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바이올렛 Ultraviolet (1998)

2010.03.13 23:18

DJUNA 조회 수:3180

감독: Joe Ahearne 출연: Jack Davenport, Susannah Harker, Idris Elba, Philip Quast, Colette Brown, Fiona Dolman, Thomas Lockyer

([울트라바이올렛]은 보통 미니 시리즈로 취급되고 있지만 여기선 일반 시리즈로 분류하겠습니다. 50분짜리 에피소드 6회는 일반적인 영국 시리즈의 1시즌 분량이고, 내용도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독립된 6회 에피소드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런던의 사복 형사인 마이클 콜먼은 친구 잭이 결혼식날 실종된 뒤로 지금까지 그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초자연적인 세계에 뛰어들게 됩니다. 그가 뛰어든 세계는 정체불명의 정부 기관이 코드 5라는 병에 걸린 사람들을 뒤쫓는 사냥터입니다. 코드 5 감염자들은 사람 피를 빨아먹고, 햇빛을 받으면 폭탄처럼 폭발하며, 거울에 모습이 비치지 않습니다. 코드 5에 감염된 잭을 추적하던 마이클은 경찰일을 그만두고 정부의 코드 5 전담 기관인 CIB (Complaints Investigation Bureau)의 요원이 됩니다.

네, 코드 5는 흡혈귀입니다. 하지만 [울트라바이올렛]에서 흡혈귀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는답니다. 코드 5라는 단어를 고집하는 동안 가끔 거머리라는 별명을 쓸 뿐이지요.

현대 흡혈귀 장르에서 흡혈귀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배제하는 수법은 꽤 흔합니다. 제가 전에 언급했던 [악어의 지혜]나 [악마의 키스]같은 작품들도 그랬잖아요. 이들은 이 단어를 지워버림으로써 흡혈귀라는 단어가 부여하는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하려 하는 것입니다.

[울트라바이올렛]은 이런 잔재주가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된 작품들 중 하나일 겁니다. 이 작품에서 코드 5는 하나의 질병일 뿐이고, 이들의 존재는 전체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런 묘사 때문에 [울트라바이올렛]의 흡혈귀들은 영국의 성적 소수자들이나 유색인종에 대한 은유가 되기도 하죠. 흡혈귀들의 최종 음모가 밝혀지는 제 6화에 이르러서도 우린 흡혈귀의 사악함에 대해 확신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그들은 종종 아주 동정적으로 묘사되기도 해요. 코드 5에 감염된 이후에도 아내의 주변을 맴도는 법정 화가와 같은 캐릭터들을 보세요.

당연한 일이지만 이 시리즈에는 소재 때문에 종종 비교되는 [엑스 파일]이나 [버피]의 선악 대결을 찾을 수 없습니다. 전직 신부, 의사, 예비역 군인, 전직 형사들로 구성된 CIB는 꼭 [엑스 파일]의 담배맨이 조직한 스쿠비 갱과 같은 사람들로, 이들의 주 관심사는 공공복지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런던의 대중 위생을 책임지는 공무원들인 것입니다. 이들도 자기 일에 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을 코드 5로 잃은 앤지는 지금은 한 줌의 흙먼지가 된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혐오로 괴로워하고, 불치병에 걸린 전직 신부인 퍼스는 흡혈귀 폴 호일과의 대면 도중 임무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물론 잭의 약혼녀 커스티에 대한 감정으로 괴로워하는 마이클 역시 죄의식을 잔뜩 뒤집어 쓴 건 마찬가지고요.

[울트라바이올렛]의 스타일은 이 장르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차갑고 건조합니다. 흡혈귀를 다룬 초자연적인 시리즈보다는 일반 경찰물에 가깝지요. 무척 영국적으로 묘사된 이러한 냉랭한 사실주의는 내용과 완벽하게 맞습니다. 결국 [울트라바이올렛]은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의 조용한 일상 속에 숨겨져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울트라바이올렛]의 흡혈귀 은유가 현대 영국 사회에 대한 코멘트로 적절하게 기능하고 있는 것도 그런 사실성 때문일 겁니다. (01/10/18)

기타등등

폭스 사에서 미국 리메이크 판권을 샀답니다. 하지만 방영되었다는 소리는 아직 못 들었고 방영되었다고 해도 성공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시리즈의 성격을 규정지은 영국적 분위기가 빠진다면 [엑스 파일]의 아류작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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