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가면 The Monkey's Mask (1995)

2010.03.16 23:54

DJUNA 조회 수:5032

Dorothy Porter (글)

[원숭이 가면 The Monkey's Mask]의 주인공 질 피츠패트릭은 전직 경찰 출신의 사립 탐정입니다. 은거 생활에서 벗어나 다시 시드니로 돌아온 질은 미키라는 젊은 여자의 실종 사건을 담당하게 됩니다. 질은 수사 과정 중 미키의 스승이었던 대학 교수 다이아나 메이틀랜드와 사랑에 빠지게 되죠. 하지만 미키의 시체가 발견되고 범인을 밝히기 위해 그녀가 속해있던 시드니 시인들의 세계로 접근해가면서, 질은 그녀가 아주 고약한 음모의 늪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원숭이 가면]은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사립탐정물입니다. 끊임없이 독백을 늘어놓는 터프한 사립탐정, 유혹적인 팜므 파탈, 미로처럼 얽혀있는 음모의 이야기와 같은 기본 요소들이 모두 존재하죠. 무대가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이고 주인공이 여자지만, 그건 사소한 차이입니다.

진짜 차이는 이 작품의 형식에 있습니다. [원숭이 가면]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로 쓰여진 추리 소설입니다. :-)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하긴 좀 괴상하게 들리는 건 사실입니다. 산문이 서사문학 장르를 지배하고 있는 요새는 더욱 그렇지요.

그러나 [원숭이 가면]의 시도는 대충 이치에 맞습니다. 원래 하드보일드물은 터프한 척 하지만 쓸데없이 장식적인 은유로 가득 한 장르입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시로 나가도 이상할 건 없죠. 게다가 이 작품에서 시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살해당한 미키는 시를 공부하는 학생이고, 용의자들은 대부분 시인들이거나 그들과 관련된 사람들입니다. 중간 중간에 제시되는 미키의 시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해요.

시로서 이 작품은 어떨까요? 글쎄요. 이 소설에는 시드니 노동자 계급의 거칠거칠한 구어체와 보다 전통적이고 예의차린 시인의 언어가 섞여 있습니다. 시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질이 시인 세계에 진저리를 치면서 정작 그 감정을 시로 읊는 걸 보면 꽤 재미있기도 해요. [원숭이 가면]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이런 감정과 기술이 시라는 형식과 충돌하는 과정입니다. 가끔 지나치게 무리해서 시보다는 뭉텅뭉텅 쪼개놓은 산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소설로서 [원숭이 가면]은 시라는 형식에 많이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시드니 문학계라는 배경이 흥미롭게 활용되기는 하지만 내용 자체는 그렇게까지 독창적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요. 조각조각 쪼개진 시는 비교적 전통적인 스토리를 낯설게 하고 종종 따분해질 수도 있는 장르 관습의 반복을 숨겨줍니다.

[원숭이 가면]은 괜찮은 시도입니다. 적어도 낯선 문학적 형식이 익숙한 장르 공식에 얼마나 흥미로운 변화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좋은 예가 될 수 있겠지요. (02/05/31)

기타등등

이 작품은 최근에 사만다 랭에 의해 영화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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