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Gamow (글) 김동광 (옮김)

만약 여러분이 70년대에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다녔고,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인 까까머리 또는 단발머리로 감추어진 두개골 속에 과학자가 되려는 청운의 꿈을 품고 있었다면, 조지 가모브는 결코 낯선 이름이 아닐 겁니다. 아마 여러분들 중 상당수는 그의 도움을 받아 통통한 영국인 은행원인 톰킨즈 씨와 함께 양자 코끼리를 사냥했을 것이고, 작은 운동장만큼 줄어든 상대성 우주를 탐색했을 것이고, 우주 탄생의 오페라를 감상했을 것이고, 맥스웰의 귀신과 신나는 테니스 게임을 벌였을 겁니다. 그리고도 힘이 남으면 타임머신을 타고 20세기 초엽의 덴마크로 훌쩍 날아들어 블라이담스바이 17번지의 고풍스런 건물 안에서 20세기의 가장 훌륭한 지성들과 함께 원자핵과 전자 사이를 넘나드는 이론의 모험 속으로 빠져들었겠죠.

톰킨즈 씨와 그의 물리학자 장인이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닐스 보어의 제자들이 벌인 열띤 토론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여러분이 이해했는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전파과학사에서 투박하게 번역한 조지 가모프 영감의 책을 통해 여러분이 물리학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일테니까요. 그러고 보니 1세대 가모브 독자들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은 오래 전에 40줄을 넘겼겠군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손좀 들어보시길.

하지만 전 왜 이렇게 연대를 높게 잡고 있는 걸까요? 지금까지 전파과학사의 책들은 중판을 거듭하며 끝도 없이 독자들을 찾아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톰킨즈 씨]와 같은 그의 고전들은 새로 출판사를 만나 다시 번역되기도 했고요. 가모브 영감은 요새 독자들에게도 결코 낯선 이름이 아닙니다.

사이언스 북스에서 얼마 전에 번역 출판된 [My World Line : An Informal Autobiography]는 그런 그의 독자들에게 멋진 보너스입니다. 이 책의 번역본은 [조지 가모브 -- 창세의 비밀을 알아낸 물리학자]라는 무뚝뚝한 제목을 달고 있는데, 가모브가 봤다면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군요. 하지만 출판사들은 제목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자체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빅뱅 이론이나 알파 베타 감마 이론과 같은 가모브의 대표적인 학설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면 이 책에 실망할 겁니다. 이 책에는 그런 이야기는 없어요. 가모브가 제대로 맘잡고 완성시켰다면 수록되었을 수도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영감은 책을 반 정도 쓰다가 죽어버렸어요. 그 때문에 이 책은 그의 탄생에서 그가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밖에 담고 있지 않지요. 다행히도 저자가 쓰다 만 초고가 뒤에 덧붙여져서 그가 어떤 책을 쓰려 했는지 짐작은 할 수 있지만요.

책은 일단 그의 인생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보낸 어린 시절, 학창 시절, 한창 신나게 발전하고 있던 물리학의 전성기를 보냈던 학자 시절, 소련 정부의 탄압과 미국 이주까지. 가끔 전문적인 이야기도 나오기는 하지만 걱정할 건 없어요.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면서 자긍심이 부쩍부쩍 늘어나는 사람들도 많을 걸요. 가모브 같은 위대한 물리학자도 평생동안 미분 계산을 제대로 못해 쩔쩔 맸다는 사실을 알게 될테니까요. 과학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물리학을 뒤흔든 30년]의 외전 쯤으로 읽을 수도 있을 듯 해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이 책에서 가장 유익한 부분은 가모브와 같은 소련의 현장 과학자들과 소련 정부가 그들에게 강요하던 소위 '프톨레타리아 과학'과의 비극적인 충돌을 다룬 장들입니다. 과학이라는 단어에 미신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던 80년대 인문학자들에게 이 글이 소개되었다면 수많은 맨파워가 절약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하긴 지금이라고 해서 그 때만큼 바보스러운 일이 안 일어난다는 것은 아니고 생각할 거리가 줄어든 것도 아니지만.

너무 심각하지는 말죠. 이 책의 장점은 일단 신나고 재미있다는 것이니까요. 가모브의 독자들이라면 잘난 척 하지 않는 그의 시원시원한 문체와 유머 감각에 익숙해져 있을 텐데, 이 책만큼 그의 유쾌한 성격이 적극적으로 드러난 작품은 없습니다. [물리학을 뒤흔든 30년]과 [이상한 나라의 톰킨즈 씨]로 익숙해진 그의 헐렁하고 귀여운 일러스트도 덤으로 따라 붙어요. 여러분이 70년대의 그의 책을 처음 접한 회상에 잠긴 중년 독자건 막 물리학의 세계에 맛을 들인 고등학생이건 상관없습니다. [조지 가모브]는 모두에게 비공식적이지만 즐거운 산책로를 제공해 줄 테니까요. (0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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