면서 라비넬은 점점 공황 상태로 빠져 갑니다. 이미 정부인 뤼셴느에게 뭔가를 기대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해졌습니다. 아무리 찾아 돌아다녀도 미레이유의 시체는 없어요. 그리고 미레이유는 그에게 계속 쪽지를 보내옵니다. 곧 돌아오겠다면서요. 결국 라비넬은 죽은 미레이유를 피해 달아나다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권총 자살을 하고 맙니다.

파프리카 그런 심장 가지고 계획 살인을 하려 했다니, 참!

듀나 라비넬은 그냥 꼭두각시에 불과했잖아요. 그 모든 계획은 뤼셴느가 꾸민 것이었으니까요. 그게 남의 계획이라는 것 때문에 라비넬이 더 자신이 없었을 수도 있지요.

파프리카 라비넬은 참 딱한 남자입니다. 남자로서의 존재감을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이잖아요. 돈도 못벌지, 외모도 별로지... 아내와 애인 모두에게 성적으로 만족감을 주는 사람도 아니죠. 뤼셴느와의 불륜, 아내 살인의 음모라는 꽤 통 큰 행동을 하려고 그가 작정한 것도 순전히 자신의 왜소함에서 탈출하려는 시도인 듯 합니다.

듀나 당시 많은 서구 남자들은 자신의 남성성이 위협받는다는 위기감에 빠졌었죠.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어난 뒤에는 말이에요. 이런 상황에 대한 반응은 대충 둘이었습니다. 하드보일드 소설 주인공처럼 일부러 턱에 힘을 잔뜩 주고 자신의 남성성을 과장하거나, 이 소설의 라비넬처럼 지지리 궁상을 떠는 거죠.

파프리카 그러고보니 저돌적이고 강인한 의사인 뤼셴느와 얌전하고 나약한 가정주부인 미레이유는 당시 라비넬 같은 사람들이 여자들에게서 보았을 두 가지 모습을 과장한 것 같아요.

듀나 라비넬의 존재감은 범죄 이후 점점 축소됩니다. 아내의 유령이 '넌 날 죽였어!'라고 외치며 라비넬에게 덤벼들기라도 한다면 그는 이해라도 하겠지요. 하지만 미레이유는 '잠시 일이 있어서 이삼 일 동안 집을 비우겠지만 별일은 아니야'하는 식으로 가벼운 내용의 편지만 보내옵니다. 큰 맘 먹고 살인이라는 큰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 범죄가 상대방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다니요. 그는 정말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인 겁니다. 존재의 초라함이 초현실적인 수준으로 떨어지는 거죠.

파프리카 라비넬의 고뇌는 이제 실존적이 됩니다. 하긴 50년대 초라면 실존주의가 한창 유행이었을 때니 낚싯대 외판원인 라비넬이라고 해서 그 영향을 받지 않았을 리가 없겠죠. 문 너머에 있는 죽은 아내의 존재를 느끼면서 '지금이야 말로 하나의 그림자가 될 때다. 인간이어야 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라며 총을 입에 무는 라비넬에게는 실존주의적 패배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듀나 재미있는 건 이 소설이 러브 스토리로도 기능한다는 것입니다. 살인 이후 라비넬은 자신이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이 뤼셴느가 아닌 미레이유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미레이유의 존재는 무섭기도 하지만 유혹적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공포가 그를 엄습하기 전까지 그는 오히려 그런 그녀의 흔적들에 매혹되기도 하죠. 이 유령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상당히 에로틱합니다.

파프리카 불쌍한 라비넬... 진상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잖아요.

듀나 네, 참 눈치 없는 남자였어요.

에필로그에 도달하면 잔인한 진상이 밝혀집니다. 이 모든 건 뤼셴느와 미레이유가 라비넬에게 걸린 200만 프랑의 보험금을 노리고 계획한 조작극이었습니다. 미레이유는 그 때까지 멀쩡히 살아있었어요. 그는 아내에게 보험금이 걸린 것만 생각하고 있었지, 그가 미끼로 던지기 위해 자기에게 건 보험금은 까맣게 있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머리를 굴렸어도 뤼셴느가 지금까지 계속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 미레이유였다는 걸 알았을텐데요. 뤼셴느와 미레이유는 척봐도 전형적인 부치-펨 커플이잖아요?

파프리카 에필로그 전까지만 해도 라비넬은 딱한 남자였지만 결말에 도달하면 더 한심해집니다. 정말 그는 시작부터 존재가치가 없던 남자였어요.

듀나 전형적인 브왈로-나르스자크 식 피해자죠. 그 중 최악입니다. [암늑대들]의 제르베, [죽은 자들 사이에서]의 플라비에르도 딱한 남자들이지만 라비넬만큼 딱하지는 않아요.

파프리카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브왈로-나르스자크 콤비의 작품 중 비교적 앞뒤가 잘 맞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이 소설의 음모는 좀 위태롭습니다. 예를 들어 뤼셴느는 라비넬이 결정적인 순간에 권총 자살을 할 거라는 걸 어떻게 정확히 알 수 있었을까요? 소설에서는 그만큼이나 그녀가 라비넬을 잘 알고 있었다고 설명을 늘어놓지만 저에겐 너무 아슬아슬한 계획처럼 보입니다.

듀나 초현실적인 사건으로 시작되었다가 현실적인 음모로 끝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위태로워 보이죠. 지금까지 끌어온 심각함이 깨지기도 하고요.

파프리카 영화 이야기로 넘어가죠. 앙리 조르주 클루조가 이 영화를 [디아볼릭]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했지요? 하지만 내용과 분위기는 아주 다릅니다. 소설에서는 여자 둘이 남자를 죽음으로 몰아간다면, 영화에서는 남녀 커플이 여자를 죽음으로 몰고갑니다. 소설은 완전범죄로 끝나지만 영화에서는 민완 형사에 의해 범인들이 잡히죠.

듀나 브왈로-나르스자크의 원작은 그대로 영화화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동성애와 완전범죄는 당시 그대로 다루기 쉽지 않았을테니까요.

파프리카 클루조의 영화는 말 그대로 악의가 넘칩니다. 영화 속의 니콜과 미셸은 화가 날 정도로 사악한 사람들이거든요. 영화 전체를 통해 주인공 크리스티나는 정말 부당한 고통을 받기 때문에 권선징악의 결말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충분히 진정되지 못합니다.

소설에선 그런 느낌이 덜 들죠. 뤼셴느는 현실적인 음모가이고 미레이유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처럼 양심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진상이 밝혀져도 둘에게 별다른 거부감은 느껴지지 않아요. 라비넬에 대해서는... 원래 피해자로 태어난 남자니까.

듀나 [디아볼릭]은 존 배덤, 미미 레더, 제레미아 체칙과 같은 감독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지만 모두 오리지널 영화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죠. 사실 전 오리지널 [디아볼릭]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몇 번 각색된 적 있습니다. 80년대에 방영되었던 [추리극장]에서 하는 걸 본 적 있어요. 82년에 정지영 감독이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한 적 있습니다. 둘 다 저작권료는 한 푼도 지불 안 했겠지만요.

파프리카 86년에 나온 안토니아 프레이저의 [좋은 죽음이 되시기를!]이라는 단편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너무 닮아서 표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프레이저가 일종의 오마주를 의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만. (01/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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