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rge Luis Borges, Adolfo Bioy-Casares (글) 권영주 (옮김)

[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가지 사건]은 그 집필 배경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끕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아돌포 비오이-카사레스가 시치미를 뚝 떼고 오노리오 부스토스 도메크라는 가상의 작가를 만들어 발표한 정통추리소설이라뇨. 한 번 구경하고 싶지 않습니까? 몇 년 전 전 정말 영문판으로라도 이 책을 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마존 헌 책방에서 이 책의 가격은 장난이 아니더군요. 지금와서 보면 안 산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내용을 소개하자면 이 단편집은 이시도르 파로디라는 명탐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여섯가지 추리 단편입니다. 파로디는 평범한 이발사지만 살인죄를 뒤집어 쓰고 무고하게 감옥에 갇힌 뒤 안락의자 탐정 노릇을 하고 있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파로디가 갇힌 273호 감방을 찾아와 그의 조언을 듣습니다.

무척 안전하고 행복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듣기만 해도 2,30년대의 황금기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그만큼이나 이 작품의 설정은 진부하고 도식적입니다. 사실 이 작품의 진부함은 의도적입니다. 주인공 탐정 이름이 파로디라는 것만 봐도 [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가지 사건]이 정공법으로 치고 나가는 정통 추리소설이 아니라 정통 추리소설의 패러디라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심지어 그들이 만들어낸 오노리오 부스토스 도메크라는 작가도 패러디의 일부예요. 물론 멀쩡한 작중인물이면서 자기가 등장한 픽션에 짜증나는 서문을 쓰는 헤르바시오 몬테네그로는 언급할 필요도 없겠죠.

보르헤스와 비오이-카사레스는 어떻게 하면 가장 짜증나는 추리소설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한 모양입니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문체예요. 보르헤스나 비오이-카사레스는 이해하기 어려운 장황한 글들을 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보르헤스의 경우 종종 한 문장이 몇 페이지를 넘어갈만큼 길지만 결코 읽기 어려운 글을 쓰지는 않습니다. 그의 문장은 간결하고 날렵하고 이해하기 쉽지요. 비오이-카사레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고요. 하지만 그들이 이 작품에서 택하는 문체는 정말 한숨이 나올 지경입니다. 이 여섯 단편들은 모두 사건 의뢰자들의 회상으로 전개되는데, 그들은 모두 정말 끔찍한 이야기꾼들입니다. 정보 전달 능력은 제로면서 잘난 척은 엄청나게 하지요. 이들이 어울리지도 않는 외국어 단어들을 남발하며 늘어놓는 따분한 이야기들을 읽는 건 정말 고역입니다. 심지어 우리의 명탐정님도 화가 나서 이 간단한 이야기도 제대로 정리 못하는 바보들아!라고 외칠 지경이니 말 다했죠. 영어로 읽지 않은 게 얼마나 잘한 짓인지요.

다루어지는 사건들도 그렇게 매력적이거나 신선하지는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모두 체스터튼 소설의 희미한 모방처럼 보여요. 특히 두 번째 단편인 [골리아트킨의 밤]은요. 심지어 그 단편에는 브라운 신부라는 인물이 등장하기까지 하죠. 두 작가들은 사건 해결 과정까지 모두 지워버렸는데, 이 역시 체스터튼의 소설들을 염두에 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작가, 배우, 호텔 급사, 중국인 외교관과 같은 사람들도 다채로운 인간군상이 아니라 진부하고 인공적인 장르 캐릭터들을 일부러 뽑아와 전시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두 작가들이 킬킬거리면서 글 쓰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킬킬거리는 소리가 환청처럼 진짜로 귓가에 울려요. 특히 진부하고 멍청한 이야기가 끝나고 이시드로 파로디가 이 끔찍한 카오스에 질서를 부여하는 순간이 오면요. 아까도 말했지만 파로디 자신은 이 바보스러움에 결코 관대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이 작품이 어떤 사회적인 비판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착각까지도 들죠.

의도가 무엇이건 [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가지 사건]은 그렇게 즐거운 독서 경험을 제공해주는 작품은 아닙니다. 보르헤스 팬이라면 한 번 읽어볼만 하겠지요. '하지만 보르헤스가 쓴 추리소설은 어떨까?'하는 궁금증 때문에 이 책을 꼭 찾아볼 필요는 없어요. 여러분은 이미 보르헤스의 걸작 추리소설들을 읽었습니다. [죽음과 나침반], [끊임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엠마 순스]는 모두 훌륭한 추리소설들이니까요. (05/08/1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